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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은 몇 년 새 ‘핫플레이스’가 됐다.

부동산 114에서 분기별로 발표하는 상권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도 이태원 상권은 임대료 기준으로 10위권 밖에 있었다. 그런데 2015년 5월 기준 서울에 이태원보다 임대료 비싼 상권은 종각, 여의도뿐이다. 임대료는 두 배로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주요 상권 대부분의 임대료는 하락세다.

이태원은 장사가 좀 되는 동네라는 뜻이다.

요즘 이태원의 입구는 녹사평이다.
요즘 이태원의 입구는 녹사평이다.

이태원의 부흥을 이끈 주역은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다. 용산 미군기지, 외국 대사관들이 밀집한 이태원 일대는 과거부터 외국인 식당이 많은 곳이었다. 과거 이태원은 외국인들만의 배타적인 공간이라는 인상이 있어 다른 상권들과 비교할 때 대중성이 부족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맛집 문화’가 확산하고 다양한 음식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외국 여러 나라의 음식문화를 선보이는 이태원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바야흐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미지 출처: KBS 연예가중계 (유튜브 캡쳐)
이미지 출처: KBS 연예가중계. (유튜브 캡쳐. 동영상 바로가기)

지금이야 외국인에게 김치와 스팸을 함께 먹어보라고 태연히 권유하는 시대가 됐지만 (위 동영상 3분 47초부터 참고)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위상은 지금 같지 않았다. 저들은 이 멀고 신비로운 땅에 어떤 계기로 찾아와 무려 사업까지 하게 된 걸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의 나라에서도 하기 어려운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두 명의 외국인 식당 주인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 한국에 오게 된 계기, 식당을 차리게 된 이유, 이태원의 외국인 요식업 생태계 등 우리가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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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시아 볶음요리 전문점 [바오]의 마이클

왼쪽에서 두 번째 식당이 바오.
왼쪽에서 두 번째 식당이 바오.

[box type=”note”]바오(Bào)는 경리단길 초입에 있는 아시아 볶음요리 전문점이다. 한국,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볶음밥이나 볶음면을 팔고 있다. 보통 ‘특정 나라 음식을 파는 식당’을 컨셉으로 하는데 “바오”는 ‘볶음요리’를 컨셉으로 여러 나라의 음식을 판다. 영업 준비 중인 오후의 “바오”에서 오너 셰프인 마이클을 만났다. 그런데 이 아저씨 어디서 본 것 같은데…[/box]

바오의 낯익은 오너 셰프 마이클
바오의 낯익은 오너 셰프 마이클

– 시간 내줘서 고맙다. 일단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을 듣고 싶다.

“나는 캐나다인으로 어릴 적부터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이 꿈이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종종 했고 이 때문에 어릴 적부터 아시아에 관심이 있었다. 90년대 중반 관광차 한국에 처음 왔고 이곳에 와서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돼버렸다. 처음부터 식당을 운영했던 건 아니었다. 프리랜서 성우, 배우, 영어 강사 등으로 활동했다.“

– 아, 혹시 [서프라이즈]…?

“맞다. MBC [서프라이즈]에도 출연했다. 아무튼, 성우, 배우로 활동하다 보니 한국에서 한참 살게 됐고 바오는 6년 전 즈음 차렸다.”

– 왜 성우, 배우로 쭉 활동하지 않았나?

“하면 할수록 내가 이 분야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생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도 없을 것 같았고.”

– 요리는 “바오”를 차리면서 시작한 건가?

“아니다. 나는 캐나다에서 요리학교에 다녔고 요리사로 일했다. IMF 이후에 호주에 가게 됐는데 호주에서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 다녔다. 이때부터 볶음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호주에는 태국 음식이 유행했는데 “타이 인 어 박스”(Thai-in-a-box)라는 태국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태국 볶음요리에 대해 배웠다.

이후에도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볶음요리를 찾아다니면서 연구를 했다. 아시아에는 지역별로 특색을 갖춘 다양한 볶음요리들이 있는데 바오는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의 볶음요리를 메뉴로 갖추고 있다.

쭉 요리만 했던 건 아니고 캐나다에 있을 때부터 프리랜서 음악인으로 음악 활동을 했다. 레코딩 작업을 주로 했고 밴드와 합주도 했다. 한국에 와서도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노브레인, 크라잉넛 같은 밴드들과 같이 합주한 적도 있다. 어쨌든 나는 내 열정을 주로 요리에 바쳐온 것 같다.”

– 요리를 왜 좋아하나?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늘 화이트칼라 직종은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주방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또 식당에서 일하면 남들이 일할 때 놀고, 놀 때 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데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사회 같은 것이다.”

– “바오”를 차리게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전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 요리를 좋아하면 식당을 차리지 않고 식당에 들어가 일하는 방법도 있는데?

“사업하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근무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스스로 책임만 지면 되기 때문이다.”

– 지인 중에도 요식업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나?

“오래된 친구 중 한 명이 이태원의 아이리시 펍 “울프하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여러 방면에서 커리어를 쌓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점이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호주나 내 고향 캐나다에서는 가질 수 없던 기회를 많이 체험했다. 호주나 캐나다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진입할 수 없었던 장벽이 한국에서는 비교적 낮게 형성되었다고 느꼈다.”

– 아까 우리가 들어왔을 때 이야기하고 있던 한국인 아저씨는 누구인가?

“회계사다. 우리 가게의 세금 문제 등을 해결해주는 분이다.”

–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됐나?

“이태원에서 이미 장사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저분은 이 근처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친구를 통해서 소개를 받았다.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 세금 문제도 그렇고 사업자 등록 절차라던가 운영 중에도 여러 행정적인 소요가 많을 텐데 외국인이기 때문에 처리하기 어렵지 않나?

“어렵다. ‘한국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와는 다른 문제다. 한국어를 할 줄 알아도 그런 문제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식당을 처음 열 때 이런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준 한국인 매니저가 있었다. 지금은 함께 일하지 않지만, 그 친구가 대부분의 일을 해결해줘서 수월했다. 지금 가게의 마케팅은 다른 한국인 친구가 도와주는데 그 친구는 인스타그램의 달인이다. 나는 페이스북 같은 걸 전혀 할 줄 모르는데 그 친구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우리 가게 홍보를 도와준다.”

– 이태원에서 일하는 외국인들 간의 커뮤니티가 있나?

“물론이다. 대부분의 외국인 레스토랑 오너들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다. 필요한 도움이 있으면 서로 주고받는다. 서로의 가게에 가서 이야기하고 한잔 하는 일도 잦다.”

– 북미나 유럽권 출신 외국인들이 하는 식당들은 인기가 많은데 아프리카, 중동 지역 문화를 다루는 식당은 보기 어렵다.

“해밀턴 호텔 쪽에 아프리카 골목이 있다. 내 생각엔 유럽, 북미 여행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많아져 이쪽 문화에는 호기심이 많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가본 사람이 한국에 돌아와서 이탈리아 음식을 다시 먹어보고 싶을 수 있다. 이탈리아 영화를 보고 싶을 수도 있고.

그런데 아프리카나 아프리카 음식 같은 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익숙하지 않다. 그런 탓이 아닐까 싶다.”

[box type=”note”]마이클의 말을 따르면 다양한 계기로 한국에 온 많은 북미, 유럽 출신 외국인들이 이태원에서 장사하고 있다. 외국인이라서 어려운 점들이 있지만, 그들 사이의 커뮤니티가 있어 여러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있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이태원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외국인이 큰 어려움 없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는 점이 흥미로웠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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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포츠 펍 신빈의 제이슨

신빈 로고
신빈 로고

[box type=”note”]신빈(Sin Bin)은 스포츠 펍이다. 스포츠 펍은 큰 스크린으로 축구, 야구 등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술을 마시는 술집이다. 스포츠 펍은 북미, 유럽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직 한국에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이태원에는 여러 곳의 스포츠 펍이 있다. 토요일 오후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신빈을 운영하는 제이슨을 만났다.[/box]

– 반갑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난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정착해 살고 있다. 미국에서도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한국과 미국을 오간다. 한국에 온 지는 8년이 넘었고 나이는 서른아홉이다. 나는 스포츠를 사랑한다.”

– “신빈”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

“미국에서 주유소 한 곳, 멕시칸 식당과 스포츠 펍 한 곳을 더 운영하고 있다. 나는 사업을 좋아한다.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다. 대단히 많은 요소들을 신경 써야 하고 쉽지 않은 일들이 많지만 내 성격에 제격이다. 나는 성공이든 실패든 내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하는 일이 즐겁다.”

[box type=”note”]마이클과 전혀 다른 유형의 인물이다. 요식업자는 거칠게 정의하면 ‘요리사 AND/OR 사업가’라고 할 수 있는데, 마이클이 요리사라면 제이슨은 사업가다. 그가 가진 이야기가 궁금했다.[/box]

– 어떻게 한국에 와서 사업하게 됐나?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뉴욕의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다. 나는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장거리 연애를 했다. 우리는 여름 휴가를 한국에서 함께 보냈는데 한국에서 보낸 일주일 동안 장거리 연애를 그만두고 한국에서 함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으로 돌아와 각자 일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3년을 함께 지내고 헤어지게 됐다. 그녀는 스페인에 직장을 구해 떠났다. 당시 미국 경기가 상당히 침체한 상황이어서 한국에 남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어서 신빈을 열게 됐다.”

신빈을 운영하는 제이슨 (가운데)
신빈을 운영하는 제이슨 (가운데)

– 감동적인(?)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이었다. 미국 미식축구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연봉 계약, 광고 출연 등을 관리해주는 회사였다.”

– 쭉 그 일을 해왔나?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 투자은행은 들어가기가 굉장히 어렵고 대우가 좋은 곳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미국 경제는 호황 국면에 있었다. 그래서 투자은행도 큰돈을 벌었고 좋은 대우를 해줬다.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의 이십 대 초반 청년이었고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는 게 좋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한 친구가 자신이 아는 미식축구 선수가 계약을 관리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일을 계기로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게 됐으나 한국에 오면서 매각했다.”

[box type=”note”]퍼즐이 끼워 맞춰진 느낌이었다. 먼저 만났던 마이클과 비교하자면, 제이슨의 면밀하고 이성적인 면 때문에 보다 전문 경영인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이력이 궁금했는데 그의 첫 직장이 투자은행이었다고 하니 궁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계속 질문을 했다.[/box]

–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고?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홀로 나를 키웠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어려서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학비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box type=”note”]사실 제이슨이 젊은 나이에 사업체를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소위 ‘금수저’가 아닐까 생각했다.[/box]

신빈의 내부 모습 (사진 출처: Meetup - 홍대 글로벌 그룹)
신빈의 내부 모습 (사진 출처: Meetup – 홍대 글로벌 그룹)

– 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외국인으로서 가장 힘든 점은?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가 한국 생활 초기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사업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사고방식의 차이로 문제가 생긴다.

가령 어떤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사람은 그게 그렇지 않은 거다. 이런 일이 생기면 친해지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국에서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면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행정 절차나 법적인 문제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나?

“우선 내가 기본적인 한국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문제를 처리해주는 믿음직스러운 한국인 회계사가 있다. 또 이태원의 외국인 사업가들은 대부분 서로 알고 지내면서 문제가 생길 때 도움을 주고받는다. 게다가 나는 한국인 아내를 둔 한국계 미국인, 17년 동안 한국에서 교수로 지내온 캐나다인을 동업자로 두고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box type=”note”]마이클과 같은 답변이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불리한 점을 이태원 생태계는 바로잡아준다.[/box]

– 반대로 한국에서 사업하는데 외국인 사업가가 갖는 이점은?

“딱히 외국인이 갖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명확하다.

  1. 첫째, 얼마나 좋은 상품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2. 둘째, 사업에 얼마나 열정과 노력을 투입하는가.

한국에서 산 지난 8년간 사업에 실패한 외국인 친구를 많이 봤다. 대부분 일은 매니저에게 맡기고 편하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특별한 재능과 두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패를 분석해 경험으로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box type=”note”]맞는 말이다.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지는 시점에 스포츠 펍의 개념을 미리 알고 제시한 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장점이 아닐까. 제이슨과의 대화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이들 곁에 믿을만한 한국인 조력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교포나 한국인 배우자 등, 이들은 이태원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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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외국인들이 만들어낸 이태원

두 개의 인터뷰만으로 이태원 외국인 식당 생태계를 파악하긴 부족하다. 다만 외국인들이 한국에 어떤 이유로 와서 어떻게 일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외국인 친구가 많은 친구의 말로 마무리해야겠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한국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북미, 유럽인들이 모르는 나라였어. 가령 남미의 볼리비아에 동남아의 캄보디아에 사업하기 위해 떠나는 한국인을 생각해봐.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태원에서 사업하는 외국인들 역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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