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관세 협상은 일단락됐다. 임박한 한미 정상회담. 이제 문제는 안보, 한반도 평화다. 방위비 분담금와 주한미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주병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6분)
한국은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관세 협상에서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접근 방식이 이제 한미동맹의 심장부인 안보 영역으로 옮겨올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주한미군의 역할, 그리고 한국의 국방비 증액 요구가 될 것이다. 하나같이 동맹의 본질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들이다.
동맹을 ‘서비스 상품’으로 전락시키려는 트럼프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요구다. 이는 주한미군 병력과 전략 자산을 한반도 방어를 넘어 대중국, 대러시아 견제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이 두 군사 대국을 겨냥한 최전방 군사 기지를 자처하는 공공연한 적대시 정책은 국익에 정면으로 반하며, 주변국과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외교적 자산을 스스로 걷어차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양국의 단기적 이익을 흥정하는 협상으로만 보는 것은 큰 착오다. 70여 년간 피로 쌓아 올린 한미 동맹의 신뢰에 기초하여 합리적 협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치 동맹을 ‘보호 서비스’ 상품으로 여기는 듯, 기존의 분담금 틀을 완전히 무시하는 수준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양국이 수많은 논의를 거쳐 이뤄낸 합의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다. 지금까지의 방위비 분담 협상 결과를 존중하고 현재의 틀을 유지하는 것은, 과거의 상호 신뢰를 존중하고 미래의 동맹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분담 비율의 현저한 변화는 동맹을 거래관계로 전락시키는 위험한 신호탄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선택: 북한 상대…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국방비 증액 요구 또한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 일방적 압박이다. 이미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젊은이가 최소한의 보상만 받으며 병역 의무에 동원되고 있다. 징집된 병사들이 사적으로 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반영한다면 한국이 실질적으로 지불하는 국방비는 현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방위비 분담금이나 국방비 예산 협의가 트럼프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보상을 줄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바로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트럼프가 터무니없는 분담금 인상이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향과는 달리 북미 관계 개선과 관련하여 새로운 선택지를 추가함으로써 한미 군사동맹의 신뢰를 지키면서 미래지향적인 협의가 가능한 방향을 기대할 수도 있다. 러시아, 중동, 이란 등에서 분쟁과 군사적 충돌이 지속되는 작금의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을 상대로 획득할 수 있는 외교적 성과는 트럼프에게 큰 정치적 보상을 안겨줄 수 있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새 정부의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 정책이 마중물이 되어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재개되고 북미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열린다면 트럼프 정부에게도 매력적인 외교적 성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 코스프레…하지만 자유무역은 미국 번영 이끈 동력
추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숨 가쁘게 진행된 한미 관세 협상의 큰 틀은 일단락되었다. ‘관세 폭탄’이라는 당장의 불은 껐지만, 한국, 일본, EU와 같은 미국의 동맹국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경제적 비용의 문제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협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넘게 미국과 동맹국 사이에 뿌리내린 상호 존중과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세계 경제가 오랜 기간 구축해 왔던 다자간 무역 규범이 해체됐고, 한국과 미국 양국 국민이 합의했던 자유무역협정 체제가 붕괴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이 서사에 따르면 미국은 피해자, 중국은 가해자다. 아니 한국, 일본, 유럽 등과 같은 전통적인 동맹국까지도 가해자다. 이 프레임은 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본질을 외부로 돌리는 위험한 기만이다.

트럼프의 논리와는 반대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자유무역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지금까지 미국의 GDP 성장률은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을 유지해 왔으며, 가장 돈이 되는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중심의 산업구조 전환을 이룸으로써 빠르게 국부를 키울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값싼 공산품과 생필품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소비자의 구매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현재 미국인의 1인당 GDP는 월등히 높아졌고 미국과 대부분의 선진국과의 소득 격차 역시 전례 없이 커졌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과거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자유무역은 미국을 쇠퇴시킨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번영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
러스트 벨트 노동자는 왜 분노하는가?
그렇다면 왜 수많은 미국인, 특히 중서부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는가? 그들의 박탈감의 원인은 국경 너머에 있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성장의 혜택을 공정하게 나누지 못한 미국 내부의 정치와 시스템 실패에 있다. 세계화의 과실은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가와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에게 집중됐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는 동안, 제조업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공동체는 무너져 내렸다. 이는 자동화와 산업 구조의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재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며, 부를 재분배할 고민을 게을리한 결과다. 지난 수십 년간 심화한 소득 불평등과 계층 간 격차야말로 미국 사회를 병들게 한 진짜 ‘적’이다.

트럼프는 이 분노의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술수를 부리고 있다. 그 화살을 외부로 돌리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복잡하고 정치적 희생이 따르지만,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공격하는 것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미국 사회의 깊은 병폐를 가리고 다른 나라와 외국 기업의 주머니를 털어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얕은 술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미국 노동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수입 물가 상승으로 그들의 부담만 높일 것이다. 더 나아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국제 무역 규범과 신뢰를 무너뜨리고, 전 세계를 예측 불가능한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IMF, 세계은행, OECD 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한목소리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다.
한미 동맹의 역사적 무게… 한반도 평화로 증명하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다자주의 무역 체제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면서, 세계는 이제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단순히 몇몇 국가 간의 무역 분쟁을 넘어, 지난 세기 잔혹한 전쟁과 착취의 역사를 경험하며 쌓아 올린 신뢰와 규범, 원칙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송두리째 불태우는 행위다.
올해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다. 냉전이 이미 오래 전에 종결되었다고 하지만, 그 냉전이 시작된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냉전이 끝나지 않았다. 이 땅에 있었던 침략주의와 잔혹한 전쟁의 역사, 그 비극에 종지부를 찍는 가치 있는 합의를 한국과 미국의 정상이 만들기를 바란다.
한미동맹은 돈으로 저울질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성과를 품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북미관계 개선은 한국과 미국의 100년의 국익이다. 트럼프의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에 이보다 더 큰 외교적 성과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