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나 엔리코 모레티의 [직업의 지리학]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혹은 중국의 선전이나 상하이가 지역적, 세계적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가는 핵심적 장소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밀레니엄의 여명에 있던 몇몇 사람들의 예측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정보화, 세계화를 통해서 많은 관찰가들은 지리와 장소가 중요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람들은 혼잡한 도시를 벗어나서 쾌적한 교외에서 화상회의와 재택근무로 업무를 보며 그로 인해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삶이 판이하게 바뀔 것이라는 그런 예측들 말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에스파냐 출신의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일찍이 1995년부터, 현대 경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오히려 세계적 메가시티로의 집중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카스텔이 전설적 역작인 정보시대 3부작을 탈고한 뒤 십수년이 지나고 나온 [도시의 승리]와 [직업의 지리학]은 이런 카스텔의 전망이 타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 도시가 승리했는가
왜 도시는 승리하고 어째서 혁신산업은 뭉치는 것일까?
두 저자는 인구가 밀집된 도시는 아이디어와 물자, 정보의 흐름이 뭉치고 집적되는 곳이라는 걸 주목했다. 엔리코 모레티의 [직업의 지리학]은 생산성 향상을 이끄는 핵심적인 동력이 이 뭉침에 근간한다고 보았다. 단순히 지식전달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사실 인터넷 강의는 원격으로 수천 km 밖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지식을 주입해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식과 노하우, 아이디어가 이런 공식적인 교육 등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긴 데 그 오류가 있다. 물론 이런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확실히 개인의 능력을 신장시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실무의 영역, 암묵지의 영역,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출현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걸 설명해주지 못한다.
모레티는 여기서 비공식적인 사담의 역할을 강조한다. 서로 업무상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도, 퇴근 후 한 잔 하기 위해 갖는 맥주 자리, 점심시간의 잡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깐 나누는 대화, 즉 ‘대면접촉’에서 이런 핵심적인 아이디어의 흐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한 혁신산업은 다른 많은 경제영역 중에서도 특히 더 지리적으로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승리와 디트로이트의 몰락을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책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경제는 날이 갈수록 세계화하되 그 실제 활동은 더욱 더 지역적으로 변하는 것.”
대면접촉 통한 생산성 향상의 메커니즘
모레티의 책은 현대 세계화된 경제가 어떻게 지리적으로 재편되는지에 대한 많은 통찰을 제공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그렇다면 대면접촉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생산성의 향상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알렉스 펜틀런드의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Social Physics: How Good Ideas Spread, 2015]는 이런 메커니즘에 대해서 재밌게 소개해주는 교양서다. 알렉스 펜틀런드는 MIT 교수로 인간들의 실제 행태를 분석하는 인간동역학을 연구하며 MIT 미디어랩의 창업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 석학이다. 그는 이 책에서 최근 데이터 분석기법의 혁신을 통해서, 놀랍도록 많고 거대한 데이터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졌고, 그를 통해 인간 활동에 대한 더욱 정확한 관찰과 분석, 설명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사회물리학’이라고 설명한다.
사회 물리학은 “한편으로는 정보와 아이디어 사이의 수학적 연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신뢰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는 정량적 사회과학“이다. “전통 물리학이 에너지의 흐름이 어떻게 운동변화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사회물리학은 아이디어와 정보의 흐름이 어떻게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 정량적 사회과학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출처는 저자가 수만 시간에 달하는 개인의 사회적 신호와 행동을 추출해내서 만들어낸다. 요컨대 빅데이터다. SNS 기록과 휴대전화, 그리고 저자가 사용하는 소시오매트릭 뱃지 같은 것들이 활용된다.
탐험과 참여
펜틀런드는 우선 ‘탐험’과 ‘참여’의 역학에 주목한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탐험[/dropcap]은 아이디어의 흐름을 다양하게 유지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확’하는 과정이다. 펜틀런드는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보다도 가장 다양한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각과 관점들을 접했을 때, 그것을 합쳐내면서 노하우, 암묵지, 아이디어를 얻어내고 창조성과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참여[/dropcap]는 주도적 탐험가가 물어온 외부의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조직 내에서 수용하고 내면화하는 기제를 뜻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이 수용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조직 혹은 집단 내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 관계망 동기를 활용해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이어트를 예로 들자면, 개인에게 다이어트 목표 달성 kg만큼 인센티브를 주는 것보다도 5명의 다이어트 팀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모이게 해 서로의 성과를 체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정서적 유대관계가 있는 집단 내에서 대면접촉을 통해, 관계망을 활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모두에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 바로 참여다.
창조적인 개인과 조직은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정도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필요로 하나,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를 양산해낼 정도로 폐쇄적이 되면 안 된다. 누군가는 외부에서 끝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수혈해와야 한다.
‘데이터 뉴딜’과 변화의 원동력
펜틀런드는 “극단적인 고립 상태,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가 반향실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집단행동 상태의 중간 영역에서 생산성과 창조성이 극대화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이디어 흐름이 지나치게 희박하고 느린 경우 사회적 동기를 마련해 아이디어 흐름의 속도를 높여 고립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더 자주 접촉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반대로 지나치게 밀집되고 빠른 경우 사람들 간의 관계의 비중을 낮추고 기존 관계를 떠나 새로운 탐험을 추구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 후반부에선 이런 저자의 연구 내용들을 바탕으로 실제 조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조직을 넘어 더 거대한 도시와 사회 전반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현대 모바일과 디지털 문화의 확산이 개인이 엄청난 데이터를 자료로 남기게 만들었고, 이것이 창출하는 기회와 더불어 프라이버시와 개인의 데이터 주권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이는 순전히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으로, 기업, 사회, 정부, 개인이 데이터를 두고 적절한 규칙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주문한다. 저자는 이를 ‘데이터 뉴딜’이라고 부른다.
끝으로 이 책이 전하는 펜틀런드의 전언은 다음과 같다:
“가장 똑똑한 사람은 최고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확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가장 확신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를 맺고 유지하는 사람이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은 돈이나 특권이 아니다. 그것을 동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인정과 도움이다.” (알렉스 펜틀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