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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바그다드, 니스, 베를린… 잊을 만 하면 테러 사건이 터집니다.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지 20년을 바라보지만, 문제는 더 나빠진 것 같습니다. 그 중심에 이슬람이 있습니다. 이 연재는 4편에 걸쳐 테러와 폭력의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로서 이슬람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를 그 뿌리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필자)

그들은 왜 알라의 이름으로 총을 드는가

  1. 이슬람과 문명화
  2. 옆집 아저씨가 총을 드는 이유
  3. 지하드의 광시곡
  4. → 분노의 지리학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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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엔 안식이 없고,
사마르칸트로의 금빛 여행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밝은 믿음을 감춰버린
동방의 모래보다 덥고 깊다네.

– 제임스 엘로이 플레커, 사마르칸트로의 금빛 여행

동방의 모래 위에서

2015년 2월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 처음으로 사막을 봤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죄수들이 깔았을지 노동자들이 깔았을지 모르는 철도를 탔을 때 차창 밖에는 광활한 모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장관이었다. 거기서 한숨 자고 새벽쯤 깨서 창밖을 바라보자 더욱 그림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적막한 사막에 내가 타고 있는 열차만 철커덩철커덩 지나가고 그 위로는 달이 참 하얗게 빛난 채로 사막을 밝혀주고 있었다.

사막 해 태양 노을

내 사진기로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풍경이었는데 오히려 사진으로 못 남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으로 박제된 것보다 머릿속에서 언제든지 떠올리며 나만의 상상을 덧댈 수 있는 그런 경관이 때로는 더 좋기 때문이다.

지금은 철도가 다니고 있지만, 과거에 이 길은 은종을 울리며 길을 가는 낙타 행렬이 지나던 곳이었을 것이며, 낙타가 철도로 바뀌는 동안에도 사막은 그대로고 그 위에 떠 있는 달도 그대로였을 것이다. 이슬람을 바라볼 때는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황금과 비단과 향신료를 유라시아 대륙 양쪽 끝으로 옮기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걸 마다치 않고 대상들이 지나온 이 사막이라는 공간을 말이다.

문화는 사막을 설명할 수 없다, 사막이 문화를 설명한다

나는 이 연재의 첫 편에서 이슬람을 둘러싼 폭력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시각을 살펴보았다.

하나는 ‘이슬람 원인론’이었다. 이슬람 원인론은 이 모든 문제가 이슬람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코란에는 이교도에 대한 폭력을 추동하는 구절이 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군사적인 성취를 통해서 교세를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종교는 원래부터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들이 믿는 종교가 독재, 빈곤, 테러, 여성억압, 인권탄압을 비롯하여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이슬람 원인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무슬림이 신성시하는 코란의 자구,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의 에피소드들 하나하나를 가지고 와서 이것이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총을 들도록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Day Donaldson, CC BY https://flic.kr/p/pWLvG8
Day Donaldson, CC BY

하지만 명백한 헛소리다. 특정 이념이나 종교는 그저 어떤 사회가 직면한 도전을 풀기 위해서 채택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당연히 문제가 달라지면 해결책도 달라진다. 특정한 종교가 뿌리내린 사회의 지반이 바뀐다면 그에 맞춰서 종교의 역할이나 기능도 달라진다.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는 지중해 각지로 폭력을 전파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 남부 정착지 사이에서 복음주의 교회는 국가가 파고들지 못한 곳에서는 구성원의 폭력성을 억제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가 모순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코란에는 불신자(Kafir)를 적으로 규정하는 구절도 있지만, ‘나는 너희에게 나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절도 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런 모순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초기 이슬람 공동체는 전쟁을 통해서 외부로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였고 내부의 유대인 네트워크를 제압하는 것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랍인보다 선진적인 행정 기술, 조직 역량을 갖춘 이교도와의 협치도 중요했다. 모든 이교도를 단번에 제압하고자 했으면 이슬람 제국은 세워지기도 전에 멸망했을 것이다. 이것은 특정한 종교가 어떤 일관된 본질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망상인지 잘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또 다른 문화들

이슬람 말고도 서구는 이런 식의 편견을 많이 가지고 왔고, 확대 재생산해왔다. 한때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티즘과 달리 태생적으로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 종교라는 말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의 에스파냐, 포르투갈마저도 프랑코와 살라자르 독재정권 치하에 있었고, 몇몇 학자는 그 국가들이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공유한다는 것이 독재의 원인이라고 주목했다. 그러나 이런 소리들은 70년대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을 시작으로 에스파냐와 라틴아메리카 각지로 번져간 민주화 운동의 물결 앞에서 잠잠해졌다.

또 과거 몇몇 학자들은 동아시아 국가의 빈곤을 유교 탓으로 돌리곤 했다.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집단 논리에 모든 것을 질식시키는 유교가 이 지역 저발전과 후진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1940년대 많은 미국의 소위 ‘아시아 전문가’들은 일본인이 그저 말하는 가축이고, 민주주의는 그들 문화에 맞을 수가 없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을 지나며 이 국가들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속도의 개발을 이루어내자 다른 목소리들이 고개를 들었다.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과 공동체의 발전에 헌신하는 유교가 이 지역 개발의 최대 성공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슬람 기독교

이 모든 말들이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화는 독재, 개발, 민주주의, 여성인권 등을 설명해주는 ‘궁극인’(final cause)이 될 수 없다. 문화는 그저 사회의 바탕에 깔린 경제와 사회 시스템에 맞춰 변화하는 현상일 뿐이다. 그것은 대체로 원인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이슬람이 폭력과 독재와 저발전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째서 압바스 칼리프의 전성기의 바그다드, 파티마 칼리프의 카이로가 다른 모든 유럽 국가들을 압도했는지 설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째서 기독교적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했다는 유럽의 군대들이 오스만 제국에 처절하게 패배했는지도 설명해야한다. 어째서 비슷한 역사와 환경을 공유하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가장 부유한가? 예외를 끝도 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논증 수단은 아니다. 하지만 진지한 논증이 사실상 필요 없을 정도로 문화결정론은 이제 설명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보인다.

지리가 대체로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이슬람 지역이 대체로 저발전 상태에 놓여 있고, 폭력이 빈발하는 원인은 이슬람이 아니다. 첫째로 그 원인은 지리와 환경이다. 이슬람이 처음 시작돼 퍼져나간 곳은 사하라 사막과 아라비아 사막을 거쳐 이란 고원과 중앙아시아의 스텝지대로 이어진다. 이들 지역은 모두 농경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은 오아시스, 강,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협소한 농업지대와 그 농업지대를 이어주는 상업도시들로 구성되었고, 지배자는 현지민과 큰 관련이 없는 유목제국의 지도자이곤 했다. 이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인구집단이 주축이 된 영토국가가 조성되기 어려웠다.

이집트 아랍 북아프리카 중동

유럽은 400년 전쟁을 통해서 영토 국가를 확실히 뿌리박을 수 있었다. 동아시아는 집약적 쌀농사 지대라는 지리적 유리함으로 1600년대에 이미 영토국가 체제를 완성했다. 유럽과 동아시아는 전근대 영토국가에서 근대적 국민국가와 리바이어던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중동의 국가는 다양한 하위국가정체성을 가진 인구집단들의 이합집산이나 다름없었다.

다양한 민족, 종파, 종교로 갈라져 있던 이들은 더 큰 공동체의 국민으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종래의 갈등을 국가라는 틀 속에서 그대로 진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때로 식민 정부가 이에 개입하고 갈등을 조장하기도 하였다. 생태적으로 취약한 이들 지역이 인구폭발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후 변화의 충격에 버텨내지 못하자 농촌은 해체되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몰린 빈민들은 정부를 전복하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향해 총을 들었다. 아니면 인구밀도가 희박하고 국가가 붕괴하여 제대로 된 치안이 자리 잡지 못한 곳으로 들어가 군사력을 키워 무장집단으로 활동했다.

리비아 사례, 그리고 그 너머

카다피 정권의 붕괴는 어떻게 중동의 건조지대에서 폭력이 확산되는지 잘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리비아는 투아레그, 베르베르, 아랍인이라는 다른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였다. 즉 트리폴리, 벵가지, 시르트 등의 도시를 기반으로 한 서로 다른 아랍 부족들이 뭉친 나라 아닌 나라였다. 잡다한 모든 부족의 수를 다 합하면 5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카다피는 그 중 자신이 속한 카다파 부족을 기반으로 철권통치를 해왔다.

카다피 정권이 사회주의를 기치에 걸고 교육에 힘쓴 결과 인간개발지수는 중동에서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국민의 3분의 1이 빈곤선 아래에 살았고 실업률은 10%가 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권의 기반이 협소하다보니 카다피가 석유를 통해 얻은 수익을 본인의 족벌정치를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썼다는 데 있었다. 카다피의 측근과 부족들은 많은 수혜를 보았지만, 동부는 전혀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2011년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촉발된 아랍권 민주화 운동은 이런 임계점까지 올라온 긴장에 불을 지폈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전으로 비화되었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 (1942년 6월 7일 ~ 2011년 10월 20일)
무아마르 알 카다피 (1942년 6월 7일 ~ 2011년 10월 20일)

이 갈등은 어느새 국경을 넘어 퍼져갔다. 카다피의 친위군으로 복무하던 투아레그 군대가 정부군이 붕괴한 것을 틈타 국경을 넘어 투아레그 동포가 살고 있는 말리로 대거 유입되었다. 말리의 투아레그들은 군을 조직해 독립을 요구했고,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자 말리 정부마저도 쿠데타로 전복되고 말았다. 이후 알카에다 계열 반군들이 말리로 들어와 세력을 확대하면서, 안 그래도 식량과 물 부족으로 만성적인 빈곤에 처해 있던 말리는 총체적인 혼란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수많은 말리 난민이 사하라 사막을 건너 알제리로 갔고 많은 수는 유럽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이슬람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일들은 이슬람이 없어도 일어나곤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 청 제국이 붕괴하고 국가가 통합되지 못한 채 리더십이 형해화하자 중국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다.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footnote]토마스 맬서스(1766년 ~ 1834년)가 [인구론]에서 주장한 가설. 기술 발전으로 임금과 식량 생산 그리고 위생 여건이 호전되면 인구가 증가 → 인구가 생산 능력을 초월해 위생이 악화하고, 질병과 전쟁 등으로 다시 인구 감소 → 인구 감소로 다시 임금과 식량 상태 및 위생 환경 호전되면 인구 증가… 이와 같은 주기가 반복된다는 이론. 현재 관점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혁파된 이론이지만, 멜서스의 인구 이론은 당대 뿐 아니라 후세에도 여러 분야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footnote]에 걸려 있던 당시 중국에서는 전쟁과 기근으로 대규모 난민이 만성적으로 발생했다. 당시 중국에서 일어나던 일들을 지금 뉴스로 접한다면 시리아 사태 못지않은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르완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도 인구가 폭발하고 생태적 한계에 부딪혔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갈등이 폭발하여 참혹한 내전으로 이어졌다. 농지 확보를 위해서 후투족끼리도, 투치족끼리도 서로 죽이곤 했었다. 이 갈등은 후에 인접한 부룬디로 이어져 30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생태적으로 한계에 몰려서 농촌이 붕괴 위기를 맞고, 그 위기가 도시까지 전이되었다는 점, 그리고 외부 붕괴로 하위국가집단 네트워크를 통해 폭력이 전이되기 좋을 만큼 국경선과 민족이 일치하지 않는(사실 일치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이슬람 무관론?

‘이슬람 원인론’이 아닌 다른 설명은 ‘이슬람 무관론’이었다. 이들 지역의 폭력과 독재를 설명하는 데 이슬람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이슬람은 이런 문제와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빈곤이 불교와 관련이 있는가? 멕시코의 선거 권위주의에 가톨릭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저발전 지역의 빈곤과 독재를 살펴보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이슬람을 들여다보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구태여 이슬람을 관련이 있다고 계속 끌고 오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는, 과거의 잘못된 시각의 잔재일 따름인 것이다. 이슬람 무관론은 확실히 이슬람 원인론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설명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 폭력의 원인인 국가실패나 환경적 취약성에 주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랍 이슬람 모스크

하지만 이 또한 온전한 설명이 되어줄 수 없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화자는 “아무것도 사실 중요하지 않아(Nothing really matters)”라고 노래를 끝내지만, 실제로는 아주 많은 상관이 있다. 독재, 저발전, 빈곤이 국가실패와 폭력의 만개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왜 이슬람 국가들이 신문 국제면 뉴스의 다수를 차지하는지에 관한 설명을 제공하진 않는다. 그리고 왜 유럽의 초국가 테러를 일으키는 외로운 늑대들은 하나같이 (노르웨이의 극우 테러범 브레이빅을 제외하곤) 무슬림인지도 설명해줄 수 없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나 부두교에 심취한 자메이카인이 런던에서 테러를 벌이는 뉴스를 들어보기는 힘들다. 홍콩의 해방을 촉구하며 미국에서 자살폭탄테러를 벌인 중국인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알라의 이름으로 터지는 폭발소리와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침과 함께 들리는 총성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언론과 일반 사회의 인식이 이슬람에 대한 편견 때문에 무슬림에게만 집중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확실히 이슬람과 테러가 높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다들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알라의 이름으로 총을 들게 만들었는가?

공유하는 환경 위에서 퍼져나가는 네트워크

이를 알기 위해서는 또 사막을 보아야만 한다. 대체로 생태적 위기가 촉발되는 곳은 건조기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슬람은 건조기후 사회를 조직하고 관리하기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이슬람은 이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의 원천인 무역 네트워크를 제공하며, 강력한 중앙집권과 인구통제를 실시하지 않는다. 문명의 이름으로 전통을 무작정 파괴하기보다는 대체로 타협을 추구한다.

이런 모든 요소가 나온 이유는 자명하다. 이슬람 자체가 건조기후 사회의 늘어나는 사회적 복잡성을 관리하기 위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유사한 도전에 처해 있는 사회들로 퍼져나가기 매우 유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을 통해 문명화된 건조기후 사회들이 20세기 후반에 들어 생태적 위기와 하위 국가집단 간의 갈등으로 취약해지자 결국 붕괴하고 폭력의 연쇄를 통해 테러가 빈발하게 된 것이다. 이슬람과 테러는 사막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뿌리를 두고 같이 피어난 꽃과 같다.

사막

바로 이런 이유로 이슬람은 폭력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 다수가 건조지대에 위치한 북아프리카부터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생태적으로 여유로운 사회들은 이들 지역 밖에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라틴아메리카가 대체로 성공적인 개발을 이루지 못한 이유와도 유사하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화, 혹은 가톨릭이라는 종교 때문에 이 지역이 개발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MIT의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는 플랜테이션을 할 수 없어 당시에는 수익성 나는 땅이 전혀 아니었던 영국령 북미가 어쩔 수 없이 자영농 체제를 채택한 반면 라틴아메리카는 에스파냐에서 온 대지주들이 착취적인 플랜테이션 체제를 채택했던 것이 두 지역의 분기를 결정지었다고 주장했다.

유일하게 자영농 체제라고 할만 했던 코스타리카가 제일 발전한 곳이며 영국령 자메이카의 1인당 GDP가 대다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유사한 점 또한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에스파냐는 플랜테이션과 함께 본인들의 문화도 같이 라틴아메리카에 들여왔다. 중동-이슬람권이든 라틴아메리카든 서로 공유하는 지리가 유사한 제도와 문화를 갖추기 좋은 개연성을 제공했고 이것이 상관관계와 착시현상의 원인인 것이다.

‘문명’은 국가를 넘어선다

하지만 건조기후 바깥에 위치한 사회들에서도 테러와 폭력이 빈발하곤 한다.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는 건조기후와 거리가 멀고 터키도 그렇다.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다시 이슬람 원인론이 고개를 든다. 결국 지리와 제도 등으로만은 설명될 수 없는 이슬람만의 본성이 문제다. 폭력을 추동하고 이교도에 대한 지하드를 의무로 규정하는 교리가 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설명이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헛소리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이 기후 혹은 지리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는 없기에 추가적인 설명을 더 동원할 필요성만 생겼을 뿐이다. 나는 이를 위해서 세 개 층위로 구성될 수 있는 개인의 소속감과 그에 기반해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인간은 누구나 소속되고자 하며 소속된 집단의 정체성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 세 정체성은 각각 다음과 같다. 첫째, 구성원의 얼굴과 이름을 서로 알며 여가를 같이 보내고 상호 부조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정체성, 지역사회 정체성이다. 둘째, 서로 잘 알지 못해도 구성원끼리 같은 역사와 문화, 특히 언어를 공유한다고 생각되며 국가라는 실체를 통해서 규정되는 국민국가 정체성이다(하위국가정체성은 이 둘 사이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셋째, 국가를 넘어서는 초국가적 정체성, 혹은 문명적 정체성이다. 심지어 언어마저도 공유하지 않고 국경을 저 멀리 뛰어넘는 곳에 살고 있어도, 평생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은커녕 스쳐지나갈 일도 없는 이들끼리 같은 문명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정체성을 공유한다.

이슬람 여자

국민국가가 17세기 즈음에 유라시아 양편에서 자리를 잡기 전에는 절대다수가 지역사회 정체성에 의존했고 희미한 문명적 정체성을 함께 가졌다. 프랑스의 장과 독일의 한스는 그런 의미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라크의 유수프와 모로코의 다우드와 다르지 않듯이 말이다. 그들은 모두 지주에게 가혹한 세금을 내며 살았고, 서로가 모두 같은 달력 아래에서 공유하는 종교적 기념일로 삶의 위안을 얻곤 했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이 성장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역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약화되었다. 같은 지역 내의 리바이어던끼리 피 튀는 전쟁을 벌이면서 문명적 정체성도 희미해져갔다. 그렇게 독일은 영국과 러시아를 무찌르기 위해서 오스만 제국과 손잡았고 영국은 일본과 손잡았다. 나중엔 독일이 일본과 손을 잡고 영국은 터키를 동맹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슬람은 더 그렇다

이슬람이 자리 잡은 곳은 이런 과정을 대체로 거치지 않았다. 코란이 퍼져나간 지역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인도양의 항구를 따라서 퍼져 있었고, 영토 국가는 그 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리바이어던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 물론 이들 지역에서도 한 번 국가가 세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국민국가 정체성을 키워갔다. 그리고 국가 간 경쟁도 있어왔다.

하지만 초국가적 정체성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일에 모든 무슬림이 분개하며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에 온 이슬람 세계가 항의 시위에 나섰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일은 세계 각지에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대다수 사람에게 걸프 전쟁이 충격인 이유는 국가 간 전쟁이 소멸해간다고 생각하던 냉전의 막바지에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랍인은 같은 아랍 국가가 다른 아랍 국가를 침공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윌란스 포스텐이 발행한 무함마드 만평은 결국은 아랍 국가들의 덴마크 대사관 폐쇄와 이슬람 세계의 소요 사태로 번졌다.
윌란스 포스텐이 발행한 무함마드 만평은 결국은 아랍 국가들의 덴마크 대사관 폐쇄와 이슬람 세계의 소요 사태로 번졌다.

왜 가톨릭, 불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지역을 하나로 묶지 않는데 이슬람만 종교라는 이유로 하나로 묶이는가에 관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실제로 무슬림들이 그런 초국가적 정체성을 강하게 공유하니까 묶인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가톨릭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필리핀인에게 얼마나 많은 동질감을 느낄 것이며 마닐라의 폭탄테러에 다른 지역의 폭탄테러만큼 가슴 아파 할 것인가? 몽골의 승려들이 죽은 것에 대하여 태국인들은 얼마나 많은 애도를 표하는가?

나는 여기서 모든 무슬림 사이의 수많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히 무슬림끼리의 분열과 반목도 굉장히 심하다. 사우디와 이란만큼 사이가 안 좋은 국가들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국내 테러와 국제적 갈등이 그런 이유로 일어난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알라의 말씀을 따르는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에 그토록 분노한 것이다.

공유하는 초국가적 정체성으로 인해서 이들 사이에는 네트워크가 조직된다. 메카 순례 의무는 이런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견고히 만드는 훌륭한 수단이다. 아랍권의 보편 언론인 알 자지라도 마찬가지이며 새로이 등장한 미디어인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도 그렇다. 혼란한 다수 건조국가들은 이 네트워크를 통해 폭력을 전염시킨다. 지역사회에서도 소외당하고, 유럽 특정 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극단주의 이슬람에 심취해 시리아로 향하거나 집 차고에서 폭탄을 제조한다. 혹은 단순히 트럭 운전대를 잡는다. 인간은 사회적 원자고, 사회적 원자는 흉내쟁이다. 그리고 그 모방본능이 다른 폭력적 원자를 따라한 결과를 우리는 다음 날 아침 페이스북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이 긴 연재를 결산할 때가 왔다. 그리고 전망은 어둡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불확실성의 시기인 2017년에도 이 전망은 무수히 틀려나갈 것이라 보는 게 맞겠지만,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말했다.

“계획은 쓸모 없다. 기획이 전부다.”
(Plan is worthless, planning is everything)

어차피 모든 예측은 틀어지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이후 변화상을 보면서 조정하면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 번 각 지역들을 한 번 살펴보자.

이슬람 태양 여명

중동과 아프리카: 사막에 내려앉은 밤

2017년에도 시리아의 붕괴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마슈레크(이집트 동쪽부터 이라크까지를 이르는 중동의 한 지역)의 위기와 예멘의 위기는 주변 국가로 계속 번져갈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이들 지역의 하위 국가행위자들끼리 모든 것을 걸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혈전이 반복되는 동안 지역사회와 농촌은 끝없이 위기를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청소년 난민들은 성장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지역사회도 없고 국가도 없는 상태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인구 위기와 불안정성의 증대는 중동을 중심으로 한 건조기후대의 국가들을 계속 짓누를 것이다. 리비아와 알제리도 전망이 밝지 않으며 아랍의 봄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인 튀니지도 그러하다. 리비아의 붕괴가 미친 여파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면서 다른 북아프리카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고, 사하라 남쪽에서 몰려오는 난민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들 지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이집트도 상황은 좋지 않다. 이집트 경제의 만성적 부진을 초래한 군부의 권력독점을 풀면 다시 불안정성이 만개할 것이다. 그러나 철권통치를 느슨하게 하지 않으면 경제 위기는 계속 심해질 것이다. 많은 권위주의 국가가 겪곤 하는 흔한 딜레마 상황이지만, 이집트는 아랍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이집트 안과 주변국에는 폭력 네트워크와 극단주의 네트워크가 넘실댄다는 큰 차이가 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차드, 니제르, 말리, 나이지리아와 같이 아프리카의 이슬람 전선 상에 위치한 국가들이 나온다. 이들 국가들 또한 폭력에 노출되는 일도 더 많아질 것이다. 아프리카의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내륙의 황폐해져가는 이슬람 지역과 해안의 발전해가는 도시들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거대한 불평등과 빈곤을 목도한 이들은 알라의 이름으로 이 부덕함을 정화해야한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의 ‘보코 하람’이 그러고 있듯이 말이다.

아프리카 소년 분노 남자 좌절 화 앨그리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여유 있는 동방

시선을 정반대인 동쪽으로 돌리면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나온다. 이들 지역은 여전히 테러와 폭력에 시달리겠지만, 이전부터 그래왔듯이 비교적 안정을 구가할 것으로 보인다. 책임성 있는 정부가 어쨌든 성장 드라이브를 걸어왔거나 혹은 이제 그런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의 부상으로 훨씬 일찍 시작되는 개도국들의 탈산업화가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 같은 인구과밀 국가의 성장을 정체시킨다면 어떤 위기가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 국가들은 고용과 성장을 최대한 확대하는 것만이, 쉽지는 않겠지만,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 온전히 낙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나마 대안이 있다는 점에서는 가장 희망찬 것 같다.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큰 위기상황은 지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같다. 여전히 이들 지역은 높은 실업과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어떤 블랙스완이 이들 지역에 불씨를 지필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중국이 이 지역에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실 있는 성장과 안정적이고 책임성 있는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의 정치적 변동으로 불안정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권력을 넘긴 것으로 보이지만, 카리모프의 폐쇄경제가 개방정책으로 점차 풀릴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 경우 우즈베키스탄의 경제성장이 초래할 불평등, 권위주의 정부가 점차 사회적인 힘에 고삐를 풀면서 발생할 불안정이 이슬람주의의 발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중앙아시아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 폭풍의 눈

중단기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일 것이다. 7천 명의 왕자들과 노쇠한 왕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마치 다 무너져가는 소련을 연상하게 한다. 이슬람의 중심을 자처하는 국가지만, 빈곤층은 여전히 많으며 사람들 다수가 현재의 리더십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무함마드 빈 살만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사진)이 기득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성장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나섰지만, 30대밖에 안된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동부에는 시아파 지역이 존재하는데 이 지역은 언제나 사우디 정부가 예의 주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만약 사우디에 혼란이 찾아온다면 이 지역을 고리로 하여 이란까지 그 혼란에 엮여들 수가 있는데, 가장 암울한 시나리오는 태도가 180도 전환된 미국 행정부의 잘못된 처신으로 이란에도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강경파가 고개를 다시 들게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현재 순니와 시아의 갈등으로 극화되어 있는 중동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혼란에 더한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5월의 이란 대통령 선거 또한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유럽: 분열의 시대

유럽도 마찬가지다. 2017년에도 우리는 숱한 유럽발 테러 뉴스를 접할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해체하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난민은 어떻게든 유럽으로 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난민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유럽연합이 공중분해 하고,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을 전부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테러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난민이 새로 얼마나 들어오든 간에 이미 유럽에 정착한 이주민 2세와 3세, 그리고 난민들은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으로 극단주의 서사를 받아들여 총을 들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구 네트워크 자체보다는 폭력 네트워크다. 따라서 유럽 전역을 경찰국가로 만들어서 모든 인구를 동독의 슈타지처럼 감시하지 않는 한 테러를 막을 순 없다. 설령 슈타지처럼 감시해도 그것이 반발을 사서 새로운 테러를 불러올 것이다. 테러를 위한 문턱이 엄청나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유럽인과 분간하기 힘든 무슬림이 트럭을 잡고 축제 현장에 돌진한다면 어떤 경찰국가라도 막을 수 없다. 운전면허를 모두 박탈하고 자율주행차로 돌리기라도 할 것인가? 그렇다면 또 새로운 테러 수단이 등장할 것이고 또 모방 테러가 잇따를 것이다.

유럽 벨기에 테러

더 나쁜 것은 이런 갈등이 글로벌 신민족주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이어져 온 후기 산업사회의 구조개편이 이 점에서 이슬람과 이어진다. 숙련노동의 몰락, 세계화와 기술혁명으로 초래된 아웃소싱, 늘어만 가는 불평등은 서구 사회에 새로운 종류의 사회계약이 필요로 함을 엄청난 파열음을 내면서 보여주고 있다. 기존 정당정치는 이전 플랫폼에 너무 익숙해져 이익집단의 재정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과 합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민과 이슬람 문제를 놓고 논의 초점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는 것에 있다. 핵심은 현재의 번영을 만들어준 세계화를 어떻게 계속 지속가능한 형태로 유지하되 새로운 분배 모델을 만들어서 분열된 사회를 통합해내느냐에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슬림을 추방시키켜야 하고, 토착주의(nativism) 정치운동으로 귀결해야 한다면, 새로운 사회협약은 가능할 수가 없다.

왜냐면 폴 콜리어가 [엑소더스]에서 지적했듯이, 인간은 자신과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의 재분배에는 기꺼이 동의하는 데 반해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재분배를 꺼리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는 그것이 옛 형태가 되었든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형태가 되었듯 사회적 신뢰와 어느 정도의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폴 콜리어 | 김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4
폴 콜리어 | 김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4

독일인은 구 동독에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그리스의 빚을 탕감시켜 주는 것은 반대했던 것을 기억하라. 난민과 이슬람 문제가 계속 논의 초점으로 맞춰진다면 이런 협약을 창출해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많은 사람이 세금을 내도 같은 공동체 성원으로 여기지 않는 무함마드나 핫산에게 가는 것을 절대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모두가 세계화의 승리를 찬양하고 있을 그 시점에 경제학자인 로널드 핀들레이와 케빈 오루크는 1천년 간 세계화와 무역의 역사를 조망한 그들의 저서 [권력과 부]에서 이렇게 미래를 예견했다.

권력과 부 로널드 핀들레이

“이 모든 사건은 부유한 국가의 19세기식 반자유주의 운동이 미래에도 벌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수입 분배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한 정치적 반응 때문에 중요하다. 개방 무역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희망은 교육 기회, 복지 프로그램을 포함한 보완적인 국내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이스, 얼리치, 그리고 페인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무역이 경제적 혼란을 초래하고 노동자를 큰 위험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민주적으로 당선된 지도자들이 그동안 간과했던 이들의 정치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반대로 이러한 저항은 그들 자신을 위협에 빠트렸다. 따라서 (…)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 개방에 대한 대중적 지지 여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세계 경제의 예측 불가능한 변동으로부터 시민을 지켜주는 복지 정책을 마련했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개방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어냈다.”

한편 대규모 이주는 이러한 교환 관계에 잠재적 위협이 되었다. 시민은 동료 시민을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내려 하지만, 외부 이민자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레시나 등은 교육과 인프라 같은 공공재에 대한 지출에서 소수 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제시하며 미국 정부의 간접 지원 정책이 다소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원칙적으로 이민자는 나이, 숙련도, 그리고 본인이나 자식의 취업 가능성에 따라 복지국가의 재정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부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대중의 인식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민에 대한 개인적 성향이 노동 시장 뿐만 아니라 세금 납부자로서 행동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러한 분석은 대량 이민과 복지 국가의 상호작용이 이민뿐만 아니라 복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세계화가 더욱 일반화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한다.”

그들의 이야기 하지만 모두의 이야기

이런 이유로 전망은 어둡다. 그리고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동의 위기는 유럽의 위기로 전이되고, 유럽의 위기는 국제 금융시장을 통해 동아시아와 북미의 위기로 전이된다. 좋든 싫든 이 세상은 서로 연결돼 있고, 연결돼 있기에 우리는 이 번영과 위기를 동시에 누리게 된 것이다.

인간이 석탄이 가진 엄청난 에너지를 풀기 시작하고,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며 우리의 수명을 이전에는 상상도 없을 정도로 늘리자 인구위기와 기후변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이것은 취약한 사회의 붕괴로 이어졌다. 한편 인터넷은 세계화와 아웃소싱을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제1세계 중산층을 몰락시켰고, 붕괴한 사회의 외로운 늑대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도구가 되었다. 이언 모리스의 혜안은 다시 빛난다.

“사회발전의 지속은 사회발전을 위협하는 힘 또한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암울한 전망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올바른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못된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더욱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연결

이슬람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현명한 정책 수립을 어렵게 한다. 유럽의 신민족주의자들은 위기를 심화할 수는 있어도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의 정책은 배제와 추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좋다, 난민들은 추방한다고 치자. 그런데 이민 2세와 3세들에게도 그렇게 대할 수 있을까?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과정에서 결국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안전을 끝내 얻지 못할 것이다.

한편 이슬람이 이 위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논의한다면 그 역시 실패한 정책이 될 것이다. 자신이 그들을 동화시킬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폭력 네트워크를 국가에 들여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20세기의 진보적 유럽 정치인은 망상에 기초해서 정책을 꾸렸다. 그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알제리와 터키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다문화 정책을 찬미했다.

다문화는 물론 좋은 것이다. 상대방의 문화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한 사회가 소화 가능할 정도를 넘어서면 그건 분명히 문제다. 이들을 신민족주의자의 바람대로 추방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당연히 사태를 더 악화시킬 일이지만, 마땅한 대책이 많진 않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각국이 공공정책을 설계하는 데 있어 이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덮어버릴 경우, 폭력 네트워크는 간과되어 테러에 대한 대책, 그들을 주류 사회 속으로 효과적으로 포섭시키는 대책은 또다시 공중분해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 무슬림 청소년과 청년들이 사회화에 실패하는지, 그것이 이슬람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극단주의자로 사회화하는지 알려면 이슬람이 제공해주는 정체성과 가장 중요한 폭력 네트워크를 반드시 바라보아야만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래도 판도라의 상자에는 세상의 모든 악덕이 다 흘러 나왔어도 희망은 남았다고 했던가? 이 전망은 분명 단기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명쾌한 해답을 제공해주는 전망이 아니다. 그런 대책은 불가능하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에 민주정부를 세우는 대신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듯이 불가능한데다가 어리석은 정책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궁극인을 알아냈으면 그 궁극인을 해결하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이 되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서구사회가 해야 할 것은 따라서 이 혼란과 불안정을 일단 받아들이는 데 있다. 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회협약을 창출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여력을 바탕으로 이슬람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제공할 수 있다.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와 동아시아의 선진사회들은 이들 지역의 인프라를 개선하고 빈곤을 퇴치하며 농촌의 인구과밀 현상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천사 희망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원조가 있건 어떤 인프라가 세워지건 그것을 운영하는 정부가 책임성 있게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포용적 제도를 수립하지 않고 착취적 제도로 이익을 편취하려고만 한다면 불평등과 불안정성은 오히려 증대될 것이다. 선진 사회들은 그런 정부를 세우고자 그 나라들에서 고군분투하는 영웅들을 지원해야 한다. 군사개입과 대규모 계획원조는 그렇지 않을 경우 뭐가 되었건 실패로 끝나는 오만함이 될 뿐이다.

그런 다음에 협소한 하위 국가정체성 대신, 지역사회 정체성을 복원하고 더 넓은 국가적 정체성을 사람들이 내면화하도록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탄자니아, 우즈베키스탄은 이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방위적 노력이 모두 성과를 거두어야만 이 지역은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기후, 환경, 식량, 정부, 거버넌스, 국제기구, 인프라, 무역, 투자, 금융, 교육을 비롯해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결국 실패할 것이다. 인간 사회는 모든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기계다. 이슬람 국가들은 현재 몇몇 부품이 돌아가지 않는 수준을 넘어 기계 자체가 과열되어 폭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기계들이 무엇을 공유하고, 어떤 부품들이 고장 났는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을 해결해나가기 위한 첩경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사막에서 초승달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노의 지리학을 풀기 위해선 말이다.

내 생각이 그 과정에 망망대해 속의 조약돌만큼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슬람 문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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