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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 국회 전체를 마비시키는 198개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반복되는 ‘네 탓 공방’까지. 20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와 ‘신뢰도 꼴찌’를 갱신하는 동안, 다음 총선이 4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 맞다, 유권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투표다.

유권자의 가장 큰 무기는 '투표'다!
유권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투표’다!

세월호, 소수자·약자 투표 독려 기사 편집이 유죄?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선거 날 ‘오마이뉴스’에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투표,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투표를 독려하는 기사가 실렸다. 편집기자 A 씨는 시민기자가 작성한 이 기사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일부 오타와 비문을 다듬어 다음 편집 기자에게 넘겼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어 다음 총선이 다가올 때까지 선거법 재판을 받게 될 줄이야.

최초 시작은 어느 보수단체의 고발이었지만, 보수단체는 바로 고발을 취하했다. 그럼에도 검찰 측은 인지수사로 전환했고, 경찰의 무혐의 처분에도 재수사 지시까지 내리며 편집기자 A씨를 선거법 제58조의2 단서 위반으로 기소했다. 해당 기사가 특정 후보자의 이름을 적시하며 ‘정당 심판’, ‘당신의 한 표가 부적절한 후보를 걸러낼 수 있다’ 등의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단순한 투표 독려가 아니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다.

세월호

1심 재판부는 편집기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기사는 통상적인 칼럼 내용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고, 독자들 대부분은 기사에 언급된 후보의 지역구 유권자가 아니므로 특정 후보보다 기사가 주장하는 ‘가치 투표의 중요성’에 집중할 것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2심인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직접 거명하며 부정적 인식을 환기하는 내용으로 투표 권유를 했다는 유죄 판결 요지는 상고심에서도 그대로 확정되어 벌금 50만원 선고유예 결과로 재판이 종료되었다. 2017년 2월, 선거 당일에도 온라인 선거운동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됨에 따라 ‘선거유예’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투표독려 기사를 편집한 행위가 불법이라는 사법부의 판단은 유효한 셈이다.

투표 독려 기사를 편집한 행위가 불법이라고요?
투표 독려 기사를 편집한 행위가 불법이라고요?

투표 독려 캠페인은 ‘위험할 정도로 낮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트위터 등 SNS가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캠페인이자 하나의 선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조항 변경을 거친 현재 공직선거법 제58조의2 조항이 바로, 투표독려 캠페인을 법률로 보장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선거법 58조의2는 누구든지 투표참여 권유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다만, 투표 참여 권유를 위해 집집마다 방문하거나, 투표소 100미터 이내에서 투표 권유를 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 등을 예외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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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공직선거법 제58조의2(투표참여 권유활동)

누구든지 투표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호별로 방문하여 하는 경우
  2. 사전투표소 또는 투표소로부터 100미터 안에서 하는 경우
  3.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하는 경우
  4. 현수막 등 시설물, 인쇄물, 확성장치·녹음기·녹화기(비디오 및 오디오 기기를 포함한다), 어깨띠, 표찰, 그 밖의 표시물을 사용하여 하는 경우(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나타내어 하는 경우에 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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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한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부는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각 기준에 따라 선정한 낙선후보를 해당 기사가 언급하며 ‘심판해야 한다’, ‘걸러낼 수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을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반대한 내용’으로 본 셈이다. 그러나 선거법 58조의2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이름이 적시된 투표 독려 모두를 규제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투표 독려를 보장하되 투표독려를 빙자한 편법적인 선거운동을 금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선거 투표

이러한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겉으로는 투표 독려처럼 보이지만, 특정 후보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하는 객관적이고 능동적인 행위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불법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후보 이름이 적혀있다고, 부정적인 내용이 포함됐다고 선거법 위반에 처해진다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선거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까. 편집국 최종 책임자도 아닌 편집기자 1인이 투표독려 칼럼을 편집했다는 이유로 유죄가 되는 사회, 정말 묻고 싶다.

‘판사님, 그래서 우리더러 선거 때 뭘 하라는 말입니까?’ 

계속되는 ‘유권자 수난사’ 

선거 한 번 할 때마다 선거법 때문에 입막히고 손발 묶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쌓인다. 2016년 총선 시기, 기자회견에서 후보 이름 없이 ‘구멍 뚫린 피켓’을 들었다는 이유로 활동가 30여명이 아직도 재판 중이고,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압 책임자였던 당시 서울경찰청장 김석기 후보의 낙선운동을 하다 용산참사의 책임자를 세우지 못 한 재판장에 자신들이 서야했다. ‘정권 교체’ 신문광고를 실은 문인들에게도 벌금형이 처해졌고,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일가의 의혹을 제기한 후 징역형까지 살아야 했던 이도 있다.

이렇게 쌓여가는 유권자 수난사에도 국회는 선거의 주인은 오직 후보자 자신들이라는 듯 유권자를 옥죄는 선거법에는 관심이 없고, 법원은 사회 변화에 맞추어 위헌적인 법률을 변화해나가는 것은 입법자 국회의 몫일 뿐 법원 자신은 책임 없다는 듯, 규제 중심의 선거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유권자 수난사를 계속 써간다. 그 가운데 표현하는 유권자, 정치와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만 죽어난다.

쉿! 그냥 투표만 하세요!
쉿! 그냥 투표만 하세요!

‘투표합시다, 그러나 왜 투표해야 하는지, 어떤 이유에서 이번 선거가 중요한지, 누가 적합하고 부적절한 후보인지 대놓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정당이나 후보 이름을 쓸 수도 없고, ‘관심법’으로 어떤 후보인지 유추하고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투표는 합시다, 우리는 투표‘만’ 합시다!’

이게 현실이다. 선거 6개월 전[footnote]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보궐선거 등에 있어서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창당준비위원회와 정당의 정강·정책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footnote]부터 선거일까지 각종 규제가 작동하는 현행 선거법, 다음 총선을 4개월 여 남겨둔 우리는 이미 선거법 규제 기간에 들어와있다. 유권자 수난사를 이제 더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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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기획한 ‘광장에 나온 판결’ 연재의 일환으로, 필자는 참여연대 이선미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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