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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오늘 ‘광장에 나온 판결’에서는 이혼 후 양육비 지급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부·모 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에 관한 1심 무죄 판결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판결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 일명 ‘배드파더스’ 사건
  • 2020. 1. 15. 선고, 2019고합425
  •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이창열 부장판사)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A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이 글의 필자는 김아래미(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님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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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특별히 생존과 발달을 위해 다양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 196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되어 있는, 전 인류가 공유하는 기본 원칙이다.

그렇다면 누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가?

약 80% 양육비 받지 못해

굳이 헌법조문과 그 밖의 관련 법률조항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 책임은 우선적으로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부모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혼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양육부모는 자녀의 양육책임에 소홀해지기 쉽고, 따라서 현행 법은 아동의 생존권을 위하여 비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부담하게 하는 방식으로최소한의 양육 책임을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아동은 보호와 보육이 필요하고,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있다. 그래서 법은
아동은 보육이 필요하고,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있다. 그래서 현행 법은 아동의 생존권을 위해 양육하지 않는 부모에게 양육비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양육 책임을 이행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법이 부여한 양육비 이행은 잘 되고 있을까? 현실은 무척 암울하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부모가구의 78.8%는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부모가구의 소득이 전체 가구 평균의 절반(약 56.5%) 수준에 불과한 상황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양육비 미이행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얼마 전에야 시작되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4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되었으나, 법의 강제력이 약해 실효성이 낮다. 정부가 양육비지급을 명령해도 최대 30일 이내 감치될 뿐 버티면 그만이다. 사실상 아동의 기본적인 삶이 위협받고 있지만, 현재의 법적·제도적 틀에서는 해결 방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배심원 전원, ‘배드파더스’는 무죄! 

법이 한부모가구 아동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못하자, 한 개인이 2018년 7월 ‘배드파더스’라는 사이트를 통해 양육비미지급 부모의 이름, 나이, 거주지역, 직업, 사진 등 개인정보를 그야말로 ‘용감하게’ 게시하였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렇게라도 해서 양육비를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래도 이렇게 개인정보를 게시하는 것은 심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던 중 결국 2018년 9월 배드패런츠(남성 3명, 여성 2명)가 이 사이트의 운영자를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2020년 1월 15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재판에서 배심원 7인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냈고,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체면, 정보 등이 중시되어 왔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이번 판결은 개인의 명예보다 아동의 생존권이라는 공익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특히 배심원 7인이 만장일치로 그 점을 인정하였다는 것은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과이다. 아동의 생존권과 부모의 양육 책임에 대한 중요성을 고려할 때 매우 당연한 판결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놀라운 판결이라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배드파더스

 

‘개인 명예’보다 ‘아동 생존권’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배더파더스의 운영은 공익적 성격이 더 크다고 판단하였다.

  1. 운영자가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개인정보 공개 목적으로 사이트를 생성하고 같은 목적으로 계속 운영한 점
  2. 운영자가 사익을 전혀 취득하지 않은 점
  3. 비하적·모욕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점 등

이는 2019년 2월 방송통신위원회개인의 명예훼손보다 신상 공개로 인한 공익성이 더 크다는 사유로 배드파더스 사이트 차단을 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이는 향후 공익적 사유로 개인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처벌할 수 없다는 선례로 활용되어, 우리 사회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그간 활발히 논의되어 온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주장에도 힘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본 판결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중요한 법률적·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가족 간에 해결할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가 아동의 생존권을 위해 책임있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본 판결은 사회적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명시하면서, 배드파더스를 이러한 사회적 노력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 현재까지 이 홈페이지에 게시된 400명 중 113명이 양육비를 지급하는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아이 아동 교육 훈육 보육 부모 자식

강력한 법적 제재 필요 

그러나 이 배드파더스는 법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실효적으로 해결할 때까지만 유효한 사이트이다. 다른 OECD 국가들처럼 양육비 미지급자를 강력히 처벌하고 양육비가 제때에 지급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 미국: 양육비 미지급자를 아동학대로 형사 처벌. 
  • 호주: 양육비를 임금에서 자동 차감. 
  • 프랑스와 영국 등: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양육비대지급제도 시행 중.
  • 다수 OECD 국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 취소, 여권 발급 불허 등의 제재 조치.
미국은 양육비 미지급을 강력범죄로 처벌한다. 다수의 OECD 국가에서도 다양한 법적 제재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양육비 미지급자를 ‘아동학대’로 형사 처벌한다. 더불어 다수의 OECD 국가에서도 다양한 법적 제재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상황임을 분명히 상기해야 한다. 현 제도의 낮은 실효성으로 볼 때, 개선될 제도는 아동이 생존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과감하고 확실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양육비대지급제도를 시급히 추진하고, 전재수 의원이 2019년 발의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형법’의 개정안(양육비 지급불이행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안)을 참고하여 양육비 지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이번 판결에 대한 환호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공익적 목적으로 사익 추구없이 애쓰고 있는 배드파더스 운영자는 앞으로도 꽤 많은 에너지를 소송에 쏟아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국민이 알고 있는 ‘아동의 생존권이 개인의 명예 훼손보다 우선한다’는 명제를 검사도 하루빨리 깨달아 항소를 취하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관련 법의 개정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배드파더스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한부모가구 아동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그 날을 어서 빨리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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