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인터뷰] 이제는 황혼의 역사를 향해 저무는 전세, 사회주택은 전세의 대안,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집을 밝히는 새벽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사회주택’의 저자 최경호 인터뷰. (⌚8분)
📙 ‘어쩌면, 사회주택’ 저자 인터뷰 (3회 연재)
📔 지난 줄거리:
- 사회주택은 이제는 그 역사적 시효를 다해가고 있는 전세의 대안이다.
- 사회주택은 대부분 시세 50-80% 수준의 월세 또는 반전세다.
- 사회주택은 법적으로는 사회적 경제주체(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가 만드는 주택이다.
- 하지만 단순히 누가 만드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담아내는가 중요하다고 최경호는 말한다(결과∙가치로서의 사회주택)
- 복잡해진 사회의 다양한 요구(청년, 노인, 장애인, 고립, 지역소멸, 에너지 등)에 사회주택은 좀 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사회주택은 ‘플랫폼’이다).

민노 인터뷰: 어쩌면 사회주택 ⑶
사회주택, 마치 버스나 택시처럼!
질문, 정리: 민노
답변: 최경호(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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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4월 21일에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에 맥락화했고, 본문은 최경호의 답변을 중심으로, 그러니까 인터뷰이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인터뷰이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외딴섬의 사회주택?
앞서 사회주택은 인기가 있다고 했지만(경쟁률 7~15:1), 어느 곳에 지어도 그런 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인프라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과 기회가 제공되는 곳에 살고 싶어 한다. 보통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입지’이다.
그러니 균형발전론 같은 것은 멀리 있는 도시도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입지의 매력을 높이자는 정책이다. 사회주택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사회주택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역세권이나 대도시에 만들어야 공실률 걱정을 안 하게 될 것이다. 개별 사업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선호’가 몰린 곳에 용적률을 풀어서라도 집을 더 짓게 하고 거기에 사회주택을 짓는 게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는 지속 가능한 해법이 못 된다. 새로운 입지도 매력적인 입지로 만들고, 그러기 위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갖췄다는 장점, 건설만 하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운영도 함께한다는 사회주택 장점을 균형발전 정책 속에 녹여내서 함께 가야 할 것이다.
독자를 대신해서 책의 저자인 내가 어떤 주택에서 사는지 어떤 주택에서 살고 싶은지 민노씨가 대신 물어봐 줬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노코멘트. 집이 있으면 ‘지는 집이 있으면서 남보곤 사회주택 살라고 한다’고 욕먹고, 세입자라면 세입자 입장만 반영한다고 욕먹을 것 같아서(웃음).
앞으로 살고 집은? 음, 적당한 규모의 주택에 서너 팀과 함께 살면 어떨까 싶다. 도시든 농촌이든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출퇴근이 문제긴 한데, 우선 다른 세 팀이 원하는 곳이어야겠지. 옥상정원이 있으면 좋겠고, 다세대 주택 같은 거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원하는 대로 될까 모르겠다.

대량 생산에서 소량 다품종 생산으로
“소량 다품종 생산 체제, 수요자 맞춤형 공금,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도시재생의 문제의식이 부상하며 2013년 도시재생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최경호, ‘어쩌면 사회주택’, 2024.
주택에서도 대규모 대량생산 시스템(포디즘)의 패러다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건 희망에 치우친 관측 아니냐고? 글쎄, 자기실현적 예측이 있고 자기 배반적 예측이 있고 중립적 예측이 있을 텐데, 나로서는 ‘일기예보’와 같은 중립적 차원에서 예측하는 것이긴 하다.
처음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는 논밭에 지은 것이니 한꺼번에 많이 지어도 큰 문제가 안 되었다. 원자잿값 폭등이나 부실 공사가 문제가 되긴 했구나. 어쨌든 대규모 이주민이 발생하진 않았다. 지금은 재건축 재개발의 시대다. 한꺼번에 하면 이주민이 대량으로 발생하는데 이들이 갈 곳이 있는가. 조금씩 돌아가면서 할 수밖에 없다. 수요 측면에서도 그렇다.
1970년대 한창 지을 때는 외벌이 4인 가구가 양적으로도 표준인 사회였다. 지금은 1인 가구가 제일 많고, 맞벌이도 많으며 전체적으로 고령화했다. 그런 상태에서 소위 ‘정상 가족’이나 ‘표준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소품종 대량생산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동시 대규모로 할 수 없다는 건 이제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영역이 생겨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씨앗도 보인다. 시간문제인데, 어느 시점으로 특정할 순 없지만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긴 한다. 주택이 아닌 다른 부문에서는, 가령, 정장 경우에도 맞춤으로 인터넷에서 주문할 수 있는 방식이 기성 명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가능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요자 맞춤형이라고 해서 과거엔 귀족이나 가능했던 고급 맞춤옷, 맞춤 집 제작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기술 발전이나 IT의 발전으로 인터넷에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맞춤 정장이 출현할 것처럼, 주택 분야에서도 그런 성격이 강해질 거라는 말이다.
예시? 책에서 소개한 위스테이나 많은 사회주택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 설계를 통해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공간을 공급하려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꼭 사회주택이 아니더라도 조립식 주택 같은 경우가 하나의 시도이고, 3D프린팅 기술도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모르겠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수요자 맞춤형의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성격이 점점 더 강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도 혜택이 갈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고, 대응하기에 달린 일이라고 본다.
사회주택 생태계: 제로 에너지 주택의 경우
책에서는 제로에너지 주택을 짓는데 들어가는 마중물 역할 할 수 있는 이른바 ‘녹색금융’에 관해 소개했다. 그런데 해당 사례도 공식적 기금에서 쓰였다기보다는 켑코라는 특정 에너지기업의 실험적 투자였고, 장기 상환이 아니라 조기 상환하는 모델이었기에 좀 아쉬움은 남는다.
다만 주택 분야뿐만 아니라 에너지 분야에서도 돈을 가져와서 쓴 모델로서의 의미가 있다. 앞으로는 이런 모델을 확대, 발전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 조성하는 공적인 기금에서 주택 계정 같은 걸로 돈을 배정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제로에너지 주택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비싼 집값인데 제로에너지 주택으로 지으려면 더 비싸진다. 그리고 집값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이를 메꿀 자금 흐름, 즉 절약되는 에너지 요금의 편익은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발생한다. 그러니 손익분기점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주택 분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금융 차원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
이에 대해 주택의 가치를 올려주거나 난방비를 줄여주는 것이니 소유주나 임차인에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전기차의 경우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조금을 주지 않는가. 내연차량의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서 생기는 사회적 편익을 인정한 것이다. 주택도 그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안 그래도 주택이란 게 정보 비대칭의 문제가 큰 재화이다. 등기 제도가 있어도 그렇다. 우리가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도, 000라면 그래도 제대로 지었겠지, 하는 신뢰의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제로 에너지 주택의 경우에는 이게 좀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사든지 임대해야 하는데 정말 그만큼의 성능이 나올까? 이런 경우 공신력을 갖춘 국가나 기관이 마치 냉장고나 에어컨과 같은 가전제품에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주택에도 그런 에너지 등급을 공식화하고 모니터링해주는 제도가 있긴 하다.
이에 더해, “공급자와 운영자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사회주택이나 아예 공급자와 운영자가 일치하는 당사자 협동조합형 사회주택은 이런 정보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유리한 구조”(책 중에서)라는 점도, 사회주택이 가지는 장점 중 하나다. 예컨대 위스테이 협동조합이나 함께주택 협동조합 같은 곳은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 쓰고 있는데, 생산되는 에너지와 절약되는 비용 등에 대한 정보가 공동체 안에서 잘 공유되고 있다면, 새로운 입주자 역시 별다른 의심이나 반감 없이 이러한 시스템에 동참하기 쉬워진다. 물론 이런 신뢰는 기업형 임대사업에서라고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아직까진 사회주택 외에서는 사례를 찾아보지 못했다.

연기금을 사회주택에 투자하자!
국민연기금 순 자산은 1000조 원을 돌파했다. 2023년 결산을 보면 운용수익 126조 원과 보험료 수입 58.4조 원에서 급여 지급액 39조 원을 빼고 145조 원의 자산이 늘어 순자산 1035조 8천억 원 규모의 기금이 되었다. 이 돈은 초기에 목돈이 확보되어 있으며, 조기 회수를 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배당을 받아도 무관한 대표적인 재원이다.
최경호, ‘어쩌면 사회주택’, 2024 중에서
연기금은 당장 많은 돈이 있는데 빨리 상환받기보다는 적정 수익률로 꾸준히 오래 배당을 받아도 되는 돈이다. 주택은 처음엔 돈이 많이 들고, 앞으로 전세 보증금이 줄어들면, 자금 회수는 천천히 된다. 그래서 주택과 연금이 서로 ‘궁합’이 맞는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연기금의 요구수익률을 지켜줘야 한다는 건데..사회주택에서 생기는 수익으로 연기금의 요구 수익률을 충족하지 못할 때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사실 토지만 싸게 공급해 줘도 연기금 요구 수익률 정도는 어느정도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본다만.
이건 주택 입장이 아니라 연금, 즉 노후보장 입장에서도 중요한 이야기다. 지난 세월 인구가 증가할 때는 각자가 생계형 임대를 하는 것으로 노후 생계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구조 속에서 고령사회가 되면 임대인의 비중은 커지고 임차인 비중이 적어진다. 임대인 간 경쟁이 격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이 10채인데, 은퇴자 2명이 총 4채의 주택을 가지고 2명의 세입자를 받던 사회에서는 경제활동인구 8명 중에서 6명은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은퇴자가 4명이 되면? 이들이 개개인이 노오오력한다고 해서 각각 2채, 총 8채의 주택을 가질 수 있을까? 경제활동 인구 6명 중에서도 3명 정도는 자기 집을 가진다면, 은퇴자에게 돌아갈 주택은 총 7채밖에 안 된다.

정당한 노력과 저축을 통해 집을 한 채 더 사서 노후에 대비한다는 생계형 임대라고 해도 4명이 모두 2채씩 가질 순 없고, 누군가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으로 4명이 살아남으려면 주택이 4채 (더) 필요한 건데, 그러나 연금이 가운데에서 역할을 해준다면, 3채의 임대주택에서 나오는 수익을 4명의 은퇴자가 나누어 가지는 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
물론 연기금 수익의 원천이 부동산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계형 임대라 하더라도 각자도생으로 하기보다는 연금을 매개로 함께 노후를 보장받자는 거다.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을 연금으로 짓자. 수익률 차이에 관해 공공이 지원하는 것의 의미를 돌려 말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마치 버스나 택시처럼
“공공주택 체계가 수십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 데다, 자신이 어떤 유형으로 입주 신청 자격이 되는지 알기가 어렵다. 주거복지센터의 상담 직원도 두꺼운 매뉴얼을 옆에 끼고 살아야 할 정도다.”
최경호, ‘어쩌면 사회주택’, 2024 중에서
정치인들은 ‘새 브랜드’로 생색을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자체를 뭐라 할 순 없겠지만, 그런 욕망 때문에 입주 자격이나 조건 같은 게 점점 더 복잡해지고, 이전 정부와는 서로 다른 구조가 덧붙여진다. 반면 외국에서는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의 유형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우리도 공공주택의 유형 통합을 추진하는 목소리가 있고, 국토부도 새로운 공공주택은 통합된 유형으로 지으려 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는 기존의 여러 브랜드를 일거에 바꾸기가 쉽지도 않으니, 결과적으로는 유형을 통합한게 아니라, ‘통합공공임대’라는 유형이 하나 더 생긴 결과가 되어버렸다(….).
당장 기존의 모든 유형을 통합하기 어렵다면 현 입주자가 퇴거한 이후의 신규입주자에게부터 적용하든지 해서, 어쨌든 앞으로는 단일한 임대료 체계와 거주기간 조건으로 통합하도록 하고, 각자의 형편에 따른 부담 능력의 차이는 임대료를 그때그때 소득에 맞춰서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주거 보조비 예산을 통해 메꿔주고, 사회주택도 이 체계 속으로 편입될 수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네덜란드나 프랑스 등 외국에서는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임대료 체계를 적용받는 다양한 공급자들의 생태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편이 좀 어려운 사람은 주거보조비를 받지만, 같은 집에는 같은 임대료를 낸다. 이렇게 해야 공급자들도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가 있다. 입주자가 바뀔 때마다 임대료 체계를 달리 적용해야 한다면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는 걸 공급자도 꺼릴 수밖에 없다. 공급자가 LH 하나라면 그 안에서 어찌어찌 손해를 벌충하라 할 수도 있겠지만, 공급자가 SH, GH, 사회적 기업 등으로 다양하다면? 그러면 서로 형편 좋은 세입자만 받고 싶어 할 것 아닌가.
무슨 이야기인지 잘 상상이 안 된다면, 한국의 택시나 버스를 생각하면 쉽다. 택시의 요금체계는 일반이냐 모범이냐에 따라 다르긴 해도, 같은 일반 택시라면 공급자가 A 회사든 B 회사든 개인택시든 동일한 요금 체계를 따른다.

끝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1순위. 절실한 건 은행의 대출 담당자. 사회주택 사업자나 입주자를 생각하면…
2순위. 정책 입안자들. 정치인과 관료.
3순위. 사회주택에 관한 정보가 필요한 (예비) 임차인. 집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
하지만 현실에서 읽는 순위는 이 순서의 반대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