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그 어떤 다른 기술혁명보다 경제와 사회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경제의 디지털 전환은 한국 경제에 기회일 수 있고 동시에 위기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는 새마을 운동의 디지털 데자뷔다.
창조경제의 예고된 실패는 특정 정부의 성패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다. 비판을 넘어선 실천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디지털의 ‘창조적 파괴’는 지나치게 파괴적이다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의 진화는 북미와 유럽에서 종종 마차를 대체한 자동차에 비유된다. ‘대체(replacement)’는 기술 혁명의 속성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와 공장은 인간 육체노동 대다수를 대신하고 있다.
생산성 우위를 입증하는 기술은 그 반대의 기술 영역에 속하는 일자리를 파괴하며 동시에 높은 기술력에 기초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왔다. 창조경제는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파괴되는 일자리 수보다 새로운 일자리의 그것이 많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혁명은 일자리의 총량을 축소할 수 있다. 헝가리 태생의 미국 경제사학자 존 코므로스(John Komlos)는 2014년 “창조적 파괴는 더욱 파괴적이 되어가고 있는가? (Has Creative Destruction become more destructive?)”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 코므로스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쉼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디지털 기술혁명에서는 그 이전의 기술혁명보다 파괴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일자리 총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1892년 설립되어 2013년 역사에서 사라진 미국 전통기업 코닥(Kodak)은 대표적인 디지털 전환의 실패 사례다. 코닥의 파산은 145,000명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일자리를 잃은 다수는 이른바 ‘중산층’에 속했다. (참고 링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애플의 직원 수는 약 98,000명이다. SNS에서 모바일 메시징까지 모바일 서비스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고용규모는 약 9,000명 수준이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고용 없는 경기회복 가능성을 경고하며 2019년까지 실업률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보고서 보기). 디지털 기술혁명의 시대는 이전 경제성장과 달리 일자리 상승을 동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과 일자리 관계에 대해서는 아래 영상을 소개한다.
2. 인터넷은 이제 개방과 평등의 공간이 아니다
1999년 클루트레인 선언(Cluetrain Manifesto)이 탄생했다. 1999년, 이른바 닷컴 붐(Dotcom-Boom)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이 가능케 하는 고객과 기업의 평등한 관계와 소통을 주장하며, 마틴 루터가 95개 테제로 당시 부패한 카톨릭에 저항했던 전통을 이어받아 클루트레인 선언은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를 위한 95개 테제를 담고 있다.
“하이퍼링크(hyperlink)가 위계질서(hierarchy)를 전복한다!”
클루트레인 선언의 기대와는 달리 데이터 집중, 경제력 집중 등은 오히려 인터넷 시대의 강력한 특징이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은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를 등에 입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의 위력을 실감시켜주는 사례다. 낮은 시장진입 장벽, 만발하는 공유경제, 탈중심성을 담은 낙관주의자의 선언은 소통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3. 디지털 전환은 불평등을 확대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일자리가 파괴되는 속도가 빠른 점을 디지털 기술혁명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총량은 줄어들어도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이 새로운 일자리가 소득수준 기준으로 볼 때 양쪽 극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소수의 고임금 개발자와 천문학적 수준의 투자를 받은 창업자가, 다른 한쪽에는 아마존 창고에서 일하는 저가 노동자와 우버 운전 노동자가 서로 마주 서 있다. 한쪽에는 애플의 디자이너가, 다른 한쪽에는 ‘폭스콘 노동자’가 존재한다.
- 폭스콘, Foxconn: 대만의 컴퓨터, 전자기기 제조회사.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2012년 1월, 폭스콘 우한 공장의 직원들은 노동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집단 자살하겠다고 공장 옥상에서 농성하기도 했다. (편집자)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중산층이 증가해야 한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디지털 기술 기업 중 중산층 형성에 기여하는 기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4. 디지털 기술은 대량생산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경제의 디지털 전환이 소비자에게 선사하는 유익은 작지 않다. 대표적인 긍정 효과는 손쉬운 가격비교가 가능케 하는 가격 투명성과 가격 하락 압력이다. 배달앱, 카카오택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상 모든 것에 대한 디지털 구매가 가능하다. 그래서 가격 투명성의 시장 영역은 함께 확장할 수 있다.
또 다른 소비자 유익이 있다. 시장에 공급되는 서비스 및 재화의 범위가 증가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높여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대표적 예다. 2003년 MIT 슬론 경영대학원(Sloan School of Management)이 책 시장에서 확인했던 이른바 롱테일(Longtail)의 대상이 다양한 서비스와 재화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진화가 가능케 하는 것은 소비와 공급의 새로운 조절 가능성만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은 생산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른바 2차 산업혁명은 미국 포드자동차에서 도입한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을 지칭한다.
헨리 포드는 개인의 소비 취향이 존중받을 수 없는 대량생산 자본주의를 다음과 같은 유머를 섞어 설명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색의 자동차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색은 검은색이어야 합니다.”
3D 프린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생산기술은 서로 다른 개인 취향을 만족하게 하는 새로운 생산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스마트폰 케이스의 주문제작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3D 프린터는 생산 수량 제약으로 불가능했던 생산을 가능케 하며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의 지평을 확대할 것이다.
5. 디지털은 지하경제를 축소한다
전자상거래의 범위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공인인증서와 액티브 엑스의 늪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에서도 스마트폰 대중화로 전통상거래가 빠르게 디지털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2015년 아마존이 선보인 홈서비스와 2010년 이후 꾸준하게 성장하는 미국의 홈조이(HomeJoy)는 전자제품 수리에서부터 피아노 개인교습까지 인력 수요 및 공급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상거래 대부분이 디지털 영역으로 흡수될 때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다. 바로 국가다. 돈의 흐름이 보다 투명해지고 추적 가능하기 때문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신조를 내건 조세 당국은 빅데이터 시대를 감동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더는 경제의 일부가 아니다. 디지털 기술은 경제의 모든 영역을, 나아가 높은 거래비용 때문에 시장으로 나오지 못했던 영역을 자신의 우산 아래 위치시키며, 경제를 움직이는 크고 작은 규칙을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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