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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민트] 뉴스페퍼민트 이효석 대표가 추천하는 좋은 책에 관한 이야기. 두 번째 책은 다윈의 ‘성선택’ 이론의 복권을 시도한 ‘아름다움의 진화'(리처드 프럼, 2017).


슬로우민트
02. 아름다움의 진화

질서에서 혼돈으로, 우열에서 우연으로:
별의별 아름다움에 관하여

안내 및 알림.

인터뷰이와의 협의 아래 다소 방대한 분량에도 하나의 글로 묶어 발행합니다. 독자는 아래 목차 링크를 활용해 좀 더 관심있는 주제를 선택해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23년 7월 22일 최초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완된 답변을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민노: [아름다움의 진화]는 자연선택과 성선택 중 후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효석: 네, 그런데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구별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할 것이 있는데요. 사실 이 두 개념을 구별하는 방식에 이미 이 책의 핵심 주장과 또 이 책을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민노: 아, 그렇군요. 찬찬히 말씀해주시죠.

리차드 프럼(Richard O. Prum)과 그의 열열한 독자 애나벨. 2017년 8월 21일. 2017 버드페어. 영국 러트랜드. 리차드 프럼 페이스북.

자연선택은 적응적 진화 vs. 성선택은 미적 진화


이효석: 프럼이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구별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앞의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선택은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형질, 곧 더 뛰어난 개체가 살아남는 문제에 관한 것인 반면 성선택은 환경에의 적응과는 무관한, 오히려 공작의 꼬리처럼 살아남는 문제에 있어서는 심지어 불리할 수 있고 단지 암컷이 가진 무작위적인 취향에 의해 형질이 결정되는 것으로 구별하는데요.

이런 구별 아래 프럼은 생명체가 보이는 수많은 특징이 자연선택에 의한 것보다 성선택에 의한 것이 더 일반적이라고 주장하고요. 반면, 프럼을 비판하는 이들은 오늘날 자연선택에 관한 정의 자체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선택되는, 곧 늘어나는 것이고 성선택은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늘어나는 것이므로 성선택은 자연선택의 하위 집합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관해 프럼은 책에서 애초에 다윈의 성선택(여성의 변덕)을 거부하고 자연선택(능력이 뛰어난 개체가 번성한다)만을 지지하던 이들이 성선택까지 자연선택에 포함되도록 자연선택에 관한 정의를 슬그머니 바꾸었다고 지적하고 있고요. 여러 진화학자들의 프럼에 대한 비판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학계가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버려진 성선택을 다시 살리겠다는 프럼의 주장이 완전히 뜬금없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이들은 자연선택을 말할 때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곧 더 우수한 형질과 개체가 살아남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생존과 번식의 관점에서 보면, 프럼은 생존에 유리함을 자연선택, 번식에 유리함을 성선택으로 구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요.

그리고 현대 진화론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늘어나는 것이 자연선택에 모두 포함되고 있고요. 다시 프럼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라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형질이 번식에 유리한 이유를 그 형질이 생존에 유리하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개체군 내에서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형질이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형질이고 그런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프럼은 그런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자연선택을 적응적 진화, 성선택을 미적 진화라고 구분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노: 그렇죠, 책에선 미적 진화를 ‘미적 리모델링’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죠.

이효석: 프럼은 이렇게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경합(경쟁)시키는 관점에서 보고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성선택이 더 강하다, 곧 생명체의 특성을 이해하려 할 때 성선택이 더 좋은 설명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성선택을 영가설(귀무가설, 뒤에 다시 설명. 편집자)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설득력이 꽤 있다고 생각하고요. 프럼의 말에 따르면 지난 150년 동안은 자연선택이 핵심일 뿐만 아니라 자연선택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고, 성선택도 여러 자연선택 중 하나로만 취급했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프럼과 그의 책 ‘아름다움의 진화’ (2017). 펭귄랜덤하우스 제공.

자연선택, 유전적으로 집단 내 비중이 높아지는 것


민노: 우선 자연선택의 의미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이효석: 네, 프럼의 관점에서 자연선택은 주어진 환경에서 더 잘 살아남는 형질을 가진 개체가 대를 거듭하면서 늘어나는 것인데요. 유전자로 말하면 집단 내에서 그 비율이 높아진다고 표현하기도 하고요.

민노: 그렇다면 이 책은 그런 자연선택만 있는 게 아니라 ‘성선택’이 진화에서 아주 중요한다는 거잖아요.

이효석: 그렇죠. 자연선택만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세상에는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고, 그런 성질이 상당히 임의적으로 생겨난다는 거죠. 그게 이 책의 주장입니다.

자연선택: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을 보장하는 형질에 대한 선택. (→ 필연적/논리적. 편집자)
성선택: 짝짓기와 수정의 차별화된 성공을 초래하는 형질에 대한 선택. → (우연적/비논리적. 편집자)

(중략)

진화생물학이 진정한 다윈적 견해를 받아들이려면, 다윈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각각 독립적인 진화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적응적 배우자 선택은 성선택과 자연선택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는 이 책에서 ‘성선택과 자연선택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리처드 프럼, 양병찬 옮김, [아름다움의 진화], 1.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 동아시아: 2019.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년 2월 12일 ~ 1882년 4월 19일)과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1871)

피셔의 폭주이론


민노: 책에서 다윈의 성선택에 관한 논쟁의 프레임을 영구적으로 바꿔놓은 것으로까지 프럼이 평가하는 피셔의 폭주이론(Fisherian runaway)에 관해 우선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프럼은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이후 100년의 암흑기에서 성선택 이론의 확립에 유일하게 기여한 사람이 유일하게 피셔라고까지 말하고 있는데요.

이효석: 폭주(run away)란 말 그대로 한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것인데요. 어떤 특성이 시스템 안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발산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과도 비슷해 보이네요. 사실 생명체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항상성을 가져야 하고, 또 환경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과의 균형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성질을 가지기 힘들어야 하는데요. 특이하게도 성선택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것도 생존과 무관한, 아니 오히려 불리한 방향이라도 말이죠.

가상의 예로 사람의 어떤 부위를 들어보죠. 예를 들어 손가락 길이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 긴 것과 잘 살아남는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한 여성이 ‘최초로’ 손가락이 긴 남자를 ‘그냥’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보죠. 아무런 이유 없이요. 그러면서 주변에 손가락이 긴 사람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일종의 문화적 압력이 만들어질 정도로요.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그런 현상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그 문화권 안에서 손가락이 긴 사람이 인기가 생겼어요. 그러면 이제 그 문화권 여자들이 손가락이 긴 남자를 좋아해야 할 이유가 생긴 거예요.

민노: 어떤 이유죠?

이효석: 내가 손가락이 긴 사람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그 애가 손가락이 길고, 그래야 그 애가 다른 여자의 마음에 들 것이고, 그럼 더 번식에 유리해지겠죠. 그렇게 점점 더 계속 많은 사람이 손가락이 긴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 문화권 사람들의 손가락이 계속 길어지는 거예요, 끝없이. 얼마나 끝없이냐면 손가락이 너무 길어져서 손을 잘 못쓰게 되어 생존을 전혀 못할 정도까지도 갈 수 있는 거죠. 책에서는 이를 “진화적 데카당스(퇴폐)”라고 표현했고요. 그게 피셔의 ‘폭주이론’, 러너웨이 이론이예요. 무한대로 달려나간다는 거죠. 사슴의 비정상적으로 큰 뿔이나 공작의 꼬리가 피셔의 폭주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고요.

민노: 네. 피셔의 폭주이론이라면 공작 꼬리나 사슴의 뿔을 설명할 수 있겠네요.

사슴 뿔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사슴은 그 뿔을 진화시켰을까.
안더스 힐에 따르면 “거의 혼자 힘으로 현대 통계학의 기초를 세운 천재” 로널드 피셔 경(Sir Ronald Aylmer Fisher, FRS, 1890~1962). 왼쪽은 젊은 시절 피셔(1913), 오른쪽은 아들과 함께 있는 피셔. 그는 우생학, 유전학 교수기도 했다.

자하비의 핸드캡 이론


민노: 책에서 저자는 피셔의 폭주이론에 관해서는 대단히 평가하면서도, 자하비의 ‘핸디캡 이론’에 관해서는 혹평을 넘어 조롱에 가까운 느낌으로 비판하는데요.

이효석: 제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한 이유 중에는 자하비의 핸디캡 이론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민노: 핸디캡 이론이 좀 이상하긴 하죠…

이효석: 핸디캡 이론은 공작 암컷이 수컷을 보면서 생존에 불리한 장식 깃털이 저렇게 큰 데도 잘 살아있는 걸 보니까 진짜 생활력이 강하다고 생각해서 장식 깃털이 큰 수컷을 좋아한다는 건데요. 얼핏 들으면 그럴듯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많이 이상하거든요.

민노: 그렇다면 자하비의 핸드캡 이론은 오늘날 완전히 극복됐다고 말할 수 있나요? 여전히 ‘공작 꼬리’와 ‘진화’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자하비의 핸드캡 이론을 마치 정설처럼 이야기하는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모츠 자하비. Amotz Zahavi, 1928~2017. 위키미디어 공용.

이효석: 네, 저도 좀 찾아 보았는데, 핸디캡 이론이 나온건 70년대이고 90년대에 수학적 모델로 뒷받침이 되었고요. 하지만 2020년에 그 모델도 핸디캡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문이 또 나왔더라고요. 핸디캡 이론은 크게 보면 개체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성적 신호에 관한 이론이고요.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표지(indicator) 혹은 대리신호(proxy)와 관련한 여러가지 가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능력과 그 능력을 전달하는 신호 사이의 비용 등을 고려해서 일종의 모델링을 통해 이론을 만들고, 실제 사례에서 해당 변수와 현상이 이론을 따르는지를 보는 등의 방법으로 검증될 수 있고요. 하지만 핸디캡 이론은 상식적인 관점에서도 일종의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좋은 이론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만약 공작 꼬리가 작았다면 애초에 사람들은 공작 꼬리가 커질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고, 꼬리가 작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 때도 꼬리가 작은 개체가 비행에도 유리하고 포식자에게도 잘 들키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다고 설명하겠지요.

즉, 꼬리가 커지든 작아지든 다 설명이 가능한 이런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죠. 물론 이론들 중에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예측력이 약한 이론들도 있고, 그 안에서 다시 어떤 가정이 있고 변수가 자연현상과 잘 맞으면 다시 받아들여지고 그런 경우도 있긴 합니다.

질서에서 혼돈으로, 우열에서 우연으로


이효석: 물론 폭주이론도 그런 면이 있죠. 폭주이론은 공작의 꼬리가 커질건지 작아질건지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폭주이론은 그 자체로 처음 시작이 우연이니까요. 아까 사람의 예에서 최초의 여성이 ‘우연히’ 손가락이 긴 남성을 좋아한 거고요. 반대로 그냥 어느 날 어떤 영향력 있는 여자가 우연히 손가락이 두툼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게 그 문화 속에서 어떤 주류가 되어 모두 그런 선호를 가지게 되었다면 똑같은 일이 일어나겠죠.

왜냐하면 그 여자가 ‘손가락이 두툼한 남자가 최고야’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면, 주위의 여자들이 내가 손가락이 두툼한 남자랑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우리 애가 손가락이 두툼해 져서 우리 애가 더 여자들한테 인기를 끌 거니까 ‘나는 손가락이 두툼한 남자를 좋아하겠다’ 이 방향으로 계속 간다는 건데, 물론 동물 사회에서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서 선호를 취하는 것은 아니고요.

동물 사회에서는 문화적 압력이 아니라 그런 선호를 가진 개체가 다른 선호를 가진 개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연히 조금 더 많아 졌을때 그 방향으로 계속, 형질의 변화와 선호의 변화가 같은 방향으로 선택되면서 대를 거쳐 점점 한 쪽 방향으로 가겠고요. 그렇게 손가락이 계속 두툼해져서 어느 정도까지 가느냐? 생존이 어려울 정도까지 계속 간다는 거죠.

민노: 그 부분을 책에서는 ‘진화적 데카당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효석: 그래서 결국 그게 뭐냐면,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시점이죠. 이런 관점에서 성선택과 자연선택을 생각해보면, 자연선택은 방향이 있어요. 방향이라는 게 어떤 의미냐면,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생존 조건을 만들어 내는 거죠. 손가락 크기도 우리가 긴 손가락을 만들어 내려면 많은 자원이 필요할 거고, 골격이나 근육에도 부담이 갈 수 있고 등등 아무래도 문제가 있을 거고요. 손의 기능에 딱 맞는 최적의 크기가 있겠죠.

그런데 성선택은 그런 부분은 신경을 쓰지 않죠. 성선택은 아무 방향으로나 다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어요. 눈도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고, 그런데 그게 어느 한 방향으로 그냥 우연히 생겨버리면 그냥 그 방향으로 죽 가는 거예요. 그러나 너무 그렇게 가지 않도록(‘진화적 데카당스’에 빠지지 않도록) 자연선택이 제어를 하면서 힘이 균형을 이루는 거고요.

민노: 성선택의 폭주를 자연선택이 제어한다?

이효석: 결국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이런 것이고요. 곧,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게 실은 신의 질서를 자연의 혼돈으로 끌어내린 거거든요.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이었고, 동물은 처음부터 동물이었고, 세상은 세상이었고, 그렇게 질서, 신의 질서가 있었죠. 인간의 눈은 왜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인간의 손발을 비롯해 세상 모든 것이 다 신의 형체를 따라 이상적인 황금비율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다윈은 그런 신의 질서를 자연의 혼돈으로 끌어내렸죠. 그러니까 자연에서 그냥 알아서, 저절로 그냥 다 생겨난 것이고, 각 개체의 생존에 알맞은 방식으로 선택된 것이고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거죠. 그게 다윈의 진화론, 자연선택이란 말이죠.

그러면 성선택, 미적 진화라는 건 뭐냐. 그럼에도 자연선택이라는 건 아까 말한 것처럼 적어도 주어진 환경에서는 우열이 있는 거예요. 제일 잘 살아남는 형질, 여기서 ‘제일 잘’이라는 말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더 좋은 유전자랑 나쁜 유전자가 있다는 얘기잖아요.

민노: 그렇죠.

이효석: 가령, 달리기 잘하는 유전자가 달리기 못하는 유전자보다는 낫겠죠. 달리기 잘하는 유전자가에 다른 단점이 있지 않는 한 말이죠. 즉, 적어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것은 있는데 따라서 다윈이 진화론으로 신의 질서를 자연의 혼돈으로 끌어냈지만 그럼에도 자연선택에는 아직 어떤 질서가 남아 있다는 말이죠. 방향이 있고요. 하지만 성선택은 그것도 없죠.

민노: 책에서는 ‘우연’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데요.

이효석: 그렇죠. 저는 그래서 ‘우열에서 우연으로’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자연의 질서(자연선택)에서 더 큰 혼돈(성선택)으로. 결국 프럼은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1871)이 세상이 나온지 150년 동안 학자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거고요. 물론 거기에 대해 기존의 진화학자들이 동의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고요.

성선택 공격의 선봉에 서는 생물학자 조지 마이바트 경 (St. George Jackson Mivart. 1827-1900)
‘자연선택 이론 공동 발견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OM, FRS, 1823-1913). 다윈을 존경했지만, 다윈의 ‘성선택’ 에 대해서는 마이바트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다윈 공격 선봉에 섰다.

자연주의의 오류에 관한 경계


민노: 제가 까먹을까 봐 질문 하나만 먼저 드릴게요. 이 책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암컷의 성선택이 수컷의 협력과 사회적 질서를 가져온다고 서술하고 있는데요. 그건 우연이라기보다는 계획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말씀하신 표현을 빌리면, 우열에서 우연으로라고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페미니즘 캠페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효석: 좀 과하죠. 저도 그 부분은 좀 심하다고 보고요. 이 책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그 점 역시 이구동성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장(‘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에 보면 성선택 이론을 선택해야만 우생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서술하죠.

미적 진화 이론(다윈의 ‘성선택’을 지칭. 편집자)을 진화생물학에 다시 받아들이면, 진화생물학의 우생학적 잔재에 담긴 지적 오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별의별 아름다움’ 영가설을 채택하면, 비적응적(또는 부적응적) 결과에 대한 기대(2장 참고)를 공식화함으로써 우생학적 사고의 논리적 불가피성을 깨부술 수 있다. 그 결과 탄생한 진정한 다윈주의 진화론은, 모든 이들에게 모든 동물(인간 포함)의 적응적 배우자선택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적응적 배우자산택에 요구되는 증거의 부담은 적절히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진화생물학을 발전시킬 것이며, 세상도 진보할 것이다.

리처드 프럼, 양병찬 옮김, [아름다움의 진화], 12.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 동아시아: 2019.

민노: 네, 그런 서술이 다소 공격적이고 정치적 수사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이효석: 이 부분 논리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거에요. 왜냐면 우리가 어떤 이론을 선택하느냐는 어떤 이론이 현상을 더 잘 설명하느냐, 어떤 이론이 예측을 더 잘하느냐,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과 일관성을 가지느냐 등의 기준으로 가야지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이론을 택해야 한다고 말하면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그래서 그 부분이 많은 공격을 받았고요.

과학이 특정 사회 캠페인의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민노: 아주 공감합니다.

이효석: 그리고 또 하나. 프럼이 말하듯 자연이 이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옳다고 말하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그건 자연주의의 오류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고요. 사실 자연의 동물들 중에는 페미니즘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동물들도 많이 있죠. 수컷 한 마리가 수많은 암컷을 데리고 하렘을 유지하는 동물들도 많고요. 하지만 우리는 이성을 가진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는 종으로써 자연과 무관하게 성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옹호하는 것이지, 자연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래야 한다, 이런 게 자연주의의 오류입니다.

물론 책에 나오는, 마나킨새의 경우 암컷의 선택이 수컷의 질서를 유도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예고요. 예를 들어, 암컷 마나킨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자 관계에 있는 수컷 마나킨들이 서로 경쟁자지만 또 각자의 공연을 위해 서로 협력하잖아요. 그런 관찰은 하나의 예로써 설득력이 있다습니다.

마나킨새 중에서 많은 종의 수컷들은 단순한 ‘평화공존’의 수준을 훨씬 넌어서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그들은 두 마리 이상이 모여 매우 정교하고 조직화된 과시행동에 참여하는데, 행동이 완벽하게 조율되려면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과시행동의 구체적 내용은 종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조직화된 협동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여러 종에 걸쳐서 나타나는, 수컷 마나킨새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리처드 프럼, 양병찬 옮김, [아름다움의 진화], 7. 로맨스 이전의 브로맨스, 동아시아: 2019.
긴꼬리 마나킨새. 위키미디어 공용.

프럼에 대한 비판


민노: 제가 여기서 궁금했던 게 몇몇 조류의 사례들을 통해 가설을 세울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몇 가지 사례들을 가지고 너무 보편적이고 과격한 주장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다른 가설들이 프럼의 가설을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이효석: 그렇습니다. 그 부분도 다른 학자들의 비판에 있고요. 크게 보면 위에서 말한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관계이고, 다시 성선택 내의 가설들에 대한 것인데, 프럼은 폭주이론을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설들이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의 블로그에 이 책에 대한 비판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폭주이론 외에도 잘 정립된 가설들인 “좋은 유전자(good genes)”, “직접적 이익(direct benefits)”, “수컷간 경쟁(male-male competition)”, “감각착취(sensory exploitation)”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연이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되지도 않을 것이고요. 프럼 주장의 가치는, 자신이 새를 관찰한 결과 폭주이론이 우연에 의해 ‘별의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며 그게 이 자연을 광범위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민노: 아, 네. 말씀을 들으니 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에 대해 비판적인 서평을 남긴 제리 코인. 제리 코인 블로그 캡처 갈무리.

별의별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다양성과 민주성


이효석: 그리고 사실 저는 이 책에서 제일 감동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큰 문제 중의 하나인 저출산과 성갈등에 한 가지 희망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성갈등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미디어와 사회 환경의 영향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한 마을 안에서 우리가 서로 짝을 찾았으니 또래들의 수가 몇 명 안 되었을 거에요.

민노: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았죠.

이효석: 그렇죠. 그러니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상대를 평가하는 눈도 낮을 수밖에 없었을 거고요.

민노: 저는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웃음), 눈이 낮다높다 그럴 수 있죠, 지금 기준으로는.

이효석: 갑돌이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괜찮고 갑순이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괜찮았으면 그러면 갑돌이랑 갑순이가 결혼하고, 을돌이와 을순이가 결혼하고 그랬으면 큰 불만이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미디어와 SNS등을 통해 5천만 명 아니 70억 명 하고 경쟁하고 비교되고 있지요. 물론 우리가 정말로 연예인과 경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누구나 과거에 비해 눈이 높아졌다는 것이죠. 물론 출산율과 결혼이 줄어드는 건 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요. 사회경제적으로 집값이 올라간다든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너무 경쟁적이고 등등.

민노: 그렇죠.

이효석: 즉, 눈이 높아져서 상대를 만나기 힘들어졌다고 하면, 그건 사실 매우 해결이 어려운 문제로 보이거든요. 하지만 프럼은 책에서 말 그대로 ‘별의별 아름다움’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앞에서 우리가 우열에서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프럼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에도 온갖 종류의 것이 있다는 거죠.

민노: 그런 아름다움의 다양성? 민주성?

이효석: 바로 그겁니다. 단적으로, 우리가 처음 봤을 때는 좀 마음에 안 들어도, 어떤 사람과 가까워 지면 그 사람 장점이 막 보이기 시작하잖아요.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으니까,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자기의 까다로운 기준이나 조건이 있겠지만 그걸 다 만족하는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하고, 그러니까 하나만 마음에 들어도 일단 만나보라는… 일종의 비슷한 연애지침도 있는데, 그게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도 있다, 그러니 오늘날의 연애시장이나 낮은 결혼율, 출산율에서 한 가지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거죠…(웃음)

민노: 그럴 수 있죠.

이효석: 그리고 어쨌든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상대방한테서 계속 장점을 찾아낸다는 부분도 있고요. 물론 그건 인지적 오류 중의 하나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거나 아니면 자기가 가진 것에 가치를 더 부여하려는 경제학의 소유 효과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그런 부분이 책에서 좀 괜찮았다. (웃음)

가급적 많은 암컷과 관계하려는 수컷의 전략? 그렇지 않다


이효석: 그리고 한편으로, 오늘날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화론의 가설 중에 이 가설은 사람에게는 그리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요. 그 부분도 책에서 지적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게 뭐냐면, 정자와 난자의 비용과, 또 출산 및 양육의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로 동물들은 수컷은 가능한 한 많은 암컷과 관계를 가지려는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걸 인간에게도 적용해서 남자 역시 가능한한 많은 여성을 만나려고 한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죠.

민노: 그게 보편적인 진실인 것 처럼 얘기하죠.

이효석: 그렇죠. 하지만 이 책에서 프럼은 이렇게 반론을 듭니다.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자기 비서나 상사에게는 절대 눈길과 관심을 주지 않죠. 그리고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섹시한 여자를, 그 사람이 적이든 우리 편이든, 그 여성에게만 관심을 주고 그렇게 로맨스가 이뤄지죠. 즉, 어떤 이유에서든 남성 역시 상대를 매우 까다롭게 고른다는 것이고요.

영화 007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들. 수컷은 가급적 많은 암컷과 사랑을 나누려는 한다는 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적 가설에 대한 반증. “그들은 아무 여자나 상대하는 게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여성들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리처드 프럼). 사진은 이온 프로덕션/MGM.

더욱이 ‘남성은 무작위적 이방인과의 성관계를 제한 없이 욕망한다’는 주장은 인간의 진화사와 별로 관련이 없다. 농업발달로 인해 인구밀도가 높아지기 전에 고작 몇백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인간이 형성한 집단의 크기는 너무 작고 분산되어 있었다. 전쟁할 때를 제외하면 무작위적으로 성접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극단적으로 힘들고 드문 일이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남성의 성행동은 이방인과의 성접촉에 대한 특이적 선택(specific selection)을 통해 진화했다’라는 소리를 어불성설이다. 사실 남성의 성행동은 정반대, 즉 까다로움을 통해 진화했다.

섹슈얼 스워시버클링(sexual swashbuckling)에 나타나는 문화적 묘사를 분석해보면,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임스 본드나 돈 후안의 전설에서 ‘유명한 바람둥이가 만나는 여자들과 죄다 성관계를 했다’는 이야기를 빼면, 팥소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인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영화를 잘못 보고 하는 소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임스 본드와 돈 후안은 섹슈얼 히어로, 즉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는 영웅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여자나 상대하는 게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여성들하고만 사랑을 나누기 때문이다. 사실 본드의 까다로운 성적 취향은, 그가 미스 머니페니에게 보이는 지속적인 성적 무관심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는 매력적이고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사무실 비서지만, 사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접근하기 쉬운 상대이기 때문에 성적 선택성(sexual selectity)이라는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하지 못한다.

리처드 프럼, 양병찬 옮김, [아름다움의 진화], 8. 사람에게도 별의별 아름다움이 있다, 동아시아: 2019.

평균적 외모에 관한 선호에 관하여


민노: 그리고 ‘별의별 아름다움’과 관련해서 말이죠, 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외모를 기준으로 했을 때 다양한 얼굴 샘플들을 조합해서 그 평균을 내면, 그 평균치 얼굴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는 연구들도 있잖아요.

이효석: 그렇죠. 말씀하신 모든 사람의 얼굴을 평균내면 그게 미인, 미남이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좀 의구심이 있습니다.

민노: 의구심이 있다?

이효석: 네, 우선 데이터를 만지는 입장에서 얼굴을 평균낸다는 말 안에 아주 많은 방법론적 가설이 있습니다. 아마 얼굴의 크기부터 시작해서 부위별 크기, 눈코입의 크기, 상대적 위치 등등을 평균내는 것일텐데, 그렇게 하면 당연히 극단적인 얼굴은 나오지 않고 무난한 얼굴이 나오겠지만 그게 정말로 사람을 매혹시키는 미남 미녀가 될지 하는 생각이 있고요.

비슷한 가설 중에 대칭 이론이 있는데 좌우 대칭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근데 사실 대칭이 조금 틀어지는 게 더 매력적이다 이런 말도 있고요.

그리고 미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워낙 빨리 바귀는 것도 있고요.

민노: 그렇죠. 많이 달라졌죠.

이효석: 책에서 예로 든 배우는 클라크 게이블이었나요? 지금 남자 아이돌들을 보면 예전보다 더 여성적이죠. 장동건은 굉장한 미남 배우지만 20년 사이에도 미남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고 생각되고요.

클라크 게이블(1901-1960)과 마릴린 먼로(1926-1962). 위키미디어 공용.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조각상들은 여성의 미를 너무 상징적으로 묘사해놓아, 숭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유행하는 스타일의 변화 때문에, 오늘날 서구사회에서는 그러한 얼굴과 신체를 특별히 매력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사실, 이 같은 취향 변화는 수천 년이 아니라 훨씬 더 짧은 기간 내에 일어난다. 미국의 문화에서는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남녀의 용모에 대한 관점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미에 대한 문화적 기준이 얼마나 빨리 변할 수 있는지 알고 싶으면, 1940년대와 1950년대의 마릴린 먼로, 리타 헤이워드의 사진과 오늘날 수척한(때로는 거식증에 걸린) 여배우와 패션모델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된다. 부드럽고 풍만한 마릴린 먼로는 섹시함의 상징으로서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오늘날에는 리얼리티 TV쇼 [아메리카 넥스트 톱모델]의 1라운드에도 출연하지 못할 것이다.

남성의 신체에 대한 매력 기준도 확 바뀌었다. 오늘날 남자배우들이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면,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케리 그랜트,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의 부드러운 몸매와 완전히 다른 ‘윤곽이 뚜렷한 근육질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

리처드 프럼, 양병찬 옮김, [아름다움의 진화], 8. 사람에게도 별의별 아름다움이 있다, 동아시아: 2019.

민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령 조선시대에 아주 못생겼던 사람과 지금에 못생겼던 사람은 비슷할 것 같거든요. 가령 지금 아주 못생긴 사람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고 미남미녀가 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어떤 스타일 차이는 생겨날 수 있었겠지만, 완전히 못 생긴 사람이 100년 전, 100년 후 시대에 갔더니 미남이 됐다, 미녀가 됐다… 이런 건 불가능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효석: 네, 그것도 맞습니다. 크게 말해서 어떤 경향성이 있고, 그 안에서 포지션이 있고, 또 그 베리에이션은 또 사람마다 다르고…. 이 책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우리가 여배우들을 봐도 평균적으로 모두 일반적인 비연예인들보다는 예쁜 사람들인데, A라는 배우는 예쁜데, B라는 배우는 안 예쁘다고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우연이 기본이다, 성선택이 기본이다


민노: 제가 또 하나 궁금한 게요. 리차드 프럼은 암컷의 성선택을 통해서 수컷이나 공동체의 어떤 민주성이나 협력이나 브로맨스까지 유도한다고 하는데요. 이걸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거예요? 아니면 ‘그런 경우도 있다’고 얘기한 거예요?

이효석: 네, 그런 경우도 있다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민노: 그런 경우도 있다?

이효석: 그 말이 뭐냐면 ‘별의별 아름다움’이라는 게 정말 별의별, 모든 종, 모든 사회에서 온갖, 심지어는 그 형태가 생존에 ‘어느 정도’ 불리하더라도 가능하다는 것이고요. 물론 너무 불리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어떤 충돌을 일으켜서 제어하는 거고요. 어쨌든 폭주이론은 별의별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데, 그 중에는 수컷들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 형태의 사회 까지도 만들어낸다 이런 거죠.

민노: 아, 기본은 성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프럼은?

이효석: 네, 그렇죠. 그게 영가설(귀무가설)로 성선택을 분류하는 게 그런 뜻입니다. (영가설에 관해선 후술 ‘참고’ 볼 것. 편집자)

깨끗한 피부? 자연선택 설명 vs. 성선택 설명


이효석: 가령, 깨끗한 피부라는 걸 우리가 좋아하잖아요.

민노: 그렇죠. 여드름이 난 피부보다는 깨끗한 피부를 선호하겠죠.

이효석: 진화론의 훌륭한 점은 우리의 선호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여기서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모두 나름의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자연선택으로 설명하면, 깨끗한 피부는 피부에 병이 없는 걸 나타내고, 그래서 깨끗한 피부의 배우자를 고르면 배우자와 자식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따라서 깨끗한 피부에 대한 선호를 가진 개체들의 생존이 유리했으므로 그런 선호가 개체군 내에서 늘아나 우리는 지금 그런 선호를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죠. 그런데 성선택으로는 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깨끗한 피부가 인기가 좋다면, 내 후손들에게 깨끗한 피부를 주면 인기가 좋을 것이고, 따라서 깨끗한 피부를 가진 개체군과 그 피부에 대한 선호가 모두 늘어가 우리가 지금 그런 선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요.

민노: 그렇겠죠.

이효석: 자연선택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피부는 가장 건강한 피부여야 합니다. 곧, 신호가 진짜여야 하죠. 하지만 성선택은 그렇지 않아요. 실제 건강과 무관하게 어떤 특성이 인기를 끌고, 또 그 특성에 대한 선호가 생길 수 있죠.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건강이라는 특성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피부라는 건 눈에 보이는 특성이잖아요.

민노: 아주 가시적이죠.

이효석: 곧 본질(건강)과 대리신호(피부) 사이의 문제라는 것이고요. 다시, 자연선택은 대리신호에 대한 선호와 본질에 대한 선호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정합니다.

민노: 음…!

이효석: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게 제가 성선택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해서 흥미롭게 여기는 점입니다. 지금 건강이라는 본질과 피부라는 대리신호를 두고 한 번 생각해보지요. 내가 만약 수컷을 유혹하고 싶은 암컷이라면, 혹은 그 반대로 암컷을 유혹하고 싶은 수컷이라면 사실 나는 내 건강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 있어요.

민노: 화장만 잘하면 되겠네요.

이효석: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그게 인류, 아니 동물, 어쩌면 거의 모든 양성생식을 하는 생명체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벌어졌던 일이거든요. 곧, 본질과 대리신호 사이의 괴리라고 할 수 있는데, 재밌는 게 뭐냐면, 우리는 항상 본질을 파악하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 본질에 의해 드러날 수 있는 현실의 한 가지 측면인 대리신호를 본다는 거죠. 근데 사회 자체가 사실 그렇게 돌아가죠. 우리가 보는 시험도 그런 것이고요. 수능 시험도 우리는 이 학생의 대학에서의 학업 능력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고 싶지만, 그것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니까 수능 시험을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곧, 이에 대한 학생이나 학부모, 사회의 대응이 바로 학원이죠. 진짜 학생의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민노: 시험만 잘 보게 하는 거죠, 그냥 단순하게.

이효석: 네, 그런 일이 자연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거든요. 즉, 본질이 아니라 대리신호만 포장하는거죠.

토끼와 여우: 지능이란 무엇인가, 그건 속이는 능력


이효석: 이게 지능을 진화로 설명할때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능에 대해 이야기할때 사실 지능이란 상대를 속이는 능력이라고 말해왔거든요.

민노: 지능이 속이는 능력이다?

이효석: 여러 진화에 관한 책에 그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 (원제: Kinds of Minds, 2008) 에 나오는 토끼와 여우의 예가 잘 알려져 있고요. 여우는 포식자고 토끼는 피식자죠. 토끼는 여우로부터 잘 도망쳐야 생존에 유리하고, 여우는 토끼를 잘 잡아먹어야 생존에 유리하죠. 데닛은 이런 예를 듭니다. 기본적으로 토끼와 여우는 먼저 발견하는 쪽이 먼저 도망치거나 상대를 쫓았을겁니다. 어느날, 발이 빠른 토끼 중에는 자기가 먼저 여우를 발견했을때 먼저 도망치지 않는 토끼가 나올겁니다. 여우가 자기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도망가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역시 도망갈 필요가 없으니 에너지를 절약했고 생존에 유리했으니까요.

그러면 여우 중에 자기를 봐도 도망치지 않는 토끼는 발이 빠른 토끼니 쫓지 않는 여우가 또 나오겠지요. 드디어 토끼 중에는 발이 느림에도 불구하고 여우가 자기를 쫓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여우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는 토끼가 나올거고요. 이렇게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 지를 예측하는 능력이 지능으로 진화했다고 데닛은 이야기합니다.

이는 세상을 내적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능력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지능은 결국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다른 개체를 조종하는, 곧 속이는 능력이라는 말도 되지요. 물론 이걸 뒤집으면, 지능은 속지 않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포장을 간파하는 능력이라 말할 수도 있고, 붉은 여왕 가설처럼,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가 같이 진화한다고 볼 수도 있고요.

민노: 오, 심오한 이야기네요.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1942년~2023년 현재) 사진은 2017년 당시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 동안 선호… 기타 등등


이효석: 네, 재밌죠? 다시 자연선택과 성선택으로 돌아가면, 자연선택 쪽에서는 아까 말했던 깨끗한 피부뿐만 아니라 여러 상징이 있어요.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WHR; Waist Hip Ratio)이 있는데 그게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 대리 신호이기때문에 선호된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성은 실제로는 애를 낳지 못해도 열심히 허리를 날씬하게 만들고, 엉덩이 운동을 열심히 해서 상대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에게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에 대한 선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실험으로 쉽게 검증 가능한 사실이죠. 문제는 이런 비율에 대한 선호를 어떤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나으냐고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연선택과 성선택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합니다. 자연선택 적 설명은 그게 번식 능력의 대리신호이기 때문이다는 것이고요. 이게 정말 그런 건지는 검증해보면 되겠지요. 정말로 허리 엉덩이 비율이 여성이 아이를 잘 낳는 지를 확인해본다는 것이고요.

밀로의 비너스 WHR은 0.76이다. 오른쪽은 WHR 0.7과 0.9의 예시. 위키미디어 공용.

반면 성선택으로는 훨씬 더 간단한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허리가 얇고 엉덩이가 큰 여성이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죠. 어쩌면 최초의 선호는 어느 정도의 건강이나 번식 능력과 관계가 있었을 수 있죠. 하지만 그 뒤로는, 이제 선호가 선호를 부르는 폭주가 시작됩니다. 그러다보면 허리 엉덩이 비율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셀레브리티들이 인기를 얻기도 하고 그런거죠. 성선택의 설명은 특정 비율이 최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허리와 엉덩이 비율을 조사해보니 자식을 잘 낳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나왔다고 해보죠. 그러면 자연선택의 설명은 힘을 잃습니다. 하지만 성선택의 설명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고요. 자연선택은 겉으로 드러나는 대리신호가 본질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걸 선호하게 됐다고 설명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관련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대리신호와 본질의 괴리가 인간 사회에는 아주 많죠.

민노: 또 뭐가 있을까요?

이효석: 예를 들어, 사람들은 동안을 좋아하잖아요. 정확히는 젊은 이성을 좋아하지요. 이는 자연선택의 측면에서는 말이 되죠. 젊은 이성이 번식 능력이 낫고, 건강 상태가 나을 가능성도 크고요. 하지만 동안은 그런게 아니죠. 동안이라는 게 결국 깨끗한 피부, 큰 눈, 작은 얼굴 이런 건데요. 프럼도 책에서 점점 더 사람들이 동안이 되어간다고 지적하죠. 곧, 동안은 어린 사람의 특징을 가진 얼굴을 가졌을 뿐 실제로 나이가 어린건 아니죠. 동안은 그 말 자체에 위에서 말한 대리신호와 본질의 괴리, 혹은 어떤 속임수적 성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요.

넓게 보면, 사실 대리신호와 본질의 괴리는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비용이 더 든다는 관점에서 정보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요. 앞서 시험의 예처럼 이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이치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만으로 우리는 선택하고, 바로 여기에서 세상의 수많은 모순이 발생한다는 점에서요. 이는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시간과 에너지라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고요.

반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대리신호들은 본질에 대한 추정을 쉽게 가능하게 만들죠. 단지 정확성이 떨어지고, 또 속임수에 취약하고요. 인간이 가진 수많은 오류들 중 어림짐작(heuristic; 휴리스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어림짐작이 그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적의 추정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 방식이라는 연구가 나오기도 합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네만이 연구한 분야이기도 하죠.

대니얼 카네만(Daniel Kahneman, 1934년~2023년 현재, 89세). 사진은 2009년 당시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전망이론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기대효용론이 보여주는 이론과 실제 상황의 모순을 비판하며 새로운 대안 이론으로  카네만(Daniel Kahneman) 과 트버스키(Amos Tversky)가 1979년 ‘Exonometrica’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제시했다. 기대효용 이론이 설명하는 선택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비판하는 이론으로서 사회과학 분야에서 폭 넓게 수용된다. – 위키백과 ‘휴리스틱 이론’ 중 발췌. 편집자.

새들은 대부분 성기가 없다… 이유는 암컷의 자율성 때문?


민노: 책을 읽으면서 특히 궁금했던 게 하나 있습니다. 새들은 대부분 페니스(성기)가 없는데, 이것이 암컷의 성적 자율성 때문이다라는 책의 주장, 설명은 다소 저항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이효석: 책에서는 오리와 여타의 새를 대비시키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암컷은 성적 자율성을 원하고, 수컷은 성적 강제를 원한다는 설명은 설득력 있게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암컷과 수컷을 비교하면 암컷이 자기 자원을 많이 투자하니까요.

민노: 암컷은 자기 자원을 많이 투자한다는 건 임신 등을 염두에 두신 건가요?

이효석: 포유류 경우에는 그렇죠. 하지만 어류의 경우에도 산란을 하는데, 그때도 난자가 정자보다 더 크고, 따라서 암컷이 더 투자를 많이 합니다.

민노: 아, 그렇군요. 계속 이어서 말씀해주시죠.

이효석: 암컷은 자기가 자신의 자원을 많이 투자하니까 수컷을 골라서 번식하려고 할 거고, 수컷은 일단 생식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는데 암컷만큼 부담 없이 많이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될 수 있는 한 많은 기회를 가지려고 할 텐데요. 여기서 암컷이든 수컷이든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기 위한 거겠죠. 그래서 암컷은 가급적 자신이 원하는 수컷을 원하고, 수컷은 가급적 많은 암컷을 원한다고 말해지고요.

민노: 그렇죠.

이효석: 여기서 아까 하신 질문, 곧 왜 어떤 새는 페니스가 없고, 어떤 새(오리)는 자기 몸보다 더 긴 페니스를 가지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아까 말씀드린 별의별 아름다움의 원리로 어떤 종(청둥오리)은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거다라고 말할 수 있죠. 일단 페니스가 없는 새들은 강제로 교미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까 암컷의 별의별 취향에 맞춰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겠죠. 책에도 마나킨 새 등 예들이 잘 나와 있고요.

하지만 반면에 오리의 경우에는 암컷은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 질의 구조도 미로처럼 점점 더 복잡해지고, 수컷은 거기에 맞게 대응하기 위해 성기가 점점 더 길어지고…

민노: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이효석: 맞습니다.

청둥오리의 성생활은 수컷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다. 동시에 암컷 입장에서는 대단히 방어적이고 전략적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진실에 대한 욕구를 견디고 전면에 나서다 “


민노: 책 초입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진실에 대한 욕구’를 견뎌내고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뭔가 의미심장한 문장 같은데 알듯모를듯 해서요. 무슨 뜻인가요?

피셔의 2단계 모델에 따르면, 성선택의 잇따른 진화를 추동하는 힘은 궁극적으로 성선택 자체가 된다. ‘자연선택이 성선택을 중화한다’라는 월리스적 견해와 정반대로, 무작위적인 미적 선택(다윈설)은 적응적 이점을 위한 선택(월리스설)을 압도한다. 처음에는 모종의 적응적 이유를 빌미로 선호되었던 형질이, 이제 독자적인 매력원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일단 어떤 형질이 매력원이 되면, 매력과 인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피셔에 따르면, 짝짓기 선호는 마치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 성선택은 본래 적응정보를 나타내는 형질의 향상에 개입하지 않지만, 선호되는 형질에 대한 욕구가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의 능력을 약화시켜 진화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진실에 대한 욕구’를 견뎌내고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리처드 프럼, [아름다움의 진화], 1.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 중에서

이효석: 네, 이게 제가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구요. “진실에 대한 욕구”는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 곧 지표가 실제로 그 개체의 어떤 본질을 나타내는 현상(자연선택)을 의미하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인 지표가 본래의 본질과 무관하게 그냥 인기가 있는 특징이기 때문에, 곧 그 개체의 진실과 상관없이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이고요.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라는 표현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진실에 대한 욕구를 견디고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리처드 프럼, 아름다움의 진화)

민노: 아!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었네요. 이효석 박사 아니었다면 영영 모를 뻔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장이었어요!!!

이효석: 그렇죠. 상대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그냥 그 특징을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원래 그 특징이 의미했던 상대방의 진실과 상관 없이,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선택한다는 것. 저도 처음에는 그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았어요. 그 문장에 앞선 문단을 보시면요. “어떤 형질이 매력원이 되면, 매력과 인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한 번 매력 포인트가 되면 이제 그 형질이 본래 의미하는 바와 무관하게 아름다움이 우선한다는 것이구요.

“본래 적응정보를 나타내는 형질”이라는 말이 자연선택의 형질을 말하고요. 즉, 원래는 큰 키는 강한 힘, 빠른 속도 등 생존에 중요한 정보였겠죠. 하지만 키가 큰 사람 들이 인기를 끌게되면 종 전체가 키가 커지는 경향도 생기고, 또 힘이 약하고 속도가 느려도 키만 큰 사람도 생기겠죠. 여전히 인기는 높을 것이고요. 앞서 말한, 지표와 본질의 괴리이고, 자연선택을 성선택이 압도하게 되는 것이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진실에 대한 욕구를 넘어서는 것이지요.

민노: 그러네요. 한 문장, 한 문장 풀어주시니까 그래도 겨우 이해가 되네요.

영가설이란 무엇인가


민노: 책에서 가장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영가설’인데요. 영가설에 관해 좀 설명해주시죠.

이효석: 영가설은 조금 어려운 개념입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험 결과의 해석과 관련한 과학과 통계학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새로운 주장을 증명하고자 한다고 해보죠. 그 말은 그 주장이 기존의 주장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을 주장한다는 말이겠죠. 그리고 새로운 주장의 입증에 실패한다면, 여전히 기존의 주장을 바꾸지 못했다고 말할 것이고요.

이 과정을 잘 살펴보면, 기존의 주장은 이미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더 이상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서 기존의 주장이 영가설에 해당하고요. 한편, 이 입증의 성공/실패는 보통 실험 결과가 기존의 주장 하에서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일인지를 보임으로써 이루어지고요. 이게 피셔의 P 값이라는 것이고, 최근 많은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지요. 다시 영가설로 돌아가면, 기본적인 가정, 곧 디폴트로 생각하면 됩니다.

아름다움의 진화 관점에서 저자가 이를 영가설로 하자는 말의 의미는, 저자가 말하는 런어웨이, 곧 어떤 특성의 성선택에 따른 폭주가 모든 양성생식을 하는 종에서 거의 모든 특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으로 가정하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종의 어떤 특성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 특성에 성선택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 가정하자는 것이고요.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자연선택을 영가설처럼 다루었던 것, 곧 어떤 종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 특성이 그 종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디폴트로 추정한 것에 대비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프럼의 주장은 성선택에 관해, 별의별 아름다움은 성선택 때문에 그렇게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걸 증명할 필요 없이 그냥 디폴트(기본)한 사실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민노: 입증할 필요가 없는 가설이 영가설인 건가요?

이효석: 네, 영가설은 우리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그게 지금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공작 꼬리가 그렇게 된 이유도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사슴 뿔이 그렇게 된 이유도 그게 기본이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는 것이죠.

민노: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이효석: 성선택을 영가설로 하자는 기본적인 배경이 뭐냐면요. 이 세상의 온갖 이상한 일들이 결국은 성선택 때문이라고 프럼은 주장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영가설로 하자는 것은 그걸 더 이상 설명하려 노력하지 않겠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사실 들리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사실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이론이라는 점에서요.

민노: 약간은 궁금증이 생겨서 여쭤보면요. 자연선택으로 모든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진영이 있고요. 다윈보다 더 다윈 같다는 월러스 이하 신월러스주의자로 책에서는 평하는 리차드 도킨스 이하 진화학자가 있고, 별의별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성선택이 기본이라는 진화생물학자가 또 한편에 있을 텐데요. 이게 무슨 패싸움도 아니고, 힘겨루기도 아니지만, 정말 궁금해서요. 지배적인 흐름이나 헤게모니로 보면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요?

이효석: 저도 너무 궁금한데요. (웃음)

민노: 반반 정도는 되나요?

이효석: 훨씬 안 될 거라고 봅니다. (성선택 쪽이 훨씬 적다는 취지). 제가 본 반론들이 주류 학자들에게서 나온 것이고, 제가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주류 학자들은 자연선택 안에 성선택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니까요.

민노: 그렇다면 여전히 자연선택을 주류적인 가설로 수용하고 있다?

이효석: 네, 주류 학자들은 성선택을 포함한 자연선택이 주류 가설이다는 것이고, 프럼의 입장에서는 성선택의 중요성이 충분히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자연선택만이 주류적인 가설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고요.

인간의 폭력성에 관하여


민노: 아까 했던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요. 암컷의 성선택이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오는 속성이 있다는 이야기요.

이효석: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인간에게 적용하면, 인간의 폭력성이 줄었느냐는 아주 논쟁적인 이슈인데요. 핑커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문화 덕분에 폭력성이 완화했다는 거죠. 저도 실은 그게 꽤 맞는 말 같아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2011]을 둘러싼 논쟁이 지난 10년 동안 꽤 ‘핫’했어요. 이 주장이 현실 수용적이라는 면에서 진보/보수의 다툼으로 비화한 측면도 있고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7.
원제: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 2011.

민노: 책에서도 침팬지의 폭력적인 모습, 가령 영아살해와 같은 수컷의 폭력성을 지적하고 있죠.

이효석: 핑커는 인간은 원래 폭력적이었지만 지난 수십만년 전부터 폭력 사건의 비율을 보면 진화와 문명의 영향으로 인간의 폭력성이 점점 줄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 관해 반발이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인간이 선하다고 말하는 건 약간 우파적인 면이 있거든요.

민노: 아, 비판하는 쪽에선 두 번의 세계대전이나 히로시마 원폭, 아우슈비츠 같은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폭력을 인간의 폭력성이 줄었다는 핑커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이야기하겠네요.

이효석: 그렇죠. 어쨌든 핑커는 인간은 점점 더 덜 폭력적으로, 좀 더 질서를 따르게 되었다는 건데, 그게 바로 인간이 세운 문화, 문명 덕분이라는 거죠. 저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인간이 그렇게 된 이유가 뭐냐라는 점에서 프럼은 여성이 그런 ‘순한 남성’을 선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거고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성 중에는 남성적인,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여성도 많이 있고요. 이런 것도 별의별 아름다움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죠.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년 9월 18일 ~, 몬트리올 출생, 위키미디어 공용)

자기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


민노: 이 책을 누군가에게 권한다면, 이런 면 때문이다라고 할만한 부분은 어떤 걸까요?

이효석: 사실 우리가 생물학이나 심리학을 배우는 이유는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잖아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는 말은 내 생각, 나의 판단, 또는 나의 성격 이런 것들에 관해 더 잘 알게 됨으로써 나에게 좀 더 유익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일거고요. 이 책은 그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판단력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고요.

민노: 이 책은 특히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연장선에서 선택된 책이기도 합니다. [감정…]은 저에게는 굉장히 크게 와닿은 책이기도 했고요. 그 연결고리 부분을 한번 더 설명해주시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효석: [감정…]은 본질주의에 대한 구성주의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이 책도 마찬가지죠. 별의별 아름다움이라는 건 진화생물학에서 구성주의적 흐름에 있는 책인 거죠.

민노: 진화생물학의 어떤 거대한 흐름(자연선택)에 창조적인 균열(성선택)을 일으키는?

이효석: 좋은 표현입니다.

민노: 그런데 그럼에도 이효석 박사께선 기본적으로는 본질주의적 전통에 서 계신 분이잖아요? 지금까지 걸어온 경로를 본다면요. (이효석: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감정…]의 구성주의도 그렇고, [아름다움의 탄생]이 주장하는 성선택도 그렇고요. 이런 다양한 이론이나 가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시는 건가요? 어떤가요?

이효석: 저는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말해주는 책을 아주 좋아하고요. (=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는?) 그렇죠.

민노: 그런데 자기 고집 때문에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주면에 많잖아요? 똥고집이라고 할까, 소신이라고 할까… 어떤 면에서는 신념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이효석: 사실 그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걸 수도 있고요. 새로운 걸 너무 쉽게 받아들이다보면 오히려 틀린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균형’이 필요하죠. 제가 번역한 책(‘스켑틱’)에 “합리적 수준의 의심과 충분한 근거에 대한 신뢰 사이의 열린 마음”이라는 말이 나오죠.

물론 기본적으로 사람은 원래 자기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증 편향이라고 하죠) 그걸 염두에 둔다면 새로운 생각에 열려 있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나이듦에 대한 경계의 측면도 있고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되, 그 자신을 개선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요.

이 책의 약점, 자연선택을 우생학과 연결짓는 태도


이효석: 유전자-문화 공진화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의 문화가 생물학적 유전자에 영향을 주고, 유전자 역시 다시 문화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요. [센스 앤 논센스] (케빈 랠런드, 길리언 브라운 공저, 양병찬 역, 동아시아: 2014, 원문: Sense and Nonsense. 옥스퍼드 대학출판부: 2011.)라는 책을 보면, 지난 40~50년 동안 유전자를 통해서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많았는데, 인문학 전공자들의 반발을 많이 샀습니다. 그 뿌리에 우생학과 같은 부정적인 과거가 있고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프럼은 이런 과거를 벗어날 수 있는 흥미로운 방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곧, 자연선택은 생물학적 특성의 우열을 강조하는 철학이므로 자연선택을 강조하면 그런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다양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성선택을 영가설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접근은 과학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나치 독일, 레벤스보른 출생의 집. “인종적으로 순수하고 건강한” 부모의 혼외 관계를 통해 “아리안” 자녀의 출산율을 높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1943년 촬영. 위키미디어 공용.

민노: 정치적인 주장에 가깝다고 느끼신 건가요?

이효석: 그렇죠.

민노: 아, 그리고 다시 기본적인 질문이 하나 생각나서요. 성선택은 자연선택이 아닌 것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효석: 프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곧, 자연선택의 편협한 정의로 생존에 직접적인 이득을 주는 방향의 진화만을 포함할 경우, 그 외의 모든 진화는 성선택에 의한 것이겠죠. 책에 나오는 새의 깃털의 무늬나 꼬리의 길이, 색깔은 생존과 직접 관련이 없잖아요? 오히려 화려할수록 포식자에게 쉽게 발견되기 때문에 더 불리하겠죠. 하지만 무늬와 색깔에 패턴이 생기고 이것은 암컷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지요.

민노: 여기서 ‘선택’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이효석: 성선택이나 자연선택은 어떤 특성이 집단 안에서 그 특징을 가진 개체가 늘어날 때, 그 이유 혹은 원리를 말하는 거죠.

민노: 아, 그걸 선택이라고 하는 군요. 어떤 집단, 어떤 종에서 어떤 특징을 가진 개체들이 많아질때 그 이유를 말하는 군요?

이효석: 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내용을 오도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에 관한 깊은 사유가 있을 것 같잖아요? (= 맞아요! ㅎㅎ) 미학 입문서 같은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이 책이 그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이성이 좋아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민노: 그렇죠. 결국은.

이효석: 아름다움이라는 건 결국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모든 특징인데, 물론 아름다움의 범주를 축소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런 매력이라는 것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죠.

남겨진 이야기… 그럴 수도 있다!


민노: 저희가 꽤 긴 시간을 이야기했는데요. 혹시 꼭 했어야 했는데 빠진 이야기가 있을까요? 물론 빠진 부분이 많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효석: 네, 책에는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가령, 인간은 식욕보다 성욕이 압도적으로 높잖아요? 물론 욕구의 크기를 바로 비교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며칠을 굶긴다든지 해서 이를 상식적인 수준에서 비교하는 실험은 가능할 것 같고요. 그 결과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인간은 성욕이 식욕보다 높다’고 말할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결과가 나오겠지요. 책에는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성행위를 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이걸 ‘공진화’라는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요. 재미있는 개념입니다. 어떤 특징과 욕망이 같이 폭주하는 것이고요. 가령 아까 손가락이 긴 이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으로 이야기해보면, 처음에는 그냥 손가락이 긴 애들이 ‘조금’ 인기가 좋았을 겁니다. 그런 애들에 대한 선호도 적당한 수준이었을 것이고요. 하지만 손가락이 긴 애들이 인기를 끌수록 그런 특징에 대한 욕망, 그런 특징이 주는 기쁨도 점점 더 커지는 것이죠. 공진화라는게 그런 거거든요.

민노: 그런 욕망(손가락이 긴 사람을 원하는)이 DNA에 새겨진다는 건가요?

이효석: 그렇죠. 그러니까 여러 세대가 지나면, 정말 긴 손가락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지는 그런 현상이 생길 수 있고요. 그게 피셔의 ‘폭주이론’이죠. 인간의 성욕이 다른 동물에 비해 강하다고 했는데,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그저 멀리서 잠깐 보기 위해 며칠 밤을 새고 밥을 굶을 수도 있잖아요. 인간의 성욕이 식욕보다 앞도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어쩌면 욕망의 공진화에 의해 인간의 성욕이, 그리고 이를 통해 얻는 기쁨이 매우 커진 것일 수 있지요. 조금 감상적으로 말하자면 자연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민노: 저는 아까 이효석 박사께서 말씀하신 ‘그럴 수도 있다’는 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앤드류 버그먼, 1995)

이효석: 아무래도 별의별 아름다움(성선택) 가설은 좀 특별하달까요. 적용되는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상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는 수준에 머물 것 같기는 해요. 원래 모든 가설은 ‘그럴 수도 있다’에서 출발해서 근거들을 쌓아가는 건데, 오늘날에는 유전자 분석 같은 걸로 점점 더 확실한 근거들을 많이 쌓고 있긴 하지만요.

민노: 한편으로 성선택의 ‘진화적 데카당스’로 인해 개체의 감소나 멸종까지도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도 책에서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효석: 저도 그 부분도 좋았습니다. 공작 꼬리가 너무 커져서 날지 못하고, 그렇게 공작이라는 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죠. 즉, 성선택이 너무 강해서 자연선택을 압도해버리는 현상이죠.

민노: 맞습니다. 그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고, 좋게 받아들여진 건 저자가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이 부분에서 들었기 때문인데요. 다만 몇몇 부분에서는 약간 과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남긴 합니다. 오늘 풍부하고 깊이 있는 말씀 고맙습니다.

이효석: 네, 고맙습니다.

민노: 다음 책은 뭘로 할까요?

이효석: 일전에 이야기했던 [도파민네이션]도 좋고요.

민노: 네, 이효석 박사 말씀 듣고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도파민네이션]으로 하시죠.

이효석: 네, 그렇게 하시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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