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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중꺾정’ 칼럼

2024년 22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준연동형비례제가 유지되었지만, 위성정당이 다시 출현하고 정치개혁의 필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들의 시각에서 오늘의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오늘 중꺾정 칼럼 필자는 이소영(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 노인빈곤율
  • 노인 자살률
  • 산재 사망률
  • 청소년 자살률
  • 비정규직 비율
  • 성별 임금 격차
  • 상하위 계층의 임금 격차

이 모든 지표에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1위 또는 최상위권이라고 한다. GDP 순위만으로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기에는 우리의 삶이 참 버겁다.

저출생과 지방소멸의 가시화는 한국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만든다. 일자리가 없는 지방의 청년들이 떠나면서 지방소멸은 가속도를 내고 있고, 저출생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수도권 거주자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겨우 일자리를 잡는다 해도 끝이 안 보이게 올라버린 집값, 전셋값 탓에 맘 놓고 눌러앉을 곳을 찾기도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지게 된 은행 빚은 많은 한국인의 삶을 짓누르고, 무엇보다 청년세대에게서 희망을 빼앗고 있다. 일자리와 주거 문제와 함께 어마어마한 사교육비와 대학 줄 세우기에 따른 경쟁적 입시문화를 생각하면 0.7명대에 이른 출산율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목숨을 너무나 쉽게 앗아가 버리는 폭염과 폭우도 일상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및 대규모 환경 피해는 향후 인류를 위협할 가장 큰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되고 있지만,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대처는 아직 안일하기만 하다. 북핵에 대한 위험은 상존하고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대책도 없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수출도, 수입도 감소하고, 높아진 물가에 허덕이며 소비를 줄이고 있다. 이 와중에 2023년 법인세는 전년 대비 2.8%p가 감소한 반면, 근로소득세는 2.7%p가 증가해 서민은 더 어려워졌고 경제적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기술혁신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직접 위협할 것이라는 예고가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의제와 논의가 사라진 선거


나열하기에 끝도 없을 문제들이 한국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지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복합적 위기들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 시민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결국은 정부와 정치권이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문제들이다.

정부와 21대 국회는 대부분의 미래 의제들에 대해 눈을 감고 입을 닫아 대안을 생산하지 못했다. 더구나 한국 민주주의를 급격히 후퇴시키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다.

여야가 모두 심판론으로 일관하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정책적 대안의 목소리는 잘 찾을 수가 없다. 각 정당은 선거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논쟁은 안 보인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강조하던 ‘청년’을 위한 정책은 이번 선거에서 언급도 되고 있지 않다.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출산율 저하도 선거 이슈가 되지 못한다. 공론화된 이슈 없이 공약집에 나열된 정당과 후보자의 공약만으로는 사실상 22대 국회가, 또는 각 정당이 무엇을 주요 의제로 삼을 것인지, 어떠한 정책적 대안을 핵심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렵다.

여야는 핵심 선거 전략으로 서로에 대한 심판을 강조하고 있고, 언론은 시간 시간마다 새로이 생산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기에 바쁘다. 때로는 후보자의 막말, 과거의 부정적 경력, 비리 등을 밝혀내는 것을 언론의 핵심적인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모든 후보자에게나 모든 정당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사회적 의제를 설정해 내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성이 사라진 곳에서 선거는 선수들이 치고 방어하고 되치는 경기장으로서의 의미만 가지게 된다. 경마식 선거 보도는 당연해졌고, 더 나아가 언론이 정파적 색채를 띠고 정치적 혐오와 적대감을 생산해 내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책을 강조하지 않는 정치권과, 정책적 대안에는 관심이 도통 없는 언론 환경에서, 유권자들의 관심 역시 정책 대안에서는 멀어져 가고 오로지 치고 되치는 경기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정책선거가 없는 곳에 미래를 위한 대안은 없다


정당이나 후보자의 정책을 기반으로 투표를 결정하는 정책선거는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유지되는 데 중요한 조건이다. 중앙선관위는 정책선거를 위한 캠페인과 더불어 정당과 후보자들의 정책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선거의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정책공약을 잘 찾아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정책선거라는 것이 단순히 선관위에 등록된 공약을 바탕으로 유권자가 투표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온갖 미사여구가 난무하고 지역의 주요 민원 사항이 모조리 열거된 그러한 공약을 기반으로 유권자가 표를 던지는 것을 정책선거라고 하기는 힘들다. 

실질적 의미의 정책선거는 사회적 논의와 논쟁의 대상이 되는 정책들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강조하고 언론이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유권자가 판단하고 투표를 결정할 때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정치와 언론 환경에서 정책선거는 요원해 보인다. 정책 대안과 이에 대한 검증이 없는 선거의 반복은 우리 국회가 향후 4년간 한국의 미래 의제를 또다시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 과정에서 언론과 유권자가 정책 활동에 대한 요구도 없고 책임도 묻지 않는 영역에 대해 국회의원이 스스로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간 국정운영의 실태를 고려하면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부의 평가와 심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미래와 관련하여 깊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22대 국회가 정권 심판과 이에 대한 대응이라는 정치적 구도로 맞서면서 그 외 다른 과업에 대한 관심과 책임이 약한 채 출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대결 구도가 갈등의 조정이 불가능한 국회를 다시 한번 더 재현하고, 결국 합의된 대안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2대 총선, 위기를 이겨내는 계기로


선거가 열흘 남짓 남았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사회의 위기에 대한 정책 대안을 중심으로 투표를 하기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지만,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안을 하나의 투표 결정 요인으로 고려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 불씨가 선거 후에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언론도 이제는 우리 사회 위기 대응을 위한 의제를 만들어 내고 정치권, 시민사회와 함께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선거는 곧 끝나겠지만 우리 사회 위기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지방이 소멸하고 청년이 절망하는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대안을 미룰 수 없다. 후퇴한 민주주의의 회복과 더불어 한국 사회 복합적 위기의 극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은 22대 국회를 제대로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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