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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한민국 통신 최대 화두인 망중립성이 기로에 섰다. 그동안 모호한 태도와 밀실주의로 비판받았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방통위는 지난 7월 13일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 (이하 ‘기준안’)을 발표했고, 이로써 저가 요금제 이용자에 대한 mVoIP 차단과 보이스톡 손실률(통신사의 의도적인 통화음질 저하 조작) 논란, LG유플러스의 mVoIP 전면 허용 결정 및 실질적인 번복 등으로 뜨겁게 불붙은 망중립성 논란은 최대 고비를 맞았다. 방통위가 빼든 칼은 정의의 여신 유스티시아의 현명하고, 공정한 칼일까. 아니면, 두고 두고 후회를 남길, 한국 IT의 심장을 찌를 회한의 칼일까.

방통위 기준안은 통신사(망사업자)의 트래픽 관리가 인정되는 8개 경우(10개 예시)를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에 대해선 통신사에게 지나친 권한을 부여해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통신사 주장처럼, 과도한 의무만 지우고 있다는 항변이 존재한다.

이번 기준안이 망중립성 및 IT 산업 전반, 특히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관련분야 전문가 6인(이하 ‘전문가’)에게 이번 기준안의 문제와 향후 IT 산업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방통위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box  type=”info” head=”인터뷰 참여 전문가 명단”]
강장묵(동국대 전자상거래연구소 교수, 공학박사): 트래픽 관리 및 DPI와 인권 문제
김기창(고려대 법대, 오픈웹 리더): 해외 망중립성 정책 및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입법론
오병일(진보네트워크): 통신사 mVoIP 차단 공정위 고발, 방통위 상대 공익감사 청구 주도
윤철한(경실련 시민권익국장):  mVoIP 차단 공정위 고발, 방통위 상대 공익감사 청구 주도
전응휘(녹색소비자연대, 방통위 망중립성정책자문위원):  피스넷 주도, 통신정책 전문가
정혜승(다음 커뮤니케이션 대외협력실장): ‘혁신의 망, 자유의 망, 평등의 망’ 강사

*가나다 순, 인터뷰는 대부분 mVoIP을 이용해 진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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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통위 기준안에 대한 총평

1) 심각한 위기에 빠진 망중립성 원칙

무엇보다 이번 기준안으로 망중립성 원칙(망사업자가 특정 단말기, 이용자, 서비스, 앱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사실상 “망중립성 원칙 폐기 선언”(전응휘)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정혜승 실장은 “왜 망이 중립적이어야하는지, 우리가 왜 이런 논의를 해왔는지,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김기창 교수는 “작년 말 발표된 가이드라인이 너무 버젓해서 의외였는데, 이번 기준안을 보니 방통위의 평소 기준과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혹평했다.

2) 방통위, 망 통제권을 통신사에 넘기다

전문가 대부분은 방통위가 통신사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이로 인해 통신사의 자의적인 망 통제가 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통신사에게 “포괄적 트래픽 관리를 허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오병일 활동가는 지적했다. 특히 이통사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망을 자의적으로 통제할 경우 심각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려했다.

3) 혁신과 기술의 위기: 글로벌 환경에 어울리지 않고, 통신사 로비능력이 국내시장 성공을 좌우할 것

기준안으로 망중립성이 훼손된다고 하더라도, IT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그럼 그나마 높아졌을까. 전문가들은 오히려 IT 산업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 일색의 반응을 보였다. 기준안이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떠올리게 한다는 강장묵 교수는, 실명제와 같은 무익한 정책을 놓고 허송세월하는 사이 우리나라 IT 경쟁력이 떨어진 것과 같은 일이 이번에도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전문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콘텐츠 기업에서 일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정혜승 실장에게 ‘해외 사업자에게 이런 기준안을 요구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글로벌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유튜브 선례를 되볼아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튜브는 한국의 실명제 요구를 거부했고, 데이터센터 건립을 포기했다. 하지만 유튜브는 부동의 국내 동영상 1위 서비스고, 한국 통신사들은 미국 서버와 연결된 해저 광케이블 사용료를 아끼기 위해 자신의 돈으로 국내에 캐시 서버를 짓고 유튜브 동영상을 서비스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경실련 윤철한 국장은 이번 기준안으로 통신사가  “모든 콘텐츠, 서비스, 이용자를 차단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됨으로써, 콘텐츠 사업자(CP. 다음, 네이버, 카카오톡 등)와 플랫폼 사업자(구글, 애플 등)들은 기술과 혁신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진 반면, “통신사와 친한” 혹은 “통신사에게 로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회사들은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 통신사의 자의적 망 통제를 검증할 시스템이 없다.

통신사의 자의적인 트래픽 관리를 제어할 장치는 마련되어 있을까? 윤철한 국장이 여기에 답했다: “통신사가 맘대로 해도 이를 검증, 확인할 시스템이 없다. 지나친 트래픽 발생이 우려된다 치자. 이에 따라 통신사가 특정 서비스와 이용자를 차단했다고 치자. 누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확인, 평가할 수 있겠나? 못한다. 결국 통신사 맘대로다.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다는 건 경우에 따라 인위적으로 트래픽을 유발할 수 있고, 이를 빌미로 특정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다. 중요한 건 그 행위를 객관적으로 검증,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냐는 건데, 없다. 물론 통신사가 공평무사한 선량한 기업이라면 아무 문제도 안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행태를 돌이켜보면 통신사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오히려 자사 이익을 위해 이용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본다.”

 2. 방통위 기준안, 과연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가

기준안은 통신사의 트래픽 관리가 인정되는 열 가지 경우를 예시하고 있다. 6인 전문가에게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항목(복수 선택가능)과 그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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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 title=”디도스 좀비 피시 차단”]DDos 공격 시 방송통신위원회 및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요청에 따라 DDos 공격의 원인이 되는 좀비 PC를 망에서 차단하는 경우[/tab]
[tab title=”악성코드, 바이러스 대응”]망에 위해를 주는 악성코드, 바이러스 등에 대응하기 위한 경우[/tab]
[tab title=”1.장애(상황) 예상“]망의 장애 상황 또는 장애가 명백하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원인이 되는 트래픽을 긴급히 제한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tab]
[tab title=”2.최번시간대 P2P 제한“]이용자의 접속이 가장 많은 시간대(통상 오후 9시~11시. 사업자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 P2P 트래픽의 전송 속도를 일정 속도 이하로 제한하는 경우[/tab]
[tab title=”3.유선: 월정량 초과 이용자“]유선인터넷에서 이용자의 월별 사용량 한도를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이용자의 트래픽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전송속도를 일정 속도 이하로 제한하는 경우[/tab]
[tab title=”4.무선: 헤비유저“]무선인터넷에서 특정지역내에서의 일시적인 호 폭주 등 망 혼잡이 발생하였거나, 망 운영 상황, 트래픽 추세변화, 자체 관리 기준 등에 근거하여 망 혼잡 발생 가능성이 객관적이고 명백한 때, 데이터 사용량 한도를 초과한 이용자에 대해 동영상서비스(VOD) 등 대용량 서비스의 사용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경우[/tab]
[tab title=”5.표준 미준수 어플“]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빈번한 Keep Alive 신호 등에 따른 이동통신장애에 대비 “이동 통신망에서의 Push 알림 구현방법”을 기술표준으로 마련(’11.12)한 것과 관련, 이를 준수할 것을 사전에 충분히 권고하고 망 혼잡으로 트래픽 관리가 불가피한 경우 이를 준수하지 않은 애플리케이션을 유사한 애플리케이션들 중 우선적으로 제한하는 경우[/tab]
[tab title=”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제1항에 규정한 불법 정보(음란 정보, 청소년유해매체물 표시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정보, 법령에 따라 금지되는 사행행위에 해당하는 내용의 정보 등)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터넷접속서비스제공사업자에게 제한할 것을 명한 정보를 차단하는 경우[/tab]
[tab title=”6.미성년 자녀 보호“]청소년보호법 제2조 제3호의 청소년유해매체물로부터 미성년자인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관련 서비스 약관에 따라 부모가 접속 차단을 요청한 경우[/tab]
[tab title=”7.요금제별 mVoIP 제한“]시장에서 사업자간 경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선인터넷서비스의 요금제에 따라 mVoIP 트래픽의 제한 여부 또는 제한의 수준을 다르게 규정하면서 이용자가 그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tab][/tabs]

전문가들이 통신사의 트래픽 관리를 인정한 10개의 예시들 가운데 문제가 있다고 본 건 7개였다. 즉, 디도스 공격이나 악성코드, 바이러스 대응과 망법상 불법정보를 방통위 명령에 의해 차단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시 규정들에서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유를 간략히 붙여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망의 장애(상황) 명백 예상 상황에서 원인 트래픽 제한 (전): 사실상 포괄적 권한 부여
  2. 최번잡 시간대에서 P2P 트래픽 속도 제한 (김, 오, 정): 제한의 합리적 근거 희박
  3. 유선: 월정 사용량 초과한 이용자의 속도 제한 (오): 비합리적인 이용자 차별
  4. 무선: 헤비유저 대용량 서비스 제한 (오): 미발생 사건 미리 재단, 비합리적 이용자 차별
  5. 기술협회 표준 미준수 어플리케이션 제한 (김, 오, 정): 反글로벌, 시대착오적 발상
  6. 미성년자 자녀 보호 위해 약관에 따라 부모가 접속차단 요청 (강): 검열적 발상
  7. mVoIP 요금제별 제한 (윤): 약관변경을 통한 이익침해 가능성, 이용자 사실상 선택권 無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방통위가 통신사에게 부여한 트래픽 제한 권한은 포괄적이다. 차단하려면 다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 이용자, P2P, 어플리케이션, 표준에 이르까지 권한이 미치는 대상은 다양하기까지 하다. 전문가들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까지 예측해 관리할 수 있다는 건 사실상 모든 망 서비스를 상대로 트래픽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런 막대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통신사의 트래픽 관리가  공정하고 합리적인지 검증할 방법이 사실상 없으며, 사기업에게 내용 검열 권한을 부여했고, 이용자의 부당한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기준안을 비판했다.

3. 방통위에 할 말 있다

1) 통신사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방통위: “비극적 메커니즘” 

전응휘 의원은 “망사업자들이 지배력을 남용을 하면 규제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이를 후견”한다며, 한국 IT의 “비극적 메커니즘”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방통위라고 비판했다. 전 위원은 “방통위는 망사업자의 이익단체에 불가하다”고 방통위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2) 혁신 죽이는 방통위: 말로만 IT 생태계

“IT 생태계 말아먹을 결정”이라며 격앙된 어조로 운을 뗀 강장묵 교수는 문제의 본질이 “망사업자의 과점체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해소하고 공정한 경쟁 메커니즘을 만들어 가야할 방통위가 오히려 기준안을 통해 “과점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천명, “거꾸로 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김기창 교수도 “어디에선가 열심히 혁신 기술을 준비하고 있을텐데… 안타깝다”며, 이 기준안으로 “누가 덕을 보겠나”라고 반문했고, 전응휘 위원은 “방통위가 말로는 인터넷 생태계를 떠들지만, 진짜 걱정하는 건 망사업자들 수익뿐”이라고 단언하면서,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규정한 방통위의 존재 취지와는 정반대”라고 존재 이유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정혜승 실장은 “대한민국 ICT생태계에 대한 고민이 깊은 건 이해한다”면서도 “앞으론 신중하게 정책을 가져가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이번 기준안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만큼, “쉽게 강행처리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3) 소비자 안중에 없는 방통위: “직무유기를 넘어 직무위반”

진보넷와 함께 방통위 감사 청구를 주도한 경실련 윤철한 국장은 “경쟁사업자 차별을 금지”하고, “소비자 피해 막으려면 방통위가 통신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해야”하는데, “소비자 불이익을 초래하는 통신사 이용약관을 인가하고, 묵인”했고, “이번엔 기준안”으로 이용자 피해를 모르쇠한다며, 이는 “직무유기를 넘어선 직무위반”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4) 정책 형성 과정의 비민주성

그동안 자주 지적돼왔던 관료적 밀실주의에 대해 “정책 형성 과정을 개방하는 건 자의적인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절차”인데, 방통위의 민주적 마인드 부재가 아쉽다면서, 마치 방통위는 “자신들이 진리를 독점”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듯 하다고 오병일 활동가는 지적했다.

4. 방통위 기준안이라는 이상한 성적표

이번 방통위 기준안이 이용자, 콘텐츠사업자, 통신사가 받은 성적표라면 누가 가장 기뻐할까. 기준안이 각 측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6인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 김기창 교수와 전응휘 위원은 이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았다. 김기창 교수는 이용자들이 IT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망중립성 논의에는 소극적인 듯 하다며 아쉬움을 표했고, 전응휘 위원은 방통위 기준안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점수매기고 싶지 않지만 망사업자에게 100% 이익은 확실하다고 논평했다.

1) 이용자의 성과는 F학점 

윤철한 국장은 “이용자의 트래픽 발생 여부와 관계 없이 통신사가 언제 어디서든 다 차단”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이보다 나쁠 수 없는 성적표”이며, “부당하다는 수사가 사치스러울만큼 불행한 성적표”라고 강조했다.

2)  콘텐츠 사업자의 성과는 D학점 

콘텐츠 사업자 성적표로 D를 낸 윤철한 국장은 “그래도 이용자보다는 CP가 좀 낫다”고 평가하며, 그 수는 아주 적겠지만, “거대사업자, 로비를 잘하는 사업자나 통신사와 친한 통신계열사업자들은 A+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 혁신으로 승부하는 벤처들은 “사업을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수 있다”고 우려했다.

3) 통신사의 성과는 A학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윤철한 국장은 통신사는 “겉으론 투정부리는 척하지만, 현 기준안에서 못할 일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성적표”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정혜승 실장은 “망중립 논의는 아직 진행중이라 F는 없다”면서, “일각에서는 통신사 성적이 좋은게 아니냐고 하는데, 이용자와 망없는 사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앞으로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고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윤철한 국장은 “맘에 안든다는 투정이 들리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성적표을 받을 수 없다”면서, “통신사가 맘만 먹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평가했다.

5. 망이 위험하다

1) 기준안의 위상: “네트워크의 모든 것은 트래픽” “트래픽 관리법”

방통위 기준안이 갖고 있는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전응휘 위원은 “우리가 네트워크에서 상상가능한 모든 것이 트래픽”이라고 운을 떼면서, 그것을 포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전기통신사업법를 대체할만한 트래픽 관리법”이라고 기준안의 위상을 평가했다. 즉, 기준안은 “법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효과”를 가졌으며, “상위법인 전기통신사업법의 예외”로서, 즉, 특별법에 준하는 위상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 의원은 예상했다.

2) 방통위의 도박: 방통위가 통신사에게 포괄적 트래픽 관리를 허용한 이유

그렇다면 왜 이런 극약 처방이 필요했던 걸까. 이번 사태의 근저에는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자리한다고 전응휘 위원은 말한다: “망사업자들의 수익률 둔화와 네트워크 트래픽 증가가 이번 사태의 기저에 있다. 맞다. 수익률은 둔화되고, 트래픽은 폭증한다. 단, 디지털 트래픽 증가 때문에 수익률이 감소에 있다는 통신사 주장은 기만이다. 왜냐하면 트래픽 증가로 통신사 수익은 당연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날로그 수익률 감소다. KT의 연간 1조원 매출 감소는 유선전화 해지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이는 2007년부터 계속되어온 구조적 문제다. 네트워크 시장은 성숙기(수요의 포화상태)고, 유선에서 무선망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 대체가 진행중이다. 따라서 구식 기술에 의존한 통신사 수익률 감소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

전응휘 위원의 논리에 의하면, 결국 방통위는 사기업인 통신사 수익을 인위적으로 보전해주기 위해 포괄적 트래픽 관리 허용이라는 엄청난 도박을 벌인 셈이다.

3) ‘합리적 관리’: 기준안은 중립적, 기술적 관리의 범위를 벗어났다

기준안의 정식 명칭은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이다. 그렇다면 “합리적 관리”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전응휘 위원은 도로 정체 상황을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합리적 관리’란 덤프트럭은 안 된다는 식이 아니라 홀수 번호 차는 안 된다는 식이다.” 즉, 합리적 관리의 전제는 중립적이고, 기술적인 관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기준안은 특정 기기, 앱, 컨텐츠, 이용자에 대한 제한할 수 있다. 즉, 특정한 덤프 트럭, 특정한 소형자를 도로에서 추방시킬 수 있다. 전 의원은 “굉장히 창의적으로 망사업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섬세한’ 안”이라고 기준안을 평가했다.

기술 문제를 좀 더 살펴보자. 오병일 활동가는 기준안의 “P2P 트래픽”이란 표현에 주목한다. 일반인들이 아는 것처럼 “P2P는 단순한 파일공유 서비스 뿐만 아니”고, “이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있다. 위 도로 예를 다시 한번 들자. 화물을 과도하게 적재한 덤프트럭과 과속하는 소형차가 도로를 주행중이라고 치자. 도로 통행을 제한하려면 화물 적재량과 과속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기술적이면서 중립적인 관리다. 그런데 현 기준안은 덤프트럭, 혹은 소형차라는 특정한 형식 자체를 포괄적인 제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한번 더 가정해보자. 통신사에서 새로운 ‘신형’ 덤프트럭과 신형 ‘소형차’가 나왔다. 통신사에게 타사의 덤프트럭과 소형차와 합리적 경쟁에 대한 심판관 역을 맡길  수 있을까.

4) 기준안, 막을 방법은 없나

이렇게 문제가 많은 기준안이라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전응휘 위원은 이번 기준안의 위상을 기존 상위법 전기통신사업법 대체 수준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기준안은 법개정안으로 나왔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방통위 ‘기준안'(가이드라인) 형식으로 나온 이유는 뭘까. 절차적 형식은 간소하게 가져가되, 실질적으론 법 개정 효과를 노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전 위원의 표현처럼 ‘섬세한’ 꼼수인 셈이다.

전응휘 위원은 이 기준안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상위법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위해선 여론의 관심 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선 국면에서 망중립성 이슈가 차지할 위상을 질문했다. 이에 대해 전 위원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정치인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선에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슈”가 되리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정치권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김두관 대선 예비후보는 “망중립성 이용자포럼의 방통위 감사청구를 지지”한다고 밝혔고, 7월 18일에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방통위가 지켜야 할 것은 ‘이통사 이익’이 아닌 ‘망중립성’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 쪽 문방위 간사로 선임된 최재천 의원은 오는 7월21일 참여연대에서 망중립성 이용자포럼 관계자와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6. 4G 시대에 부활한 2G의 악령들: 혁신, 자유, 평등의 망은 어디로 

수년 전 2G폰으로 데이터를 전송받다가 수백만 원 요금이 나와 자살한 중학생 사건이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을 종식한 건 대한민국의 서비스나 기술이 아닌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통신사 입맛대로 새로운 혁신 기술과 서비스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통신사 구미에 맞는 서비스들만 시장에 들어오게 한다면, 이 땅의 문화는 너절한 소비재들만 가득하게 될 게 뻔하다. 파괴적 혁신과 창조의 에너지로 무장한 벤처 프론티어들은 통신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좀 더 우울하게 전망해 보자. 통신사와 국가권력이 결탁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정보와 독점사업자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현실이다. 이들이 결탁해 자의적인  ‘反정부’ 딱지를 붙여 차단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더불어 이런 검열적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DPI(심층패킷검사)를 확대 도입한다면, 그 자체로 이용자 입장에서는 위축효과가 생길게 뻔해 보인다.

이번 기준안은 망통제의 폐해에 대한 고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부와 독점적 통신사업자의 화려한 만남이다. 이용자 친화적인 망관리? IT 생태계? 현 기준안은 통신사가 망을 통제할 수 있었던 2G 시대의 각종 부작용들을 다시 불러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 2G 시대의 악령들을 몇 개만 예시해보자.

데이터 요금 폭탄(370만원)으로 중학생 비관 자살
휴대폰 성인콘텐츠 자릿세로 15억 바쳤다. (2005년 8월 15일 한겨레신문)
– 이동통신3사가 무선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메뉴 중복 표기 및 관련없는 메뉴페이지 강제접속 등의 방법으로 메뉴 페이터를 증가시켜 데이터 통화료 부가 (2005년 11월 28일 통신위원회 보도자료) (편집자 주: 기존 예시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완. 발행일 오전 10:10.수정)

4G 시대(LTE 요금제는 모두 종량제)를 앞둔 지금, 2G 시대의 악령들은 ‘방통위 통신망 기준안’으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기준안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통신사는 이제 모든 기기, 서비스, 사용자, 앱에 대한 차단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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