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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게만 에이즈 검사를 강요할 수 있는가

 

공포는 혐오가 움트는, 최적의 토양이다. 그 공포의 원인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거나 유언비어성의 집단심리에 의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허무맹랑한 혐오는 대중추수주의에 물들기 쉬운 국가에 의해서도 너무도 쉽사리 이루어진다.

2009년 이주노동자에게 에이즈(HIV) 검사를 강요한 교육부와 00광역시 교육청의 조치를 불법적 차별이라 판단하면서, 그에게 국가가 3,000만 원을 배상할 것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민사35단독: 김국식 판사)의 판결(2019. 10. 29. 선고 2018가단5125207)은 이를 잘 보여준다.

 

법원은 이주노동자(뉴질랜드 국적의 외국인 교사)에게만 차별적으로 에이즈 검사 등을 강제한 교육부의 '2009년 지침'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지침을 거부해 한국에서 추방당한 원어민 교사에게 지난해('19년) 10월 29일 서울중앙지법(김국식 판사)는 3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주노동자(뉴질랜드 국적의 외국인 교사)에게만 차별적으로 HIV/에이즈 검사 등을 강제한 교육부의 ‘2009년 지침’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지침을 거부해 한국에서 추방당한 원어민 교사에게 지난해(’19년) 10월 29일 서울중앙지법(김국식 판사)는 3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이주노동자 강제 에이즈 검사 배상 사건 
  • 2019. 10. 29. 선고, 2018가단5125207
  • 서울중앙지법 민사35단독 김국식 판사

인권위는 외면하고, UN은 인정한 ‘외국인 차별’

사건의 내역은 이러하다. 뉴질랜드 사람인 A는 2008년 8월 입국하여 울산광역시의 한 초등학교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근무하였다. 이때 그는 고용계약에 따라 자발적으로 에이즈 검사와 마약 반응 검사 등의 검진을 받고 그 결과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1년 후인 2009년, 원어민 영어교육 사업(EPIK)을 주관하던 국립국제교육원은, 해당 원어민 교사 A에게 다시 마약, 에이즈 등의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제출할 것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2009년도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미 1년 전에 고용계약에 따라 자발적으로 에이즈 검사와 마약 반응 검사 결과를 제출했는데도 말이다.

지난 1년 동안 원어민 교사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재계약하자는 제안을 받고 있던 A는 이 지침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조치라는 이유를 들어 건강검진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교육감은 그를 재계약 대상에서 빼버렸고, A는 어쩔 수 없이 2009년 9월 대한민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에서 A는 이 지침이 자신의 평등권, 근로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근로자에게 에이즈 검진 결과서 제출을 강요할 수 없도록 한 (구)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나아가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 인종차별 철폐협약 등의 국제인권규범에도 반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그는 2009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한상사중재원에 이런 차별적 조치를 고발하는 진정을 하였으나 이듬해 4월과 6월 각각 거부당하였다. 하지만 UN은 달랐다. 그가 2012년 12월 유엔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이 사건을 진정하자, 이 위원회는 2015년 5월 제86차회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각하결정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계 외국인교사나 한국인 교사에게는 실시하지 않에이즈·마약검사를 외국인 교사에게만 강제하는 것은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위반한 차별임에도 아무런 구제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위원회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A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한편, 외국인 혐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의 조치를 권고하였다(이후 자유권위원회와 사회권위원회도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그저 '외국인' 교사이기 때문에 에이즈 검사와 마약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당신이 그 외국인이라면?

그저 ‘외국인’ 교사이기 때문에 에이즈 검사와 마약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당신이 그 외국인이라면?

‘2009년 지침’ = 영어 욕망 + 외국인 거부감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이 결정과 맥을 같이 한다. 교육청이 A에 대하여 에이즈 검진을 요구한 것은, (구)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위반한 것인 동시에, “감염인 또는 감염인으로 오해받아 불이익을 입을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저버린, 위법성이 농후한 행위로서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는 원어민 영어교육 광풍에 따라 외국인 강사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자녀에게 ‘본토식’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욕망과 영어권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틈틈이 보도되는 “불법 외국인 영어 강사”와, “한국여성과 원어민 강사의 교제”에 대한 왜곡된 반감, 극소수 원어민 강사들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생소함 등등이 90년대부터 급격히 증가한 외국인 거주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가중시켰고, 여기서부터 ‘원어민 강사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자’라는 요구들이 가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성추행-에이즈 위협까지…일부 외국인강사 변태행각 충격”(2005. 5. 27. 스포츠조선)과 같은 가십성 기사는 이런 불안에 불을 붙인다.

[2009년도 지침]은 이와 같은 당대의 공포 위에 만들어진다. 내국인 교사나 한국계의 외국인 교사에 비하여 일반 외국인이 에이즈에 감염되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가능성이 더 많다는 그 어떠한 증명도 없는 상태에서, 그래서 “갑작스런 정책 변경을 정당화할 만한” 그 어떤 사정도 없는 상황에서 그 지침이 만들어졌다. 이 판결이 지적하듯, 2007년~2009년 사이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에이즈 양성 반응으로 계약 해지된 원어민 교사는 겨우 3명에 불과하며, 2013년~2017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더구나 2010년부터는 이런 에이즈 검사를 요구하는 지침 자체가 폐지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이런 식의 외국인 차별과 혐오를 단 한 치의 반성도 없이 [2009년도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가공해 버렸다.

지난해 2019년 12월 1일 제32회 세계 에이즈의 날 홍보 포스터. 참고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HIV 감염인 중 면역 체계 손상이 진행한 경우)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발병하지 않은 HIV 감염은 마치 성인병과 같이 잘만 관리하면 30년 이상 여명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 2019년 12월 1일 제32회 세계 에이즈의 날 홍보 포스터. 참고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과 에이즈 환자(HIV 감염인 중 면역 체계 손상이 진행한 경우)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발병하지 않은 HIV 감염인 잘 관리하면 30년 이상 여명을 기대할 수 있다. 이제 HIV 감염은 당뇨병처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의학이 발전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뻔뻔함… 반성하는 모습 그나마 다행  

그래서 A 씨의 처절한 투쟁을 두고 “결코 권리 위에 잠자고 있지 않았음”이라 표현한 이 판결문은 “5년이라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대한민국의 뻔뻔함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원고의 조치에 대하여 다투기만 할 뿐 현재까지도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피고 대한민국의 반인권적 처사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자, 외국인 혐오의 현실을 과감히 깨쳐 나가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뼈아픈 경종이다.

A씨의 진정을 받아들인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법무부는 2017년 7월 외국인 강사에게 에이즈 검사를 강제하던 고시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이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하여 피고 대한민국은 더 이상의 상소를 포기함으로써 그나마 인권보장에 철저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판결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저지른 반인권적 행위에 대하여 국제인권기구가 구제결정을 내린 경우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 결정이 내려진 때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판결 내용도 우리의 인권을 보장하는 또 하나의 발판으로 자리매김된다. 민변과 경향신문이 이 판결을 2019년 디딤돌 판결로 선정한 것은 그래서 당연지사이다.

사족으로, 10년 전 A 씨의 진정을 각하해버린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판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없음이 아쉽다.

10년 전

10년 전 A 씨의 진정을 각하해버린 인권위는 이번 판결을 어떻게 볼까?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기획한 ‘광장에 나온 판결’ 연재의 일환으로 필자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입니다. 이번 판결 비평은 외국인 강사에게만 에이즈 검사를 요구했던 국가의 행위의 차별성을 인정한 판결을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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