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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2015년 12월 2일), LA에서 동쪽으로 62마일 정도 떨어진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 인구 209,924명 – 2010년 기준 )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총기 사건은 이제는 미국에서 일상처럼 되어가고 있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샌버나디노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가장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다. 1880년대 철도 개통으로 물류도시로 성장했고, 현재는 집값이 싼 서민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구 구성은 백인이 46%, 흑인이 15%, 아시아인이 4% 소수계가 50%를 넘는다. (출처: Don Graham, CC BY SA) https://flic.kr/p/b3jGu2
샌버나디노는 캘리포니아주의 가장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다. 1880년대 철도 개통으로 물류도시로 성장했고, 현재는 집값이 싼 서민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인구 구성은 백인이 46%이고, 소수계가 50%를 넘는다(흑인 15%, 아시안 4%). (출처: Don Graham, CC BY SA)

결론부터 말하면, 이 비극적 사건으로 미국 대선은 또 한 번, 아니 어쩌면 최대의 격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힐러리 클린턴이 될 것이고, 가장 큰 수혜자는 어쩌면 트럼프가 될지 모른다.

샌버나디노 사태의 심각성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가늠해보자.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과 관련해 특별 사설을 싣고 총기규제를 촉구했다.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 신문의 독자라면 총기 난사 사건이 나오면 으레 예상할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설이 특별한 이유는 사설이 실린 위치다. 원래 사설은 맨 뒤쪽에 실리는데, 관례를 깨고 1면으로 옮긴 것이다. 정확히 95년 만의 일이다. 그 말은, 어느 언론인의 설명대로, 히틀러의 위협도, 베트남전의 참상도, 그 어떤 20세기의 대사건도 해마다 계속되는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만큼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샌버나디노 뉴욕타임스 사설

그리고 며칠 뒤 미국시각으로 일요일 밤(2015년 12월 6일), 오바마는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역시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다.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면 대통령이 특별 기자회견을 한다. 그건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가 특별한 이유는, 뉴욕타임스 사설과 마찬가지로, 그 장소다.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에서 했기 때문이다.

YouTube 동영상

오바마는 집무실을 연설장소로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대통령마다 스타일이나 취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오바마는 이스트룸(East Room)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주로 사용해왔다. 오바마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소식도 그렇게 복도에서 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무실을 사용한 것이다.

민주당의 공화당 후보 견제 

집무실을 연설장소로 사용하기 싫어하는 오바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시각적으로 사건의 중대함을 호소하려고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인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총기 난사 사건인 샌디훅 초등학교 사태 때도 그냥 백악관 프레스룸에서 이야기한 오바마는 왜 이번 사건을 그토록 중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바로 공화당 후보들 때문이다.

샌버나디노에서 총기 난사가 있었다고 했을 때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은 늘 하던 대로 반응했다. 민주당 후보들은 ‘총기규제’를 통한 재발방지를 외쳤고, 공화당 후보들은 ‘저희의 마음과 기도(our thoughts and prayers)’희생자 가족들에게 보낸다는 일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까지는 민주당에 유리했다. 특히 법적인 규제를 해야 하는 문제를 두고 맨날 기도 타령만 한다는 거센 여론이 일어나면서 소위 “기도 조롱하기(prayer shaming)” 현상까지 등장했다. 힐러리를 비롯한 민주당 후보들은 공화당 후보들을 몰아세웠다(아래 재인용한 트윗 참고).

샌버나디노 총기 사건 트위터

상황 반전: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  

그러다가 총기 난사 범인이 이슬람 극렬분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세는 180도 뒤집어졌다. 이제 FBI는 이 사건을 테러사건으로 취급한다고 공식으로 발표했고, 이제 테러는 다시 미국의 안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테러라면 미국의 방어선이 뚫린 것이고, 그렇다면 우선 오바마 정권에 불리한 악재다. 게다가 공화당 후보인 크리스 크리스티의 말처럼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면 미국의 국민들은 총으로 스스로 무장을 해야 한다는 정당방위(self-defense)라는 주장과 함께 총기규제는 완전히 물 건너 간다.

AK Rockefeller, USA gun, CC BY SA https://flic.kr/p/ihwiBX
AK Rockefeller, USA gun, CC BY SA

그뿐 아니다.

아이오와에서 승승장구하는 테드 크루즈는 이제 미국은 전쟁을 시작한 거고 따라서 “전시 대통령(wartime president)”이 필요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젭 부시는 “그들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했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중은 거기에 화답하고 있다.

이슬람 극렬분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대두하자 이제까지 가장 사나운 레토릭을 사용했던 트럼프의 지지율이 다시 치솟고 있고, 테드 크루즈가 대선 출마선언 장소로 사용했던 리버티대학교(과거 신학교였음)에서는 설립자 제리 팔웰 목사의 아들이자 현 총장인 제리 팔웰 주니어가 “모슬렘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여야 한다”며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지금 총을 차고 있다고 떳떳하게 밝히면서 학생들에게도 어서 총을 사라고 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https://youtu.be/0UFH-eEs28A

공포는 이성을 잠식한다 

힐러리와 샌더스는 그러한 모든 움직임이 IS를 비롯한 이슬람 극렬세력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그런 세밀한 음성은 공포 앞에서 흥분한 사람들의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미국의 총기 규제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 총기 규제와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분노가 서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 후보들도 그걸 잘 안다.

그래서 마르코 루비오(초상)는 이렇게 말한다:

“(총기 사건이 발생한 지) 48시간이 지났는데 우리는 여전히 총기 규제를 이야기한다. 테러리스트들이 우리의 총기규제에 신경이라도 쓸 것 같은가. 프랑스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총기규제 국가 중 하나이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총을 문제없이 구했다.”

파리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전문가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듯, 프랑스가 당한 것은 대테러예산 부족의 문제가 크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의 지식은 대중설득력이 약하고, 미국 국민들은 안방이 뚫렸다는 공포에 질려있다. 공포에 질린 국민들은 선동당하기 가장 좋은 대상이다.

힐러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공화당 진영은 하필 뚜렷한 우승주자 없이 전력질주를 하던 판국이었고, 이제 각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국민들을 위협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타산지석: 프랑스 지방선거 승리한 극우정당 ‘국민전선’ 

민주당 최대의 악재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미국 정치의 악몽이고, 민주주의 시스템의 아킬레스건이다.

미국보다 한 달 앞서 비슷한 테러사건을 겪은 프랑스는 타산지석이다. 12월 6일 지방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은 파리 테러로 높아진 반(反)이민, 반(反)이슬람 정서에 힘입어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전선은 13개 광역 도(Region)의 절반에 육박하는 6곳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0년 지방선거 득표율인 11%의 2배가 넘는 30.6%를 득표할 것으로 보인다(아래 동영상은 국민전선의 당수인 마린 르 펜이 지방선거 자축 연설을 하는 모습).

YouTube 동영상

이런 일이 미국에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샌버나디노 사태 이후 이후 미국의 반이슬람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공포에서 ‘표 냄새’ 맡은 트럼프 

미국의 공화당 후보들이 국민의 공포에서 표 냄새를 맡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도널드 트럼프가 선봉에 섰다. 당분간 모든 모슬렘들의 입국을 거부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DonkeyHotey, Donald Trump, CC BY SA https://flic.kr/p/BF3pUX
DonkeyHotey, “Donald Trump”, CC BY SA

극렬분자와 그렇지 않은 모슬렘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모든 모슬렘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트럼프는 주장의 근거를 다름 아닌 (민주당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 중 하나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 독일, 이탈리아 세 나라 출신 이민자들의 입국을 막은 데서 찾았다.

물론 즉각적인 반발이 언론과 워싱턴에서 터져 나왔다.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도 도가 지나친 발언이라며 재빨리 선 긋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아이오와 여론조사에서 크루즈에게 밀리며 1위를 내준 트럼프가 이 기회를 놓칠 리는 만무하다. 앞으로도 반이슬람 정서, 혹은 이슬람 공포(Islamophobia)를 십분 활용하면서 1위 탈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완의 프로젝트  ‘민주주의’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문제는 트럼프의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의 문제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아이오와의 공화당 지지자 3명 중 1명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불법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공화당원들의 76%는 이슬람이 미국적 가치와 다르다(un-American)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막말할 수 있는 근거에는 바로 이러한 유권자들이 있다.

누구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미완의 프로젝트”다. 언제든지 뒤집어지고 무너져내릴 수 있는 위태로운 시스템이다. 근대 민주정치의 양대 산실인 미국과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비이성적 공포에 질린 유권자는 항상 존재하고, 그런 유권자들을 이용할 정치인들은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Pedro Ribeiro Simões, "Democracy", CC BY https://flic.kr/p/vcqmqy
Pedro Ribeiro Simões, “Democracy”, CC BY

오죽하면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의역):

“평범한 유권자 한 사람과 딱 5분만 이야기해보면 민주주의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The best argument against democracy is a five-minute conversation with the average voter.”

하지만 “민주주의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진”(Democracy is not a static thing. It is an everlasting march.)이라는 믿음을 가진 루스벨트는 유권자의 ‘준비된 선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투표를 현명하게 준비한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보루는, 그러므로, 교육이다.”

“Democracy can not succeed unless those who express their choice are prepared to choose wisely. The real safeguard of democracy, therefore, is education.”

루스벨트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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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본문에 언급된 제리 팔웰이 영화 에서 언급된 그 제리 폴웰(제가 본 자막으론 폴웰로 나오더군요)이 맞나요? 맞다면 부자가 대를 이어가며 참 가관입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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