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 공룡은 언제나 많은 이들의 관심사입니다. 그중에서도 스피노사우루스의 화석은 1912년 처음 발견됐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 폭격으로 소실됐죠. 하지만 2014년 9월 11일 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새로운 논문으로 스피노사우루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영하는 공룡’ 스피노사우루스의 이모저모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box]
고생물학을 다루는 커뮤니티나 게시판 등에서는 흔한 논쟁이 하나 있다.

‘어떤 공룡이 가장 센가?’

‘어느 공룡이 가장 싸움을 잘하는가’, ‘어느 공룡이 가장 큰가’, 혹은 ‘티라노사우루스와 코끼리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 등과 같은 질문들이 종종 올라온다. 그 질문에 대해 이용자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하다가 논쟁까지 벌이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릴 때 한 번쯤 가져봤을 ‘호랑이랑 사자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의문과 마찬가지로 초등학생이나 할 질문들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고, 화석 기록으로부터 추정한 여러 수치는 불완전하기 마련이므로 별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공룡에 매료되는 이유 중 하나가 공룡이 과거에 살았던 거대하고 강력한 동물이었기 때문인 것을 생각하면 이런 질문들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떤 동물이 이길까? (사진: Tambako The Jaguar_lion, CC BY)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질문,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떤 동물이 이길까? (사진: Tambako The Jaguar_lion, CC BY)

티라노사우루스 vs. 스피노사우루스

그렇게 보면, 강력한 포식자이자 육식공룡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인지도를 따라올 공룡은 찾아보기 힘들 테고, 가장 싸움을 잘할 공룡을 꼽아 보라고 했을 때 일단 티라노사우루스를 떠올릴 사람이 아마 제일 많을 것이다.

수많은 공룡애호가를 만들어낸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1993)도 물론 여기에 한 몫 단단히 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육중한 발걸음이 땅을 뒤흔들어 물에 파문이 이는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긴장감이나 그 큰 몸으로 먹잇감을 좇아 달리고 등장인물들이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달아나는 모습 등은 관객들에게 잊기 힘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폴란드에 전시된 깃털을 지닌 티라노사우루스의 실제 크기 모형 (위키백과 공용)
폴란드에 전시된 깃털을 지닌 티라노사우루스의 실제 크기 모형 (위키백과 공용)

그러면 티라노사우루스와 맞설 만한 공룡은 없었던 걸까?

[쥬라기 공원]의 큰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속편들 중 [쥬라기 공원 3]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1, 2 편에서 주인공 격이었던 티라노사우루스를 힘으로 제압해 버린 의외의 공룡, 스피노사우루스의 등장이었다. 제일 강력한 육식공룡인 줄 알았던 티라노사우루스가 영특하다는 벨로키랍토르 무리에게 당하는 것도 아니고 등에 이상한 돛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처음 보는 괴상한 공룡에게 목이 꺾여 죽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티라노사우루스를 쓰러뜨린 스피노사우루스, 그리고 허둥지둥 도망가는 그랜트 박사. 쥬라기 공원 3.

주로 육식공룡인 ‘수각류’ 공룡

주로 육식공룡들로 이루어진 ‘수각류’ 공룡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다. 물론 티라노사우루스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무겁거나 긴 몸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기가노토사우루스,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 옥살라이아, 그리고 스피노사우루스 등이 있다.

[box type=”info” head=”‘수각류‘란? “]
수각류(獸脚類)는 두 발로 걸어 다닌(이족 보행) 용반류 공룡을 말한다. 대부분 육식성이었으나 일부는 백악기에 초식성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수각류는 트라이아스기 말(약 2억 3,140만 년 전)에 처음으로 출현해 쥐라기 초부터 백악기 말(약 6,600만 년 전)까지 유일한 육식 공룡이었다. 현재는 쥐라기 말 시조새로부터 진화한 9,900여 종의 새만이 남아 있다.

수각류와 새의 공통점은 발가락이 세 개라는 점과 차골, 속이 빈 뼈, (일부 수각류의 경우) 깃털을 가진 점과 알을 낳는다는 점 등이 있다.

– 위키백과, ‘수각류’에서 발췌.  [/box]

티라노사우루스는 1905년에 처음 발견된 후 계속해서 대표적인 육식공룡의 자리를 지켜왔고, 기가노토사우루스는 1980년대에 와서야 발견되었다. 리차드 마르크그라프 (Richard Markgraf)가 이집트에서 스피노사우루스를 발견한 것이 1912년, 독일인 고생물학자 에른스트 스트로머 (Ernst Stromer von Reichenbach)가 이것을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 1915년이므로 스피노사우루스 자체는 꽤 일찍부터 알려진 셈이다.

스트로머의 스피노사우루스 복원도 (Stromer, 1936)
스트로머의 스피노사우루스 복원도 (Stromer, 1936)

1912년 발견된 화석,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되다

스피노사우루스는 처음부터 특이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이한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스트로머가 발견한 부분은 이빨이 붙어 있는 아래턱 한쪽과 척추뼈 몇 개였는데, 아래턱은 그때까지 알려졌던 수각류 공룡의 일반적인 형태와는 달리 턱의 앞쪽 끝 부분이 두껍고 뭉툭하게 생겼으며 좌우로 매우 좁은 모습이었다.

스트로머의 논문 (Stromer, 1915) 에 실린 도해. 스피노사우루스의 아래턱.
스트로머의 논문(Stromer, 1915)에 실린 도해. 스피노사우루스의 아래턱.

수각류 공룡의 이빨들은 보통 약간 납작하고 휘었으며 한쪽 모서리에 톱니처럼 깔쭉깔쭉한 부분을 지녔는데 스피노사우루스의 이빨은 단면이 원형에 가깝고 거의 곧은 원뿔 모양이었다. 척추뼈의 등 쪽에는 본래 신경배돌기(neural spine)라는 것이 막대모양의 구조가 돌출되어 있는데 스피노사우루스의 신경배돌기는 일반적인 공룡들의 신경배돌기보다 훨씬 길었다.

스피노사우루스의 척추뼈와 신경배돌기.
스피노사우루스의 척추뼈와 신경배돌기.

“이집트에서 발견된 돌기(spine)를 가진 도마뱀(saurus)”이라는 뜻을 가진 스피노사우루스 모식종의 이름, 스피노사우루스 아에깁티아쿠스(Spinosaurus aegyptiacus)도 여기에서 왔다. 이렇게 1910년대에 발견된 스피노사우루스의 화석은 뮌헨의 고생물학 박물관(Paläontologische Staasssammlung München)에 전시되어 있다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폭격을 받아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스트로머의 논문에 실린 그림과 박물관에 전시되었을 때 찍힌 사진만 남았다.

뮌헨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던 스피노사우루스의 골격. 이 사진이 재발견 된 것도 21 세기 들어와서 있었던 일이다. 스미스 외 (2006).
뮌헨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던 스피노사우루스의 골격. 이 사진이 재발견 된 것도 21세기 들어와서 있었던 일이다. 스미스 외 (2006).

물고기 잡기에 좋은 턱뼈

스피노사우루스의 화석은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다시 발견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에야 스피노사우루스 및 그와 가까운 관계로 보이는 공룡들인 바리오닉스, 수코미무스, 이리타토르, 옥살라이아 등의 화석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스피노사우루스과의 공룡들이 어떤 특징들을 가졌는지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나게 긴 신경배돌기에서 스피노사우루스의 속명, 그리고 ‘스피노사우루스과'(Spinosauridae)라는 이름이 유래하긴 했지만, 바리오닉스나 수코미무스 등과 같은 공룡들은 그렇게 긴 신경배돌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 모두를 한 그룹으로 묶어주는 것은 턱뼈다. 이빨이 나 있는 턱뼈의 경계가 일직선이 아니라 중간에 움푹 들어간 형태로 되어있는 것이라든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원통형의 이빨들, 그리고 좁고 긴 턱뼈의 모양 등이 스피노사우루스과 공룡의 특징들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Gharial#mediaviewer/File:Gharial_san_diego.jpg 스피노사우루스처럼 길고 좁은 주둥이를 가진 인도악어 (가비알)
스피노사우루스처럼 길고 좁은 주둥이를 가진 인도악어 가비알(위키백과 공용)

이와 비슷한 형태의 주둥이를 지닌 동물로는 가비알과의 악어, 즉, 가비알 및 말레이가비알 등이 있다. 화석 기록을 살펴보면 좁고 긴 주둥이 (longirostris) 를 가지고 있는 악어나 공룡들이 서로 다른 계통에서 여러 번 되풀이해 나타나곤 한다. 이런 형태의 주둥이는 물고기를 잡는 데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스피노사우루스과의 공룡들은 대체로 강이나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 물고기나 기타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Teleosaurus#mediaviewer/File:Large_ward_teleosaurus.jpg 길고 좁은 주둥이를 가진 쥐라기의 해양악어류인 텔레오사우루스
길고 좁은 주둥이를 가진 쥐라기의 해양악어류인 텔레오사우루스 (사진: 위키백과 공용)

수수께끼의 신경배돌기

스피노사우루스과 안에서도 스피노사우루스를 유난히 돋보이게 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높이 솟아있는 신경배돌기다. 이런 독특한 구조를 보면 가장 먼저 왜? 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스피노사우루스는 과연 무엇 때문에 저렇게 거대한 신경배돌기를 가지게 된 것일까?

얼핏 보기에 이와 유사한, 돛처럼 생긴 신경배돌기를 가진 동물로는 페름기의 단궁류인 디메트로돈과 에다포사우루스가 있다. 하지만 디메트로돈과 에다포사우루스의 신경배돌기는 가느다란 막대 형태라서 얇은 피부와 혈관 정도만을 지탱할 수 있었을 것이고, 몸의 측면을 해가 비치는 쪽으로 향하게 해 체온을 높이는데 돛 모양의 구조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설명과 그 구조가 비교적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스피노사우루스는 이들보다 기본적으로 몸집이 훨씬 커서 체온변화가 적었을 테고, 신경배돌기의 형태도 상당히 달라서 체온 조절을 위한 구조였을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디메트로돈에게서 볼 수 있는 돛 모양의 신경배돌기. http://en.wikipedia.org/wiki/Dimetrodon#mediaviewer/File:Dimetrodon_incisivus_Exhibit_Museum_of_Natural_History.JPG
디메트로돈에게서 볼 수 있는 돛 모양의 신경배돌기. (위키백과 공용)

스피노사우루스의 신경배돌기와 더 비슷해 보이는 것은 들소의 신경배돌기이다.

주로 어깨 부분이 높이 솟아 있는 들소의 신경배돌기는 강력한 목근육과 연결되어 있어 들소가 머리를 넉가래처럼 이용해 눈을 치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피노사우루스의 신경배돌기는 일면 들소의 신경배돌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어깨 부분만이 아니라 등 전체에 걸쳐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목 근육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들소의 골격. 스피노사우루스와 비슷하게 견고해 보이는 신경배돌기를 가지고 있다.  http://images2.pics4learning.com/catalog/b/bisonskeletonsd.jpg
들소의 골격. 스피노사우루스와 비슷하게 견고해 보이는 신경배돌기를 가지고 있다. (사진 출처)

그 외의 설명으로 제시된 것들로는 낙타처럼 그 부위에 지방을 저장하고 있어 필요할 때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거나, 높이 솟은 돛 모양의 구조를 이용해 성적으로 과시하거나 구애했다는 설명이 있다. 어느 쪽이든 완전히 만족스러운 설명은 없다. 하지만 어떤 특징이 반드시 한 가지 기능만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법도 없으므로 이들 모두가 부분적으로는 맞는 설명일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해 보이는 것은, 안 그래도 거대한 몸집을 지녔는데 등에 저렇게 크고 눈에 띄는 구조물까지 지고 다녔다면 스피노사우루스는 숨어서 기다리다가 먹잇감을 잡는 매복포식자(ambush predator)였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