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부장관 이주호.



그러나 ‘시간’이 나를 알고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그것이 내 슬픔이다. 그러나 내 슬픔으로 무슨 단단한 보석이라도 만들었으면……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는 말고’ 중에서

비극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고, 죽음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정인이는 16개월이었다. 부끄러움도 사치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남는 게 슬픔인지 분노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 제도를 만드는 건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집단의 분노다.

정인이는 죽었지만, 여전히 영아살해는 계속된다. 수많은 아이가 출생신고조차 없이 사라진다. 그제서야 당국은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리고 겨우 지난 7월 18일에서야 영아 살해와 영아 유기를 일반 살인죄와 유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너무 늦어서 부끄럽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분노로 만들어진 제도가 또 다른 죽음을 만들고, 또 다른 절망을 만든다면, 그 절망을 더 공고하게 구조화한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정치가 분노를 권력 추구의 수단으로만 삼으면 그땐 어쩔 것인가.

2011년 12월 한 소년이 죽었고, 2023년 7월 한 교사가 죽었다.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 사건과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이다. 소년의 죽음이 제도를 만들었고, 그 제도의 이름은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다. 그리고 나는 그 제도가 교사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방조했다고 확신한다. 소년의 죽음이 또 다른 폭력과 갈등을 촉발하고 구조화하는 제도를 남겼다면, 교사의 죽음이 남길 제도는 무엇인가. 그것이 나는 두렵다.


2011년과 2023년, 그때나 지금이나 이주호

“학생들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이 붕괴됐다.”

이주호(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교권확립을 위한 현장 교원 간담회’, 2023. 7. 21., 한국교총.

2023년 7월 한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이주호(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하 ‘이주호’)는 그 책임을 학생에게 돌린다. 인권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도구인가. 인권이 다른 권리를 짓밟는다면 그건 인권이 아니라 권리 남용이자 폭력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다른 선택권 없이 ‘입시교육’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통제되는 학생에게 무슨 인권이 있는가. 친구를 짓밟고 이기라는 학교에서 그런 사회, 그런 나라에서 무슨 학생 인권씩이나 탓하고 있나.

혹시 교사를 죽인 건 인권이 아니라 입시교육 아닌가. 그 입시교육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학교의 시스템, 권력의 위계적인 기제들 아닌가. 그 목표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학생과 학부모, 그들의 배타적이고 강박적인 이기심 아닌가. 교육이 아니라 입시를 위해, 공존이 아니라 경쟁을 위해, 공동체를 위한 배려와 희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이기심과 이익을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은 아무런 책임이 없나. 그런 제도를 만든 위정자들은 지금 반성하고 있나.

생각해 보라. 인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인권이. 사람을. 죽인다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라. 그런 말을 교육부장관이 한다고. 이것은 교육인가. 아니면 반(反)교육인가.

이주호(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교권확립을 위한 현장 교원 간담회. 2023년 7월 21일(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서울 서초구 소재). 교육부 제공.

시계를 11년 전으로 돌려보자. 이주호는 2011년 12월 소년이 죽자 이듬해(2012년) 1월 17일 서울·인천·경기 지역 초·중·고 교사 12명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 교사와 이런 문답을 한다.

교사: “민원 때문에 체벌을 할 수 없는데, (체벌 외에)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무기나 수단을 줘야 한다.”

이주호: “출석정지 기간의 제한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0일이라는 출석정지 기간이 짧다는 현장의 의견이 있는 줄 안다.”

교육부장관과 서울·인천·경기 지역 초·중·고 교사 간담회, 2012년 1월 17일.

동문서답이다. 교사는 학생 지도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민원’ 때문이라고. 민원 때문에 ‘체벌’을 할 수 없다고. 인권 때문에 체벌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민원 때문에 체벌을 할 수 없다고 교사는 말한다. 나는 간담회 속 교사의 박약한 인권의식을 탓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간담회 속 교사 말처럼, 학생은 민원 때문에 체벌할 수 없는 게 아니다. 학생은 존엄한 인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때릴 수 없다. 체벌이 교육 수단인가. 초중고등학교 시절 교사들의 크고 작은 폭력에 단련된 나로선, 교사의 체벌은 그저 폭력일 뿐, 교육 수단이 전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랑의 매? 그런 거 없다.

다시 본론으로. 물론 저 교사가 원하는 건 체벌이나 민원 방지가 아니다. 교사가 원한 건 “학생을 지도할 무기나 수단”이다. 체벌이나 민원 방지는 그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다. 그런데 이주호는 “출석정지 기간”를 그 학생지도의 “무기나 수단”인 것처럼 말한다. 출석정지를 10일 이상할 수 있게 하면 민원이 사라지나? 그래서 마음껏 학생을 지도할 수 있나. 오래된 기사에서 발췌한 간담회 속 조각난 풍경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건 이주호가 가지고 있는 교육에 관한 철학이다. 그러니까 이주호에게는 그 교육에 관한 철학이라는 게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런 시시한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주호가 만든 건 ‘출석정지 연장’ 같은 시시한 게 아니다. 이주호는 교육부 훈령으로 ‘학교폭력을 생기부에 기재’하는 놀라운 제도를 만든 장본인이다.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의 의미

그렇다면 이주호가 2012년 교육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대구 중학생의 죽음을 빌미삼아 만든 제도, 학교폭력의 생기부 기재 제도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볼 차례다.

2012년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부의 조치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후 4번의 법률개정안이 발의 되었으며, 조금이라도 불이익한 사항을 기재하지 않으려는 가해 학생 측의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처분에 대한 재심청구 건은 1,000건에 육박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처분 관련 소송은 연간 100건을 넘어서고 있다(2015년 기준). 이 정책과 법제에 대한 재검토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부의 시정명령 등과 이에 불복한 경기도교육감의 취소소송을 다룬 이 판례에서는 (…후략…)

이호용,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에 관한 사무의 법적 성질(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2추183 판결), 법조협회: 2017.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이주호 장관)의 훈령에 반발하던 학교들이 교과부가 특별감사를 시작하자 점점 손을 들고 있다.”

오마이뉴스, “감사받는 선생님들 모습에 마음이 든든해요” [현장] 용인 흥덕고 교사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끈질긴 거부, 2012.09.07.

지난 4월~7월초까지 학교폭력을 특집 취재했다. 그 기간 동안 열다섯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인터뷰이에는 서울시교육감, 교원단체(교총과 전교조), 피해자단체(학가협), 학부모단체(참학), 학생인권단체(아수나로), 가·피해 학생 학부모 등이 포함된다. 모든 인터뷰이들에게 학교폭력의 생기부 기재가 가지는 의미를 물었다. 그만큼 중요한 이슈였다. 이에 관한 답변은 인터뷰이의 입장 차이, 관점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일맥상통한다. 학교폭력의 생기부 기재는 학교 현장에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개조식으로 요약해보자.

  • 학폭 생기부 기재는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긴장 관계를 극단적으로 고조시켰다.
  • 왜냐하면 학폭 생기부 기재는 ‘입시’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는 제도이기 때문이다(입시에 직접 관련이 없는 낮은 조치를 받더라도 혹은 저학년이라서 아무리 높은 조치를 받아 최장의 생기부 보존 기간을 적용하더라도 입시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라도 학폭이 학생의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취급할 부모는, 특히 시간과 자본의 여유를 가진 경우라면, 없다).
  • 입시가 학생의 존재 이유인 나라에서, ‘금쪽 같은 내새끼’가 살아가는 의미인 학부모가 다수인 나라에서 입시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제도는 당연히 첨예한 갈등의 재료가 된다.
  • 그래서 학폭이 터지면 담임 교사는 물론이고, 책임교사(=학폭 교사), 생활지도 교사,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 상담교사(위클래스 교사) 모두에게 비상이 걸린다.
  • 교과 업무는 언감생심, 학폭과 관련한 행정업무조차 수행하기 어려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 조성된다. 왜냐고? ‘내새끼 운명이 걸린 전쟁’이 학교 한복판에서 시작됐으니까.
  • 이런 상황에서 학폭에 관한 교사의 스트레스는 폭발적으로 치솟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학폭 관련 보직은 기피 보직이 된다. 그러니까 그 학폭 관련 보직은 신참이나 기간제 교사의 몫이 된다.
  • 이런 학교 현장의 비명에 가까운 아우성 때문에 학교폭력 업무는 학교 안에서 바깥(교육청)으로 이관된다(2020년 3월). 이걸 주도한 사람이 진보교육감으로 분류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고, 그렇게 학폭을 심의하는 기구인 ‘학폭위’는 학교자취위원회에서 교육청학폭심의위원회로 옮겨진다.
  • 학폭을 둘러싼 기본적인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죄수의 딜레마’ 관계다. 서로를 믿어야 이익이지만, 서로를 격리시키고 가두고 있어서 소통이 불가능해 서로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손해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제도가 교사와 학부모를 강제적으로 그런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교사도 학부모도 그런 관계는 원하지 않는다. 누군든 아니겠는가. 굳이 그런 갈등을 스스로 원할 리 없다.
  •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옥타곤은 우리(교육부)가 만들 테니 선수들(교사, 학부모)은 열심히 싸우시면 됩니다.’
옥타곤은 우리(교육부)가 만들어 드릴 테니 마음껏 싸우세요.

흔히 학폭에 관해 궁금해 하는 지인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라진 공동체 ‘응팔’(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하나)의 세계관에서 학폭은, 그 갈등과 폭력이 미성숙한 청소년의 일시적 비행이라는 전제에서, 동네 어른들, 그러니 학부모의 훈육을 통해 거의 해소된다. 그런 방식이 얼마나 바람직한지, 얼마나 교육적으로 효과적이었는지, 지금 다시 가능한지 등에 관한 논의는 일단 생략하자.

거기에 ‘자녀의 장래를 건 무한 법정 투쟁’ 같은 건 없다. ‘야, 이 노무새끼, 친구를 때리면 돼? 어서 잘못했다고 사과해!!’ 이렇게 따끔하게 야단치고, 어른들끼리도 서로 미안해하면서, 서로 제대로 살피겠다고 다짐하면서 대체로 ‘학폭 상황’은 정리된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교사들은 학폭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별로 없다. 학부모들이 선생님께 미안해 하고, 선생님도 아이들 잘 살피지 못해서 미안해 한다. 자신들로 인해 서로 미안해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들도 배운다. 물론 그 세계에서는 교사들의 폭력이 난무하고, 학생의 인권이 개무시된다. 그런 세계를 미화할 생각 없다.

교육과 훈육의 ‘공동체’가 버티던 따뜻한 시절. 하지만 교사의 폭력이 당연했던 야만의 시절.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무너뜨린 청소년 가족 판타지, 덕선렐라 스토리이자 우리 마음의 리얼리즘.
그러니까 ‘걸작’ [응답하라 1988] (2015, tvN)
극 중 정환(류준열)은 선우(고경표)를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조롱하는 학교 선배 ‘아구창’을 날린다.
현재의 학폭법이라면, 정환이의 일격은 우정일까, 학교폭력일까.

하지만 인스타 언팔을 했기 때문에, ‘야, 이 돼지야!’라고 폭언을 해서, 복도에서 부딪혀서 넘어졌기 때문에, 체육시간 축구 경기에서 태클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다. 피해(주장)자가 ‘먼저’ 신고하고, 그 의지를 관철하면, 학폭위는 ‘무조건’ 열린다. 학교 차원에서, 교사 차원에서, 학부모 차원에서 그 단순한 오해와 갈등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그게 현행 학폭법이다. 물론 이런 사안들이 학교폭력으로 판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물론 더글로리 같은 심각한 학폭도 있다. 그건 강력범죄다. 하지만 비율적으로 매우 적다. 나는 강력범죄로 분류되는 학폭에 관해선 현행보다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것도 여기에선 일단 논외로 하자.)

이제 가정의 훈육과 학교의 교육는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에 그 자리를 내준다. 현행 학폭 시스템의 유일한 승자는 변호사다. 지금 당장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로 네이버든 구글이든 검색해 보시라. 아이들의 다툼은 그게 사소하든 중대하든 아이의 장래를 건 학부모와 학부모 사이의 대결, 전쟁이 된다. 초등학교 학생도 마찬가지다. 입시에 당장 불이익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학폭위에서 1호 조치(반성문, 가장 가벼운 조치)를 받은 아이의 별명이 ‘학폭’이 되면, 당연히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게 인지상정, 부모 마음다(참학 이윤경 회장 인터뷰에서 청취한 사례).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학폭은 신고 단계부터 철저하게 준비하셔야 합니다. 수임료는 기본 1000만 원입니다.”
(학폭 전문 변호사 광고와 실제 사례 참고)

학부모는 전장에 내몰린다. 교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긴장은 고조되고, 누구도 승자는 없다. 교사와 학부모는 이 비열하고 냉정한 게임에 강제로 내몰린채 승자 없는 게임을 강요받는다. 교사와 학부모는 ‘불신’이 지배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다. 믿고 싶지만, 믿는 순간 나에게 불이익이 될 것 같은 강박과 피해의식이 지배한다. 서로 믿지 못한다. 서로 믿을 수 없는 게임을 강요당한다.

이제 학폭은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미안해하면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학폭은 가해 학생 부모든 피해 학생 부모든 내 새끼 미래가 걸린 ‘게임’이다. 그 게임에서 교사는 항상 못미더운 ‘심판’이 된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고, 낙오자가 된다.

그렇게 학폭 업무는 기피 업무가 되고, 학부모의 ‘갑질’이 일상화하고, 민원이 폭주하고, 교과 업무는 마비된다. 교사들의 아우성이 학교를 가득 채우고, 앞서 살핀 것처럼, 그렇게 학폭위는 학교 안에서 학교 밖 교육청으로 이관된다(2020년 3월).

그리고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게임, 이 갈등의 게임, 절망의 게임을 만든 게 2012년 이주호다. 그리고 그런 그가 교사의 죽음 앞에서, 감히 “학생 인권”을 운운하며 훈계하고 있다.


2023년의 교사

“선생님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침해받지 않고 학생 인권과 교권의 균형을 바르게 세우도록 더욱 힘쓰겠다. 학생 인권 조례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2023. 7. 21.

“과거 우리 학교에서 교사의 학생 체벌 문제가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사가 체벌은커녕 제자에게 구타를 당하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교단을 떠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교사에 대한 교육 활동 침해 행위는 2020년 1197건에서 2021년 2269건, 2022년 3035건으로 증가 추세다. 폭언, 모욕, 수업 방해 등이다.

이처럼 교권이 바닥까지 추락한 핵심 계기로 교육계는 2010년 도입된 ‘학생 인권 조례’를 꼽는다. 진보·좌파 성향 교육감들이 추진한 정책이다. 교사에 대한 신고·조사 요구권, 복장·두발 자유, 휴대전화 강제 수거 금지 등을 담고 있다. 학생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느끼면 교육청에 신고하고 교육청은 인권 옹호관을 파견해 해당 교사를 조사한다. 전국 17곳 교육청 가운데 2010년 경기, 2012년 서울 등 6곳이 도입했다.”

조선일보, 선생님을 약자 만든 학생인권조례… 교권침해 年 3035건, 2023. 7. 22.

교사의 죽음을 정치질의 재료로 삼아 교육에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색을 덧씌우고,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를 볼모로 권력 게임을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게임에 휘둘려 계속되는 절망의 게임을 만들어 놓고, 그 게임 속에서 희생되는 소년과 교사를 방치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2023년의 교사가 만들어 낼 제도는 무엇인가. 이런 자들에게 교육의 미래, 학교의 미래를 맡겨선 안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할 것인가: 몇 가지 대안

  1. 학교폭력예방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학교폭력을 학교갈등, 학교괴롭힘, 학교범죄로 삼분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갈등은 자율적 해결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게 하고, 학교범죄는 수사기관에 넘기며, 학교괴롭힘 문제는 고의, 반복성, 힘의 불균형이라는 단 올베우스의 ‘불링(bullying)’ 요건을 도입해 예방 중심으로 그 교육방식을 재편해야 한다.
  2. 학폭 생기부 기재는 전면 재고해야 한다. 만약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면, 그 제도의 효용을 먼저 증명하라. 이 제도를 만든 이주호 장관과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이 그 일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 제도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범죄 수준의 학교범죄는 강력하게 처벌하면 그뿐이다. 왜 소년범죄도 기록되지 않는 생기부 기재를 학교폭력이라는 이유로 기재해야 하는가. 이는 법의 전체적인 체계와 형평성에서도 어긋난다(아래 ‘법원 위에 학폭위’ 참고).
  3. 교과 교사와 생활 교사를 분리해서 교실에 복수 교사 배치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행 상담교사를 문제 학급의 생활 교사로 그때그때 배치하는 과도기적 시행도 고려해 볼 만하다. 현행 상담교사 제도는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슬로우뉴스 학생 인터뷰 참조).
  4. 학교괴롭힘 예방 프로그램으로 방관자 교육(올베우스 프로그램, 키바 프로그램)와 회복적 생활교육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어울림 프로그램의 예산과 운영 방식을 공개하고 프로그램 개발 방식을 전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5.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을 가져왔다는 객관적 증거가 존재하는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6개 지역과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나머지 지역을 비교 연구해서 학생인권조례가 정말 교권 추락의 원인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현재 벌어지는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을 중단해야 한다.
  6. 학생, 교사, 학부모 및 교육 전문가와 시민이 모두 참여하는 공론조사 방식 논의가 필요하다.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더는 누구든 교사의 죽음을 정치적 빌미로 삼아 자신의 기득권을 확장하려고 해선 안 된다.

내가 제시한 대안은 완벽하지 않다.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다. 다만, 당장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범인 찾기’식 감정적 폭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건 2011년 소년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학폭 생기부 기재’라는 증오와 갈등의 제도를 남긴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일이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몇 가지 참고.

학교폭력을 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려는 시도는 김영삼 정부에서도 있었다. 윤근혁이 쓴 “학생부 ‘학교폭력’ 기록? 이미 1996년 백지화했다.”라는 기사는 1996년 당시 종이신문 사진을 캡처해서 인용한다. 재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1995년 12월 2일자 경향신문 23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  1996년 1월 19일 경향신문 22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교육부는 학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의 징계 내용을 종합생활기록부에 기재키로 했던 지침을 백지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방침은 학창시절의 일시적인 비행내용을 종합생활기록부에 기재함으로써 진학과 취업 등 사회생활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며 지나친 처사란 일선 교육계의 반발에 따른 것이다.”

1996년 1월 19일 경향신문 22면

“상급학교로의 진학 자료로 사용됨으로써 학생들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헌재의 ‘학폭 생기부’에 관한 합헌 판결문 중 일부다. 지독한 무지. 그 헌법재판관들의 무지로 인해 이주호의 잘못된 훈령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생기부 기재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거나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전혀 아니다. 생기부 기재가 학교폭력을 예방하거나 재발을 방지했다는 근거가 있다면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다. 그런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건 기재조항 및 보존조항은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교정 및 선도와 학교폭력 예방을 그 목적으로 하므로,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 학교폭력 관련 조치사항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보존하는 것은 가해학생을 선도하고 교육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되고, 특히 상급학교로의 진학 자료로 사용됨으로써 학생들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비록 경미한 조치라 하더라도 학교생활기록부에의 기재 및 보존의 필요성이 있고, 관련 조항들에서 목적 외 사용금지 등 활용목적의 확대 및 남용에 따른 부수적인 기본권침해도 방지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도 인정된다. 안전하고 건전한 학교생활보장 및 학생보호라는 공익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인 학생이 입게 되는 기본권제한의 정도에 비해 그 보호가치가 결코 작지 않으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된다. 따라서 이 사건 기재조항 및 보존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제7조 제3항 등 위헌확인, 전원재판부 2012헌마630, 2016. 4. 28.

심창보(서울특별시남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 담당 변호사)의 칼럼 “생기부 기재로 학폭이 예방될까”(한겨레, 2023. 3. 27.)는 학폭과 생기부, 그리고 소년범죄에 관한 몇 가지 놀라운(!) 법적 상식을 알려준다. 이를 발췌해서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소년법 제32조 제6항)
  • 따라서 “소년보호재판을 통해 보호처분이 내려질 수 있는데, 이 처분 또한 범죄기록이나 생기부에 기재되지 않는다.” 즉, 잘못의 크기/무게가 대체로 훨씬 더한 범죄는 생기부에 기록되지 않는데, 학폭은 생기부에 기록된다.
  • 그래서? 가정법원(혹은 형사법원) 재판을 통한 처분이나 처벌마저도 생기부에 기재되지 않는데,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는 생기부에 기재된다.
  • 심창보는 다음과 같은 명확한 사실을 지적한다. 소년범죄(의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학교폭력이 훨씬 많다. 이는 상식적으로도 당연해 보인다. 더불어 학폭법을 봐도 명확하다. 왜냐하면 현행 학폭법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물리적 폭행, 정신적 폭력, 금전적 손해까지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결론은? 소년범죄가 예방의 필요성이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범죄에 관한 처분은 생기부에 기재되지 않고, 학교폭력은 생기부에 기재된다. 현행 학폭법은 법의 형평성마저 깨뜨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 아니 그 역효과가 강하게 우려된다. 이미 앞서 살펴본 바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