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트럼프가 당선됐다. 미국은 패닉 상태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미국 대학의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이 이렇게나 창피한 적이 있었을까. 하지만 미국이 그간 경험해 본 적 없는 그로테스크한 괴물을 대통령으로 맞이했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영향받을지 아닐지는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다. 힐러리가 됐다고 해서 잘될 거란 보장도 없지만, 설혹 트럼프의 집권으로 미국경제가 붕괴한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경기침체에 돌입할 것이란 것도 단언할 수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2015년 2월, 출처: Gage Skidmore, CC BY-SA) https://en.wikipedia.org/wiki/Donald_Trump#/media/File:Donald_Trump_by_Gage_Skidmore_3.jpg
도널드 트럼프 (2015년 2월, 출처: Gage Skidmore, CC BY-SA)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때 한국 경제가 어떤 상태였었는가를 되돌아보면 위 사실은 더욱 자명해진다. 따라서 최소한 경제 분야에 있어선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한국의 정권교체를 미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음을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밝히는 바다.

또한, 시민 대다수가 대통령의 하야 혹은 탄핵을 요구하고, 정권교체를 강렬히 바라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치지도자가 이를 추진하는데 망설이는 이유가 하야 혹은 탄핵 이후 발생하게 될, 특히 경제 분야에 예상되는 피해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대책 부재 때문은 아닌가 싶다. 이에 이를 극복할 방안을 피력하여 부족하나마 경제학자로서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편지를 나의 모국 정치지도자들에게 쓰는 바이니, 한번 읽어보고 본인의 정견에 반영키를 기대한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083047.html
지난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1.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정치철학 구현에 집중하라

한국은행 통계를 확인한 결과 문민정부 이후 민정당 계열 정권은 평균 4.9%, 민주당 정권 9년간 (98년 외환위기 제외) 평균 6.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국민경제 운영에 민주당 정권이 평균적으로 우월했다는 근거다. 과거 정권이 경제운영에 실패했다는 근거 없는 비난에 위축되지 말고, 건강한 국민경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성공적이었던 민주당 정권의 유산을 부정하지 말고, 이를 기반으로 해 평화로운 국방, 경쟁력 있는 외교, 안정된 치안, 정의로운 사법 시스템의 회복에 집중토록 하라.

국가는 시장경제제도에서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생산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행정력과 정부재정지출을 활용한 인위적인 경제성장 정책이나 경기 활성화 정책은 부패와 비효율만을 낳을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 등 정치지도자와 행정부가 할 수 없는 것들에 국민경제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

2. 갑작스러운 경기침체(경제위기)가 닥칠 경우 실업문제에 집중하고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피하라

경기변동은 단기에 발생하는 확률적인 현상이므로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으며, 이를 막을 길도 없다. 또한, 기업의 자연스러운 생멸은 건강한 시장경제제도에 필수 불가결한 현상이고, 행정부를 통한 인위적인 구조조정의 폐해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충분히 경험하였을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독과점이 심할 뿐 아니라 대부분 행정부의 지원과 보호 아래서 성장하며 이러한 독과점을 강화해 왔기 때문에 이들이 분쇄되는 것은 오히려 건강한 시장경제제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단, 경영진의 과실과 잘못된 자본투자의 책임을 죄 없는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실업보험(고용보험)과 실업급여를 강화하고, 확대하라. 미국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생한 실업률 급증을 극복하기 위해 2009년 6월부터 25주였던 실업급여 지급 기한을 99주로 연장하여 실직한 노동자들의 급격한 소비위축 없이 충분한 기한을 두고 자연스럽게 다른 직종을 찾도록 유도하였다. 나는 이 실업보험 확대가 가장 효과적인 경기 안정화 정책이라고 보고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이를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기존의 실업급여 지급 기한을 25주에서 99주까지 연장했다. (출처: woodleywonderworks, CC BY) https://flic.kr/p/5vxVoH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기존의 실업급여 지급 기한을 25주에서 99주까지 연장했다. (출처: woodleywonderworks, CC BY)

실업급여 및 실업보험 지급을 위한 예산은 될 수 있는 한 실업을 발생시킨 기업과 경영진 측에 전가토록 하라. 투자실패의 책임을 투자자가 지는 것이 건강한 시장경제의 운영원리이다. 또한, 가계부채 급증 때문에 금융사의 파산 위기가 닥칠 시 파산의 위험이 큰 대출채권을 양산한 금융사 경영진과 투자자에게 발생시킨 실업의 책임을 지우고 채무자들의 채무를 낮추도록 유도하라.

2012년 8월 이후 중앙은행 대출금리가 3%를 넘은 적이 없었는데 현재 금융사들이 발행하는 대출이자와 비교해보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초과이윤을 착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금융사는 파산하여도 그곳에서 일해왔던 유능한 인력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이 다른 건강한 금융사로 옮겨가거나 건강한 소규모 금융사들을 만들기까지 실업급여를 통해 지원하면 금융시장은 자연스럽게 안정될 것이다.

3. 현재 한국의 중산층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정책 기조를 맞추도록 하라

행정부의 정책은 국민경제의 평균적인 현상을 움직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극단에 있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효과가 없다. 시민 대부분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근무하며, 강남 일대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이는 사실 매우 극단에 있는 가계 혹은 개인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은 통상 수학 능력 시험 상위 10%에서 13%의 수험생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데, 이는 평균적인 대입 수험생의 90% 신뢰구간 바깥의 극단에 있는 학생이고, 평균적인 현상을 목표로 해야 할 교육 정책이 효과를 줄 수 없는 지극히 확률적인 현상이 지배하는 집단이다. 이러한 극단에 분포하는 집단을 목표로 하는 정책들은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불필요한 경쟁을 발생시키며, 국민경제의 비효율을 야기할 것이다.

학생 질문 물음표

또한, 위와 같은 극단에 분포하는 집단을 목표로 한 정책의 비효율성은 노동시장, 부동산 시장에도 적용된다. 전 국민의 1%도 되지 않는 인구가 사는 강남의 아파트값을 통제하기 위한 정부정책은 실효성도 없으며 시장경제원리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행정부의 정책은 평균적인 현상에만 효과적임을 인식하고, 현재 한국에 평균적인 부분에 있는 가계(중산층)가 어디에 분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에 정책 기조를 맞추도록 하라. 소수의 목소리 큰 집단들의 아귀다툼에 행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4. 관료 선발 시스템을 상시 추천제로 바꾸고 고위 공직자의 급여 및 은퇴 연령을 높이 책정하라

고등고시 등의 시험제도를 통한 공채 형식의 고위 관료 선발은 외부와의 경쟁을 단절시키고, 비현실적인 급여와 짧은 정년은 공무원의 부패를 양산한다. 시장에서 능력이 검증된 인력을 선발하여 책임감 있게 공직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공정한 기회 보장이라는 시대착오적이고 부적절한 관료선발제도보다 많은 시민의 삶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관료 선발의 공정한 기회 보장은 오로지 관료가 되기 위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공정할 뿐,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관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평범한 시민들은 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다양한 사건들과 송사를 처리해온 정의감 넘치고 유능한 변호사들이 판사, 검사가 되어 충분한 급여와 안정된 정년 보장을 토대로 활동하는 것이 건강한 사법 시스템의 회복에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민간기업이나 금융권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전문가들이 경쟁력 있는 급여를 받고 안정된 정년 보장을 토대로 책임감 있고 효율적인 경제정책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현직 경제학자인 나도 풀 수 없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행정고시 경제학 문제들을 모두 다 맞히고 자리를 차지한 제경직 출신들이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은 전문가들 보다 효과적인 정책수립 및 이행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각 분야의 관료와 함께 일할 자신의 동료를 직접 선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유능한 관료들이 공무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도록 하라. 더불어 국가경제연구원들은 모두 민영화하여 시장의 경쟁체제에 노출 시켜 정책효과 예측 및 분석의 품질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

정년은 늘리되 민간의 정부 참여의 문호를 넓히는 플랜B가 필요하다.
관료의 정년은 늘리되 민간의 참여 문호를 넓히는 플랜B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시장경제체제를 위한 이상적 정치지도자의 덕목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정치지도자는 국민경제의 참여주체들이 건강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조정 주체이지 이를 만들거나 이끌어나가는 생산 주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어 준다든가 일자리 창출을 한다든가 등의 공약은 위선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열심히 일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들이 적정하게 보상받고 대우받을 수 있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구축하는 데 힘쓰겠다는 공약 등을 주창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부유한 삶을 주는 구세주와 같은 정치지도자를 찾는 시민들을 당당하게 계몽하라.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매우 우수한 사람들이고, 분단이라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위대한 경제적 업적을 이뤘다. 현재 나타나는 문제들은 단지 한국이 서구사회에서 만들고 발전시켰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경험이 짧아 생기는, 정착을 위해 거쳐야 하는 시행착오들에 직면한 것일 뿐이다. 이들 체제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을 직시하고, 한국인이 만들어오고 성취해온 역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라.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판했던 1776년 이곳 한국 땅에선 정조가 임금으로 즉위했고, 미국이 대공황에서 탈출키 위해 안간힘을 쓰던 1945년 한국은 어수선한 가운데 독립을 맞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착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안정화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시행착오를 맞아 좌절하고 절망하는 내 가족, 친구, 이웃들을 다독여주고, 이들이 자신들의 우수성을 마음껏 펼칠 건강한 국민경제 시스템을 구성하여 줄 수 있는 좋은 정치지도자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 편지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관련 글

첫 댓글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