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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증의 탄생

  1.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ft. 생각, 말, 글)
  2. 대화의 파토스와 에토스 vs. 글의 로고스
  3. 논증이냐 아니냐: 고등학교와 대학 글쓰기의 차이
  4. 왜 이것은 논증이고, 저것은 논증이 아닌가
  5. 논증의 다섯 가지 요소: 일상 대화에서 찾는 논증의 원리
  6. 냉소적인 방관자 ‘독자’ 설득하기: 실용 논증과 개념 논증
  7. 가치 있는 주장을 위한 세 가지 조건
  8.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생각의 오류 (ft. 비판적 상상력)
  9. 우리가 원인을 잘못 판단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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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논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논증의 탄생

이 세 가지 요소만으로도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려 깊은 독자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특히 ‘글’까지 써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면 그 자체로 복잡하고 찬반이 치열하게 엇갈리는 주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세 요소만으로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독자의 시선으로, 독자의 관점으로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독자의 시선 논증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설득에는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자의 관점을 논증 속에서 언급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쓰는 것은 독자를 무시한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남의 생각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최악의 경우, 독단적인 사람이라고 낙인찍힐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에게 어떠한 신뢰도 주지 못한다.

독자와 협력하고자 하는 태도, 토론과 논쟁에 열려있는 태도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논증의 세 가지 핵심 파트를 독자의 시선으로 감싸야 한다. 내 생각과 독자의 생각 차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반응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 자신의 주장이, 성급하게 내린 결론이 아니라 독자의 다양한 생각까지 사려깊게 고려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비판적 사고를 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Robbert van der Steeg, CC BY SA https://flic.kr/p/7x3dXV
독자와 협력하고 토론과 논쟁에 열린 태도를 보여주려면 논증의 세 가지 요소를 독자의 시선으로 감싸야 한다. (출처: Robbert van der Steeg, CC BY SA)

물론 독자의 반론과 대안을 자신의 글에서 언급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하는 독자들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상상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을 글 속에 삽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내 주장에 대하여 풀리지 않은 의심, 다른 해법,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 ‘그렇다면 OO한 경우에는?’이라고 묻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타인의 시선을 수용하는 게 어려운 이유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내 주장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주장을 의심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매우 당황한다. 누군가 그런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방어적 자세를 취하며 어떠한 반격이든 맞받아치려고만 한다. 반면에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는 질문에 대해 전혀 당황하지 않고, 또 느긋함을 잃지 않고 여전히 친근한 어조로 반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토론 대화 논쟁

이것은 한 순간의 임기응변이 아니다. 논증을 펼쳐 나가는 동안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이들이 던질 수 있는 온갖 반론을 상상하며 그것에 대해 정당하게 반박하는 사고 훈련을 꾸준히 한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이처럼 스스로 반론을 상상해내고 거기에 대해 차분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펼치는 논증은 한층 넓고 깊고 탄탄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자신의 논증에 대해서 엄격하게 따질 줄 아는 사람이 내놓는 주장은 사람들이 더욱 신뢰한다. ‘더 현명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에토스(Ethos)라고 하는데, 이러한 에토스를 꾸준히 발산하는 사람은 대부분 높은 명성을 얻는다.

사려 깊은
‘더 현명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에토스(Ethos; 인격적 요소)라고 한다.

물론 반대의견이나 대안을 계속 제시하는 것은 말꼬리를 잡고 대화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좀더 보편적으로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마지못해 동의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침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대한 주제를 놓고 논증한다면 이렇게 잠자코 있는 것은 절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논증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주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반대의견을 내세울 의무가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트집 잡고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협력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비로소 타당하고 생산적인 논증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 한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 지적 능력과 비판적 상상력의 부족

  • 다른 이들의 관점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내 생각만 중요하다.
  • 고려해 볼 만한 또 다른 견해가 존재할 수 있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사실, 간단한 논증을 할 때조차 자기 생각을 남의 시선에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을 익히고 비판적 사고를 몸에 익히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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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관점과 비판적 사고를 몸에 익히려면 더 많은 공부를 통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즉, 비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2.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

  •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틀릴 수 있는 사실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 나의 논증의 오점을 인정하거나 남의 논증에서 탁월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 그것은 곧 나의 완전무결함을 훼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겁내야 하는 것은 틀리는 것이 아니라, 무례하고 독선적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남들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곧,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고 자신이 없다는 것을 더욱 드러내는 것이다. 사려깊은 독자들은 이런 사람을 금방 알아본다. 당연히 그들이 내놓는 주장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근심해야 하는 건 내가 틀렸을 거라는
근심해야 하는 건 내가 틀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독자)에게 무례하고 독선적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생각의 오류: ‘확증편향’

우리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생각의 오류는 바로, 자기 생각만 꽉 붙들고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는 것이다. 이는 나이, 지능, 학력, 경험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저지르는 오류다. 자신의 생각과 모순되는 근거는 무시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근거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혹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그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필터 버블, 즉 개인화된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현상은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과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이윤 추구 욕구가 맞물려 더욱 구조화하고 있다.
필터 버블, 즉 개인화된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현상은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과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이윤 추구 욕구가 맞물려 더욱 구조화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누구든 자기 자신의 생각 속에 갇히기 쉽다.

이러한 심리적 편향을 보완하고 싶다면, 자신의 생각에 반박하는 의견을 능동적으로 찾아봐야 한다.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일부러 찾아보라. 반론 자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친하지만 까다로운 친구가 곁에서 다음과 같이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상상하라.

  • 논증 자체의 타당성을 의심한다: 주장, 이유, 근거, 전제가 틀린 것은 아닌가? 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이유나 근거가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가?
  • 다른 관점이나 해석을 떠올린다: 근거와 전제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같은 근거를 가지고도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또는 여러 해법 중에서 내가 선택한 해법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논리의 일관성을 의심하라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모순되는 진술을 하거나 명백한 반박 예증을 무시하고 슬쩍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독자는 논증에서 이러한 약점을 여지없이 찾아낸다.

  • 의원님은 사용자단체의 기부금을 받으시면서, 제가 노동자단체의 기부금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비난할 수 있습니까?
  • TV의 폭력적인 장면은 아이들의 도덕적 성장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성적으로 노골적인 영화만 어찌 해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논증에 적용하는 전제를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적용하고 불리할 때는 무시하는 것을 독자들은 금방 눈치챈다. 예컨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성행위가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주장한다면 독자는 이 주장이 다음과 같은 보편적인 논리 원칙(=전제) 위에 기반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 어떤 행위를 미화하여 생생하게 보여주면 아이들은 그것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방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 전제는 영화 속 섹스와 TV 속 폭력을 구분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하나가 해롭다면 다른 것도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이다. 이 두 가지 행위를 구분하려면 좀 더 폭이 좁은 전제를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전제를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사춘기 아이들은 성적인 이미지에 더 강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폭력 장면보다는 섹스 장면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이 TV

물론 이처럼 좁은 전제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왜 타당한지 별도의 이유와 근거로 전제를 뒷받침하는 논증을 펼쳐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전제는 독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논증 속에 이처럼 모순되는 진술이 혼재하거나, 주장에 대한 반론이나 반증이 명확하게 존재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독자는 글쓴이를 ‘지적 일관성이 부재한 사람’이라고 인식할 것이고 글쓴이의 에토스는 치명적으로 손상되고 만다.

  • 실용논증(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증)에서,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원칙을 남에게만 적용한다면? → 공정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 개념논증(어떤 것에 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증)에서, 원하는 해답을 얻기 위해 선택적으로 원칙을 적용한다면? →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또는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독자는 글 속에서 제시하는 논증의 원칙을 비슷한 다른 상황에도 적용해본다는 것을 명심하라. 자신의 주장에 대한 대안, 반론, 의심을 스스로 생각해내고, 이에 반박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나의 지적 능력, 열린 태도, 더 나아가 나의 사람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가장 좋은 길이다. 자신의 논증은 물론 나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쌓은 에토스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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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화적 코드’가 담긴 전제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논증의 타당성을 놓고 싸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제’ 때문이다. 추론하는 방식이 같다고 해도, 문화가 다르면 추론의 출발점이 되는 가정도 달라진다. 이러한 가정은 단순히 통계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을 추론하는 방법의 지침이 되는 역동적인 원칙(=이데올로기)이다. 대개 속담을 통해 표현되는 이러한 원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예컨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하자.

남들과 다르게 말하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미국에서는 “이 아이는 커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속담에 반영된 문화적인 가정을 미국인들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 삐걱거리는 바퀴일수록 더 기름칠하기 마련이다. (미국 속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의미로, 남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일본과 한국 속담) 

이는 다른 이들 사이에서 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남보다 튀는 사람은 곧바로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고 이로써 살아가는 일이 험난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처럼 ‘어떤 아이가 남다르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똑같이 동의하더라도 전혀 다른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수많은 문화적인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가정은 대개 집단심리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전제로써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인 가정을 눈 여겨 본다면, 서로 차이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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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와의 협의 하에 [논증의 탄생: 21세기 민주시민을 위한 비판적 사고, 토론, 글쓰기 매뉴얼] (조셉 윌리엄스)에서 발췌한 내용을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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