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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이태원 참사에 관한 책 [정부는 없다]를 펴낸 정혜승(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말하는 윤석열(대통령)의 아홉 번째 거부권 행사. 무능하고 비정한 정부에 전하는 ‘다정한’ 조언.

비정한 정부에 전하는 다정한 조언(목차).

9.11 추모공원, 일명 ‘그라운드 제로’.

맨하탄 한복판, 참사의 현장 바로 거기에 있다.
누구나 추모공원을 찾는다.
특히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희생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 모두 그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서…
미국(정부)은 모두가 희생자를 기억하고 참사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함께 나누는 걸 국가의 의무, 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상 사진은 9.11 추모 공원 제공.

여기 올린 사진은 9.11 추모 공원 홈페이지에 올려진 순서 그대로다. 우선 반가운 환영(Welcome)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방문하고(Visit), 배우며(Learn), 서로서로 연결(Connect)한다. 그 끝에 이걸 모두 지원(Support)하겠다는 다짐이 나온다. 이 사진들은 남은 사람이 떠난 사람에게 건네는 약속이고, 국민에게 전하는 정부의 다짐이다. 그 목소리를 이 글 독자에게 똑같이 들려주고 싶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새겨진 건 단순히 망자의 이름이 아니다. 거기엔 911 테러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겠다는 공동체의 다짐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 공간 자체로 거대한 약속이다. 그 공간은 슬픔에 관한 것이지만, 그 슬픔을 모두, 함께하기 때문에 동시에 희망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 슬픔을 이겨낼 것이다, 함께.

9.11은 외부 테러 공격이고, 이태원 참사는 내부적 붕괴다. 그래서 정치적 해석과 접근 방식과 해법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참사는 공동체 일원의 죽음을 그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죽음을 기억해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해야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죽음을 기억해야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

우리에게 그런 공간이 있는가.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정혜승은 이렇게 말했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마련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삼풍백화점 위령탑이 어디 있는지 아는가. 양재 시민의 숲이다. 접근조차 쉽지 않다. 거기에 위령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좀 더 정직하게 묻자. 그 위령탑은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것인가, 잊기 위한 것인가.

우리는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을 모른다.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모른다.
우리는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

함께 기억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잊기 위한 것인가…

그런 일이 반복된다. 세월호의 바다에서도 이태원의 골목에서도… 정부는 없다. 다만 길바닥을 기며 국회를 통과한 법을 거부하지 말라고 외치는 유족과 그것을 끝끝내 거부하는 권력자가 있을 뿐이다. 그 짓밟힌 외침과 비정한 거부에 관해 정혜승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2024년 1월 31일에 진행했다. 윤석열(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거부한 다음날이다.

피해자를 비난하진 않았어요… 적어도 세월호 전에는


민노 = 참사들, 서로 다른 시공간의 비극이지만, 그 후 모습, 패턴이랄까요. 좀 비슷해 보입니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진상 규명을 호소하고, 그러다가 반정부세력 취급받고, 이 나라에서 더는 살 수 없다고 이민을 떠나는…. 그러다가 몇몇은 자살하거나 삶을 포기하기도 하고요…

정혜승: 우리는 급속하게 성장했고, 그에 따른 참사와 재난을 겪어왔습니다. 다만 적어도 피해자를 비난한 적 없었어요. 적어도 세월호 전에는. 정치가 망가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주의자의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극우 세력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그 사람들이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유가족을 공격하는 게 조금씩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재난의 정치화’ ‘재난의 정쟁화’라고도 부를만한 경향이 나타난 거죠.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과 그림은 최남균.

누가 재난을 ‘정쟁화’하는가


= 함께 아파하고 마음을 모아도 시원찮을 참사와 재난을 누가 정치화하고 정쟁화하는 걸까요.

정혜승: 정부와 정치인이 문제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라고 묻고 하소연하고 항의하는 것만으로 반정부세력이다? 정부를 비판한다? 정치적이다? 그런 프레임을 가져가는 그런 정당, 그런 정치인이 정말 잘못이고요. 그런 가치 없는 비난을 따옴표로 인용하는 미디어 잘못도 있고… 극단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극우 세력이 이런 패턴을 심화한다고 봅니다.

“재난의 정쟁화라는 의구심”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 권성동(국민의힘 의원). 권성동 페이스북 갈무리. 2024.

유가족 첫 기자회견 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난의 정쟁화라는 국민적 의구심이 있는 것”,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이 항의했다.

세월호가 가는 길이 대체 어떤 길입니까? 어떤 길인데 거기로 가면 안 된다는 겁니까? 저희는 모르겠습니다. 그 글이 어떤 길인지. 세월호 유가족들이 반정부세력입니까? 세월호 유가족들도 자식을 잃고 그 슬픔과 비통함 때문에 정부에 수많은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었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저희한테 손을 내밀어주었습니까…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쟁을 하겠습니까? 왜 하겠습니까?

오마이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우리가 반정부세력입니까'”, 2022. 12. 10.
정혜승, 정부가 없다, ‘책임 회피를 위한 희생양 찾기’ 중에서. 메디치미디어: 2023.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의 차이


= 세월호에서 처음 이런 ‘패턴’, 유가족을 반정부세력 취급하는 정치적 극단주의, 극우세력에 의한 ‘재난의 정쟁화’가 출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의 차이는 뭐라고 보십니까.

정혜승: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책임을 부정하고, 유가족을 포용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로써 정치적 리스크를 엄청나게 키웠죠.

문재인 정부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품기 위해 나름으로 노력했다고 봐요. 세월호 유가족을 다섯 차례 만났고, 가습기 참사 피해자들도 청와대로 모셔서 대통령이 직접 사과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과 장관과 경찰청장과 누구도 사과하지 않은 채로 1년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이태원 참사 특별법조차도 거부권을 행사했다라는 게 아주 참담하죠.

유족 외면하고 사과하지 않은 대통령… 이건 무능한 거예요


= 책을 읽으면서도 궁금했던 게요. 진심으로 사과하고, 가령 유족들 손 잡고, 포옹하면서 함께 눈물 흘리는 그런 대통령의 모습이 왜 정치적으로 부담일까요?

정혜승: 그런 점에서 무능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참모가 있었다면 ‘이거 하셔야 됩니다’라고 말했어야죠. 여당은 왜 존재하나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고 국민 반응도 있으니 이제 제발 사과 좀 하자, 시늉이라도 좀 하자고 왜 말을 못해요?

대통령이 온갖 종교단체 성당, 교회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관한 애도를 표시하면서도 한 번도 유족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끔찍해요.

민노 씨 말씀처럼 실은, 이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윤석열(대통령) 입장에서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어요. 제대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래, 그 마음은 인정한다’고 넘어갈 수 있고 지지율도 올릴 수 있었거든요. 그걸 안 하는 거잖아요. 그게 이 정부 실력이기도 하다. 무능한 거로 생각합니다.

엘리트 정치인의 한계: 이상민의 경우


= 책에서 이상민 장관의 행태를 비판하셨습니다. 저도 이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혜승: 법전 잘 외운 우리 사회 엘리트에 대한 실망과 기대치가 무참히 배반당한 느낌이 있고요.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그러니까 공직자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라도 사실 그렇게 옆에서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눈길도 안 주고 걸어가는 건 쉽지 않거든요. 이상민 장관에 관한 얘기는 솔직히 이 책을 쓰면서 굉장히 분노를 깎아내면서 조금 절제하려고 애를 썼지만… 용서가 안 돼요. 이해도 안 되고.

= 책을 보면서도 뭐랄까요, 좀 작은 정치를 한다. 큰 정치를 못한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혜승: 그저 법전 잘 외워서 잘 나가던 온실 속 엘리트라… 사람 마음 헤아리는 정치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추모하는 이상민(행정안전부 장관). 2022년 10월 31일. 사진 제공은 행안부.

펜박(FENVAC): 민사소송 당사자, 수사참여 및 기소권까지


펜박(FENVAC: 재난과 테러 희생자 연합)*은 1982년 최악의 교통사로라는 본 참사, 1988년 리옹역 참사, 에어프랑스 A320기 추락사건, 1991년 목욕탕 화재 참사, 1992년 18명이 숨진 축구장 붕괴사건 등 여러 재난 재해 희생자 단체 8개의 연합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법이 펜박 활동을 단단하게 뒷받침한다. 민사소송 당사자 자격을 부여했고, 수사과정에 관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권리 등을 갖췄다.

정혜승, 정부가 없다, ‘책임 회피를 위한 희생양 찾기’ 중에서. 메디치미디어: 2023.

* FENVAC: FÉDÉRATION NATIONALE DES VICTIMES D’ATTENTATS ET D’ACCIDENTS COLLECTIFS.

피해자입니까?

후기

제 아들을 포함해 116명이 사망한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희생자 유가족인 저희는 운 좋게도 펜박(FENVAC) 대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펜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같은 비극을 공유하고, 피해자를 돕는 역할에 국한하지 않으며,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함께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 즉 함께하고 행동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 후 몇 년 동안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중 일부는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싸우고, 대규모 사고나 테러 공격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참사 유가족 수잔 에일롯)

= 펜박이라는 프랑스 피해자 기구를 책에서 언급하셨는데요. 민사소송 당사자 자격뿐만 아니라 수사 참여, 기소권까지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정혜승: 펜박 같은 피해자 편에 선 기구가 있으면 앞서 재난의 정치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줄일 수 있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가장 필요한 조치를 제때 제대로 줄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 사례가 반드시 모범 답안은 아니지만, 우리 정도 되는 선진국이라면 지금보다는 더 잘할 수 있잖아요. 피해자 유가족이 반정부세력으로 손가락질받을 이유도 없고, 혐오 세력의 공격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고요. 기구를 상설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UN이 특별법 마련, 책임자 처벌 권고했을까


정혜승: 지난해 11월인가요. 오죽하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기관 설치와 책임자 처벌을 권고했겠어요.

UN 자유권위원회(UNHRC)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권고

  •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위한 독립기관 설치
  • 피해자와 유족에 적절하게 보상
  • 책임자 사법 처리
  • 재발 방지책 마련

“정부 관계자들이 추모집회에서 과도한 공권력을 사용하고, 추모집회에 참여하는 인권활동가들을 조사하는 등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력을 방해했다는 보고가 있다.”

“예견과 예방 가능했던 사회적 참사…인파 몰린다는 보고가 4시간 전 있었음에도 왜 정부는 대응에 실패했는가.”

“정부는 참사 원인은 조사하기 위해 피해자와 유족을 참여시키는 독립조사기구를 세우기 위한 특별법 마련을 하지 않았다.

한덕수(총리), “행정력과 재원 소모… 분열과 불신 심화”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이 지난 1월 9일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어 정부에 이송되었습니다. (…중략…)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중략…) 이번 법안에 담긴 특별조사위원회는 그 권한과 구성에서부터 이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후략…)

한덕수 총리,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안 상정 모두 발언, 2024년 1월 30일.

= 총리께서 정부 거부안을 상정하면서 “행정력과 재원 소모, 국민의 분열과 불신 심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정혜승: 재원 소모라니요. 매우 유감입니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 책임을 묻는데, ‘예산 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를 우리 총리께서 잘 모르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국내외 여러 사례를 봐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두 번째로 국민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라고요? 진상조사가 왜 국민 불신을 심화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소통하는 게 국가의 의무입니다. 국민 불신이 염려돼서 더는 진상조사할 수 없다라는 건… 어이가 없네요.

= 앞서 수사 참여, 기소권까지 법으로 보장하는 ‘프랑스 펜박’ 사례와 비교해도,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 정도를 무슨 대단히 “강력한 권한 행사”로 총리께서 표현하는 건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정혜승: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리고 동행명령권은 무슨 새로운 게 아니에요. 이왕의 특조위에서도 있었던 권한입니다.

윤석열(대통령), 아홉 번째 거부권


= 이번 이태원 특별법은 거부 명분이 적어서 정치적 부담이 클 거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홉 번째 법안 거부권을 행사했는데요. 이렇게 자판기에서 콜라 빼먹듯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이 좀 놀랍습니다.

정혜승: 대통령이 별다른 명분도 찾지 못한 채 무려 아홉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것은 협치 내지는 정치를 안 하시겠다는 거죠. 자기 멋대로 통치하시겠다는 건데… 무능력에 더해 철학의 부재로 봅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2023년 4월4일)
간호법 제정안 (5월16일)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12월1일)
쌍특검법(2024년 1월5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월30일)
  • 노란봉투법: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 방송3법: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 쌍특검법: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별검사법.
  • 참고: 1988년 이후 역대 대통령 거부권 행사 – 노태우(7건), 노무현(6건), 박근혜(2건), 이명박(1건).

보고하면 면책, 보고하지 않으면 책임지는 구조 만들어야


= 보고해야만 하급자는 손해가 없고 책임은 오로지 상급자가 진다는 원칙을 책에서 언급하셨는데요. 인상적이었습니다. 공무원, 특히 위기 상황에서 공무원의 행동지침으로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정혜승: 외국 기업에 다니는 위기관리 전문가가 해준 얘기에요. 위기라는 게 갑자기 발생하니까요. 투명하게 사태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 모든 과정에서 사소한 징후라도 숨기면 위험하니까요. 몸통은 그대로 두고 꼬리만 자르고… 그러면 하급자는 움직이지 않죠. 그래서 리더가 책임지는 게 올바른 방향이고, 보고하면 면책, 보고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는 구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핼러윈 인파 보고서’를 용산서 정보과장과 정보계장이 참사 직후 해당 정보관의 업무용 PC에서 삭제하도록 종용한 의혹이 있었고, 해당 정보계장은 자살하셨단 말이죠. 이렇게 보고 해도 책임을 떠안는 위험한 일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공직 활동이 더 투명해져야 하고, 국민이 감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게 세금 내는 국민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에 있는 지인 A는 한 외국계 화학기업의 안전 책임 기준을 전해줬다. 무조건 보고했는지 여부가 책임을 좌우한다. 40년간 안전 업무만 해온 이가 많든 원칙이라는데, 사고가 나거나 날 것 같을 때 보고하지 않은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이든 괜히 보고했다고 혼나거나 질책 받는 것이 아니라, 보고를 하지 않았을 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야 한다. 보고를 잘하면 칭찬과 격려를 받게 되고, 보고를 늦추거나 피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이 경우, 크든 작든 무슨 염려가 있다면 무조건 윗선에 보고하는 것이 개인의 안위에 도움이 된다.

정혜승, 정부가 없다, ‘고민은 아랫사람 몫이 아니다’ 중에서. 메디치미디어: 2023.

상징 조작: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 피해자’를 ‘사망자 사상자’로


= 참사 이튿날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의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희생자’나 ‘피해자’ 대신 ‘사망자’ ‘사상자’ 등의 용어를 쓰도록 했습니다. 이런 정부의 언어 조작, 상징 조작에 관해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혜승: 일부 성공했다고 봅니다. 이태원 참사가 아니라 사고고, 별일 아닌 것처럼 1년 반이 지났는데 정부는 나름으로 이 참사를 성공적으로 묻으면서 ‘잘 관리’하면서 지나갔다고 보고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이렇게나마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것은 유족들이 오체투지하면서 싸워서 특별법을 통과시켰던 거고요. 그런 유족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뭉개고 축소하고 폄하하고… 그런 관리에 성공했다고 착각할 수 있었겠죠.

계속 공감만 하라고 하면 그것도 힘들죠


= 이런 참사를 처음에는 함께 화내고, 분노하면서 슬퍼하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족을 마치 무슨 이익집단으로 바라보는 그런 야박한 시선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정혜승: 야박함보다는 제가 책에는 ‘방어적 귀인이론’을 언급했는데요. 피해자를 나와 같다고 생각하면 나도 언제 저런 참사를 당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쟤는 저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쟤는 옷을 이상하게 입고 다녔어. 행동에 문제가 있었어. 마스크를 안 썼잖아. 왜 사람 많은 곳에 갔어?’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걸 방어적 귀인이론이라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중요한 건 희생자와 나는 다르지 않아. 우리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야. 그렇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게 중요할 텐데, 정치나 미디어가 그런 공감과 연대의 매개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공감해라, 공감해라… 그건 어려운 일이죠. 국민을 탓하거나 개인을 탓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그런 불안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와 정치는 공감과 연대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걸 계속 이야기해야 하고요. 그런데 그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불안에 편승하는 세력이 커졌다고 생각해요. 죄 없이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 구조적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 이런 구멍이 있었으니까 그 구멍을 막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미디어와 정치가 계속 이야기해야 조금 더 공감대를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시 연락처 ‘공유 금지’ vs. 참사 피해자 ‘모일 권리’


= 정부가 개인정보를 핑계로 유가족들끼리 연락처도 공유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책에 쓰셨는데요. 자식 잃고, 형제자매 잃은 유가족끼리 서로 모여서 위로하지 못하게 한다는 게… 이게 말이 되나요.

정혜승: 유가족들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게 연락처도 주지 않는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끊임없이 얘기를 해줘야 사람들이 지금 이건 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자각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죠. 정보 비대칭이 무섭다고 생각하는데요.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면 공감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미디어에 촉구하고, 정치권을 비판해야죠.

서울시가 참사 유족 사이에 연락처를 공유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은 한 달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개인정보라서 보호했다고? 유족들로 하여금 ‘소집단이 모여 슬픔을 나누고 대처하게 한다’는 지침도 동시에 내려놓고, 모이고 뭉치는 일을 막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은 셈이다. 이 모든 지침도 쉬쉬하고 부인하다가 뒤늦게 밝혀졌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자료를 받고서야 확인됐다.

“당시 한 피해자 어머니는 다른 유가족을 만나겠다고 결심하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다른 유가족이 올까 봐 계속 기다린 거죠. 사나흘이 지난 뒤에 간신히 다른 유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또 다른 유가족을 납골당에서 만났다고 하더래요. 그렇게 셋이 만났고, 넷이 되고 차례로 이어졌습니다. 참사 피해자들은 모일 수 있는 권리,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국가인권위원회도 권고하는데, 정부가 그리 안 해준 거죠.”(김덕진)

정혜승, 정부가 없다, ‘책임 회피를 위한 희생양 찾기’ ‘그날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중에서. 메디치미디어: 2023.

서울청장 무려 참사 447일 만에 기소


정혜승: 김광호 서울청장이 무려 참사 447일 만에 불구속 기소됐어요. 제가 책 쓸 때만 해도 기소가 안 됐던 사람이 며칠 전에 기소됐어요.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셀프 수사해서 김 청장을 기소해달라고 검찰에 사건을 넘긴 지 371일 만이죠. 그런데 대검찰청이 사건을 들고만 있다가 1년 동안 기소를 안 했어요. 최근에야 기소한 것도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왜 기소하지 않느냐고 다그쳐서 억지로 했어요. 그사이에 김 청장은 최장수 청장이 됐고요(약 20개월).

세월호 트라우마 가진 정부


정혜승: 이 정부는 세월호 트라우마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 때문에 박근혜가 탄핵됐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윤 정권은 이태원 유가족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거겠죠. 그렇지 않으면 윤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제2의 세월호 참사처럼 정치적으로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았나, 그래서 해서는 안 될 짓까지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2016년 11월 19일. 사진 제공 옥토.

결론은 다정함


=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에서 공무원 사회의 역할과 행정력이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메커니즘을 책에서 설명하셨고, 또 그 해법도 제안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나’라는 차원,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거니까요. 그런 차원에서는 ‘다정함’을 화두로 제안하셨고, 그것이 확장된 공적 형태로 폴 콜리어의 ‘사회적 모성주의'(자본주의의 미래, 2020)를 언급하셨는데요. 독자에게 좀 더 풀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정혜승: 2년 전쯤에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그때 누군가 이렇게 손잡고 공감하고 귀 기울여주고 연대하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구나. 그게 정말 강한 힘이구나. 쓰러져가는 사람 일으켜 세우는, 넘어진 사람 일으키는… 그렇게 손 내미는 게 얼마나, 그 다정함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관한 깨달음이 있던 시기였고요.

= 그러셨군요. 다정함이 책의 결론에 위치한 사연도 그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나요.

정혜승: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챕터 목차를 대략 써놨는데 다정함은 처음부터 있던 키워드는 아니었어요. 1장부터 6장에 관한 골자를 미리 써놓고, 결론은 쓰다 보면 나오겠지 하면서 써가는데, 어느 순간 제가 다정함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정치가 망가지니 정부가 망가지고, 정부가 망가지니 청년들이 죽었다’라고 얘기하는데… 그러면 정치를 복원해야 하는데, 그게 쉽냐고요. 우리 사회에서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인 사람’은 마치 불가촉천민처럼 멀리하게 됐는데, 사실은 그런 게 정치를 이렇게 망가뜨리지 않았나, 각자 다양한 방법과 철학으로 정치적 솔루션이 있겠지만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북극성을 보고 가야 할 때요. 저는 공감 능력도 중요하지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한 번 더 들어보고, 서로서로 주고받으면서 대화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런 대화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정치는 대화와 협력인데 그 능력이 완전히 마비된 시대를 살다 보니 여야가 뭘 해도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결국 거부권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에 대해서도 화내고 비난하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잖아요. 그러면 분노와 비난으로 끝낼 거냐? 이제 촛불밖에 없어! 촛불 다시 들자 거리로 가자!! 물론 그것도 필요한 시점이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저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이야기도 좀 들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너도 혹시 외로워서 그렇게 막 뻘소리로 떠드는 게 아니냐고 한 번쯤, 그런 근원적 외로움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죠.

디지털 시대의 고립, 팬데믹 시대의 고립, 그 뒤끝에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립은 정치적 극단주의, 혐오와 극우에게 힘을 실어줄 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와 저들을 분리하고, 우리의 땅, 우리의 빵을 지켜야 해! 우리 일자리를 지키려면 쟤들은 다 쫓아내야 돼! 그런 배타적인 공동체로 가는 그 모든 것은 사실은 귀를 닫는 거잖아요.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각자 모두 중요한 건데, 우리 말만 중요하고, 거기에 신념을 갖고 행동하는 거거든요.

일상의 다정함에 관한 조언


= 일상에서 이 ‘다정함’이라는 건 어떻게 실천하고 경험할 수 있을까요.

정혜승: 우리가 다정함을 얘기를 할 때는 무슨 재벌과 장관과 국회의원에게 다정해지자 이런 건 아니잖아요. 일단은 가족이 있을 거고, 친구가 있을 거고요. 직장 동료가 있겠죠. 그리고 우리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주변에 너무나 많은 어려운 사람들, 약자들, 가령 전장연이 시위를 한다고 하면 왜 저분들이 저렇게 어렵게 고생하고 있을까. 오체투지를 하는 이태원 유가족을 본다면, 아이고 왜 저분들이 저 고생을 하고 있지? 지금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들 목소리에 한 번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안타까운 기사를 하나 보더라도 우리가 이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게 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그런 뉴스 한 번 더 보는 거, 한 번 더 그런 얘기를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과 나누는 거…. 요즘은 어떠한 정치적 이슈, 사회적인 이슈는 직장 동료들과 할 수가 없대요.

연민하고 공감하고 그런 출발점이 있어야 다음 순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각자 저마다 ‘이제 큰일이야 , 세상이 망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똑 부러지는 솔루션이 있겠어요? 그런데 일단 우리가 다시 연결된다면, 고립돼서 정적이고 폭력적이며 배타적인 인간이 되기 전에 그래도 무슨 일이 있는 거지라고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켄 로치의 영화들… 그냥 밥 한끼 같이 먹는 그런 연대


정혜승: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 (2023)라는 영화가 있어요. 켄 로치 감독이 80세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83세에는 [미안해요, 리키] (2019)를 찍었어요. 87세인 작년에 찍은 영화가 [나의 올드오크]예요. 거칠고 망가지고 분열된 공동체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건 결국 연대밖에 없구나, 다정함밖에 없구나… 할아버지가 된 켄 로치의 영화에서도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 그런 영화들이 힘이 있죠. 진짜로.

정혜승: 네. 그래서 거창하게 뭘 하자가 아니라 그냥 같이 밥 한 끼를 먹는 힘 그런 것들도 되게 의미가 있거든요. 식구라는 게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이지만… 그걸 조금만 확장하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영화는 보여주는데요. 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하고 국밥 한 그릇 함께 할 기회라도 우리가 모색해 볼 수 있지 않나, 그러니까 참사가 아니더라도 정말 힘든 사람들한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그런 정도 다정함은 좀 장착하면 좋겠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렇게 함께 국밥을 먹으면서 답을 찾다 보면 또 다른 걸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평소 두 번 악플, 한 번으로 줄이는 것도 다정함


= 아주 공감합니다. 그렇게 편하게 만날 기회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팍팍하게 사는 분들도 집에서 몇 걸음만 나가면 혹은 온라인에서라도 그런 기회를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직접 경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건 큰 차이잖아요.

정혜승: 인스타그램의 시대, 부를 숭상하고 부자 되는 법에만 다들 신경 쓰고 부자들 얘기만 다루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사람 혹은 나랑 비슷한 사람들, 지금까지 잘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좀 신경 쓰고 살자는 거죠. 우리가 당장 엄청나게 기부하고 그러자는 얘기가 아니라 좀 알고는 있고 문제가 있을 때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시위가 있을 때 응원이라도 한마디 보탠다든지, 악플 두 번 달 걸 한 번 정도로 줄이는 거 그것도 다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청원 만든 소통 전문가 정혜승에게


= 지금까지 소통에 관해서 누구보다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셨고 그런 업무를 하셨잖아요. 책에서도 국민청원이 사라진 것에 아쉬움을 표하셨고요. 그런데 지금 윤석열(대통령)은 딱 한 번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정혜승: 국민청원이 사라진 게 아쉬운 건 저뿐인가요? (웃음) 국민청원이 아직 있었다면, 지금은 김건희 특검법 받아야 한다는 청원이 있었을 수 있죠.

= 저도 아쉽습니다. 아쉽습니다. (웃음) 그러면 천만 넘었겠죠.

정혜승: 국민청원은 그 존재만으로 민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20만이 됐든, 100만이 됐든, 지금 뜻이 모이고 있습니다! 좀 들어주세요!! 그런 거거든요. 청원은 사실은 그런 점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리스크가 있든 없든 간에 국민이 뜻을 모아서 ‘우리 뜻이 이러니까 이거 좀 신경 써주세요!’라고 외치는 얘기였단 말이에요.

= 상징적인 의미가 컸죠.

정혜승: 그래서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었고, 한계도 많이 지적하지만, 최소한 국민의 뜻을 모을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에서는 없어지니 아쉽지 않으시냐고 얘기 드리고 싶어요. 국민청원이라는 ‘소통의 창’이 있었을 때는 정부에 국민 뜻이 이렇다고 알려주는 역할이 가능했을 텐데 지금은 없잖아요. 이번 정부는 안 듣고 안 따르고 답하지 않고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라고 했는데 그런 답을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지금.

= 그냥 계속 거부하고 있는 거죠.

정혜승: 네, 모든 것을 거부하고… 대체 거부권을 왜 그렇게 하시는지 혹은 거부권 행사 이유가 도대체 그게 전부인지 혹은 갑자기 기자회견 한다고 하다가 생방송 펑크 낸 상황인데 거기에 관해서도 어떤 답도 없는 상황이라… 모든 걸 뭉개는 데 아주 유능하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MBC의 ‘바이든 날리면’도 대통령이 난 이런 취지로 이렇게 얘기한 거라고 하면 그날 바로 해소될 문제였잖아요.

정혜승: ‘바이든/날리면’은 대통령실에서 첫 번째 해명이 나오는 데 13시간이 걸렸어요. 대통령에게 ‘정확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원래 뭐라고 하신 거예요?’라고 물어볼 용기가 없었거나 물어볼 생각조차 못 했거나 둘 중 하나겠죠. 코미디잖아요. 그런데 법원 판결도 저렇게 나오고 나니까 지금 확실히 공무원은 위만 보는구나. 아무리 독립적인 기구도 위만 보는구나. 대통령 뜻이 저기 있다라는 걸 알고 나니까… 대통령이 뭉개니까 그냥 따라서 뭉개는 게…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윤석열(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


= 지금이라도 윤석열(대통령)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보시나요. 그렇다면 뭐부터 해야 할까요?

정혜승: 소통 그리고 사과. 조금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국민 목소리 듣는 거. 소통은 듣는 겁니다. 자기가 떠드는 게 아니라 답하는 거, 질문에 대해서 답하는 거. 그리고 이태원 특별법 거부하셨는데 이건 정말 천벌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피눈물 나는 유가족들을 저렇게 두 번 세 번 흘리시는 그분들한테 좀 제대로 사과하셔야 하지 않나 싶어요.

참사 전 잘못한 일, 대통령실 ‘용산 이전’ 나비효과


= 참사 전 예방 차원에서 가장 잘못한 일, 뭐라고 보세요.

정혜승: 대통령실 ‘용산 이전’ 나비 효과가 있었습니다. 용산경찰서가 오로지 대통령실 경비에만 신경을 쓰면서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어요. 마땅히 예방했을 수 있는 사안이 구멍이 난 데는 사실 거기에 결정타가 있었다고 보고요.

참사 후 잘못한 일, 구할 수 있는 사람 구하지 못한 거


정혜승: 컨트롤 타워가 없어서 우왕좌왕하면서 더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거. 그리고 제대로 된 진상 조사 요구가 처음부터 있었거늘 단 한 번도 듣지 않은 채 1년 반 허송세월한 거.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평범한 우리 같은 국민들이 어느 날 가족을 잃고 난 뒤에 반정부세력 취급받도록 방치한 거, 그 사람들 가슴에 대못질을 두 번 세 번 한 거 다 잘못된 일이죠.

아이의 질문, “엄마, 분향소는 천막으로만 세우는 거야?”


= 삼풍백화점 이야기를 책에서도 잠깐 하셨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외딴 곳에 위령비를 세워서 뭐 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하자는 건지 잊자는 건지…

정혜승: 저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서울시청 옆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생인 제 지인 딸이 어느 날 묻더라는 거예요. “엄마 원래 분향소는 천막으로만 세우는 거야?” 아이는 세월호 천막이랑 이태원 천막밖에 못 봐서 그냥 항상 추모 공간은 천막으로 만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사실 둘 다 불법 천막으로 시작했거든요.

= 아이 질문이 정말 핵심을 찌르네요. 천막은 세웠다가 그냥 치워버리면 사라지는 거잖아요,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네요.

정혜승: 지금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아이는 아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저도 그 아이 얘기를 듣고서 너무 깜짝 놀랐는데 뭐랄까 우리가 마땅히 기억하고 추모하고 그럴 기회와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녹사평역 지하 4층… 그들만의 그라운드 제로


정혜승: 그런데 서울시가 처음에 이태원 추모 공간으로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제안했어요.

= (….) 거기 누가 가나요?

정혜승: 그러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그런 공간이 왜 필요한지 우리가 기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요. 그걸 막는 사람들 생각은 무엇인지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사회, 책임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라는 그 바람은 아마 저만의 것은 아닐 것 같고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얘기를 우리가 세월호 때도 했는데 이태원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저는 그런 추모 공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맞습니다. 아까 평론가 김현의 말이 떠올랐어요. [행복한 책 읽기]에서 ‘인간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로, 다른 한 번은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졌을 때. 그때 인간은 비로소 완전히 죽는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정혜승: 유가족께서 한번은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많이 떠들어주십사하고.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시는 그분들도 기억해 주시길 바라고, 이렇게 떠들 기회가 있다면 저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린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인터뷰 제안이 감사하고요.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 이 분노를 이게 어떻게 달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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