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 윤석열 ‘구체제’ 끝낼 ‘신체제’ 저널리즘를 위한 세 가지 과제. (채영길/한국외대 교수) (⏳5분)
프랑스 대혁명 직전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의 절대왕정 체제와 주류 매체들은 팸플릿, 신문, 살롱, 카페 같은 새로운 언론 공간을 체계적으로 탄압했다. 정치와 결합된 구체제 언론은 이들 신생 매체를 “문자 폭동”이라 규정하며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괴담으로 매도했다. 대중적 담론을 생산하는 지식인들을 “독설을 퍼뜨리는 혀”로 폄하했으며, 그들의 출판물은 “정신의 방탕”이라며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거리의 지식인과 인민이 카페에 모여 국가를 비판할 때면, 이들을 “역모의 씨앗”이라 경고하면서 살롱과 팜플릿에 좌우되던 여론을 “허위 여론”으로 규정하고 검열과 처벌로 대응했다.

그럼에도 대중적 저널리즘에 대한 탄압과 조롱은 혁명의 불씨를 끄지 못했다. 오히려 권력에 대한 도전적 언어는 대중 속에서 결속력을 얻었고, 인민의 저항과 혁명의 동력이 되었다. 기존 권력과 언론에 의한 여론 억압은 그들을 앙시앙 레짐으로 밀어 넣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한 자극제에 불과했다. 새로운 민주정(民主政)의 실현은 대중적 주체의 출현과 그들에 의한 언론 공론장의 재구축 뒤에야 가능했다. 시민 주체에 의한 대중적 저널리즘 실험들은 근대 저널리즘의 출현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근대 민주주의 서막을 여는 원동력이었다.
극복 대상은 윤석열 정권이 아닌 ‘구체체’
이제 윤석열이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여기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보낸 것은 윤석열이 아니라 구체제(Ancien Régime) 그 자체여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보여준 언론 장악과 탄압은 구체제의 마지막 발악처럼 극악무도했다. 그러나 그의 악행은 구체제 언론제도와 매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민언련 언론장악백서 참조).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구체제 이후 새롭게 떠올라야 할 저널리즘 제도다.
지난 3년 윤석열 정권에서 주류 공론장의 지식인과 언론은 구체제 언론 억압과 놀랍도록 유사한 행태를 보였다. 유튜브와 SNS 같은 디지털플랫폼 기반의 대중 저널리즘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와 정치적 양극화의 온상으로 매도되었고, ‘가짜뉴스’와 ‘음모론’ 매체로 낙인찍혔다. 뉴스타파와 같은 비판적 탐사보도 매체의 특종은 주류언론에 의해 냉정하게 외면되었으며, 대중적 지식인들은 선동꾼으로 폄하되었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오로지 자신들의 전유물이 되어야만 하는 듯 주류언론은 대중적 저널리즘 실천을 저잣거리의 소란으로 치부하려 했다.
윤석열과 함께 보내야 할 것은 단지 윤석열 ‘정권’이 아니라, 그 출현을 가능케 했고 그에게 권력을 부여한 구정치체제 자체임을 각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구체제 언론제도를 개혁해야 하며, 생성되고 있는 대중적 저널리즘을 새로운 민주정 내부로 수용해 정식화해야 하고, 구체제 저널리즘을 대체할 신체제(Nouveau Régime) 저널리즘 규범을 언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1. 언론제도 개혁
먼저 언론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한국 언론구조의 문제는 특정 언론사의 편향이나 일부 기자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구조적 병리다. 출입처 제도, 불공정 광고 및 협찬, 정부광고 운영, 지역방송 활성화, 포털 언론, 언론중재법 개정,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언론개혁 이슈를 논의할 때 우리는 투명성과 시민의 상호작용을 주요 원칙으로 삼아 공론장 독점을 타파하고 대중적 공론장을 회복해야 한다. 구체제 언론제도의 핵심 병폐인 공론장 독점체제를 시민참여 기반의 투명하고 공개적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출입처 제도는 모든 언론사를 위한 ‘오픈 브리핑’ 제도로 전환하고, 기록과 질의응답을 네트워크 시스템화해야 한다. 언론사를 포함한 공익법인에 대한 회계기준 공개와 공평하고 투명한 적용, 정부광고 등 공적 지원 제도의 운영은 공익콘텐츠 지수 기반으로 배분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포털뉴스 편집과 알고리즘의 감사제도 도입, 언론중재 및 손해배상 과정에서 시민배심원제를 운영해야 한다. 언론자율 규제는 시민참여 규제로 전환해 시민의 직접참여와 검증 및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2. 대중적 저널리즘, 새로운 민주정 내부로 수용
기존 언론체제에 대한 개혁 조치에 이어 필요한 것은 대중적 저널리즘 실천을 제도적으로 정식화하는 일이다. 구체제 저널리즘의 자리는 신체제 저널리즘이 차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주류 공론장 언론에 대한 관리 및 지원 제도에 대중적 저널리즘 매체와 실천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바탕으로 구체제 저널리즘 규범을 새로운 저널리즘 규범으로 대체해 신체제 저널리즘의 역할과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언론혁신은 제도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어떤 저널리즘 규범이 자리 잡을지, 곧 어떠한 저널리즘을 지향하고 실천할지에 대한 내적 합의가 필요하다. ‘대중적 저널리즘’이 정식화되어 신체제 언론이 되려면, 심화된 민주정의 저널리즘 규범과 실천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대중적 저널리즘의 규범과 원칙을 제안하며 학계에서 심층 논의를 촉구한 바 있다.
3. 언론 스스로 새로운 저널리즘 규범 구축해야
도래할 신체제 저널리즘은 객관주의(Objectivism)를 과감히 폐기하고, 취재 대상에 대한 새로운 대상성(Objectivity)을 정립해야 한다. 객관적 진실에 대한 맹목적 충성(Royalty) 대신, 언론은 사건의 진실을 책임지고 선택하는 민주적이고 윤리적 진실성(Fidelity)을 우선해야 한다.
또한 오늘의 보도가 미래의 집단기억이 됨을 자각하는 역사적 책임성, 기자와 시민이 동등한 공동생산자로 참여하는 참여적 주체성, 감정의 언어를 이성의 언어로 전환시키며 공감할 수 있는 보도의 언어 개발, 공동체적 기억이 되도록 하는 감정적 진실 구성, 사건의 전 과정을 단일한 맥락이 아닌 다층적 맥락화를 지향하고 이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사건 충실성의 강화, 플랫폼 상업 논리로부터 독립해 대안 유통망을 구축하는 기술적 독립성과 저항, 지역 공동체와 연결되어 새로운 공론장을 활성화하는 공동체적 가시성, 정치와 자본 권력을 언론 내부로부터 독립시키는 권력 독립성, 시민의 목소리가 의제에 반영되고 현장의 증언이 보도의 중심이 되는 시민참여적 취재∙보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처럼 제도 개혁과 규범 혁신이 결합될 때 우리는 마침내 ‘구체제 언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언론체제를 마련할 수 있다. 이 체제는 민주주의를 심화시켜 주체적 시민이 공론장을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며, 언론을 단순 취재와 보도의 기관이 아니라 진리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공적 실천의 장으로 변화시킨다.
정권이 바뀌어도 언론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윤석열과 같은 권력자를 맞이할 것이다. 주류 공론장내 언론의 위계만 달라진다면, 새로운 민주정은 들어설 수 없다. 그리고 진정한 언론개혁은 단순히 팩트체크를 강화하고 개별 기자의 취재윤리를 회복하고 자율규제를 개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말하기 조건’인 제도와 규범을 혁명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 민언련 칼럼
민언련 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