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이 글의 소재와 주제에 대한 다양한 반론과 보론, 비판 기고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배경 참고. 

넥슨 ‘클로저스’ 성우 하차 논란은 2016년 6월 19일 게임회사 넥슨이 온라인게임 ‘클로저스’의 신규 캐릭터 ‘티나’ 목소리를 맡은 김자연 성우를 페이스북 메갈리아4 페이지 후원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는 이유로 교체하면서 불거진 논란이다.

참고로 메갈리아는 2015년 6월에 만들어진 웹사이트이고, 워마드는 2016년 1월 메갈리아에서 분리된 카페다. 메갈리아4는 페이스북에 별도로 존재하는 페이지인데, 메갈리아 페이지부터 시작했다가 계속 삭제를 당해 현재 메갈리아4가 운영 중이다. 메갈리아4 페이지 정보를 보면 메갈리아 웹사이트 운영자와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box]

넥슨 ‘클로저스’ 성우 하차 논란에서 “메갈리아는 반사회적 혐오사이트다”란 주장이 나타났다.

메갈리안

김자연 성우는 페미니즘과 통하는 표어가 박힌 티셔츠를 사서 인증했다.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가 삭제당한 데 대항하는 소송에 모금하는 취지였다. 노골적인 여성혐오 성향의 ‘김치녀’ 페이지 등은 무사히 운영되는데 그 반대편에 있는 페이지만 징계당한다면, 그 자체로 부당하다. 더불어 이런 정황을 이유로 성우를 게임에서 하차시키는 것도 무리하다. ‘메갈리아는 반사회적 혐오사이트’라는 수사는 이 논리적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반사회적 혐오사이트’라는 수사 

‘반사회적 혐오사이트’는 중복 표현이다. 혐오 자체가 이미 반사회적이지 않은가. 이런 수사 반복은 메갈리아에 나쁜 이미지를 덧칠하는 효과를 낸다. 반사회적이고 혐오를 자행한다면 시쳇말로 ‘일베와 다를 것 없다’는 얘기다. 저 표현은 인터넷 남성 여론의 정론 “메갈은 여자 일베”를 풀어쓴 것에 불과하다.

‘반사회적 혐오사이트’라는 명명은 반론의 소지가 너무 크다. 일상어로서의 혐오가 아닌 사회적 혐오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력이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위험한 이유는 그런 인식이 소수자 집단에 대한 실질적 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차이 차별

여성이란 정체성에 대한 남성의 혐오와 남성이란 정체성에 대한 여성의 혐오는 함께 묶이지 않는다. 한국 남자란 집단을 증오하는 메갈리안이 다수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고 보기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혐오라는 개념을 이런 식으로 마음대로 섞으면 혐오 의제를 다룰 수가 없다고 나는 말하는 중이다.

가령, 현실에서 발생하는 몰카 피해자 절대다수가 여성이고, 몰카 소비자 절대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메갈리아에 남자 몰카가 올라온 적 있다는 개별적 사실을 여성에 의한 남성 탄압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물론 남성 개개인이 해당 행위로부터 받은 인권침해는 범죄로 단죄해야 마땅하지만 말이다.

이렇듯 ‘남성혐오’는 손쉽게 논파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이 쉬운 얘기가 합의되지 않는 게 한국 사회가 봉착한 근본적 난관이다. 한쪽은 남혐과 여혐이 다르다는 설명을 이해하길 거부하고, 한쪽은 그 차이를 방패로 모든 언동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메갈리아의 혐오적 성향

메갈리아에는 혐오적 성향이 존재한다. 메갈리아 초기에는 같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게이들을 혐오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사이트에서 논쟁이 일어났고 게이 혐오를 포기하지 않던 이들은 ‘워마드’라는 이름으로 떨어져 나왔다.

이 사건은 달리 말해 메갈리아 안에 소수자 혐오에 대한 경계심과 연대의식이 분포돼있어 자정작용이 이뤄졌다는 증거다. ‘반사회적 혐오사이트’ 운운하는 이들 눈에는 이런 정황이 보이지 않고, 메갈리아의 혐오를 비난하며 초기의 동성애 혐오보다 ‘한국 남자 혐오’에 쌍심지를 켜고 있지만. 혐오를 명분으로 메갈리아를 배제하려는 이들이 과연 혐오라는 의제에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혐오 남자 여자 갈등 차별 싸움 증오

내가 혐오 의제에서 메갈리아를 경계하는 부분은 또 다른 약자에 대한 약자의 혐오, 약자이기 때문에 모든 타자를 혐오해도 된다는 자의식이다. 이 점은 어떤 조짐이 보일 때마다 지적하고 비판해야겠지만, 존재 자체를 혐오사이트라고 규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앞서 말한 전례도 있거니와, 저런 잠재적 우려가 사이트의 정체성으로 지배적이거나 가시화됐다고 할 수도 없다.

‘반사회적 성향’ ≠ ‘반사회적 사이트’ 

메갈리아는 반사회적 사이트일까? 그걸 이유로 회원들의 사적 영역에까지 불이익을 줘야 할까? 나는 대중교통 임산부 좌석에 앉은 남성의 신상을 유포하는 게 반인권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메갈리아 게시판이 정제되지 않은 말이 빗발치는 해방구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짐작하고 있다.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은 ‘메갈리아에 반사회적 성향이 있다’ 까지다. ‘메갈리아는 반사회적 사이트’ 같은 규정을 가하려면 ‘반사회적 게시물’이 어떤 빈도로 게시되는지, 그것이 주류로 확고한지 확인해야 한다. 가령 소라넷처럼 몰카 영상을 전문적으로 유포하고 소비하는 플랫폼이라면 그런 정의가 타당하고, 사용자라는 이유로 직업적 불이익을 주는 것도 이해는 간다. 메갈리아는 과연 그런가?

소라넷

반사회적이란 표현 역시 모호하다. 사회적 가치는 그 사회의 지배적이고 표준적인 규범이다. 그 자체로 옳은 것이 아니고 규범을 관장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용도로 쓸 때도 있다. 남성 성기를 자르는 영상과 ‘한남충’에 대한 욕설을 목도하고, 그런 말이 터져 나온 맥락과 진의를 헤아려보기 전에 “반사회적 사이트”라는 딱지부터 붙인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남성적 질서가 지배적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메갈리아, 빛과 그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메갈리아엔 페미니즘이라는 대의가 있고 그 대의에 걸맞은 실천을 해왔다. 미디어 여성혐오 스캔들부터, 지하철 몰카, 소라넷 폐쇄, 데이트 폭력, 오프라인 여성단체와의 연계까지. 메갈리아는 반(反)여성혐오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 메갈리아를 빼고는 여성주의 유행은 성립할 수 없었다.

그런 흐름에 의의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메갈리아에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메갈리아가 논란의 표적에 줄곧 오르는 것도 그런 존재감 때문이다. 아무리 양보해도 “반사회적 혐오사이트”라는 전면적 규정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메갈리아가 명과 암 중 어느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있는 사이트였다면 문제는 오히려 덜 복잡했을 것이다. 사실 그런 불가분성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봉착한 곤경이기도 하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는 풍경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건 메갈리아가 품은 위험성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위험한지, 얼마나 위험한지에 관한 평가다. 그것은 맥락적 논증을 요한다. 몇 장의 ‘반사회적 게시물’ 같은 단편적 사례를 갖고 일반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낙인찍기의 욕망이다. 그런 일반화는 페미니스트를 부정하고 싶은 반여성주의자들에게 총칼을 제련해주는 일이다.

낙인찍기에 대한 경계 

요는 메갈리아의 무엇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지, 메갈에 우호적 태도를 취한단 사실이 아니다. 만약 김자연 성우가 워마드식 동성애 혐오에 공개적으로 찬동했다면 나부터 규탄했을 거다. 그는 메갈을 페미니즘 사이트로서 지지했고, 페미니즘이란 표어에 동의했을 따름이다. ‘반사회적 혐오사이트’라는 멍청한 워딩에 단 하나의 효용이 있다면 이 양자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정말로 메갈리아가 일베와 다를 게 없다고 해도 나는 이번 사태가 부당하다고 본다. 지금껏 일베와 연관된 인물이 사회적 비난을 받고 직업 활동에 불이익을 당한 전례는 있다. 공공장소에 일베 기념물이 설치됐고, 공직에 합격한 사람의 일베 이용전력이 드러나고, ‘로린이 발언’처럼 직업윤리와 연결된 사항이 폭로되었다.

낙인 마녀사냥 낙인찍기

하지만 이번 넥슨 성우 하차 논란은 특별한 공익적 맥락을 가진 전례와 연결고리가 없다. 일베를 배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베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며 지역 차별을 선동하기 때문이다. 저런 발언을 하거나 그에 동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베 회원이란 이유만으로 밥그릇을 자르는 건 인권 침해의 개연성이 있다.

일베의 ‘무엇이’, ‘왜’ 나쁜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메갈리아의 무엇이, 왜 잘못이며 나의 선입견은 없는지 자문해 본 후 연대할 지점과 비판할 지점을 가리는 성숙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반사회적 혐오사이트 메갈리아’는 상대에게 오명을 씌워 토론이 불필요한 상태로 배제하려는 낙인찍기다. 그 낙인찍기의 세계에서 메갈리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을 싸잡는 대명사로 쓰인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