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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2018년 10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윤해성, 김재현. 이하 ‘보고서’) 보고서는 진실을 말하는 행위를 범죄화하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존치와 폐지의 이론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footnote]형법에 규정된 범죄에서 제외시키는 것, 즉 해당 범죄를 ‘폐지’하는 것.[/footnote]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체로 형사상 명예훼손은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공공의 비판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랬다.
대체로 형사상 명예훼손,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정당한 공적 비판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랬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보는 세계의 시선

보고서는 각종 국제 기준과 국제기구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비범죄화를 촉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footnote]유엔 자유규약위원회는 제34호 일반의견(General Comment No.34, 2011. 9. 12.)에서 우리나라도 비준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인권규약 (자유권협약) 제19조의 “의견 형성과 표현의 자유”(Freedoms of expressions and expression)부분을 해설하고데, 그 제47번째 문단에서, 형사범죄로서의 명예훼손죄에 관해 다섯 범주(단계)에 걸쳐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footnote]

  • (a)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범죄로 처벌해서는 아니됨.
  • (b) 허위의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악의(내지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형벌로 처벌해서는 아니됨.
  • (c) 정부에 대한 비판 또는 의견 표명을 한 개인을 명예훼손범죄로 처벌해서는 아니됨.
  • (d) 사실적시 여부를 떠나 모든 형태의 명예훼손에 대한 범죄화는 바람직하지 못함.
  • (e) 범죄로서 명예훼손을 허용하는 경우에도 이에 대한 처벌은 극히 중대한 사건으로만 제한되며 그러한 경우라도 구금은 적절한 처벌이 되어서는 아니됨.

UN 인권

이러한 인권규약의 해석에 따라, UN 총회 산하의 UN 인권이사회[footnote]Human Rights Council[/footnote] 및 여성차별철폐위원회[footnote]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footnote]를 포함하여 다수의 국제인권기구들은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명예훼손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철폐할 것을 권고해 왔다.

UN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는 한국 형법상 명예훼손 규정이 존재함에 따라 형사절차로 인한 체포의 위협과 재판 전 구속의 위협, 높은 비용의 형사재판에 대한 부담, 과도한 벌금 부과, 구금, 형사기록의 전과로 인한 위험과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절대 형사 범죄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징역과 같은 구금의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되므로, 형법전에서 삭제, 즉 폐지하고 민사법에 해결할 것을 권고하였다.

UN 인권이사회의 한국에 관한 UPR 워킹그룹 보고서에서도 마찬가지 내용을 볼 수 있다. 2018년에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따라 이행감시체제로 설립된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성폭력 범죄 피해자에 대한 제2차 피해의 요인 내지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신고 및 법적 조치를 취하는데 한국의 명예훼손죄의 규정이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취지로 다루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의 목소리에 족쇄를 채우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한국의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 규정은 성범죄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가로 막는다고 UN 인권이사회 UPR 워킹그룹 보고서는 지적한다.

한편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기본권인 점을 강조하여 2001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회원국들에게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해 왔다. 이에 따라 유럽평의회 회원국들은 형사법에 규정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였고 실제 적용에 있어서도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유인즉,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형벌보다는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특히 명예훼손에 대해 징역형을 부과하는 형사법 규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교법적으로 검토하여도 명예훼손을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많지 않으며, 더욱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의 명예훼손죄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임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허위인 경우에 성립되므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도 명예훼손 처벌규정이 있지만, 적시된 사실이 진실임을 입증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2010년 1월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면서, 당시 영국의 법무장관은 이렇게 폐지 이유를 밝혔다.

“선동죄와 반정부 명예훼손죄, 형법상 명예훼손죄 등을 오늘날처럼 표현의 자유가 권리가 아니었던 지나간 시대의 이해할 수 없는 범죄.”

표현의 자유
영국은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권리가 아니었던 시대의 이해할 수 없는 범죄”였다고 말했다. (출처: Looking Glass, CC BY SA)

또한 미국은 명예훼손에 관하여 대부분 민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일부 주는 명예훼손에 관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지만, 실제 적용되는 예는 거의 없으며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에서도 허위의 사실에 대해서만 명예훼손책임이 인정되고 진실한 사실은 면책된다.

일본은 사실을 적시한 경우 우리보다 비교적 높은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만, 위법성조각사유에서 공공성이 있는 경우에 사실여부를 판단하여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면 처벌하지 않는 구조다. 또한 일본은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규정하여 공소 제기 전에는 공공의 이해로 보아 범죄의 성립이 부정되나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 비로소 사실여부를 판단하여 진실이면 처벌을 하지 않는 구조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해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제3자가 ‘고발’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나라들의 명예훼손죄에 관한 형사정책을 간략히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영국: 2010년 1월 명예훼손죄 폐지.
  • 독일: 사실인 경우엔 명예훼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
  •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사실임을 입증하면 면책됨.
  • 미국: 대부분 형사가 아닌 민사적으로 해결. 형사에서도 사실임을 입증하면 면책.
  • 일본: 우리보다 강하게 처벌하지만 공공성이 있으면 위법성 조각. 그리고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고소권자(피해자)만 고소할 수 있는 ‘친고죄’

사실적시 명예훼손, 왜 문제인가 

보고서는 형법이론 및 헌법적 관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다.

명예훼손죄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명예권표현의 자유 사이에 발생하는 기본권 간의 충돌 문제이다. 개인의 인격권도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이자 법익이지만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위 ‘허명’까지 보호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즉, 허명을 포함한 명예와 진실한 표현 사이의 비중을 평가하면 진실한 표현을 보호할 필요가 더 크다고 할 것인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이러한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하여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 및 최후수단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허명을 형벌로써 보호하는 것은 과도하며, 이렇듯 형벌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피해자의 이익보다 형벌로 인해 침해되는 이익이 현저하게 클 경우에는 비범죄화를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시하고 있다.

사실보다 '허명'을 보호하는 게 정의에 부합하는가.
사실보다 ‘허명’을 보호하는 게 정의에 부합하는가.

한편 형법 제310조는 진실한 사실의 적시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 행해진 경우에 위법성을 조각하는 규정이다. 본 조문을 반대로 해석하면 진실한 사실의 적시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형사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는 헌법 유보조항 및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지, 공공의 이익에 관해서만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즉, 자유권이란 임의적 자유이고, 어떠한 목적 실현을 위한 자유가 아니다. 기본권적 자유가 국가 목적이나 공익 실현의 목적에 종속되어 그 결과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국가공동체에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행사해야 한다면 그것은 자유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형법 제307조 제1항은 마치 표현의 자유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때에만 허용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헌법에 위배된다.

전 세계적인 흐름은 ‘폐지’ 

보고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론이 전 세계적인 주류이고, 우리나라의 현행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헌법에 위배되고 법논리적 오류를 가지는 이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존치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부당하므로 장기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물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존치시키고 위법성 조각사유의 확대해석 및 요건을 넓혀 비범죄화의 범위를 넓히거나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엄격한 해석을 통해 사생활을 침해하는 범위 내에서만 처벌할 수 있도록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집적된 판례의 논리를 짧은 시간 내에 변경하기는 어렵고, 진실한 사실의 적시가 범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 이상 민주주의의 초석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를 부정할 수 없다.

시민 투쟁 촛불 화합 협력

나아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거나 최소한 비구금형으로 하고 있음은 명예보호를 위해 형벌 이외에 다른 수단, 즉 손해배상이라는 민사적 제재가 보다 효과적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보고서는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보호할 필요가 있으므로, 사생활을 보호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범죄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미투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위축시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해악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형사정책연구원과 같은 국책 연구기관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법적 문제점 및 국제기준, 국제 동향을 자세히 분석하여 폐지가 더욱더 타당한 방향이라는 결론의 보고서를 낸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국회와 법무부는 형벌 만능주의와 현상유지적 태도를 벗어나 정책 연구기관과 국제사회의 명예훼손 비범죄화에 대한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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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윤해성, 김재현)를 ‘공공누리'(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에 따라 요약, 소개한 것입니다. 보고서 원문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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