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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현대 세계의 향방을 알기 위해 꼭 이해해야 할 국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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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적 자부심과 우월감으로 충만한 대중이 국가 단위의 권력간 역학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때, 더 나아가 국제적 단위의 정치권력이 이런 대중심리를 침략적 선동의 재료로 삼을 때 초래하는 결과는 앞선 글에서 살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로 인해 유지된 위태로운 평화의 시대를 끝내고, 1차 세계대전에 돌입했다.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의 화신이 되어 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에 참전했지만, 원폭이라는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폐허를 만나야 했다.

중국 지도부는 바보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가 중국을 둘러싼 오늘의 세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나는 중국 지도부를 국수주의적 야욕에 찬 비합리적인 사람들로 그려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 공산당이 주는 그 위압감을 느끼며, 그리고 환구시보의 격정적 분노를 들으며 중국 지도부를 대결적 광기에 찬,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조직으로 여기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지도부는 결코 바보들이 아니다.

중국

우리는 대학교에서 5명과 함께하는 조별과제도 잘 이끌지 못해서 고생하는데, 8천만 당원과 13억 인민의 머리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겠는가? 공산당원들은 당내 조직부의 지속적인 평가에 노출되어 있고, 그들 나름의 성과에 기반한 승진 시스템 속에서 위로 올라간다. 이런 조직에서, 특히 ‘꽌시(关系; ”사적인 인간관계”라는 뜻. )’라는 것이 중요한 중국의 속성상, 다른 어떤 조직보다 나를 알고 남을 알아야 상대방의 머리 위에 서고 경쟁자들과 게임을 할 수가 있다. 이는 외교에서도 적용된다. 중국 지도부가 하는 행동, 말 하나하나는 세심한 의도성을 담고 있다. 그들은 미국과 게임을 하는 것이지, 중화민족의 정의로운 조공질서를 동아시아에 구현하겠다는 망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헤이그 재판소의 남중국해 판결[footnote]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 헤이그 재판소는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의 근거로 주장하는 ‘구단선’에 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필리핀의 입장을 지지하는 미국과 중국은 서로 갈등을 빚었고, 특히 재판 결과를 지지해달라는 미국 측 요청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졌고, 한국 정부는 원론적인 차원으로만 이 사안에 대해 논평했다.[/footnote]에 지도부가 (반공식적으로) 군사적 위협도 불사하겠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그들 본인이 헛소리임을 가장 잘 알고 말한 것이다. 시진핑이 진짜로 중국 인민해방군 전력이 미군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을 모르고서 그런 말을 했을까? 오히려 인민해방군과 미군의 전력에 대해서 전 세계 누구보다 잘 알 사람 5명을 꼽자면 그중에 시진핑은 무조건 들어갈 것이다. 합리적 평가를 할 수만 있다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더하여 시진핑의 동료 정치국 상무위원들도 마찬가지고 당의 지도적 인사들 사이에서도 그럴 것이다. 능력과 성과에 기초한 평가체계가 작동되는 조직에서 그런 수준의 판단도 안 되는 사람들이 위에 버티고 있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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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의 폭풍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중국이 필리핀과 대만, 그리고 남한을 위협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전적인 외부용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철저한 내부용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독일과 일본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내몰았던 바로 그 원인, 국민정서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민족주의라고 부른다. 민족주의가 사회 곳곳을 휩쓸었던 당대 독일과 일본의 상황, 그리고 지금 중국의 상황은 유사한 면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중국이 이들 국가처럼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민족주의의 폭풍에는 나름의 주기가 있다고 생각하며 위 국가들 사이의 유사성은 이런 보편적인 민족주의의 주기에 근거해있다고 본다.

우선 국력이 점차 성장하는 초기 단계가 있다. 이 단계는 대체로 전통사회의 공동체와 상호부조 문화에서 벗어나 도시경제와 산업시대의 문화로 넘어가는 시기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즉 파편화된 개인주의의 세계, 사회적 자본이 줄어들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고민해야만 하는 고독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국가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시민사회가 발흥하기 시작한다. 신흥종교, 정치조직, 시민단체 등이 속속들이 생겨난다.

중국 용

그다음에는 국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시점이다. 국민은 이제 자신의 국가가 과거의 굴욕적인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세계가 자신들의 정당한 위치를 알아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민족주의의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많은 국민은 삶의 의미를 위대한 민족의 영광을 지구 상에서 실현하는 데 골몰함으로써 얻어낸다. 그러다가 세계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는 시기가 오며, 그에 기반한 합리적 자존감 위에서 민족주의의 폭풍은 잦아든다.

혹시 여기서 독일, 일본 말고 다른 나라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일본의 굴욕적 식민 지배를 당하고 국제사회에서는 아시아 열대지역에 있는 알지도 못하는 국가 취급을 받아왔다. 그리고 산업화를 통해 이촌향도를 비롯한 엄청난 사회변동을 경험한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기독교가 세를 불려 나감과 동시에 국가의 동원논리인 민족주의의 논리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의 위치가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단순한 동원논리로서 민족주의를 넘어서 실제로 종교의 수준을 방불케 하는 자발적 민족주의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붉은 악마 (출처: 김충일 블로그)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choongilkim&fod_no=13&cid=760136&%BA%D3%C0%BA-%BE%C7%B8%B6-2507
붉은 악마 (출처: 김충일 블로그)

 

한국은 민주화된 국가로 이행하면서 새로이 터져 나오는 시민사회의 요구사항들을 평가하고 받아들여 줄 역량도 없이 표류했다. ‘헬조선’이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조어가 된 지금, 10년 전 김대중 정권 말기와 노무현 정권 시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이나 하는가? 간도를 되찾아야 하며 간도협약이 체결된 지 100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다시 찾지도 못한다는 낭설이 진지하게 사회에 통용되었다.

한국인들은 위대한 고대 국가들의 영광에 탐닉해 역사를 날조하기까지 했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오심으로 인해 한국이 패배하자 피파 홈페이지를 마비시켰다. 그렇게 하면 재경기를 시켜준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의 주권을 침탈하고 있는 국가였고 미국, 일본 대신 북한과 지내야 한다는 소리가 아무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마사오 교수 이런 여론, 국민정서는 대외정책으로도 이어져 2006년 당시 일본 내 한국 전문가 오코노키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사진)는 주일 미국대사에게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반일 민족주의자 조언자들에게 둘러쌓여 있다”고 진지하게 말했고, 주일 미국대사는 당시 일본외무차관에게 역시 진지하게 “한국이 뭔가 미친 짓(do something crazy)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된다고 언급했다.

1차 대전 전야의 독일, 2차 대전 전야의 일본, 그리고 지금의 중국도 마찬가지 주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분열된 국가가 늘 굴욕만 안겨주던 프랑스를 역으로 꺾고 영국을 경제력으로 뛰어넘었으며 세계최강 대영제국 해군을 넘보는 상황에서, 독일이 민족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게 가능할까? 페리 제독에게 엎드려 있다가 러시아를 꺾고 식민제국을 거느리며 당당히 무려 세계대전의 전승국 테이블에 앉게 된 일본은? 마찬가지로 중국인 대다수에게 외세의 압제에만 시달리고 밖에서는 더럽고 미개한 나라 취급을 받다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같은 행사를 본다면? 그들이 중화민족주의의 목소리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독자가 있다면, 자신이 2002년에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라.

“야망의 시대” 

에반 오스노스 뉴요커의 기자 에번 오즈노스(Evan Osnos, 사진)는 전미도서상을 받기도 한 그의 걸작 르포, [야망의 시대]에서 한 민족주의 활동가를 소개한다. 바로 상하이 푸단 대학철학과 대학원생인 ‘탕제’라는 사람이다. 2008년 당시 티베트 문제가 국제적으로 붉어지고 반중 시위대가 베이징으로 향하는 성화봉송대를 습격하려고 하자 중국의 여론이 들끓었고 탕제는 “중국이여 일어나라!”라는 영상을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TYhYkASsA

포털사이트 시나에 올라간 이 영상은 1초에 평균 2회 클릭을 이어가며 열흘 만에 조회 수 100만을 달성했고 수만 건의 댓글로 호응을 받았다. 중국인들은 이런 민족주의적 열정을 통해 그들 영혼의 공허함을 풀었다. [야망의 시대]는 센카쿠 열도(조어도)를 둘러싼 반일 시위에 대한 루한이라는 사람의 논평도 소개해준다.

“중국에서 살다 보면 그런 감정을 느낄 기회가 거의 없어요. 이를테면 자신이 정신적으로 고양된다거나, 자신보다 거대하고 주변의 평범한 생활 터전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말이에요.”

전에도 말했지만, 다수 중국인에 있어서 이러한 민족주의적 정서는 그들의 영혼을 울리는 말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지금 그들의 영혼을 살찌우고 있다. 폭력적이고 주변국에 불안감을 안겨주는 방식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는 남한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유사한 것 같다.

물론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남한은 그 제한적인 국력 때문에 피파의 서버를 마비시키는 정도로 끝이 났다. 독일, 일본, 중국의 문제는 그 힘이 국제질서를 흔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혹은 이다)는 데 있다. 이것이 독일과 일본이 세계질서를 파국으로 몰고 간 이유가 되었다. 중국 또한 그럴만한 힘이 이제는 생겼고, 많은 국민은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중화민족의 굴기(崛起)[footnote]”중국이 19세기 중엽 이래 치욕과 고난의 역사를 헤치고 대국으로 일어서는 모습을 그린 말”, 참고 기사: 프레시안, 중국의 ‘굴기’는 정말 ‘화평’을 위한 것일까? (김기협, 2014. 12. 1)[/footnote]를 성취해내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선택 

그렇다면 지도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대결적으로 나설까, 아니면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을 말하며 국민을 진정시키고자 할까?

실제 상황을 보면 두 가지 모두가 혼재해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과 미국은 여전히 협력과 교류를 늘려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충돌 접면은 넓어지고 있다. 여기서 흔히 나오는 말들이 지도부가 이런 민족주의적 정서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민들이 갖고 있는 국가 내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외부의 적을 만들어준다는 것.

나는 이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 지도부는 인민의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것을 그다지 원치 않는다. 왜냐면 여전히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 안보질서에 무임승차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외부를 향한 불만이 자신들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갖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그래서 민족주의적 요구에 방관만 하고 있을 수도 없게 된다. 작금의 복잡한 상황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에 얻어낼 게 아직은 훨씬 더 많다.
중국은 미국에 얻어낼 게 아직은 훨씬 더 많다.

만약 중국 공산당이 민족주의적인 국내의 요구를 저버린다면 공산당의 통치 근간이 위협받는다. 중국 공산당은 두 가지 수사를 통해 자신의 건국을 정당화했다. 1840년 이래로 시작된 100년의 혼란을 잠재우고 중화민족 스스로 국가를 재건했다는 민족주의적 레토릭으로 세워졌다. 계급적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주겠다는 사회주의적 비전은 두 번째 통치근간이었다. 공산당의 영도를 따르면 근대화되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약속이 그것이었다.

두 번째 레토릭은 마오쩌둥 시대에 그다지 신통하지는 않았지만, 일정 부분 먹혀들었다. 중국에서는 전족이 사라지고 교육과 보건이 대거 확충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천만 명이 아사하고 문화대혁명이라는 10년 동안 이어지는 광기도 겪어야 했다. 건국 후 30년의 성과가 이 모양이니 두 번째 레토릭, 즉 사회주의적 비전은 사실상 폐기처분 상태에 이르렀다. 덩샤오핑 이후 공산당은 유사하지만 조금은 다른 대내 정당성의 새로운 근간을 세웠다. 그것은 경제발전, 그것도 아주 빠르고 거대한 경제발전이었고 지금까지 아주 잘 작동했다.

1976년 베이징. "신선한 피와 생명으로 당중앙을 보위하자!"(윗줄) / "신선한 피와 생명으로 마오주석을 보위하자!"(아랫줄)
1976년 베이징.
“신선한 피와 생명으로 당중앙을 보위하자!”(윗줄) 
“신선한 피와 생명으로 마오주석을 보위하자!”(아랫줄)

현재 중국의 경제적인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혹은 경제발전이 만들어낸 다종다양한 사회적 불만을 돌리기 위해서 민족주의 레토릭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주 고전적인 방식이기도 하고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민족주의 레토릭의 과다한 사용은 단기간 통치의 편리함을 보장해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위협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무역과 자본이동을 악화사키고 경제발전 전망까지 침해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두 번째 통치 근간을 스스로 잠식시키는 꼴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지금 신창타이(신상태, 뉴 노멀)라고 하는 패러다임 전환기를 선언했다. 덩샤오핑이 국가의 방향성을 새로이 틀어버린 이래로 근 40년 만에 다시 맞이하는 패러다임 전환기인 것이다.

이런 대내적으로 몹시 부담되는 과업을 완수하는 동안에는 대외적인 안정성이 필수이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술했지만 그는 일본, 미국과의 수교, 동남아 순방을 통한 각국과의 관계 재고였다. 현 지도부가 덩샤오핑 시기의 경험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넣기에는 그때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아직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 개방 개혁의 상징, 등소평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SA)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031125123522.jpg
아직 덩샤오핑 시기의 경험과 인력을 쓰레기통에 쳐넣을 수는 없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SA)

따라서 민족주의적 레토릭은 특정 상황에 맞추어 사용되는 수단이 아닐 수 있다. 현재로써 민족주의는, 중국이 국민 전체에게 선진국 수준의 삶의 질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대내 통치의 기둥 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돈 몇 푼이나 하찮은 명예로 이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딜레마 – 경제성장과 민족주의적 열망 

딜레마는 여기서 생긴다. 공산당은 이제 경제성장과 민족주의적 열망을 만족시키는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줄타기하게 되었다. 지도부는 현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고 싶지만, 만약 헤이그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96년처럼 순응적으로 나오면 대내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이블에서 협조적으로 나오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을 시 국민이 이렇게 말하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리 조국의 힘이 이 정도로 막강해졌는데 대체 왜 미국의 말에 계속 휘둘리기만 하는가. 공산당 너희들이 외세의 앞잡이인 것 아닌가?’

딱히 할 말을 찾기 힘들 것이다. 중국에서 막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그들이 멍청하거나 과격분자라서가 아니다. 이런 걸 계산하고 세심하게 수위를 조절한 뒤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야망의 시대]는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대군의 장군은 사로잡을 수 있어도, 범부의 야망은 빼앗을 수 없다.”

공산당의 관료들은 이제 더는 평범한 중국인들, 즉 13억 범부들의 야망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여만 주는 것을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되었다. 인민들의 민족주의적 열망에 어느 정도 맞춰주기 위해서 겉으로만 강경한 말을 하고 가끔 행동 비슷한 것을 보여주되, 국제사회의 긴장도를 높이지 않기 위해서 진짜로 중요한 행동들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그들의 관리방식이다.

야망의 시대

물론 중국은 그 자체로 주변국에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주변국들은 그런 말만 들어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중국 지도부는 어쩔 수 없다. 인민들이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공산당에 대해 ‘애국주의적 반대’를 한다면 무슨 근거로 이를 탄압할 것인가. 아니면 당내의 반대파(주로 보수파)들이 타협적인 언사를 구실로 마오 주석이 교시하신 반제국주의적 기치에서 벗어나는, 사상교육이 덜 된 이들이라고 비판한다면?

중국 외교부는 타국과의 관계를 조율할 외교부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로서 중국의 정부 부처다. 지도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들이 요즘 강조하는 말이 ‘이성적 애국’이라는 데서 나타난다. 애국적으로 생각하고 오성홍기를 보면서 중국의 영광을 칭송하는 것까지는 건전한 행위이고 우수한 당성의 증거이나, 단체로 몰려가서 KFC를 테러하고 일본계 기업에 겁을 주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footnote]여담으로, 에번 오즈노스의 책에서도 이에 대한 당국의 태도를 볼 수 있다. 궁금하면 책을 보라.[/footnote] 또한, 역사를 좋아하는 중국인들답게 그들은 다시 과거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것 같다. 중국이 근래 들어 주목하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다.

오토 에두아르트 레오폴트 폰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1815년 4월 1일 ~ 1898년 7월 30일)
오토 에두아르트 레오폴트 폰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1815년 4월 1일 ~ 1898년 7월 30일)

종합하자면 지금 중국의 행동은, 첫째로 국제질서를 혼자서 뒤흔들 정도의 힘을 구축하여 국제질서에서 협상 지렛대를 확보했다는 점, 둘째로 이를 아는 인민들 스스로가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기를 (삐뚤어진 형태로) 원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도부는 당분간은 이런 거로 좀 피곤해지긴 싫다는 점에 있다.

이를 전부 모아봤을 때, 적어도 당분간은 공산당은 대내적으로는 과도한 민족주의적 행보를 억제하려고 하되, 일단은 국내의 불만을 무마할 대외적인 실적을 쌓으려고 나설 것이다. 이를 포용적인 방식으로 진행할지 아니면 제로섬의 방식으로 이룰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둘 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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