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3 가방 몰래 녹음기'(2024) 사건 판결에 교사단체는 찬성 입장을, 학부모단체는 반대 입장을 표했습니다. 내가 학부모였다면? 교사들께 물었습니다. 교사-학부모 갈등, ‘우리 아이’를 위해서 이제 풀어내야 합니다.


“엄마, 선생님이 내가 항상 맛이 가 있대.”

학기 초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 자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침착하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봅시다


나쁜 선생님일 수 있겠죠.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행동일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극소수’ 교사에게 잘못 걸린 걸 수 있겠죠. 대다수 선량한 교사 이미지마저 더럽히는, 미꾸라지처럼 학교 현장을 어지럽히는 그런 나쁜 선생님일 수도 있습니다. 행정처분에 더해 형사처벌까지 필요한 경우일 수 있죠.

하지만 수업 시간에 한눈팔고, 어쩌면 학업 성취도가 낮은 장난꾸러기 학생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수업마저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악동일 수도 있죠. 어쩌면 그런 학생이 안타까워서, 담임선생님 입장에서는 ‘좋은 뜻으로’ 어린 제자 ‘잘되라고’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그 폭언이 정서적 학대행위가 아닌 건 아니겠죠. 폭언이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한 교육 방법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그것이 일시적이라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굳고, 교사와 소통을 기대할 수 있었다면 교사와 학부모 간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사안을 풀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겠죠. 담임 교사에게 학부모 상담을 요청하고, 아이가 들려준 이야기의 ‘구체적인 상황’을 직접 물어보고, 우선은 교사의 설명을 들어보는 겁니다.

침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의 말에 과장이 있었거나 서로에게 오해가 있었다면 그 오해를 풀고, 교사의 잘못이 확인됐다면 교장이나 교감에게 정식으로 더 공식적인 징계를 요구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해당 학생이 그런 정서적 학대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확실하게 재발 방지 방법을 마련하고, 교사도 학부모도 함께 학생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매듭을 풀었을 수도 있었겠죠. 이상적인 학교였다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렇게 풀리진 않았습니다. 이 아이의 이야기가 향한 곳은 결국 법원이었으니까요. 비록 법은 철학의 최소한에 불과하고, 도덕의 최후수단이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래도 그것은 학부모의 ‘선택(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후술하는 전교조 이형민 대변인의 답변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편집자).

이 글은 여러분이 그 아이의 학부모라면, 해당 교사의 동료 교사라면 그리고 그 학생이라면….하고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만약에’라는 가정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한 번쯤 돌아보고 살펴보는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법원으로 간 아이의 이야기


엄마는 자녀에 대한 담임 교사의 정서적 학대를 의심했고, 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아이 책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서 등교하게 했습니다. 약 2달 동안 16번의 정서적 학대 의심 발언이 있었습니다. 앞서 만에 하나라도 ‘참작할 만한 상황’으로 보기엔 너무 꾸준하고,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폭언이 있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14번의 정서적 학대행위가 인정됐습니다. 교사는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참고로 아래는 교사의 발언들입니다.

“쟤는 항상 맛이 가 있어.”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공부시간에 책 넘기는 것도 안 배웠어.” 등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은 뒤집혔습니다. 엄마가 자녀의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를 통한 녹음의 증거능력이 부정된 것이었죠. 대법원은 해당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에 어긋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첫 번째 쟁점, 우선 30명의 학생과 수업하는 교실 공간이 ‘공개된 장소’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쟁점, 피해 학생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은 학부모와 교사와의 관계를 직접적인 당사자 관계로 보고, 피해 학생은 학부모와는 ‘별개의 인격’으로 봄으로써, 결국 학부모가 제3자 사이의 비공개적인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게 녹음은 증거능력이 사라졌고, 명백하게 잘못을 저지른 교사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당 대법원판결에 관한 자세한 논평은 슬로우뉴스에서 발행한 정연순 변호사의 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세 개의 질문: 교사와 학부모에게 묻다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에 1) 대법원판결 2) 내가 학부모라면 3) 교사-학부모의 협력 방안을 물었습니다. 질문에 답한 단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법원판결 논평을 낸 곳은 별도로 표시합니다. 참고로 교사노조(교사노동조합연맹)은 공식 논평(“정상 수업 위해 긴요, 환영!”)으로 모든 질문에 관한 답변을 갈음했습니다.

세 가지 질문을 좀 더 자세히 옮기면 이렇습니다.

세 개의 질문


1. 대법원판결에 관한 평가.

2. 내가 학생 부모였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을까(현행 제도를 기반으로).

3. 교사-학부모 간 ‘긴장/갈등의 풍선’이 터지기 직전이라고 판단합니다. 그 풍선이 터지기 전에 그 바람을 빼고, 교사와 학부모 모두의 목적인 학생을 위해 상호협력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건과 관련해서 혹은 이 건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그 대안을 제안해 주신다면요.

이 세 개의 질문은, 이 사건에만 한정하지 않고, 학교폭력 상황이든 교권 위기 상황이든 필요한 질문으로 생각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는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이지만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각자 이해에 따라 어떤 특정한 사건에 관해 환영 논평을 내거나 비판 논평을 내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누가 유리한지 불리한지 따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승패를 다투는 경쟁자가 아니라 학생을 위한 ‘원팀’입니다.

‘우리는 원팀!’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남자축구국가대표팀. 사진 곽동혁. 대한축구협회 제공. 2024. 1. 15.

갈등의 구조화: 대구 중학생/서이초 교사… 서로를 비추는 거울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렇게 깊어졌을까요.

저는 학교폭력과 교권 위기를 취재하면서 항상 두 사건을 떠올립니다. 하나는 2011년 12월 대구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한 사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2023년 7월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교실 안 창고에서 목숨을 끊은 일입니다. 학생이 죽었고, 교사가 죽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에게 두 비극은 서로의 슬픔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습니다. 드러난 모습은 달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본질은 같습니다. 학교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극으로부터 교훈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비극에 대한 반응으로 교육부는 학교폭력을 과도하게 행정 제도화했고(2012년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 제도화), 이로써 학교폭력은 교사와 학부모에게 더욱 생생한 지옥이 되었습니다(참고로 그때 교육부장관이 바로 현 교육부장관 이주호였습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마치 적군이 된 것처럼 진영화하고, 그 둘 사이를 중재하고, 힘을 모아야 할 교육부는 그 둘 사이를 이간질하고 싸움을 붙이는 최악의 심판 역할을 했습니다. 대구 중학생 사건에서 교육부는 일부 학생의 극악한 범죄 행위를 학교폭력이라는 제도적 테두리로 끌어왔습니다(학교폭력예방법은 행정절차법이지 형사법이 아닙니다).

교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을 학교 현장으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그 압력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자 학교폭력은 학교 현장에서 교육청으로 이원화했습니다(2020년 조희연 교육감 주도로 학폭위를 교육청으로 이관).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학교폭력 조사관 제도를 신설해 오는 3월 1일부터 전직 경찰관 등이 학폭 조사를 담당하게 됩니다(2024년 학폭조사관 제도 신설).

학폭 업무를 경찰이 담당? 1명이 12개 학교 담당? 사진은 경찰청 폴인러브 제공.

이런 일련의 제도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의 사법화입니다. 학교는 법으로 다스려지는 공간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더 높은 차원을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로 학교만의 상대적 자율성이 부여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학교는 불신과 갈등과 폭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 행정적 감시의 대상이자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경찰 출신이 학교폭력을 조사합니다. 교사는 더는 학교폭력 사안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그 갈등과 폭력을 지켜본 증인입니다. 학생과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갈등 해결의 주체입니다. 하지만 교사는 그 ‘지옥’을 굳이 자청해서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자가 학폭 사안에 연루되어도 조사 단계에서 진술을 거부하는 교사가 늘어갑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참교사는 단명한다’는 말이 교사 사회에서 자조적으로 떠돌아다니는 이유입니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새끼 운명’이 걸린 ‘싸움’에서 유일한 선택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행정 절차 혹은 사법 게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변호사 수임료는 기본 1천만 원을 호가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학교폭력은 ‘변호사의 시장’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해학생도 피해학생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아무런 정의도 성취되지 않습니다. 변호사만이 이 갈등을 통해 이익을 얻습니다.

변호사만이 학폭 ‘시장’의 승리자입니다.

교사와 학부모 모두 패배자이고, 모두 피해자입니다. 학생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게 지난 최소 10년 이상 학교폭력을 둘러싼 제도적 실패의 과정, 교권 추락의 과정,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반목하고 불신하며 피해의식을 키워온 과정입니다. 그 중심에 현 교육부와 그 수장으로 제도 입안을 주도한 이주호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구 중학교 사건과 서이초 사건은 자신이 품고 있는 비극의 본질을 서로에게 비추는 거울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한쪽이 학생과 학부모의 슬픔과 고통을 상징한다면, 다른 한쪽은 교사의 슬픔과 좌절을 상징합니다. 그 둘은 학교 안에서 치유되었어야 할 상처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실패했습니다. 그 둘의 슬픔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적대적 귀인 편향: 교사와 학부모의 내재된 공격성


‘적대적 귀인 편향’(Hostile Attribution Bias, HAB)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학교폭력을 취재할 때 한 논문에서 처음 접한 용어입니다. 뜻은 단순합니다. 타인의 모호한 행위를 호의적인 것이 아닌 적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 그걸 적대적 귀인 편향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심리학 용어인 까닭은 이런 경향이 누구에게나 흔히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기 초 학생들 사이에 감도는 특유의 긴장감을 떠올려보십시오. 학폭 가해학생은 폭력적 성향을 상대방이 시비를 걸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온라인 댓글창의 풍경을 생각해도 좋습니다. 혹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나누는 메시지 필담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도 나를 조롱하는 건 아닐까. 나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 적 없으신가요? 내 말을 오해하는 경우도, 상대방 말을 오해하는 경우도 너무 흔합니다.

지금 교사와 학부모를 둘러싼, 학생이 그 중심에 있는 학폭이나 아동학대 그리고 교권 관련 이슈에서 교사와 학부모는 적대적 귀인 편향에 빠지기 아주 쉬운 환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서로의 소통을 ‘조율’해줄 매개로서의 학교, 교육청, 교육부가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모호한’ 말과 행동을 호의적으로 해석할 여유는 교사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없습니다.

학교를 넉넉하게 신뢰할 수 있었다면… 극소수 문제 교사가 있었더라도 문제는 쉽게 풀렸을 수도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은 좋은 교사들이 있으니까요. ‘학교 안’에서 문제를 공론화하고, 절차와 시스템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면 되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학기 초, 초등학교 3학년 자녀가 “엄마, 선생님이 나한테 항상 맛이 가 있대”라고 말한다면? 그건 모호한 말과 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폭언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겁니다. 다만 아이가 어느날 그렇게 말했더라도,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와 기대가 단단했다면, 아이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키는 일 대신에 당장 아이를 위험에서 구출하고, 문제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았을 것 같습니다. 교사의 잘못이 있더라고 하더라도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보다 더 우선해서 중요한 건 아이를 폭력적인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그런 방법이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가방 몰래 녹음기 대신 내가 그 아이의 ‘부모’라면 교사의 잠재적 정서적 학대로부터 아이를 즉시 보호하고, 교사에게도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주거나 혹은 잘못의 크기가 작을 때 확실히 그 잘못을 중단시킬 수 있는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쉽게 취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었을까요? 교사와 학부모를 대표하는 단체에선 어떻게 그 질문에 답했을까요?

내가 학부모라면? 정당한 절차 거쳐야죠 (교총 김동석 본부장)


이하 교총 김동석 교권본부장 답변(발췌 요약):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원 간 신뢰와 믿음, 사랑의 가치가 매우 중요한 교육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학생-교사 간 아동학대, 교육과 관련해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고자 한다면 학부모의 참여권과 국민의 민원제기권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고 절차에 따라 잘잘못을 가려야 합니다.

김동석(교총 교권본부장).

학부모는 불법적 몰래 녹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제도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 교사의 아동학대 여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 학교 자체 조사(학생 전수 조사 등)
  • 교육청 차원의 아동학대 사안 조사
  • 경찰·지자체의 수사·조사
  • 검찰 수사 등

자녀 중심의 의심만으로,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임에도 이를 문제삼아 아동학대로 신고하면 교사는 정상적인 수업과 생활지도가 불가능하여 교사의 교권과 많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합니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지난해 교권4법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으로 무분별한 무고성 아동학대로부터 교원 보호를 제도화했습니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남발자를 무고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입법으로 아동학대와 무고 신고자 모두 엄중히 처벌하는 법적 형평성을 가져가야 합니다.

아동학대, 그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참학 이윤경 회장)


이하 이윤경 참학 회장 답변(발췌 요약):

상담을 통해 이런 경우를 많이 접합니다. 이 사건 같은 경우에 제대로 기사화하지 않고,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학부모들은 대개 직접 담임 선생님께 얘기해요. 그게 잘 안되면 교무실이나 교장실로 전화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대개 돌아오는 말이 ‘아이 말 다 믿지 마세요’ ‘아이들 말은 그때그때 다 달라요’ 이런 답변이 고작이에요. 그러면 이제 그다음 수단은 녹음기가 되는 거예요.

이윤경(참교육학부모회장)

의사 표현이 서툰 아동, 특수교육 대상 아동 등의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 아동학대를 증명해야 할까요? 대법원 판사 본인 자녀였어도 그런 판결을 내렸을까요? 교실이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면 회의 녹음도 불법인가요?

아동 본인이 참여한 수업이 어째서 타인 간의 대화인지도 납득이 안 되고요. 이런 식이라면 어린이집처럼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실마다 CCTV를 달도록 강제해야죠.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행위’마저 교원단체는 교육활동에서는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거잖아요. 학부모단체를 비롯한 인권단체 입장에서는 그건 정말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데요.

교사들이 악성 민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비위 교원이라고 얘기하는 교사들의 비위, 회계 비위든 이런 학대행위든, 그런 교사도 쉽게 달라지지 않아요. 최근에 5학년 교실에 샌드백까지 갖다 놓고 학생 2명을 피멍이 들 정도 나무 막대로 체벌한 교사 있었잖아요. “아동학대자로 신고하려면 하라”고 했죠. 그런 분들 쉽게 안 변해요.

학교에 현재 그런 장치는 없어요 (전교조 이형민 대변인)


전교조 이형민 대변인은 “부모는 법적으로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모든 문제를 자녀 대신 해결해줄 수도 없고, 그것이 반드시 자녀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를 직접 변화시키는 역할보다는 함께 도움을 주는 조력자”라면서 “우리 아이들이 일체의 부정적 경험이나 자극이 배제된 상태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되물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런 방어수단이 없는 10살 학생이 2달 동안 14번에 걸쳐 담임교사에게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는 폭언을 들었다면 좀 더 아이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부정적인 경험이나 자극”의 범위에 이 사건의 정서적 학대까지도 포함할 수 있겠느냐고요. 이 대변인은 “해당 교사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찾아가서 그 맥락을 확인하는 과정이 먼저“라고 설명해주셨죠.

그래서 다시 여쭤봤습니다. 그런 선행 과정이 있었다면, 피해 아동의 피해가 그 즉시 멈추고,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신뢰 관계를 회복하며, 학생이 받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학부모가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요. 현행에 그런 절차가 마련돼 있느냐고요. 그러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이형민(전교조 대변인)

현행 절차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교사 행동은 분명히 잘못됐죠. 다만, 우선 어떤 의도였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만약 그런 절차를 먼저 거쳤다면, 해당 교사는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고 변명할 것 같은데요? (웃음)

(웃으시면서) 아마도 그렇겠죠.

= 현재 학교에서 그런 선행 절차를 많이들 활용하나요?

공식적으로 그런 절차는 없어요. 학교에 먼저 문의하거나 상담 요청하는 건 학부모의 선택이나 선의에 맡겨져 있을 뿐입니다… 학교가 먼저 ‘자녀의 불편한 사항은 상의해주세요. 이런저런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학부모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현재는 그런 장치가 없다는 걸 교사도 학부모도 학교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함께 보완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왜 99% 선량한 교사가 1% 교사의 명백한 잘못을 두둔하는가


전교조 이형민 대변인께 교총, 전교조, 교사노조 성명서를 보면서, 극소수 1% 교사의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을 대다수 99%의 선량한 교사가 옹호하는 것처럼 보여서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다수 선량한 교사가 극소수 교사의 잘못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해서 안타깝고, 교사 전체가 내부의 잘못마저 눈감는 집단 이기주의에 물든 단체인양 그 잘못한 교사와 함께 도매금으로 취급당할 위험도 있다는 취지의 질문이었습니다. 이형민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사 개인의 문제는 교사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가. 그런 개인의 문제도 학교가 교육적으로 성찰하고, 반추하는 그런 힘이 있는가.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교사는 잘못했죠… 그런데 그런 교사가 일부 있긴 합니다. 잘못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그런 잘못을 하고 그다음 날이 되면 스스로 잘못했다고 하기도 하고… 저도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저 선생님 왜 저랬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형민 전교조 대변인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 샌드백 설치하고, 자신의 담임 학급 학생 2명을 친구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이유로 허벅지에 피멍이 들 때까지 나무막대로 때린 교사. 2023. 12. 17.

교사, 학생, 학부모 인식에 관한 몇 가지 통계 자료


김동석 본부장께서 세 번째 질문에 답변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자료를 함께 첨부하셨습니다. 학생, 학부모, 교원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수치라고 부연하셨죠. 조사 방법의 정확성을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옮깁니다.

  • 학생 94.6% ‘학교에서 인권을 존중받고 있다.’ (2022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 교원 98.7% ‘학생 문제행동 제지 어렵고 부탁해야 하는 현실’ (교총 2023년 7월, 전국 유초중등교원 32,591명 설문조사)
  • 학부모 54.7%  ‘교권침해 심각하다’  최근 4년간 가장 높은 수치. 그 이유로 1)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 2) 학교 교육이나 교원에 대한 불신 3) 학생 및 학부모의 인식 부족 순 (2023. 1.22.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

김동석 본부장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부모조례, 교권보호조례가 만들어지면서 결국 학교가 권리 다툼의 장이 되어 간다고 지적합니다. 무엇보다 문제행동 학생이 많이 늘었고, 그 행동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교권 침해와 수업 방해로 인한 갈등과 학습권 침해가 심화하고, 그 밖에도 학교폭력 발생과 처리 과정에서 학부모와 교원 간의 갈등을 중재하거나 완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상태이며, 그래서 그 압력을 그대로 학교와 교사가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교사의 스트레스가 한계점에 다다른 상황이라는 거죠.

학교 민원 대응 매뉴얼: 기대한다(교총) vs. 학부모가 민원인이냐(참학)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지금 교육부에서 ‘학교 민원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우선 김동석 교총 본부장의 말씀을 들어보시죠:

학부모와 교원 간 관계와 민원 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이고, 그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입니다. (중략) 올해 교육부가 학교 민원 대응 매뉴얼을 제작·배급할 예정인데, 그에 따라 제도적 민원처리 시스템을 정착해 나가는데 학부모와 교원이 함께 힘을 모으길 기대합니다.

김동석 교총 교권본부장

학교 민원 대응 매뉴얼에 관해 마침 이윤경 참학 회장은 이렇게 언급하셨죠(참고 김동석 교총 본부장의 논평에 관한 말씀은 아닙니다).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이 접수하는 걸 민원이라고 하잖아요.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이 의견 낸다고 하면 그걸 민원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같은 조직 구성원이니까요. 교육 3주체 학생, 교사, 학부모라고 하고, 학부모도 학교 구성원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또 민원인 취급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결국 학부모 의견은 학교 구성원 의견이 아니라 외부인 민원으로 접수하겠다는 거죠. 지금 교육부가 하려는 민원 대응 매뉴얼이나 교육청에서 만들려는 학교 민원 대응팀… 다 그런 관점이죠. 학부모를 외부인으로 보고 있어요.

이윤경 참학 회장

종종 조언을 구하는 한 고등학교 학부모회장께 김동석 본부장과 이윤경 회장의 말씀을 각각 들려드리고 솔직한 의견을 청했습니다. 그 학부모회장께선 두 분 말씀이 다 맞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자신도 학부모지만 정말 평소 학교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도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학부모회장인 자신에게까지 전화해서 이것 해결해달라, 저것 문제 아니냐… ‘자기 새끼만 끔찍하게 생각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많은 학부모가 평소엔 학교 일에 ‘방관자’였다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무슨 일만 생기면, 갑자기 극성 민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런 분들까지 모두 자신은 학부모라서 학교 주체이니 학교에 관한 운영에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학부모회장인 자신이 보기에도 학교의 주체, 교육의 주체로 여겨지는 모습은 아니라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이윤경 회장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죠. 아주 예리한 지적이고 학부모를 외부인 취급하는 제도와 분위기도 잘못이라고 지적해 주셨어요. 이러나저러나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참교사는 단명한다’ … 서글픈 현실 (좋은교사 한성준 대표)


일주일 동안 이 글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편집팀 안에서도 많은 토론을 했고, 대법원판결과 관련해서는 많은 법조인께 조언을 청했습니다. 아직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해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저 스스로 납득하고 만족할 만한 해답도 아직은 얻지 못했죠. 다만 전교조 이형민 대변인의 말씀처럼,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학교를 먼저 떠올리고, 어떤 두려움도 없이 학교에 먼저 상의할 수 있는 그런 제도, 그런 믿음은 아직 우리에게 없다는 걸 교사도, 학부모도, 학교도 인정하는 그것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교사운동 한성준 대표의 말씀으로 이 짧지 않은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하 한성준 대표의 말씀:

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의 한계

한성준(좋은교사운동 대표)

교사 입장에서는 환영할 부분이 있고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그 반대겠죠. 다만 분명한 건 법으로 해결하는 것의 한계를 보여준 것 같아요. 그 교사의 삶도 갈기갈기 찢겼을 거고, 학생이나 학부모도 마찬가지겠죠. 이 판결을 통해 회복한 게 무엇일까요. 물론 해당 교사는 분명히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서 보내는 일은 정당하기만 할까요.

저는 중학교에서 20년째인데, 보통 이런 사안이 생기면, 학부모께서 전화를 주세요. 그래서 소통하고, 학년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 등과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이번 사안에서는 왜 그런 사전 대화, 협력 기제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 점은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회복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 있습니다. 법적인 방법 외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요.

서이초 이후,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교권4법 이후에 민원 대응팀을 만들겠다 등등 교육청이 발표하기는 했는데, 인력이나 재원이 마련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약속한 사항도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서 이뤄내야 합니다. 공적인 대응 체계를 만들겠다, 교사 개인의 문제로 만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서이초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학교 사회 안에서 분리 대상 학생을 교육하는 책임을 누가 맡을지에 관해 관리자인 교장 교감과 일반 선생님 사이의 갈등만 커지고 있죠.

분리 학생 대책을 보면, 전문적인 지도가 필요하고, 치료가 필요한 학생인데, 이들 학생의 지도와 치료에 관한 대안이나 대책이 없어요. 많은 것들을 ‘학칙’에 미루고 있죠. 그게 무슨 의미냐면, 그냥 일선 학교 차원에서 교사들이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돈은 아주 조금만 쥐여 주고, 인력 지원은 전혀 없고… 그나마 서울시교육청은 정서행동 위기 학생 지도를 위해 교사 전문 연수나 학교 밖 지원 체계를 교육청 차원에서 마련하더라고요. 물론 다른 시도에서는 그런 시도를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요.

‘갈등의 풍선’에 계속 바람만 넣는 언론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 그 풍선에 바람만 넣는 기사들을 보면… 기자들께 죄송하긴 하지만, 모든 기사들이 교원단체는 환영, 학부모는 반발, 이런 식으로 편을 나눠서 갈등만 부각하는 기사더라고요.

이 사안의 본질은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에요. 그게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학부모에게 유리했다. 교사에게 유리했다. 그런 무슨 의미인가요. 학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어요.

‘참교사는 단명한다’… 교사들끼리 그런 얘기를 하곤 해요

교사도 충분히 잘못할 수 있고요. 명백한 아동학대를 하는 교사도 있을 수 있어요.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온당하지 못한 일이죠. 그런데 그것은 학생도 학부모도 마찬가지에요.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죠. 다만 하나 생각해볼 것은 교사들은 너무 쉽게 아동학대에 노출된다는 거에요.

오히려 정당하게 지도하려고 했던 교사의 의욕이 꺽이는 부분이 있어요. 잘못한 소수 교사는 그 잘못 만큼 책임지는 게 맞지만, 정당한 교육행위마저 학대로 의심되거나 신고돼서 선량한 교사가 교육하려는 욕구가 꺾여선 안 되잖아요. 교직 사회에선 ‘참교사는 단명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교사들끼리 그런 얘기를 하곤 해요. 서글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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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참교사는 단명한다고요.. 참부모(?)의 자녀들은 “ㅇㅇ이는 항상 맛이 가 있어” 라는 좋은 의도일지도 모르는 말을 친구들 앞에서 앞으로도 계속 들어야겠습니다.
    기사에 등장한 모든 선생님들께서는 해당 발언을 먼저 교사에게 확인했으면 하시던데요.. 전교조 대변인님이 확인해 주셨다시피 발언의 부인, 잘해야 의도의 부인입니다. 해당 교사가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들, 애초에 그와 같은 발언을 하는 교사의 약속을 믿을수는 있는걸까요? 우리 아이가 더 찍히면 어떻게 하지요? 녹음기로도 잡을 수 없는 더 미묘한 방법으로 괴롭힌다면요?
    올해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참학생은 그런 언어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왜 나는 맛이 가 있는 아이로 보일까?’ 라며 자신을 성찰해야 할까요? 그것이 가스라이팅과 구분되는 지점은요?
    학교에서 절대 강자는 교사입니다. 참교사는 단명한다라.. 장수교사들은 참교사가 아닌걸까요.. 참교사들은 학교에서 약자일가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교육 3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 어떻게 하면 그들이 서로 믿고 학교가 참교육의 장이 될 수 있을까요? 결국 그 대답은 교사들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답을 내놓기 전까지 피해를 보는것은 온전히 (참)학생이며, 그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지켜보는 (참)부모들이 있을 뿐입니다.
    나쁜 학부모요? 나쁜 학생이요? 이로 인한 교사의 피해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빨리 답을 내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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