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2015년 12월 15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는 한편으로는 아주 흥미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선후보 토론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전락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물론 그 핵심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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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토론회를 주관한 CNN이 편파적으로 자신을 공격한다고 불평한다.)
부시: (끼어들면서) 그 정도 가지고 불평을 하나? 대통령이 얼마나 터프한 자리인데!
트럼프: 아, 그래? 너 터프하다. 되게 터프해.
부시: 너, 그런 식으로 모욕하는 걸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보냐.
트럼프: 하하. 나는 (지지율이) 42%고, 넌 3%야. 너보다는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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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학생 말싸움 같은 모습도 충격적이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청중의 반응, 즉 환호와 야유가 더 충격적이었다. 낮에 하는 타블로이드 토크쇼인 제리 스프링어 쇼의 청중들과 다르지 않을 만큼 소란스럽고 무질서했다.
청중도, 후보도 통제가 안 되고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는 상황에서 진행을 맡은 울프 블리처는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합의한 토론회 규칙을 지키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미국 정치가 왜 이 수준으로 전락했을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트럼프나 프랑스의 국민전선 같은 선동가 수준의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끄러움 없는 저급한 취향 정치
폴 크루그먼이 지적한 대로 그런 정치인들을 좋아하는 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그런 층이 엘리트들에 의해 통제되어서 조용히 지냈다면 지금은 고삐가 풀렸다고 봐야 한다.
과거에는 자신의 취향에 비하면 지나치게 점잖은 정치인들을 지지해야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후보들을 지지하거나, (일베의 짜장면 먹기 행사처럼) 저급한 정치 행동을 하는데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의사소통 방식, 혹은 매체의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활자화된 모든 것들, 방송을 타는 모든 컨텐츠가 엘리트 편집자의 손을 거쳐야 했다. 점잖지 못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표현은 다듬어졌고 사실이 아닌 내용은 아무리 낮은 수준으로라도 확인과 검증을 거쳐 전달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반인이 하루에 읽는 글 대부분은 (그게 카카오톡이든, 페이스북이든 블로그든)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전달된다. 우리는 이제 여과장치가 없이 날 것으로 전달되는 정보나 의견을 접하는데 익숙해졌다. 20년 전에 트럼프가 TV에 나왔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중이 바뀐 것이다.
‘취향’의 핵심은 분노와 조롱
그런 대중은 공화당의 지도부를 불신하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후보를 원한다. 그것이 젭 부시가 고전하는 이유이고, 마르코 루비오가 뜰 듯하면서 아직도 지지율 수위를 달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기존 정치권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중적 극우파들의 ‘취향’의 핵심은 기존 정치인에 대한 분노와 조롱이다.
당 지도부에 대한 반감은 (티파티 세력을 등에 업은) 랜드 폴도 마찬가지이지만 테드 크루즈나 도널드 트럼프에 비해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심지어 진보세력에서도 사랑을 받는) 아버지 론 폴처럼 독자적인 시각과 논리적인 접근이 대중적 극우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확인된 주요 전선
따라서 이번 토론회에서도 주요 전선은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타고 성장한 후보들과 기존세력 내에 포함된 후보들 사이에 형성되었다.
1. 부시 → 트럼프 공격
젭 부시(초상화)는 루비오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트럼프에만 집중했다.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여전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어느 분석가의 말처럼, 트럼프는 공격하지 않는 게 나은 전략이다. 다만 부시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2. 크루즈 → (대중 심리 이용해) 루비오 공격
크루즈(초상화)는 루비오를 공격했고, 상당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히스패닉 이민자 집안 출신 루비오의 아킬레스건인 이민문제를 파고 들어서 우파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크루즈는 중동 문제에 대해 상당한 균형감각을 가진 루비오의 정책 방향을 (트럼프류의) 대중적 몰이해를 이용해 공격했고 박수를 받았다.
물론 같은 이유로 둘 사이의 대결에서 루비오가 우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용(substance)을 보면 루비오의 승리다. 결국, 누가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3. 트럼프 ∼ 크루즈: 상호 공격 자제
각각 부시와 루비오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트럼프와 크루즈는 서로에 대한 심각한 공격을 삼가는 흥미로운 장면도 연출되었다. CNN은 크루즈를 러닝메이트로 삼고 싶다고 말한 적 있는 트럼프에게 크루즈 공격의 빌미를 줬지만, 트럼프는 미끼를 물지 않고 크루즈를 칭찬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가장 싫어하는 이 커플의 허니문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이오와의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트럼프를 추월한 크루즈의 셈법은 이렇다:
- 당장은 루비오 상승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 그동안 트럼프가 공화당 지도부로부터 어떤 타격을 받는지 지켜본다.
-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트럼프 지지표를 흡수할 수 있도록 밀월 관계를 유지한다.
- 어떤 일이 있어도 트럼프의 막말은 피한다.
4. 벤 카슨, 자체 배터리 방전 중
벤 카슨은 특별한 공격을 받지 않아도 천천히 배터리가 방전되는 중이다. 지지율도, 관심도 함께 떨어지고 있다. 어차피 트럼프의 대안이 등장할 때까지만 유효한 임시거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트럼프를 어찌하오리까
이번 토론회가 공화당 지도부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이제 정말로 패닉(panic)할 시점이라는 경고다.
공화당 지도부가 밀었던 부시는 점점 멀어지고, 그나마 대안이라고 생각한 루비오도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 2016년으로 넘어가고 있다. 트럼프를 당에서 내쫓으면 지지자 대부분이 ‘무소속 트럼프’를 지지하겠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공화당의 우려가 허구가 아님을 보여줬다.
이번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당을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걱정은 절대 끝난 게 아니다. 트럼프의 말을 얼마나 신뢰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선승리를 확신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써는 두 가지 선택밖에 보이지 않는다:
A. 트럼프를 당에서 내쫓고, 2016년 대선을 힐러리에게 가져다 바친다.
B. 트럼프에게 경선 승리를 허용하고, 2016년 대선을 힐러리에게 가져다 바친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공화당 지도부는 흥분한 말의 고삐를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되나
박상현님의 예측에는 그다지 신뢰가 안가네요. 박상현님 이전 기사에서 계속 말씀하시기를 트럼프의 인기는 거품에 불과하며, 마르코
루비오가 결국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었죠? 그런데 지금 흘러가는 분위기는 트럼프가 후보로 유력한데요? 트럼프는 지금
지지율이 40%에 가깝고 루비오는 10%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계속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는경우엔 힐러리에게 필패한다고 별 근거없이 계속 말씀하시는데요. (링크 제한때문에 검색어로 알려드립니다.) 구글에서 [ statewide opinion united states 2016 ] 로 검색해서 최상단에 있는 위키를 눌러보시면 알수 있지만. 스윙스테이트 상당곳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고 있네요. 가장 최근에 발표된 CNN의 전국 지지율에서도 트럼프 47%
힐러리 49%로 별 차이 안나구요. 그리고 미국은 전국 지지율이 아닌 주별 선거인단으로 뽑죠. 그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현재
상황은 트럼프가 더 우세한데요?
제 의견도 대선 트렌드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으신것 같습니다. 현지 분위기는 트럼프 vs 샌더스 – 트럼프 대통령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