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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TALK’ 칼럼으로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에 담았습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합니다. ‘언론윤리TALK’은 언론 현상을 윤리 관점에서 새롭게 들여다는 한편 언론인들이 직면하는 윤리적 갈등과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는 대화의 장이 되고자 합니다. (언론인권센터)
이번 칼럼의 필자는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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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직 사회는 새로운 법 하나를 공부하느라 이곳저곳에서 연일 교육과 특강이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지난 5월 16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해충돌방지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속성과외가 한창인 모양입니다. 200만 공직자가 적용 대상인데, 입법 과정에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처럼 언론인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냥 넘어갔습니다.
법안이 아니라더라도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이란 용어는 요즘 뉴스에서 매우 흔하게 접하게 되는 유행어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들 가운데 부동산 부지들이 많아 이해충돌 소지가 높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 기사들이 그런 예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빅카인즈를 검색해보니 이 단어가 포함된 뉴스는 2018년 325개에서 2019년 2,400개, 2020년 2,545개, 2021년 5,010개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왜 그럴까요? 기사를 쓰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지만, ‘공정한 절차’를 갈망하는 시대 흐름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사회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적 결정이 사적 이해에 오염됨이 없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죠. 이해충돌 차단은 공정성을 확보하는 안전장치와 같기 때문에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언론의 공적 기능으로 인해 이해충돌 방지는 언론윤리에서도 중심축으로 작용합니다. 언론에서 이해충돌은 뉴스를 결정하는 과정에 언론의 독자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이 아닌 사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언론윤리헌장이 선언하고 있듯이 언론이 뉴스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하는 이해관계는 오직 시민을 위해 진실을 전달한다는 윤리적 의무이어야 합니다. 미국 기자협회(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 윤리강령은 “언론인들은 공중의 알권리를 제외한 어떠한 이해 의무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뉴스를 현실 그대로가 아니라 언론인 개인과 언론 관행, 언론사 조직, 외부 제도와 사회 체계 등 수많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재구성된 현실로 정의합니다. 말을 바꾸면 그 요인들이 모두 이해관계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정치권으로 가기로 밀약을 나눈 기자가 쓰는 정치 기사, 뉴스 가치보다 취재원과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해 쓴 기사, 이미 나온 내용이지만, 조회 수를 높이려고 선정적으로 가공한 기사, 광고주의 부탁을 받고 작성한 기사 등 사례를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언론윤리의 요체는 한마디로 이해충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윤리적 저널리즘 핸드북’은 155개 조항 가운데 다수가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의무 목록을 세세히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핸드북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해충돌에 해당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재차 못 박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이해충돌 이슈로 홍역을 치렀습니다. 올림픽에서 23개 금메달을 딴 미국의 수영왕 마이클 펠프스가 은퇴 후 올림픽 대표팀 후배들을 지도하는 멘토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미담 기사가 문제였습니다. 알고 보니 기사를 쓴 기자가 은퇴 후 펠프스 전기를 공동집필하기로 계약을 맺은 상태였던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해당 기자를 정직 처분하고 기사에는 “사전에 이런 이해관계를 알았다면 기사를 쓰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는 편집자 주를 추가했습니다.
이해충돌은 실제로 발생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겉보기에 무언가 배겨에서 작용을 한 것 같다는 오해만으로도 대중은 기사의 공정성에 의심을 가지게 되고, 신뢰를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죠. 대통령과 취재진이 약식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어떤 기자가 “대통령님 파이팅”을 외친다면 그 진의와 관계없이 해당 기자는 물론이고, 해당 언론사와 청와대 취재진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해외 언론의 윤리강령은 취재보도 활동은 물론이고, 개인적 외부 활동에 대해서도 이해충돌로 비추어질 수 있는 행위들을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들이 많습니다. 정치적 모임이나 집회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거나 취재원과 사적 친분을 의심케 하는 행위 또는 홍보활동에 자문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입니다.
국내에서는 정부나 공공기관에 자문을 하는 위원회 활동에 언론인이 참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익을 위한 활동이고, 사회봉사 차원에서 참여하는 것이니 문제될 게 없다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검찰총장 추천위원회 같은 민감한 자리에 언론인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정부 활동에 간여하는 행위는 독립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언론사들은 자사 기자들이 영화제나 문학상, 토니상 같은 저명한 뮤지컬상 심사는 물론 야구의 ‘명예의 전당’, 대학 미식축구 최고 선수에게 주는 ‘하인즈먼 트로피’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공정성을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며 허용하지 않습니다.
국내 언론 환경에서 이해충돌은 언론인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의 책임이 더 무겁게 강조되어야 합니다. 언론사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을 사주의 개인적 영달이나 사업에 활용하거나 저널리즘 가치보다는 상업적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언론윤리를 실천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사의 윤리규범들이 액자 속에만 머물지 않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서 작동하기 위해서도 사주와 발행인의 실천 의지가 필요합니다. 아래 언론윤리헌장 제8조가 이해충돌을 다루면서 다른 조항과 달리 언론사의 책무를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윤리적 언론은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고 언론의 힘을 사적으로 남용하지 않으며 이해상충을 경계하고 예방한다. 언론인과 언론사의 도덕적이고 품위 있는 행동은 권력과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