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추리) 소설가들이 많다. 마이클 코넬리, 헤닝 만켈, 마이클 로보썸, 아르날두르 인드리다손, 케이트 앳킨슨 등. 임상심리학자이자 추리소설가, 작가인 영국의 프랭크 탤리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배경으로 갖가지 기묘한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임상심리학자 맥스 리버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리버만 페이퍼] 시리즈는 플롯뿐 아니라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도 퍽 매력적이다. 프로이드가 리버만의 스승으로 종종 출연하고, 당대에는 작곡가로서보다 명지휘자로 더 유명했던 구스타프 말러의 연주회에 가는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탤리스는 임상심리학자라는 자신의 전문성을 소설에 적절히 반영해, 독서의 재미를 높인다.
탤리스는 트위터에도 종종 글을 올린다. 주로 자신의 스토리 구상이나 읽은 혹은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짧은 평이다. 지난해(’17년), 그는 내 관심을 부추기는 트윗을 두 차례 올렸다. 하나는 새로운 책을 막 읽을 무렵 올린 것으로 이런 내용이다.
“매튜 워커의 ‘우리는 왜 자는가: 수면과 꿈에 관한 새로운 과학’을 읽는 중. 굉장히 매혹적인 책. 강추.”
그리고 며칠 뒤, 탤리스는 이런 트윗을 다시 올린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다시 강조해야 겠다. 매튜 워커의 ‘우리는 왜 자는가’는 예외적으로 뛰어난 책이다.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더 오래 살고 싶고 잘 작동하는 두뇌를 갖고 싶은 이들에겐 필독서다.”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책?
저 정도로 상찬한 책을 그냥 지나치기는 불가능했다. 전자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읽는 가운데, 프랭크 탤리스의 저 트윗들에 100%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히 평이하면서도 명쾌하게 잘 쓴 책이었다. 쉽게 술술 잘 읽힌다는 뜻만이 아니라, 수면과 꿈에 관한 근래의 과학적 발견과 통찰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상식이라고 여겼던 내용이 사실은 얼마나 진실과 동떨어져 있는가, 그래서 심지어 본인의 수명을 단축하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아 왔는가를 이 책을 읽으면서 되풀이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 매튜 워커는 하버드대학을 거쳐 현재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의 교수로 ‘수면 및 두뇌영상 연구실’(Sleep and Neuroimaging Lab)을 운영하면서 수면과 꿈에 관한 여러 연구를 수행해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발견을 여럿했고, 지금은 수면 부족이 치매의 발병 위험성과 어떤 연관 관계를 갖는지 연구 중이다.
흔히 ‘잠이 보약’이라고들 말한다. 탕진한 기력을 보충해준다는 뜻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듭 깨닫게 되는 것은, 잠은 그런 ‘보약’ 수준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연구, 그리고 수면에 관한 숱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잠은 ‘보약’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밥, 혹은 ‘약’이라고 해야 진실에 더 가깝다.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탤리스의 표현처럼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인간의 필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수면은 흔히 규칙적인 운동, 바람직한 식습관과 더불어 장수와 건강의 삼대 조건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세 기둥 이론’(theory of three pillars)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면이 운동과 식습관이라는 두 기둥을 떠받치는 기반이자 근본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여덟 시간 안팎의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않은 상태의 운동, 식습관, 그리고 다른 여러 사회 활동은, 심신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나는 잠이 없어. 하루 대여섯 시간만 자도 거뜬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 — 저자에 따르면 거의 100%에 가깝다 — 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실제 실험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예외적인 특질 떄문에 여섯 시간 미만의 수면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거의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극소수다.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보다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이 훨씬 더 높을 정도로, ‘대여섯 시간만 자도 거뜬’한 사람은 거의 없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잠에 대한 일반의 그릇된 인식을 꼼꼼하고 날카롭게 지적해주는 1부 ‘잠이라는 것’, 수면 부족에 따른 여러 질병과 위험성을 다양한 실제 사례로 흥미롭게 설명한 2부 ‘왜 자야 하는가?’, 꿈의 비밀을 풀어가는 3부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는 꿈을 꾸는가’, 그리고 불면증을 비롯한 여러 수면 장애을 짚는 한편 아이패드나 커피(모닝커피, 그리고 오후에 마시는 커피), 수면제 같은 현대의 여러 징후가 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4부 ‘잠을 쫓는 사회’가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수면을 취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부분은 결론과 부록에 실려 있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수면 시간을 줄이는 유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잠을 많이 자면 곧바로 게으르다는 딱지가 붙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매튜 워커는 이런 오해가 하루빨리 불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와 같은 잘못된 사회 인식 때문에 졸음 운전이 음주 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졸음 운전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데도 그에 대한 해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기 일쑤라고 그는 지적한다. 처벌이나 규제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오랜 격무와 피로에 시달리다 보니 그렇지’라는 사회적 승인도 더 이상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왜 자는가]는 국내에도 곧 번역 출간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간되면 그에 맞춰 여러 정부 부처, 기업, 기관, 시민단체들과 손잡고 ‘하루 8시간 잠자기 운동’을 벌여나가는 것도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에는 저자를 비롯한 수면 과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실제 업무에 적용함으로써 톡톡히 효과를 본 사례가 여럿 나온다. 시합전 충분한 수면을 적극 권장하는 미국 프로농구협회(NBA), 시간대를 여럿 가로지르는 장거리 운행 파일럿들을 위한 주요 항공사들의 수면 프로그램 등이 소개된다.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전까지 NBA와 항공사들은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전날 충분히 숙면을 취한 경우와 잠을 설친 경우, 농구 선수와 파일럿 들이 보여준 활약은 눈에 띄게 달랐다.
유독 바지런을 떠는 사람들 중에는 ‘자면 뭘해 열심히 뛰어야지. 죽으면 어차피 원 없이 잘 거 아냐?’라고 흰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그러나, 그런 사람은 ‘죽으면’이라는 상황이 평소 규칙적인 숙면을 취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일찍 올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겁박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자가 소개한 온갖 임상 실험 결과를 감안하면 결코 허튼 말이 아니다. ‘적게 잘수록 수명도 그만큼 짧아진다’라는 게 저자의 단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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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디나 카플란(김종욱 번역), 항상 ‘바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슬로우뉴스, 2015.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