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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증의 탄생

  1.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ft. 생각, 말, 글)
  2. 대화의 파토스와 에토스 vs. 글의 로고스
  3. 논증이냐 아니냐: 고등학교와 대학 글쓰기의 차이
  4. 왜 이것은 논증이고, 저것은 논증이 아닌가
  5. 논증의 다섯 가지 요소: 일상 대화에서 찾는 논증의 원리
  6. 냉소적인 방관자 ‘독자’ 설득하기: 실용 논증과 개념 논증
  7. 가치 있는 주장을 위한 세 가지 조건
  8.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생각의 오류 (ft. 비판적 상상력)
  9. 우리가 원인을 잘못 판단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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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논증을 활용할 때, 세 단계에 걸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주장이 무엇인지 묻는 단순한 질문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토대’에 관해 묻는 까다로운 질문까지 나아간다.

논증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논증은 다음과 같은 ‘검증’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1단계. 주장-이유-근거

  • 당신의 주장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는가?
  • 막연한 느낌이나 감정에서 나오는 의미없는 주장 아닌가?
  • 주장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있는가?

2단계. 반론 수용과 반박

  • 당신이 제시한 주장,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근거는 얼마나 튼튼한가?
  • 그러한 주장-이유-근거를 다른 사람들도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이겠는가?
  • 당신이 제시한 이유와 근거에 사람들이 의심을 표하더라도, 까다롭게 캐묻더라도 굳건히 방어할 수 있는가?
  •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온갖 반론과 대안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느가?
  • 제대로 반박하고 끝까지 밀고나갈 수 있겠는가?

3단계. 전제

  • 당신의 생각이나 구상은 논리적인가?
  • 추론의 원리는 타당한가?
  • 이유가 주장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근거가 이유를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다른 사람들도 납득하겠는가?
  • 납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가?
기본적인 논증모형
기본적인 논증 모형

비판적 사고, 스스로 자기 생각을 검증하는 것

물론 이러한 질문들이 다른 사람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판단이 과연 합리적인지 스스로 의심하고 검증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도 물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는 것은 남의 생각을 검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 1단계: 나의 주장은 어떤 이유와 근거로 뒷받침할 수 있는가?
  • 2단계: 내 주장과 이유만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다른 관점이나 대안들을 모두 고려했는가?
  • 3단계: 내가 선택한 추론의 원리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이렇게 질문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의 헛점이 드러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판단을 바꾸거나, 익숙한 사고방식을 뒤집거나, 진실이기를 ‘바라는’ 나의 편향을 허물어야 한다.

사실 그러한 경험이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논증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언제든 새로운 주장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하고, 생각지 못한 질문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창조성과 혁신을 촉발한다.

논증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는 과정은 새로운 질문, 새로운 아이디어, 창조성과 혁신을 촉발합니다.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마음속에서 내 주장이 무엇인지,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리해내보라.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따져보라. 주장과 이유에서 나의 숨어있는 바람과 믿음과 편향을 발라내라. 내 생각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명확하게 진술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 그러한 질문을 떠올려 스스로 질문할 수 있도록 까탈스러운 내면의 목소리를 늘 곁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잠깐,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정말 타당한 것인가? 이 근거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나온 것인가? 이 결론은 타당한 추론의 결과인가, 아니면 내가 원해서 억지로 이끌어낸 것인가? 누군가 (이 논증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을 바로 ‘비판적 사고’라고 한다. 비판적 사고를 터득하고 습관화한 사람은, 어떠한 질문이 들어오든 전혀 위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반갑게 여길 것이다.

반대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부실한 논증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질문을 피해다니고, 질문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힘이 있다면)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제압하거나 (힘이 없다면) 연민에 호소한다.

‘설득’을 목적으로 하지만 논증이 아닌 것

1. 협상(negotiation) 

가격을 놓고 서로 흥정을 할 때에도 주장과 이유를 서로 교환하기에 논증처럼 보인다. 하지만 협상에서는 쌍방이 수긍할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이유를 제시해도 상관없다.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하고, 거짓 근거를 대기도 한다.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숨긴다고 해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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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에서는 솔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보를 숨겨서는 안 된다. 자신의 주장과 연관된 정보를 생략해서는 안 되며, 의심스러운 이유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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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전(propaganda)

주장과 이유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논증과 비슷하지만 그 이유의 타당성은 전혀 따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감정만 자극할 수 있다면 뭐든 가져다 쓴다. 타겟으로 삼은 사람들의 특정한 생각을 꺾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반론수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괴벨스 선전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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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논증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고 다른 이들의 반론에 귀 기울이고 그에 대해 반박할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조차 바꿀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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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압(coercion)

  • 내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다음 공천은 못 받을 걸 각오하십시오!
    →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을 치러야 한다고 협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 내 뜻을 순순히 받아들이 사람에게는 충분한 보상과 후과가 있을 것입니다!
    → 채찍 뿐만 아니라 당근’ 역시 강압의 또 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 내가 25년 검찰생활을 해봐서 딱 보면 압니다. 내 말이 틀린 적 없습니다!
    → 자신의 권위를 논증에 이용하는 것도 역시 강압이다.
  • 온갖 핍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제가 정권을 교체할 유일한 희망입니다.
    →  상대방의 동정심을 자극하거나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고귀한 가치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압박하는 것 역시 강압이다. 상대방에게 창피를 줘서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도 강압이다.

협박 강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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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협상, 선전, 강압이 늘 비합리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강압하고, 선전하고, 협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행동을 ‘양육’이라고 부른다. 또한, 아이들을 인질로 잡은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기 위해 협박하거나 협상하는 것을 우리는 비합리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공정한 시민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어떠한 대화형식이 가장 적합한지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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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처럼 보이지만 ‘설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 

1. 설명(explanation)

  • 집에 가야겠어. 너무 피곤해서 실수를 해.
    → 첫 문장은 주장이고, 두 번째 문장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처럼 보인다. 하지만 발화의 의도를 알기 전까지 우리는 이것이 논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 론: 갈거니? 시간이 됐는데. 몇 시간째 일을 했잖아.
    타냐: 집에 가야겠어. 너무 피곤해서 실수를 해.
    →  타냐는 론에게 자신이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론도 타냐가 집에 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라 ‘설명’이다. 다음 대화와 비교해 보라.
  • 론: 집에 가면 안 돼! 네가 있어야 돼!
    타냐: 집에 가야겠어. 너무 피곤해서 실수를 해.
    → 
    타냐의 말은 위와 똑같지만, 여기서는 자기 주장을 론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유를 덧붙임으로써 ‘설득’하고자 한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명이 아니라, 논증이다.

따라서, 어떤 진술이 논증이 되려면 다음 두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1. 형식: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선 주장(상대방의 이해나 행동을 요구하는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 이상의 이유(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실이 되는 진술)가 존재해야 한다.
  2. 대화 참여자의 의도: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때에만’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때 논증은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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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복잡한 쟁점을 놓고 논증할 때는 설명과 논증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예컨대 제3세계에서 만든 티셔츠를 불매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고 싶다면, 제3세계의 노동환경이 어떠한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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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야기(story)

물론 소설이나 영화가 논증 못지않게 설득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야기에는 대부분 비판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는다.

  • 이야기가 선사하는 공포나 기쁨은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며 매우 강렬한 효과를 유발하지만, 논증이 선사하는 지적 희열은 그만큼 강렬하지 않다.
  • 생생한 이야기는 직접 보고 듣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지만, 추상적인 논리로 전개해나가는 논증은 이야기만큼 생생한 감정을 전하지 못한다.
  •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는 최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보류한다.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잠깐만, 저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다. 실제로 경험담을 들려줄 때 상대방이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 의심하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의심은 곧 이야기하는 사람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논증을 할 때에는 이유, 근거, 논리, 심지어 논증을 하는 필요성까지 모든 것을 독자가 의심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독자가 의심하고 질문하면 비판적 사고를 하는 화자는 오히려 고마워한다.

좋은 이야기가 곧 좋은 논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야기만으로는 주장이나 이유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전하고자 한다면 ‘분수에 넘치는 것은 욕심내지 말라’와 같은 분명한 메시지를 이야기 끝에 덧붙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구를 첨가하지 않으면 독자는 자신이 읽은 이야기가 무슨 주장을 하려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솝

3. 이미지(image)

이야기 혼자서 논증이 되지 못하듯, 시각적 이미지 역시 혼자서 논증이 되지 못한다. 말을 최대한 빼낸다고 하더라도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를 진술하는 말은 있어야 한다.

예컨대 굶주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런 이미지는 우리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며 울부짖는 듯 하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까? 평화봉사단에 가입하라고?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하라고 의회에 청원을 하라고? 세계화를 멈추라고? 돈을 보내라고? 누구에게 보내라고? 글이나 말로 명시하지 않으면 이미지가 무엇을 해달라고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아래 버거킹 광고 이미지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버거킹

  • “와퍼 28일째”(맨 위): 그림을 설명하는 캡션 역할을 한다. 근거
  • “인공 보존료가 하나도 없는 아름다움”(아래 세 줄) 이유
  • “버거킹”(가운데 로고)  주장: 건강한 햄버거, 사세요!

위와 같은 문구가 없다면 부패한 햄버거 이미지는 아무런 메시지도 전하지 못한다. 또한, 광고는 대부분 반론을 뺀 논증, 즉 ‘선전’(propaganda)의 형태를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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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와의 협의 하에 [논증의 탄생: 21세기 민주시민을 위한 비판적 사고, 토론, 글쓰기 매뉴얼] (조셉 윌리엄스)에서 발췌한 내용을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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