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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칼럼은 7월 19일 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하는 국제심포지엄 ’21세기 공공외교의 새로운 지평’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슬로우뉴스의 편집방향에 맞춰 수정, 퇴고한 글입니다. (편집자)[/box]

몽골은 우리나라 동쪽에 있을까, 서쪽에 있을까? 넌센스 퀴즈도 아니고 시답잖은 질문 같지만 어떤 교수가 학술행사에서 “몽골은 우리나라 동쪽에 있다.”는 말을 버젓이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아니고 1960년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세칭 북한학자였는데, 이 분은 러시아 책에 나오는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가져다 쓰다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15년도 더 전에 어떤 재미교포가 쓴 책에서 본 구절이다.

그렇다면 그때 이후 50년이 지난 21세기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24.2%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39.21%나 된다. 영국은 28%이고 OECD평균도 25.91%로 한국보다 높다(참고: ‘법인세 인하가 국제적 추세’라는 억지 혹은 코미디). 실효세율을 몇 퍼센트 포인트나 깍아 먹는 온갖 비과세감면은 논외로 치더라도 한국 법인세 수준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선 “한국의 법인세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너무 높다.”고 주장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용감한(?) 경제학 박사들이 많은 걸까. 내겐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혹시 “미국 법인세 수준이 너무 높다”는 미국 학자들의 발표를 그대로 가져다가 얘기하다 보니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주요국의 법인세 최고세율 변화추이 (출처: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

국외 박사 50% 이상이 미국서 학위 취득

7월19일 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하는 국제심포지엄 ’21세기 공공외교의 새로운 지평’에 참석한 한국인 발표자와 토론자 가운데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24명이다. 24명이 각각 어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미국 박사는 17명, 유럽박사가 3명, 국내 박사는 4명이었다. 미국 박사가 70.8%를 차지한다.

1943년부터 현재까지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사람은 전체 3만 9,135명이다. 이 가운데 미국 박사는 2만 2279명으로 전체에서 56.93%를 차지한다. 남성만 놓고 보면 전체 3만 877명 가운데 1만 7,900명으로 그 비율이 57.98%로 늘어난다. 두 번째로 많은 외국 박사를 받아온 일본보다 세 배가 훨씬 넘는 수치다.

[표1] 수여국별 박사학위 통계(1943~2012)
이런 추세는 시기에 따라 별반 다르지 않고 일관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부터 1999년까지 추세를 보더라도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2만 478명 가운데 미국 박사가 1만 2,284명으로 59.99%를 기록했다. 영어권 비중이 늘어나고 중국 박사가 급증했으며 일본이 퇴조하고 있다는 흐름 역시 어느 정도 예상과 다르지 않다.

[표2] 수여국별 박사학위 통계(2000~2012)
여기서 우리는 한국이 ‘지식’을 통한 외교를 할 수 있는 토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쌍방향 ‘외교’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국내에서부터 다양성이 보장되는 지식생태계를 통한 지식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 자체를 제약하는 심각한 걸림돌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하나는 수여국별 유학생 자체가 대단히 편중돼 있어서 다양한 지식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장애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 공부한 이들이 한국에서 분명한 지식독점을 형성하면서 대안 담론 활성화를 제약한다는 점이다.

장하준이 삼류라는 미국화된 지식권력

장하준이 말한 바로는 1987년부터 1995년 사이에 미국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8040명 가운데 한국인 이름을 가진 경우가 776명으로 비율이 10%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인구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된다.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들이 중심이 된 경제기획원은 1980년대 이후 자유시장경제를 위해 경제기획원을 해체해야 한다고 앞장서 주장했을 정도였다.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인식론인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보는 인식론이나 ‘공무원의 지대추구’ 가설조차 배신하는 무척이나 얄궂은 경우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미국 유학파들이 경제관료집단과 학계에서 주류가 된 것은 한국 사회를 급격히 신자유주의 사회로 재편하는 원동력이 됐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은 미국 박사가 아니면 거의 천연기념물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됐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박사 총인원 54명 가운데 미국 박사가 50명이고, 조세연구원은 30명 중 28명, 한국금융연구원은 32명 중 30명이다. 당장 내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만 해도 교수 15명 전원이 미국 박사다.

이런 편중성은 그 자체로 다양한 시각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며 지구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현안에 접근하는 전문성을 약화시킨다.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장하준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임용에 세 번이나 떨어지고 “삼류 잡지 에디터” 소리를 들은 건 위에서 열거한 사실과 과연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임용에 박사 취득 국가별 쿼터 도입하자

과연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지식을 생산하길 원하는 것일까? 미국 지식권력이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키면 한국의 지식권력은 그 달(혹은 손가락)을 쳐다보기에 바빴다고 하면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일까. 이제는 미국 지식권력이 달을 가리키면 ‘왜 지금 달을 가리키는지’ ‘왜 하필 저 달을 가리키는지’ 같은 문제부터 따지고 들어가지 않는 한 ‘쌍방향 지식 외교’는 요원해 보인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생각나는 ‘상대적으로’ 현실성이 높은 제안을 하나 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국책 연구기관이나 국공립대학부터 연구원이나 교수를 임용할 때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과 국가별로 쿼터를 두자는 것이다.

가령 특정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나 특정 국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 50%를 넘으면 안 된다는 의무규정을 둔다고 해 보자. 그럼 현실적으로 한국을 포함해 어떤 국가 출신 학위자도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없다. 그럼 서울대나 연고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도 절대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게 된다. 한국에서 학위 받은 사람도 해당하니 스크린쿼터 같은 논란에서도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제도를 시행한다면 서울대와 미국이라는 지식 독점을 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국 유학파라 하더라도 다양한 국가 출신들을 임용할 수 있으니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경쟁도 촉진할 수 있다. 국내 대학 출신도 임용에 유리해지니 자연스럽게 국내 대학원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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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1. 자작나무님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중현상은 세계시장의 방향과 그에 대한 정부의 방침과 일치하는 브레인들이 국책연구기관에 우선 임용된 결과일 텐데, 아무리 겉으로 드러나는 추세가 미국중심일지언정 그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별 쿼터제가 현명한 것인지는 좀 더 숙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하준(엄연히는 부교수급)이 개인적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해도 현재 이 사람을 국내 학계에서 받아 주려면(데려 오려면) 따로 제도학파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대학원을 개설하고 대학원장에 상응하는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할 겁니다. 물론 사회적 요청, 최소한 학생들의 요청이 먼저 필요하겠구요. 여하튼 경향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2. 오케이컴님/ 저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대학별,국가별 쿼터제는 저항이 매우 극심할 수 있고 그걸 각오해야 가능한 것이겟죠. 하지만 그 정도 해법 아니면 결코 자연스레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고민 또한 깊습니다. 주자학, 그 중에서도 근본주의 성격만 도드라진 학풍 일색이었던 19세기 조선이 국제관계 흐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떠올려봤으면 합니다.
    장하준 교수를 국내에 데려오는데 따로 제도학파 전문 연구 기관이나 조직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임용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닐까 싶군요.

  3. 정작 한국의 경제정책은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강행해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수출재벌만을 위한 고환율정책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박정희식입니다. 관료들이 금융시장을 포함해 강대한 권력을 가지고 사실상 지배하고 있죠. 박정희식 통제경제와 신자유주의는 애시당초 정반대에 위치하죠

  4. 진보 지식인이던 뭐건 전부다 박정희식 통제경제란 국내 역사를 외면하고 신자유주의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에 매달리는 것부터가 미국 편향적이죠. 도대체 외환시장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하해 고환율을 유지하는 행위. 영남 출신 그리고 관료 낙하산 아니면 은행 등 금융권 출세하기 어려운 현실(강만수뿐만 아니라 주요 은행 수장이 모조리 영남출신이거나 관료낙하산) 등 우리 역사를 보지도 않으면서 엉뚱한 얘기하는게 미국 박사들만의 문제일까요? 대다수의 진보 지식인들도 마찬가집니다.

  5. 오히려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한 학자들이죠. 그리고 고급 브레인들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비율이 높은 이유는 연구환경과 제정조건(장학금), 그리고 학교 명성 때문인데 근본적인 이유를 해결해야지 나라별 쿼터제를 도입하자니…

  6. 이건 뭐 알지도 못하면서…70년대 이후에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받은사람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하이에크, 프리드먼 좋아하세요?” 케인지언이고 고전학파고 걍 미국놈들은 다 신자유주의로밖에 안보이나 보네요. 그리고 미국으로 줄창 유학가는건 물론 미국 박사를 받아와야 교수 임용될 확률이 높기 때문은 맞는데, 그 이전에 미국 박사만 인정해주는 이유가 있죠. 경제학의 경우 미국처럼 치열하게 경쟁시키는 나라가 없거든요. 자기 맘에 안들면 그냥 다 신자유주의로 매도하지말고, 제발 거시경제학 책이라도 한번 읽고 글 씁시다. 하이에크는 무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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