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슬로우민트] 뉴스페퍼민트 이효석 대표가 추천하는 좋은 책에 관한 이야기. 두 번째 책은 다윈의 ‘성선택’ 이론의 복권을 시도한 ‘아름다움의 진화'(리처드 프럼, 2017).


슬로우민트

[아름다움의 진화]

00. 찰스 다윈, 다윈이즘에 대한 최초의 반역자

“나는 공작의 꽁지에 있는 깃털을 들여다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네!”

찰스 다윈, Darwin to Asa Gray, April 3 [1860],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Letter 2743.

다윈은 [종의 기원] (1859)을 발표한 이듬해인 1860년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진심으로 공작의 장식 깃털을 저주했다. 앞서 인용한 ‘저 유명한 문구’는 바로 그 편지의 일부다.

수컷 공작은 다윈을 생물학 신(神)의 자리에 올려놓은 [종의 기원], 즉 자연선택 이론의 ‘반대말’ 같은 생명체였다. 수컷 공작 허리 부위(장식 깃털이 난 정확한 부위는 꼬리가 아니라 허리다)에 위치한 장식 깃털의 존재는 자연선택 이론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객관적인 실체였다. 자연선택 이론으로는 장식 깃털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깃털은,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한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수컷 공작의 생존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깃털은 포식자에게 좀 더 손쉬운 먹잇감으로 수컷 공작을 노출시킬 위험이 컸다.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수컷 공작은 수많은 세월을 거쳐 그 장식 깃털을 더 좀 더 화려하게 진화시켜 왔다.

진화론, 두 개의 날개: 자연선택과 성선택


다윈은 스스로 신이 되어 자신의 무오류와 권위를 강변하기보다는 과학자답게 스스로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며 끊임없이 회의하고 고민하는 쪽을 택했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용감한 선택. 그것은 어쩌면 [종의 기원]을 탄생시킨 위대함보다 더 큰 다윈의 위대함이 아니었을까.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년 2월 12일 ~ 1882년 4월 19일)과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1871)

그 고민의 소산이 바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1871)이다. 자연선택을 주창한 [종의 기원]을 발표한 지 12년이 지난 1871년 다윈은 스스로 자신이 쌓아올린 거대한 자연선택 이론의 성채에 외로운 창을 던지며 ‘성선택’을 주창한다.

이로써 다윈 진화론은 두 개의 날개를 가지게 됐다. 그 한쪽 날개는 당연히 ‘자연선택’이었고, 다른 쪽에 ‘성선택’이라는 새로운 날개가 생겼다. 하지만 당대는 물론이고, 후세의 다윈이즘 추종자 역시 성선택이라는 또 다른 날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는, 아니 모든 지구상이 생명체는 ‘자연선택’이라는 단일한 원리를 통해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수컷 공작의 존재조차도 그들에게는 자연선택의 ‘일부’에 불과했다.

마이바트와 월리스, 다윈이즘에 대한 반역자 다윈을 공격하라!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한 역설 중 하나. 다윈이즘의 시조이자 지존이며 태두인 다윈은 자신의 추종자인 다윈주의자들에 의해 공격당했다. 생물학자 조지 마이바트(St. George Jackson Mivart) 경이 그 선봉에 섰다. 마이바트는 다윈을 ‘자신의 위대한 유산을 제 발로 걷어찬 자’, ‘진정한 다윈주의에 대한 반역자’로 묘사했다. 당대와 후세의 생물학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마이바트는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출간 직후 익명으로 기고한 서평에서 이렇게 썼다.

“다윈은 매우 다른 두 가지 과정을 뭉뚱그려, 성선택이라는 범주에 집어넣었다. 첫 번째 과정은 우월한 힘(또는 활동력)과 관련되어 있는데, 수컷은 그 힘을 행사하여 배우자를 획득하고,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다. 이는 하자가 없는 개념임이 분명하지만, 성선택의 하위범주보다는 자연선택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조지 마이바트 경, 1871. Review of The Descent of Man, by Charles Darwin, Quarterly Review 131:47-90.
성선택 공격의 선봉에 서는 생물학자 조지 마이바트 경 (St. George Jackson Mivart. 1827-1900)

마이바트에게 있어 다윈의 위대함은 그의 과학적 회의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이라는 지구 생명체의 모든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단일 이론’을 창조했다는 데 있었다. 마이바트의 뒤를 이어 성선택 공격의 선봉에 선 학자는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자연선택 이론의 공동 발견자’로 유명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였다.

월리스는 우연히도 자연선택 이론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발전시켰다. 역사에 가정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지만, 만약 다윈이 없었다면 자연선택 이론의 모든 학문적 성과는 월리스가 홀로 가져갔을 공산이 크다. 월리스가 1859년 ‘지도편달’을 부탁하며 자신의 연구 내용을 다윈에게 편지로 보내지 않았다면, 다윈의 [종의 기원] 출판은 더 늦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다윈은 윌러스의 편지를 받자마자 자신의 연구 성과 요약분과 윌러스의 논문을 동시에 출판하는 동시에 그 이듬해 [종의 기원]을 서둘러 출판한다.

월러스는 다윈을 탓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자연선택 이론을 발전시킨 다윈을 탓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성선택에 관해서는 마이바트와 같은 입장에서 다윈을 다윈이즘의 배반자로 여기고 공격했다. 두 사람은 다윈이 죽을 때까지 출판물과 서신을 통해 토론을 이어갔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고, 다윈은 죽기까지 자신의 성선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윈은 그는 이렇게 유언처럼 성선택에 관한 입장을 최종적으로 남겼다:

“그동안 제기된 다양한 반론들을 성심성의껏 검토한 결과, 성선택 이론의 진실성을 굳게 확신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찰스 다윈)

출처: 앨프리드 러셀 윌러스, 1895. Natural Selection and Tropiacl Nature. 2nd ed. London: Macmilan.

성선택을 향한 윌러스의 전쟁은 다윈 사후에도 계속됐다. 아니 오히려 그 공격의 정도는 다윈 사후에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 다윈의 성선택은 1970년대까지 진화생물학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성선택은 100년 동안 완전한 침묵으로 봉인됐다. 물론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연선택 이론의 공동 발견자’로 다윈을 존경했지만,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대해서는 마이바트의 ‘바통’을 이어받아 다윈 공격 선봉에 선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Alfred Russel Wallace, OM, FRS, 1823-1913)

과학 이론이라는 투쟁의 장(場)


[아름다움의 진화]는 쉽지 않은 책이다. 리처드 프럼은 이 책을 통해 다윈주의자를 자처하는 진화생물학자들에 의해 ‘잊힌’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진화론의 ‘주류’로 복원하려 시도한다. 물론 그 시도는 승리 불가능한 무모한 전쟁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이 책의 독자 각자에게 돌아갈 몫이다. 나?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면에선 설득됐지만, 어떤 점에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다만, 나는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프럼의 시도는 정말 학자다운 용감한 도전이라는 점 말이다. 그의 지적 도전을 나는 존중한다. 그는 자신의 지적 투쟁에 관해 이렇게 책에서 적고 있다.

자연선택: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을 보장하는 형질에 대한 선택.
성선택: 짝짓기와 수정의 차별화된 성공을 초래하는 형질에 대한 선택.

성선택에 의한 진화는 나름의 독특한 내적 논리를 지닌 과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다윈은 단순성과 획일성을 향한 과학적·지적 편향과 싸웠다. 물론 빅토리아 시대에 다윈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은 상당수가 종교적 일신론에서 유물론적 진화론으로 개종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강력한 단일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일신론자들이었던 그들은 ‘전능한 유일신’을 ‘전능한 단일 아이디어’, 즉 자연선택으로 대체했다. 사실, 오늘날의 적응주의자들은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왜 모든 자연을 강력한 단일이론이나 과정으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는 걸까’, ‘과학적 획일성에 대한 욕구가 현대의 과학적 설명 속에 숨어 있는 일신론(monotheism)의 망령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이것은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에 함축된 또 하나의 시사점이다.

진화생물학이 진정한 다윈적 견해를 받아들이려면, 다윈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각각 독립적인 진화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적응적 배우자 선택은 성선택과 자연선택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는 이 책에서 ‘성선택과 자연선택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리처드 프럼, 양병찬 옮김, [아름다움의 진화], 1.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 동아시아: 2019.

과학은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모든 사회의 영역이 그렇듯,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치열한 갈등과 투쟁의 장이다. 이 글은 이효석 박사와의 본격적인 인터뷰에 입장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다. 다음 글부터 이 지적 투쟁의 과정, 그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자. (계속)


관련 글

2 댓글

  1. 안녕하세요,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아 정확한 감상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기사의 내용만으로는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아직도 일방적인 자연선택의 우세 하에 경쟁 중이며, 그런 배경 아래 성선택을 옹호하는 것으로 읽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기술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성선택은 20세기 후반부터 주류 학설로 인정되었고, 성선택 역시 자연의 여러 선택 방식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논쟁들을 보면 진화론에서도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성배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화론적 논리들은 창발된 것으로 경향들 사이의 확률적 우열은 있을지언정 단일 논리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학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복잡한 것들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경제학자들이 만드는 모델들이 실세계에서 매번 실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선택은 자연이라는 거름망이 보여주는 수많은 양상의 집합체입니다. 굳이 하나의 최상위 원리를 찾자면 유전자 (집합)의 보존입니다. 이것도 사실은 원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그저 우연히 일어날 뿐이고, 그 안에서 유지되는 어떤 것이 선택되었다고 여겨질 뿐이지 않겠습니까? 창발되어 드러난 양상도 법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법칙을 만드는 근원적 목적이 예측이라면, 높은 확률로 드러나는 경향성은 법칙으로 취급해도 무방합니다. 그러한 법칙들은 상황에 따라 하나일 수도 둘일 수도 여럿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는 유일, 유이한 원리는 없습니다.

  2. 루소 님께

    우선 깊이 있는 논평,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에 관한 보충의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이효석 박사와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기 전에 이 책의 전체적인 배경이랄까 분위기(?)를 가볍게, 최대한 단순하게 독자에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음식으로 치면 ‘에피타이저’에 해당하는 역할로 쓰여진 글이라는 점을 감안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더불어 제가, 다른 분야는 물론입니다만, 이 분야에는 더욱 관련 지식,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논평하신 것처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설명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그 부족함은 제 부족함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넉넉하게 수긍하면서도 그 부족함으로 최선을 다해 책에 있는 내용을 온전히 왜곡 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