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사과를 두려워한다. 섣부르게 잘못을 인정했다가 정치적 공격을 받을 수 있고, 견고한 지지층이 고개 숙인 정치인에 실망하고 떠날 수도 있다. 여러 정치인이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도 “죄송하다” 대신 “유감이다”로 어물쩍 넘어가는 이유다.

그러나 정치인의 사과는 중요하다. 무너진 정치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회 통합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달리 이야기하면, 거듭된 잘못에 진심을 담은 사과가 뒤따르지 않을 때 분열과 갈등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윤석열은 불법 비상계엄으로 만장일치 탄핵을 당하고도 여전히 고개가 빳빳하다. 서초동 사저에 도착해서는 “다 이기고 돌아왔다”거나 “어차피 (대통령을) 5년 하나, 3년 하나”라며 권력을 위임한 국민을 농락했고, “새 길 찾겠다”며 ‘막후 정치’ 야욕을 드러냈다.

박근혜는 윤석열과는 조금 달랐다. 박근혜는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에서 “국가에 혼란을 가져오고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점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 출신 정치인 우상호는 “박근혜는 여러 번 사과하고 수사도 겸손하게 받았다” “윤석열은 정면 대결을 선언하면서 검찰총장 출신이 수사 기관 소환에도 응하지 않고 저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국민 사과, 돌이킬 수 없는 악수.”

  • 정치인에게 사과가 ‘양날의 검’인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회고록에 대국민 사과를 후회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 JTBC는 2016년 10월 24일 최서원의 국정 개입 증거인 태블릿 PC를 보도했다. 민간인 최서원이 박근혜 연설문을 받아보는 등 국정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후 비선 논란에 불이 붙으며 박근혜는 급속도로 무너졌다.
  • 보도 다음날 박근혜는 참모들과 논의 끝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악수가 돼 버렸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자신도 미처 파악하지도 못한 각종 의혹을 100% 인정한 것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여론의 속성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자성이다.
  • 박근혜는 “사과 이후 민심은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었다”며 “최서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사과를 그렇게 서두를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최서원이 나 모르게 어떤 일을 했는지 제대로 알게 된 시점은 탄핵 이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면서였다”고 주장했다.

나는 몰랐다? 무능 자백한 박근혜.

  • “최서원이 나를 속였다”는 게 박근혜의 생각이다. “최서원이 대체 바깥에서 어떤 일을 벌이고 다닌 것인지, 또 거기에 누가 연루돼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 기업 팔을 비틀어 미르재단을 만든 것도 “만약 안종범(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업마다 구체적 액수를 요구하고 돈을 받는 식으로 재단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썼다. 비선과 측근의 비위를 알았다면 뻔뻔한 거짓말이고, 몰랐다면 무능했다는 자백에 다름 아니다.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에 깨끗이 승복하진 않았다. “내가 최서원에게 어떤 이익을 줄 목적으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적은 결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는 헌재의 결정문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 국정농단 사태에 관해 대부분 “나는 그때 몰랐다”고 변명하지만, 그럼에도 사과의 뜻은 여러 번 밝힌다.
  • “최서원의 위법 행위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내게 큰 책임이 있으며, 지금도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오점을 남겼고, 그로 인해 국가에 혼란을 가져오고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정치는 참으로 무정하다.”

  • 박근혜는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이 야속했다고 썼다. “친박임을 자처하며 활동해 온 3선의 A 의원이나 내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던 2012년 총선에서 자신이 위태롭다고 지원 유세를 간곡하게 부탁해 곁에서 도왔던 수도권 재선인 B 의원 등이 찬성 명단에 들어있는 것도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 “2012년 총선 때 경기 지역에서 내가 시장통을 구석구석 돌며 유세를 도왔던 재선 정책통 C 의원, 그리고 역시 ‘친박 무소속 연대’ 소속으로 친박임을 강조하던 4선의 D 의원의 이름도 나를 힘들게 했다.”
  • 박근혜는 “표결 결과를 존중하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대통령으로서 국회에 미안함도 적지 않았다”면서도 ‘친박’ 의원들의 배신에 “정치란 참으로 무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라고 뒤끝을 남겼다.
  • 박근혜는 2021년 12월31일 특별 사면을 받기 전 겪었던 수감 생활도 기록했다.
  •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에서 운동도 제대로 할 수가 없자 점점 몸이 지쳐가고 망가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중략) 몸이 너무 안 좋으니까 누군가 와서 ‘같이 가자’며 내 몸을 잡아당기면 몸이 다 부스러질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 60세가 넘은 나이에 감옥에서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서울구치소 구속 수감 중 윤석열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내란죄가 확정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 그대로 삶을 마감해야 한다.

“유승민과 나 사이 벽 느껴.”

  • 자신과 대립했다가 새누리당 원내대표 옷을 벗어야 했던 유승민에 대한 감정은 풀리지 않은 듯하다.
  • 회고록에 따르면, 박근혜는 2012년 모처럼 유승민을 만나 함께 걸어가며 대화했는데 “이상하게 대화가 계속 겉돌았고 나와 유승민 사이를 어떤 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꽤 긴 거리를 걸었지만 헤어지고 나서 씁쓸했던 기분이 지금도 기억난다”는 것이다.
  • 박근혜는 2015년 6월 국무회의에서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배신의 정치’는 유승민을 지목한 것이다. ‘배신자 프레임’에 갇힌 유승민은 지금도 보수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 박근혜는 회고록에 “내가 말한 배신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배신을 의미한다”며 “여당 원내 지도부가 정부의 공약 이행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국민에 대한 배신이 된다는 것을 가리킨 것”이라고 술회했다.
  • 유승민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말한 것에도 매우 비판적이다. ‘증세’에 대한 보수의 강박을 느낄 수 있다.
  • 나는 증세를 말하기 전에 기존 복지 지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게 먼저라고 봤다. 여기저기서 줄줄 새는 돈과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절약해 재원을 마련하고, 비과세 감면과 지하 경제를 축소해 세원을 넓히는 노력을 하는 게 우선이란 것이다. 그런 노력도 없이 세금부터 더 내라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게 나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 전직 대통령 회고록은 당대 사건과 정책을 국정 최고 책임자 시선에서 서술한 기록물이란 데서 의미가 있다.
  •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지소미아 체결, 공무원 연금 개혁 등 ‘보수의 성과’로 평할 만한 국정에 대한 자찬이 지나친 면도 적지 않지만, TV 뉴스나 신문만으로는 알 수 없던 최고 책임자의 고민과 좌절도 확인할 수 있다.
  • 회고록은 중앙일보 기자들이 2023년 4월부터 대구 달성군 사저에서 박근혜 구술을 재구성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일부 내용을 기사로 소개했고, 이듬해 2월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 나는 윤석열 탄핵 국면에 박근혜 회고록을 집어 들었고 사과 유무로 두 사람을 구분 지을 수 있었다. 도토리도 키는 재야 한다. 박근혜는 윤석열보다 퍼블릭 마인드가 있었다. 박이 윤보다는 나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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