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무섭게 내리던 폭우는 멈추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창한 하늘이 열렸다. 아침 출근길에 들려오는 소식은 8일 밤 서초동 맨홀에 빠져 순간 자취를 감춘 실종자 남매 중 누나의 시신을 찾았다는 보도였다. 50년의 삶이 한순간 사라진 그분의 명복을 위해 짧은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관악구 반지하 집에 있다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빗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은 관악구 홍자매 가족의 장례식 보도가 눈에 들어왔다. 아픈 어머니와 장애를 가진 언니, 13살 난 딸을 돌보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밝게 일해온 여성노동자, 추모식에 함께 했던 홍씨의 동료는 “많은 언론이 반지하 얘기하면서 홍씨의 삶이 궁핍했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홍 부장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풍족하게 살았다”고 생전의 그녀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한겨레, 2022. 08. 11. ‘반지하 장애인 가족 장례식장 앞..촛불이 하나둘 켜졌다’)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이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마음으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나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비극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위정 책임자는 어떠해야 할까?
115년 만의 폭우에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상황실이나 피해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서울 서초구 사저에 머무르며 상황 대응을 지시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9일 대통령은 긴급히 피해 지역을 찾았다. 그러나 국민은 재난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안정감을 얻지 못했다.
대통령은 “A씨의 어머니가 딸과 손녀가 참사를 당한 집에 다시 들어가지 못할 텐데 퇴원해도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어 너무 딱하다”면서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 후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피해 지역을 방문한 사진으로 홍보용 카드를 만들었다.
정부여당 국회의원은 피해 복구 현장에서 “오늘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발언으로 피해 지역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
피해 현장에서 대통령의 ‘딱한 마음’은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대통령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측은지심의 마음을 보여주었고, 딱 그만큼의 크기로 피해 가족에게 대통령 개인이 할 수 있는 시혜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에게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권력자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내 가족의 죽음, 설사 천재지변이라 하더라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과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국정 책임자의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소명으로서의 정치] (Politik als Beruf, 1919)에서 베버는 이렇게 말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서로 보완적 관계로 정치가는 이 둘 모두를 갖춰야 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정으로 그리고 온 마음으로 느끼며 책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어느 한 시점에 와서 ‘이것이 나의 신념이요, 나는 이 신념과 다른 행동을 할 수는 없소’라는 말을 할 줄 안다면 이것은 비할 바 없는 감동을 주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중 내적으로 죽지 않은 자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이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부는 수해 복구에 만전을 기할 것이고, 폭우예방에 대한 예산을 적극적으로 배치할 것이다. 침수 피해에 열악한 주거 형태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가 나서서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러나 왜 진정성 있게 들리지 않는 것일까. 재난 상황에서 국민들이 제기하는 정부와 국정 책임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들어다 보며 정책을 개선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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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언론인권센터에서 기획한 언론인권칼럼으로 필자는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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