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이력서 ‘출신학교’ 정보 요청은 30년 넘게 불법이지만 사문화한 지 오래다. 이제는 정말 출신학교 차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법이 필요하다. (송인수/교육의봄 공동대표) (⌚7분)
2024년 초, KBS가 국민에게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장애인 차별이 1위를 차지하리라 예상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의 고통, 이동권의 제약, 고용의 벽, 시선의 폭력을 생각하면 그것이 마땅해 보였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국민이 가장 심각하다고 꼽은 차별은 학력과 학벌 차별이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장애인 차별이 더 심각한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며, 그로 인한 불이익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런데도 국민은 학력 차별을 그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라 응답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력과 학벌에 의한 차별이 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차별의 그늘 아래서 좌절과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리얼미터의 2024년 조사는 이 체감을 숫자로 확인시켜 준다. 국민의 74.7%가 학벌로 인한 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85.2%가 출신학교가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한국리서치의 교육 인식 조사에서는 87%가 대학 서열화가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이 수치들은 학벌 차별이 일부의 불만이 아니라 압도적 다수 국민의 공통된 경험임을 말해준다.

학벌 차별,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오판
국민은 이 차별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체념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출신학교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능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려면 어느 정도 학벌을 참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인 양, 기업의 정당한 권리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다. 많은 국민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채용에서 출신학교와 학력으로 차별하는 것은 이미 불법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고용정책기본법 7조 1항이 개정되어 출신학교에 의한 차별이 금지되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는 학력에 의한 차별까지 금지 조항에 추가되었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출신학교와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원칙에 합의해 온 것이다.
👨⚖️ 고용정책 기본법 제7조(취업기회의 균등한 보장)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임신 또는 병력(病歷) 등(이하 “성별등”이라 한다)을 이유로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되며, 균등한 취업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
문제는 이 법률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차별을 금지한다고 선언해 놓았으나, 위반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다. 상징적 선언에 그쳤을 뿐, 현실의 채용 관행을 바꾸는 힘을 갖지 못했다. 기업들은 여전히 이력서에 출신학교 란을 두었고, 서류 전형에서 학교 이름으로 지원자를 걸러낸다. 법은 있으되 지켜지지 않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법이었다.
재단법인 교육의봄이 2024년 상반기에 국내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매출 규모가 큰 순서대로 기업을 정렬할 때 상위 1,000개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조사한 결과는 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채용 공고가 뜬 169개 기업 중 출신학교 정보를 요구하는 곳이 99.3%에 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수치가 10년 전보다 오히려 늘었다는 사실이다. 2014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조사에서는 93.7%였는데, 10년 사이 5.6%포인트가 증가한 것이다. 기업들이 입으로는 ‘스펙보다 역량’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출신학교 정보를 더 꼼꼼히 챙기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는 실효성 있는 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시민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6년 1월 20일, 국회에서 출신학교·학력 채용차별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회가 열렸다. 311개의 시민사회 단체와 풀뿌리 조직이 참여했고, 400명의 시민들이 국회를 찾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 최교진 교육부장관 등 3명의 국무위원과 우원식 국회의장을 포함한 10명의 국회의원들이 지지와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간명하다.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 4조 3항에 ‘구직자 본인의 출신학교와 학력’ 항목을 추가하여, 채용 과정에서 이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반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왜 차별 금지에 그치지 않고 수집 자체를 막아야 하는가. 정보를 수집하는 순간, 그것이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참고만 했을 뿐 차별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는 내부의 영역에 속한다. 차별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후 통제가 아니라 사전 차단이다.

출신학교는 능력의 증거가 아니다
이 법안에 대해 “출신학교가 어느 정도 능력을 반영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성실하게 공부했다는 증거 아니냐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출신학교가 증명하는 것은 그 사람이 18세 때 치른 단 한 번의 시험 성적이다. 이것이 22세에 대학을 졸업할 때의 역량을 보장하는가? 25세에 입사하여 맡게 될 직무에 적합한지를 예측하는가? 구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년간 자사 직원들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SAT 점수와 출신학교의 명성은 직무 성과를 예측하는 지표가 되지 못했다. 구글은 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학벌과 학점 중심의 채용 관행을 폐기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 2018년 한양대 연구팀이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된 신입사원들의 직무능력이 이전 방식으로 채용된 사원들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았다. 출신학교를 가리고 뽑았는데도 업무 수행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역으로 출신학교가 업무 능력의 지표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채용의 다양성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합격자들의 출신학교 수가 평균 10.3개교에서 13.1개교로 늘었고, SKY 출신 비율은 15.3%에서 10.5%로 줄었으며, 비수도권 대학 출신 비율은 38.5%에서 43.2%로 증가했다. 예전에는 학교 이름 때문에 서류 단계에서 탈락하던 사람들이 기회를 얻자 합격한 것이다. 능력이 없어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름표 때문에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것이다.

기업도 학벌 중심 채용으로 손해 본다
신입 직원의 1년 내 퇴사 사유 1위는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다. 기업은 채용 미스매칭으로 인해 1인당 평균 2,454만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출신학교라는 손쉬운 필터에 의존하여 역량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의봄이 4년간 역량 중심으로 채용하는 기업 60곳을 취재한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합격자들의 출신학교 배경 다양성이 높아졌고, 직무 적응과 몰입도가 향상되었으며, 무엇보다 퇴사율이 크게 낮아졌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게임회사 OP.GG에서는 조기 퇴사율이 1%를 기록했다. 학벌을 보지 않고 뽑았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오래 다닌다. 직무에 맞는 사람을 제대로 골라냈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대한 또 다른 반론은 기업의 채용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채용의 자유에 법적 제한을 두고 있다. 성별·나이·장애·종교를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 기업의 채용 자율권은 무제한이 아니다.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차별이다.
대학 입학이 순전히 본인의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 거주 지역, 사교육 접근성이 대학 진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로 입증되어 있다. 서울 강남과 지방 농촌 고등학교 사이의 SKY 진학률 격차는 학생들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를 반영한다. 18세 때의 환경적 조건이 평생의 고용 기회를 결정짓게 두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무엇보다 이 법은 기업이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전공·학점·자격증·경력·포트폴리오는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오직 금지되는 것은 출신학교의 이름뿐이다. 능력을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학교 이름표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3.7%에 대한 역차별? 그렇지 않다
일부에서는 이 법이 명문대 출신에게 불리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매년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34만 명 내외 중 SKY 출신은 약 1.2만명, 비율로는 약 3.7%에 불과하다. 나머지 96%의 청년들은 아무리 역량이 있어도 이력서에 적힌 학교 이름 때문에 서류 단계에서 불이익 받는다.
명문대 출신이라고 해서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그 교육 환경에서 역량을 쌓았다면, 역량 평가 과정에서 그것은 충분히 드러난다. 학교 이름에 가점을 주지 않는 것일 뿐, 감점을 주는 것이 아니다. 실력으로 평가받겠다는 원칙인데, 그것이 어째서 역차별이겠는가.
이 법의 효과는 채용 시장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어디서 배우느냐”에 집착한다. 그런데 취업에서 대학 이름이 더 이상 결정적 변수가 아니게 된다면, 학생들은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 시장 규모는 연간 27조 원을 넘어섰고, 2024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7.4만 원으로 전년 대비 9.3% 상승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연구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1% 증가할 때 출생률은 0.26% 하락한다. 채용 시장의 규칙이 바뀌면 교육 시장의 규칙도 따라 바뀐다. 부모들이 “어떤 대학을 나오든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입시 광풍도 누그러질 수 있다.

30년 기다렸다…이제는 실행해야할 때
고용정책기본법이 출신학교 차별을 금지한 것이 1994년이다.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자발적으로 이력서의 출신학교 란을 없앤 민간 기업이 얼마나 되는가. 교육의봄의 조사가 보여주듯, 오히려 그 의존도가 더 강화되었다.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2010년 체벌 금지 정책이 시행된 이후, 손쉬운 통제 수단을 내려놓은 교사들이 협동학습이나 배움의 공동체, 수업 코칭, 수업 알아차림 등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출신학교라는 손쉬운 필터를 내려놓아야 기업들이 역량 중심 채용의 대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미 NCS 기반 역량 중심 채용 서비스를 민간 기업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AI 서류 평가, 역량 검사, 과제 기반 채용 등 새로운 채용 도구들도 시장에 나와 있다. 기술과 인프라는 준비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을 선언하는 법이다.
완벽한 법은 없다. 이 법 하나로 학벌 사회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면접에서 은근히 학교를 묻거나 다른 방식으로 학력을 유추하려는 시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성차별금지법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성차별을 방치할 수 없듯이, 학벌 차별도 마찬가지다. 법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방향의 선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이제 이력서에서 학교 이름을 지울 때가 됐다. 모든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주어야 한다. 어떤 학교를 나왔든, 자신의 역량으로 평가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이고, 그것이 효율이며, 그것이 교육의 정상화로 가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