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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드디어 3월. 전국의 수많은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에게 공포의 달이 다가왔다. 올해 처음으로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엄마들은 한국의 애엄마로서 ‘일을 관두게 되는 두 번째 위기’를 눈앞에 두고 마음속으로 덜덜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불과 1년 전 겪었던 일이다.

공포의 3월이 다가온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불안한 것은 어떤 엄마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치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이 정말 따스한 손길로 아이를 돌봐주고 부모에게도 종종 전화해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다, 오늘 유치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알려준다. 가끔 아이가 오줌을 싼다든지 실수를 해도 잘 처리해 준다.

하지만 학교는 다르다.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제대로 단체 생활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도 유치원 선생님과 달리 엄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유아’ 수준인 1학년 아이들을 어엿한 ‘학생’으로 변신시키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어느 정도 권위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종일반을 운영하던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는 오후 1시 반이면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이후는 방과후수업이나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도 새로운 고민거리다. 방과후 수업이 대안이지만 학생수가 적고 시설이 부족한 소규모 학교의 경우 그렇게 다양한 방과후 수업을 운영하기 어려우므로, 아이들이 안쓰러워도 ‘학원 뺑뺑이’를 선택하는 워킹맘이 많다.

3월에는 학교에 불려갈 일도 많다. 입학식부터 학부모 설명회, 학부모 총회 등이 있고 엄마들끼리의 모임도 있다. 그래서 3월에 여름에 쓸 연차휴가를 몰아서 쓰기도 한다. 그중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학부모 총회인데, 교장선생님 말씀과 담임선생님과 학부모의 상견례, 그리고 녹색어머니회 등 각종 봉사활동 참가자 모집, 반 대표 엄마 임명 등이 이뤄진다. 바쁜 워킹맘이라도 이날 행사에는 연차 휴가를 내고 참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엄마들이 주목하는 건 교장선생님의 그 ‘한마디’

그런데 이날 모든 엄마들이 주목하는 행사가 하나 있다. 바로 교장선생님 말씀 시간이다. 우리 학교는 이래서 좋고 어떤 인재를 기르는 게 목표이며, 올해는 특히 이러한 교육 목표에 맞춰 이러저러한 행사를 진행하겠다 하는 얘기를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까지 해 가며 해 준다. 하지만 엄마들은 이런 게 아닌 다른 데 주목한다. 바로 “우리 학교는 불법 찬조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느냐 여부다.

우리 첫째가 다니는 학교 교장은 촌지 근절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 지난해 아이가 첫 입학한 후 총회에 가서 귀를 세우고 듣고 있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우리 학교는 절대 불법 찬조금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교사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생활과 관련한 찬조금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말로 안심되는 순간이었다.

왜 교장의 이 한 마디가 중요할까. 교장이 촌지 근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렇게 학부모 앞에서 여러 번 공식적으로 천명한 경우, 아무리 촌지를 좋아하는 교사라도 쉽게 딴 마음을 먹기 어렵게 된다. 반면 교장이 직접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경우, 학부모들은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연초부터 ‘담임선생님 촌지 성향 파악하기’에 나서야 한다.

여전히 촌지문제는 학부모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핫 이슈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학교에서 교사가 촌지를 요구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런 교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집안의 아이와 그렇지 않은 집안의 아이는 공공연하게 차별을 받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교사들이 많지 않다. 오히려 본인은 안 받으려고 하는데 엄마들이 먼저 무언가를 가져와서 거절하느라 골치 아파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 자녀의 담임이 그렇게 청렴한 교사인지, 학부모들은 매년 불안하다.

한 지인의 딸은 분당의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교장이 총회에서 “불법 찬조금을 받지 않습니다”를 천명하지 않기 때문에, 촌지가 그 해 담임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1학년 때 담임은 촌지를 받는 사람이었고, 지인 몰래 부인이 갖다 줬다고 한다. 2학년 때 담임은 촌지는 고사하고 책 한 권도 안 받는 ‘철저하게 청렴한’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3학년 때 담임은 마음만 담은 주스 정도는 굳이 가져오면 받았으나 몇 만원 이상 가치가 있는 물품이나 돈은 전혀 안 받았다고 한다.

물론 나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선배 딸이 다니는 학교처럼 교사의 성향에 따라 촌지가 왔다 갔다 한다 해도 촌지를 줄 의향은 전혀 없다. 내 아이를 위해 갖다 주었을 때, 그런 능력이 안 되는 집안의 아이한테 혹시라도 가해질지 모르는 차별적 대우(상대적 방임 등)에 동참하는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기에, 1학년 때 몰래 촌지를 갖다 줬다던 그 지인 부인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래서 제발, 엄마들이 교사들의 성향파악에 나서기 전에 교장이 직접 자기 입으로 촌지 근절을 선포하고, 혹시라도 그런 관행이 있다면 엄하게 다스리는 식으로 기강을 잡기를 바라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웬 촌지? 물론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있다!

재미있는 것은 촌지 관련 글이나 기사를 쓰면 예외 없이 “요즘 세상에 촌지가 어디 있느냐” “성실한 수많은 교사에게 누명을 씌우지 말라”는 식의 댓글이 산더미처럼 달린다는 사실이다. 물론 촌지를 전혀 받지 않는 교사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수의 그렇지 않은 교사들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2011년 분당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루이비통 핸드백 등 1,000만 원이 넘는 촌지를 수수해 입건된 적도 있다. 이후 그 초등학교는 학교 출입문을 통제하고 학부모를 아예 학교에 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확실한 해결책이긴 하지만 학부모를 학교에 아예 오지 않도록 하는 방침이 정말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질기게도 근절되지 않는 촌지 수수관행의 뿌리를 뽑기 위해선 교육부 차원에서 학부모까지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하거나 10만 원 미만의 촌지를 받아도 강력한 처벌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강력한 대응방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전까지는 일단 각 학교 교장들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학부모 총회를 통한 공표’를 반드시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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