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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사는 내가 얼마 전에 다녀온 휘슬러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계 3대 스키장 중 하나라는 휘슬러가 아니라 그 길목에 있는 기차 박물관이었다.

민영 기차 박물관 

개인적으로 캐나다 혹은 미국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민간 기부금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가 마땅치 않았었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공공자금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민간인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안일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일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해결책’이 될 리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박물관 역시 그런 흐름 가운데 하나였다. 국영도, 시영도 아닌 온전히 민간인의 기부금만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는 민영 박물관. 우리나라의 박물관이 국영, 아니면 개인수집가의 전시관으로 양극화된 것에 반해 민간이 모은 자금으로, ‘멤버십 클럽’ 개념으로 공동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두 극단의 중간쯤에 자리 잡은 형태다.

부활한 거대 증기기관차 

시작은 증기기관차 2860호였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자랑거리였던 이 거대한-다시 한 번, 거대한, 바퀴 하나의 크기가 중학생 우리 큰 애보다 더 큰- 증기기관차가 퇴역해서 고물로 팔려나갈 거란 소식을 들은 밴쿠버 시민들은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우리의 기억, 역사를 지키자’는 취지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이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West Coast Railway Heritage Park’.

멤버십 가격은, 팸플릿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른 1달러, 아이 50센트.

캐나다 기차

기관차를 사들여서, 전체적으로 모두 복원하고, 이걸 가져다 놓을 땅을 사들인 후, 이게 들어갈 거대한 건물을 짓고, 여기까지 레일을 깔아 기차를 끌고 와야 하는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의 비용으로는 턱도 없어 보이는 액수였다. 말 그대로 ‘우공이산’.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기부금으로 기차를 사고, 엔지니어 출신 자원봉사자들이 복원하고, 레일 건설회사에서 레일을 기부하고, 울타리 회사에서 울타리를 기부하고 전직 철도회사 직원들이 소장품들을 기증해서 건물이 올라가고 2860이 부활했다.

부활한
부활한 2860

전통과 기억도 복원하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차회사에서는 폐쇄예정이었던 기차역을 기증하고 그 역의 역장은 자신이 살던 집을 기부해서 그 건물들을 옮겨와 작은 마을을 복원했다. 그리고 하나씩 둘씩 기부받고 사 모은 온갖 종류의 기차들, 전통과 기억들…

캐나다 기차

‘파크’라는 이름답게 아이들이 놀러 와서 즐길 수 있도록 이 박물관 주변 4km에는 작은 철로를 깔고 기차 장난감 마니아들의 노력으로 아이들이 올라탈 수 있는 미니 기차도 설치해서 운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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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 장소를, 당당하게 육중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2860을 보면서 어떤 느낌일까? 그건 아마 ‘우리가, 함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닐까? 늘 누군가에게, 특히 국가에 해결을 ‘요구’하는 데만 익숙한 우리는 실은 그런 자신감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이 기차는 그들이 ‘스스로 만든 역사’의 증거다. 그런 흔적들이 이 도시의 대부분을 만들어냈다.

시민의 힘, 시민의 자신감 

늘, 어디선가 이런 움직임들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밴쿠버 지역방송에서는 아동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몇 달째 벌이고 있고 오늘 아침 뉴스에는 저소득층 여성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자원봉사자 여성들이 ‘친구 되어주기’ 운동을 벌이는 모습이 소개되었다.

우리나라 이마트와 비슷한 슈퍼스토어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계산원이 포트맥머리에서 진행 중인 거대한 산불 피해자를 돕기 위한 기부를 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작은 액수지만, 나도 기부했다. 현재 밴쿠버 거의 모든 계산대에서 이런 작은 기부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전 돈

캐나다인이 아니지만, 나 역시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캐나다는 북미 지역에 전무후무하다는 이 화마[footnote]2016년 5월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발행한 대형 화재, 재난 당국은 5월 4일 주민 6만 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footnote]의 피해를 너끈히 극복해낼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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