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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현대 세계의 향방을 알기 위해 꼭 이해해야 할 국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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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안심하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몇 가지 변수에 따라서 중국 인민의 국수적 민족주의 열기와 이를 가까스로 통제하는 중국 공산당의 균형, 그 미묘한 안정관계는 즉시 불안정 국면으로 돌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공산당 통치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면? 지도부에 내분이 생긴다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중국 북경 천안문

우선, 중국 공산당이 통치 위기나 경제 위기를 맞을 경우 변동성이 워낙 커져 그들이 정해진 프로토콜대로 정책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이웃 국가들과 미국은 중국에 대한 신뢰가 극히 부족하기 때문에[footnote]중국이 비스마르크를 염두하고 취한 행동을 이들은 빌헬름 2세의 행동처럼 볼 수 있다.[/footnote] 대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의 중국의 행동을 강경하게 맞받아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럴 경우 갈등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둘째, 중국이 장기적 체질 개선에 성공했을 때이다. 장기적 체질개선의 결과는 결국 자유화와 민주화다. 이건 희망적인 시나리오일 텐데 왜 위험할까? 일단 일차적으로 자유화와 민주화가 중국에 안겨줄 성공 때문이다. 지금 공산당 관료의 이익 때문에 억지로 운영하는 비효율적 국영기업들이 정리되고, 그것을 효율적인 민간 영역으로 완전히 대체한다면, 그리고 재산권을 비롯한 권리보장이 독립적 사법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중국이 향후 해낼 수 있는 것은 훨씬 많을 것이다.

용 중국

문제는 이렇게 커진 힘을 여전히 식지 않은 민족주의적 열기가 잘못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산당의 대외관계 관리라는 안전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적인 지도자가 국영기업 해고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어 혜성처럼 등장하여, 대내적 권력장악을 위해 국제적인 긴장도를 높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반적인 민주평화론에 따르면 민주국가는 스스로 전쟁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그 엄청난 경제성장 속도와 공산당의 억제 때문에 경제적 수준에 맞는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갖추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상당히 오래 지속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영혼의 갈증을 풀기 위해서 종교, 시민단체, 정치조직 등을 활용한 반면 중국은 이런 것을 철저히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이것마저도 억제하고 있긴 하지만 중국인들이 공식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애국주의의 외피를 쓰고 말하는 것이다.

중국 안 – 민주화 연착륙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나마 괜찮은 미래로 상상할 수 있을까? 우선 중국 내부적으로는 공산당 통치는 어떤 식으로든 자유화와 민주화로 연착륙해야만 한다. 공산당의 억압적 통치는 중국에서 영구히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것을 억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불안정만을 늘릴 뿐이다. 공산당 통치 자체가 중국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며, 무한히 복잡해지고 있는 중국 사회를 관리할 하향식 통제 역량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공산당이 계속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다가 통제 불능의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은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런 길을 따라서 들어선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도 매우 취약하고 극단적 정치문화가 온존해 어떤 식으로 튈지 짐작을 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에 관한 한 리스크는 적을수록 좋다. 일반적으로 자유화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이 합의점을 이룰 정도로 세력균형이 갖추어지는 것이 가장 괜찮은 민주화 이행이지만, 공산당의 힘이 너무 강한 중국에서는 당이 주도하는 민주화가 아마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천안문 광장을 지키는 인민무장경찰부대 소속 상등병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2.0)
천안문 광장을 지키는 인민무장경찰부대 소속 상등병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2.0)

민주화한 중국은 세계 사회의 책임 있는 행위자로 나아가기가 권위주의 시절보다는 조금 더 쉬울 것이다. 이는 중국의 체제 내 불안정성을 줄여주어 장기적인 갈등관리에는 오히려 좋다. 끝내는 중국에서도 과열된 민족주의적 정서가 사그라들고 조금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삶의 의미를 채워나갈 것이다. 또한, 대만 문제 해결에도 돌파구가 마련되어 미·중 양국 간 충돌면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중국의 민주화는, 그것이 연착륙이든 경착륙이든 외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저 대국을 외부에서 어떻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보시라이 사건’이라는 현대 중국 초유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외부에서는 어떤 정보들을 취사선택해야 할지도 감을 잡지 못했다. 따라서 서방이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거의 상당수는 중국인의 선택과 중국 정치인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 천안문 6.4 항쟁은 중국 공산당의 무력 진압(사실상 대학살)로 끝났다.
중국 천안문 6.4 항쟁은 중국 공산당의 무력 진압로 끝났다. 사실상 군인에 의한 민간인 대학살. (출처: AP)

중국 바깥 – 다자간 협조 테이블

그래도 연착륙 과정에서 중국과의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외부 세계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만 한다.

우선, 공산당이라는 영구히 지속할 수는 없는 안전핀이 사라진 중국을 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선 역내의 경제적 통합을 더욱 가속하는 것이 한 방안일 수 있다. 중국이 주변국에 어설프게 경제 제재를 실행할 때 그 결과로 진짜로 중국 지역경제 하나쯤은 같이 타격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역내의 경제통합이 필요하다. 아시아 슈퍼 그리드와 같은 지역 내 인프라 협력은 매우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둘째로, 아시아 역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조 테이블이 필요하다. 다만 이런 협조 테이블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고 남한 등을 포괄할 이유는 없다. 휴 화이트는 그의 저서 “중국을 선택하라”에서 빈 체제와 유사한 “아시아 협조체제”를 제안한다. 이는 미국, 중국, 일본, 인도 간의 협의 테이블이다. 중국에 충분히 압력을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하되, 미국의 입맛대로만 흔들리지는 않아서 중국 측도 만족시킬 수 있는 협조체제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차 말했듯이 지금 상태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라그 카나 중국 이것은 분명 지금까지 지배자였던 미국에 있어서, 그리고 부상하는 중국에 있어서도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일이다. 남중국해 문제도 중국과 다른 국가들이 주장하는 해결책 중 하나가 일관적으로 관철되는 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남중국해 문제는 위와 같은 내용을 토대로 한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파라그 카나(Parag Khanna, 사진)가 제시하는 해법은 흥미롭다.

군대를 무력으로 몰아낼 것이 아닌 이상에야 주권은 실소유자에게 보장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추가 영유권 선포는 금지하고 지역을 비군사 지대로 만들고 부존자원은 역내 국가들의 공동기금을 통해 개발하는 것으로 갈등의 많은 부분을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인공섬을 만들고 구단선 같은 억지를 부리는 중국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2015년 5월 미 해군 정찰기가 촬영한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출처: 로이터, 재인용 출처: VOA) http://www.voakorea.com/a/3000574.html
2015년 5월 미 해군 정찰기가 촬영한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출처: 로이터, 재인용 출처: VOA)

나는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서 중국 측 논리가 더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용기 있게 나서는 것보다는 비겁한 타협이 더 발전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지역의 군사적 갈등을 줄이고 말 그대로 우리 시대의 평화에 기여하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있어서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와 러시아는 실제로 위와 유사한 합의점에 이미 도달한 선례도 있다.

또한, 역내 자원의 공동개발은 지역 내 경제주체들의 상호의존성을 높이면 국가 간 신뢰관계도 재고할 수 있고, 군사적 모험을 힘들게 만들 것이다. 물론 동남아 국가들이 양보를 한 면이 크니, 공동 기금의 수익 분배나 투자 비중은 중국이 통 큰 양보를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이제 말로만 대국이라고 하지 말고 이럴 때 진정한 대국의 풍모를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

모두가 지는 합의

이는 모두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합의일지도 모른다. 왜 굳이 모두가 지는 합의에 도달해야 할까? 원래 합의라는 것의 속성이 그렇다. 자신이 무언가 손해를 보는 것만 같고 양보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손실에 민감한 존재다. 그러나 저쪽도 그런 생각을 하면 나름 괜찮은 합의였다는 셈이다. 둘 다 어떤 면에서 양보하면서 장기적인 공동선이 창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손익계산을 해보자면 서로 양보하고 협조하는 것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협조 시스템은 비단 민주화되지 않은 중국이라도 미리부터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민주국가인 중국이 아니더라도 중국의 존재를 무시하고 갈등관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갈등을 감수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리고 조금 시야를 좁혀보자면 남한이 이런 협조 체제가 가장 시급한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중국 또한 북한에 대해서는 많은 지렛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중국 없이는 북한 문제를 유의미하게 관리하는 가능성조차 바랄 수 없을 것이다.

2012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홍콩 시민들 (출처: AFP)
2012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홍콩 시민들 (출처: AFP)

어찌 되었든 이 세계는 중국인들과 협조하에 만들어진 세계다. 그렇기에 중국을 이 세계에서 문제의 일부가 아닌 해결책의 일부로 만드는 것은, 당면한 세계 최대의 도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한국은 단순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나라로서, 북한 문제가 걸려 있는 당사국이기만 한가? 단순히 중간에 있는 국가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벨기에는 영국과 독일 사이에 있었으나 제1차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도화선만 되었고 국토는 전쟁터가 되었다. 대국들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시야를 때로 초월한다. 그렇기에 한국인들만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여기서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민주화와 자유화를 먼저 일구어낸 앞선 국가로서 한국을 본다. 여기에서는 분명 한국과 한국인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중국을 더 깊게, 잘 알아야 한다. 중국에 대한 차분한 사회적 논의는, 그 대장정의 출발과도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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