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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인터뷰 29.] 가장 가난하게 오랫동안 일하며 결국 자살하는 한국 노인.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말하는 노동과 인간. (11분)

우리나라 노인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오래 일하며, 결국은 가장 많이 자살한다. 한국은 이 세 분야에서 압도적인 OECD 1위 국가다.

  1. 노인 빈곤율: 2020년 기준 40.5%로 1위. OECD 평균은 14.2%다.
  2. 고령 고용률: 65세 이상 경제 활동 참가율 2022년 기준 37.3%로 1위. 지난달 경제 활동 참가율은 40%를 돌파했다. 참고로 아이슬란드(32.6%), 일본(25.6%), 뉴질랜드(25.2%).
  3. 노인 자살률: 48.6명이다. 전체 자살률(26.6명)의 1.5배 정도(중앙자살예방센터, 2020)다. OECD 평균(18.4명)보다는 3배 정도 높다. 2020년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339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보건복지부 자살예방백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유명한 라틴어 문구. 하지만 하나 더 기억할 게 있다. 그 죽음 앞에 늙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이상헌 박사에게 가장 가난하고, 가장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하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가장 많은 한국 노인에 관해 물었다.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29]

질문 정리: 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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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년 9월 22일(토)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맥락화하거나 소제목으로 표시하고,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1. 가난하니까 무슨 일이든 한다


빈곤율이 높으면 취업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그 둘은 인과관계다. 국제 비교적 관점으로 봐도 경제 활동 참가율이 높은 건 빈곤율과 관련이 있다.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 노인은 가난하다.

유럽에서도 연금 개혁은 화두다.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연금 개혁법의 수급연령 상향(62세→64세)에 관해서는 합헌을,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고령자 지수(Index senior)와 고령자 고용 영구계약 등 6개 조항에 관해선 위헌 결정했다(2023.04.14). 이로 인한 사회적 진통도 심했다. 반면, 독일·스웨덴은 정년을 현재 66세에서 67세로 연장하고 연금 수급 연령도 현재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는 개혁을, 프랑스와는 다르게, 안정적으로 연착륙시켰다.

이런 국가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정년 이후의 삶은 우리와는 정말 다르다. 유럽에서 정년퇴직한 사람은 일하지 않는다. 변호사와 전문직이나 개인사업자와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정년 이후에는 정말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년 이후는 말 그대로 ‘인생의 2막’이 열리는 순간이다. 그게 유럽의 정년이고, 퇴직이다. 그래서 65세 이상 경제 활동 참가율에서 한국과 유럽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유럽에서 65세 이후 고용률은 아예 절벽이다.

한편으로 한국의 고용 수치가 계속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건 노인 고용률이 전체 고용률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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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정년퇴직을 하고도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아 실현? 대부분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한다

일은 다층적이다. 경제적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자아를 실현하는 목적으로서의 성격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노인 경제 참가율이 높은 건 존재론적 동기가 아니라 단순하게 경제적인 동기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 보람을 위한 일이 아니고, 자아 성취를 위한 일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다.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년에도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 그저 사회적 자아를 충족하기 위해 공적 공헌 등을 목적으로 일하면 좋겠지만, 한국에서 노인이 일한다는 건 그런 낭만적이고 한가로운 게 아니다. 대부분 먹고살기 위한 일이다. 그게 문제다. 소득 제약으로 인해 경제 참가율이 높아진다. 연금에만 의존해서 살 수 없는 사람도 많고, 경제적으로 한계 상황에 몰린 취약 계층도 두텁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만약 한국에서 노인 고용률을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한다면, 노인 빈곤율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나라는 좀 독특한 나라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노인 경제 참여에 관심이 높고, 지원도 좀 하는 편인데, 이런 나라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앞서 프랑스의 연금 개혁에서 본 것처럼, 수급 연령을 제외하고는 노인 정책은 모두 위헌 결정을 받았다. 노인 정책에 적극적인 나라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정도다. 공통점은? 일을 정말 많이 하는 나라들이다.

일본과 우리를 비교하면 어떨까. 일본에서도 고령 노동하는 노인이 많지만, 경제 능력에서 한국 노인과 평균적 차이가 크다. 빈곤율 차이도 상당하다. 일본도 노인이 일을 많이 하지만, 그리고 그 수치는 계속 올라갈 것 같지만, 한국 사정과는 좀 다르다.

일본도 노인이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와는 그 조건이나 상황이 다르다.
초고령 진행 중인데도 노인 고용률 높은 이유

65세 이상이라면 100세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90대 노인이 일할 수 있을까. 어렵다. 그런데도 어떻게 초고령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노인 경제 참가율은 떨어지지 않을까. 초고령으로 노동할 수 없는 연령대가 많아지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노인 경제 참가율이 높아지는 건 새롭게 유입되는 65세 이상 인력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그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 일자리 질 문제


질 나쁜 일자리는 이제 노인의 몫

문제는 어차피 일하는 노인이 는다면, 그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구조적으로 어렵다. 빈곤층 노인은 궁박하다. 협상력이 없는 수준이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나 사업주는 그런 노인의 다급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용한다. 그래서 아무 일이나 해야 한다. 일을 가리고 고르고 할 여유가 없다.

질 나쁜 일자리는 지금까지 경력 단절 여성, 청년의 몫이었는데, 점점 더 노인층이 떠맡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게 어찌 되었든 간에 일해야 하는 노인들 덕분에 아이러니하지만 한국의 실업률은 2%대다. 노동 가능 인구가 줄기 시작했음에도 노인 인구는 그것을 상쇄할 만큼 늘었다.

한편, 최근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높지 않다. 통상적으로는 경제성장률과 엇비슷해야 하는데, 작년(2023)에는 실질임금 상승률이 마이너스다.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물론 물가 상승이라는 거시적 요인도 있지만, 노동시장 요인도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그리고 최근에는 그 큰 이유 중 하나가 노인이다.

노인은 별로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노인 모두 협상력이 낮다. 대기업 노조라면 협상력을 발휘해서 임금을 높여가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겠지만, 나머지는 그 반대다. 현재 노동시장의 구조나 그 힘의 역학으로 보면 노인 일자리의 질은 지금보다 더 좋아지기는 힘들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노인의 비자발적인 노동시장 참가가 계속될 것이라서 일자리 질이 시장 경제의 수요 공급 메커니즘에 의해 향상하기는 어렵다.

40-40(노인 빈곤율-노인 고용률)의 시대, 정책적 개입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정책적 개입이 필요할까? 이건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아직은 논의가 없는 편인 건 노인 일자리는 정책의 최우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 참여는, 대부분 나라에서,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한국 노인의 경제 참가율이 40%를 돌파했다. 빈곤율도 40%대다. 이 정도 수치라면 정책의 핵심 화두로 다뤄야 한다. 이미 늦었다. 30%대에서부터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고민해야 했는데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물론 경제적인 사이클은 청년기의 ‘트리’를 잘 타면, 그러니까 청년기에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청년 일자리의 질을 높아지면, 그 이후로 장년기와 노년기까지 청년기의 ‘성공 트리’가 잘 이어져 내려온다. 그래서 정부도 청년기 일자리에 더 투자하고 신경을 쓰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청년기 질 좋은 일자리에 투자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투자하되 이제 정말 노인 일자리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인 일자리를 어떻게 전체적으로 구성할지, 그리고 언제까지 일할 수는 것으로 설계할지 등에 관해 종합적 청사진이 필요하다.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시스템이 취약하고, 연금 시스템도 취약하니까 노인 일자리가 부각하는 측면이 있는데, 복지 시스템이나 연금 문제를 포함해 통합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다.

가령 요즘 연금 개혁 논의가 활발한데, 연금 건전성을 논의하는 평면에서 노인의 경제 참가율이 40%를 넘는다는 건, 그런 경제 활동 인구를 연금 논의에 당연히 포섭해 논의해야 마땅하다. 즉, 예전에는 배제했던 노인 경제 활동 인구를 연금 논의의 테두리 안으로 포함해서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노동시장의 맥락을 돌아보고 패러다임 쉬프트를 모색해야 한다.

3. 외로우니까 노인이다


끈 떨어진 노인들

한국에서 일하는 남자가 퇴직하면, 일자리에서 벗어나면, 그들 대다수가 사회와 연계한 끈이 증발한다. 그냥 사라진다. 굉장히 다수가 그렇다. 그렇게 ‘끈’이 떨어지면, 어떻게 다시 사회에 연결해야 하는지 아이디어가 없다.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이유 중에는 계속 일해야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대단한 인간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딘가. 좀 슬픈 이야기지만,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이 ‘일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에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지만, 사회적인 관계가 우리보다는 훨씬 더 다양하고 활발하다.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회적 연결망이 적고, 그래서 일을 향한 집착이 더 강한 측면이 있다. 통계를 해석할 때, 일 자체가 좋은 게 아니라 일하지 않는 상황이 더 나쁘기 때문에 일하는 그런 측면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이라도 하면 그나마 덜 나쁜 거지, 일을 해서 좋은 경우는 오히려 더 소수라고 봐야 한다.

결핍, 소외, 고립

그래서 노인의 정서적 고립과 소외도 정책적 고민거리다. 이건 법적 문제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노인이 직장 바깥에서 참여할 사회적 공동체, 그 틀을 만들어야 한다. 직장을 벗어나서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정책적 대상이지만, 사회적 변화도 필요하다. 앞서 말했지만, 이 문제는 남자가 더 심하다. 나이를 먹으면 여성은 복지원이나 노인정이나 센터 같은 곳에서 곧잘 친구를 사귀고, 뭔가를 잘 배운다. 그렇게 여성 노인은 남성 노인보다는 사회적인 활동 지수가 높은 편인데, 남자는 그런 걸 잘 못한다. 정책적으로 접근할 때 이런 차이들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큰 센터 공간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다. 정책적 비전과 그 비전을 지탱할 다양하고 디테일한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이 필요하다.

노인 자살, 보이지도 않는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도 사회도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자살은 고립된 개인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고립이 핵심 요소다. 그래서 바깥에 있는 사람은 잘 모른다. 워낙 많은 노인이 홀로 고립돼 있어서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 눈에 잘 안 들어온다. 그런 탓에 그저 통계적 수치로서 한국 노인 자살률이 높다고 해도 그 ‘통계 속 숫자’를 사회적 공감 대상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청년 실업은 청년이 우리 눈에 보이니까, 집안에서 보이고, 피시방에서 보이니까, 그 청년들의 한숨이 느껴지니까 사회적인 문제로 느끼는데, 노인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4. 뒷방 늙은이에서 시민으로


노인을 격식적으로 대하는 건 한국이 참 좋다. 좀 나쁘게(?) 이야기하면 의례적인 프로토콜은 잘 돼 있다. 다른 나라는 노인을 위한 의례적이고 형식적 예절이나 풍습 같은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노인을 위한 사회다. 가령 서구의 개인주의를 우리는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유럽이든 미국이든 노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 행사는 아주 평범한 풍경이다. 그건 가난하든 부자든 마찬가지다. 휴가도 함께 가고, 연락도 우리보다는 훨씬 더 자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이 실질적으로 노인을 위한 사회인지는 좀 의문이다. 다른 나라, 유럽이든 미국이든 남미든 한국보다는 훨씬 더 노인을 ‘가족의 일원’으로서 여기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형식적 프로토콜은 강하지만, 실질적인 관계성은 약한 나라 같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한국은 실질적으로 노인을 존중하거나 공경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왜 가장 중요한 경제 영역에서는 노인을 홀대하고 존중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건 모순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그런 사회가 아니니까. 농경사회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와 시스템은 형태만 남았지 실질은 이미 그때 사라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다른 나라도 노인을 위한 특별대우는 없다. 하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한 유대는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 노인은 ‘어른’으로 존경받고 추앙받지는 않지만, 그 가족의 일원으로 역할하고 함께한다. 우리나라는 노인을 형식적으로, 의례적으로는 공경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저 ‘뒷방 늙은이’로 소외시킨다.

스스로 돕는 자, 시민으로서의 노인

외국의 좋은 사례는 우리에게는 큰 의미는 없다. 우리 시스템이 다르고, 우리가 걸어온 경로가 다르다. 그러니 우리 안에서 우리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지만, 4050에서 노인을 화두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통계나 숫자 이외에 많은 문제가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내재한 문제다. 4050이 2030에게 뭔가 해줄 수는 있다. 그런데 7080에 ‘이런 게 필요하지 않으세요?’라고 제안해 봤자, 그런 보조금이나 일자리 몇 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인을 소득의 지원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계속 강조했지만, 그 이면에서 개인적 고립을 일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현재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 노인이라는 시민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세대가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노인 스스로 고민하고 논의하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문제로 생각한다.

사실 내심 그런 고민이 집단적으로 출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직은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노인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다.
태극기 부대?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형태다(웃음). 정치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참여하는 분들은 꽤 보람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만족감과 효능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 정치권의 높은 양반들도 한 번씩 이야기해 주고, 동네 복지회관 가는 것보다는 좋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시민적 관점에서는 보람 있고, 효과 측면에선 효능감이 있으며, 비용편익 분석하면 용돈도 생기고, 친구들도 생기고…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고 본인 스스로는 느낄 수도 있을 걸로 생각한다. 물론 굉장히 다양한 부작용이나 폐해들을 무시할 수 있다면….

박사모 탄핵 반대 집회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양자택일에서 벗어나자

A. 노인을 도와줘야 한다는 강박감. 그런 사회적인 피로감이 첫 번째.
B. 노인의 정치적 보수화.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늙은 꼰대’에 대한 혐오감이 두 번째.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극틀은 위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노인은 이미 주변적 인구층이 아니다. 그 자체로 주요 인구집단으로 떠올랐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야 하는 사회적 주체다. 핵심 사회층이다.

시니어 시티즌의 목소리

결국 노인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걸 개선하려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사회적인 문제로 의제로 제안하고 그 해법도 스스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 노인도 활동적인 분들이 많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나이 든 분들 스스로 자신을 사회적으로 조직화하는 노력과 역량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좀 더 나아가서 생각하면, 좀 아쉬운 측면인데, 노인층이 늘어난 만큼, 노인이 참여하는 시민단체가 별로 안 보인다. 시민으로서의 목소리, 시니어 시티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슨 정치적으로 세력화를 꾀하라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자기 문제를 스스로 제안하고 확산할 필요성을 말하고 싶다. ‘노인당’ 만들어서 표를 모으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다른 가능성을 최대한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일단은 직접적인 정치 세력화보다는 다른 가능성을 최대한 우선 시도하면 좋겠다.

스스로 각성해야 할 때

이제는 노인 스스로 퇴직한다고 해서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는 자조적 컨셉을 버려야 한다. 직장에서는 떠나더라도 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이상적인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아무도 그 방향이 어디인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노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이제 버려야 할 때다. 노인은 4050만큼 중요한 세대다. 정치권도 노인을 그저 손쉬운 정치적 득표 대상으로 보는 태도를 버리기 바란다. 무엇보다 노인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스스로 각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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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노년층이 은퇴하고 소규모 네트워크로 작게나마 봉사하는걸 누가 안좋게 보겠습니까
    국가가 경제규모와 여러모로 발전한게 그 시대의 어른들이 헌신한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그걸 무슨 본인이 다 이뤄 놓은것 마냥 대우를 넘어 권력으로서 행사하려 드니 볼품이 없는거죠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따라 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위에 보듯 태극기 부대니 어버이 연합이니
    젊은사람 발목 잡는일만 반복하고 과거 향수에 젖어 분리되는 일만 반복하는 노년층을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 볼까요 ?

  2. 노인빈곤에 대한 정책필요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공감하지요. 하지만 그렇다더라.랑 바꿔야해, 전환해야해는 완전히 다른 결이죠. 곧 (물론 15년정도 남긴 했지만…)노인이 되고 ‘빈곤노년’이 예상되는 저로서는 지금부터 관심가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고민하면 무얼하겠습니까. 하지만 한국사회는 빈곤은 ‘개인책임’으로 귀결되고 마는 분위기때문에 아무 논의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라 여깁니다. 당사자들이 나서주어야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시작되겠지만…어찌, 쉽겠습니까? 오히려 40~50이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정책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은 ‘참여’가 될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니, 한풀이처럼 “우리도 힘이 있다”를 보여주는 무대에 등장하는 노인들이 크게 보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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