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민주주의 위협받을 때 자칭 ‘애국보수’는 어디 있었나. 12.3 계엄 후 보수 우파·경제단체 행태 유감···네덜란드 노조-경영계 함께 나치에 맞서. (박영삼/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노동데이터센터장) (⏳4분)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함으로써 4개월을 끌어온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일단락되었다.

윤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 시도는 국회의 즉각적인 계엄해제 결의와 탄핵소추안 통과, 헌재의 심리와 최종선고에 이르기까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기구와 절차에 의해 체계적으로 저지되었다. 비록 예상보다 최종 선고기일이 한참 늦어졌지만 대한민국 민주헌정질서의 건재함은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가뜩이나 소비침체와 투자부진, 고용둔화와 가계부채 악화로 국내경제 여건이 어려운데 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으로 수출대기업 의존도가 큰 한국경제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연이은 산불과 대형사고로 민심마저 흉흉한 상태다.

여기에는 외부 요인도 있지만 비상계엄 사태가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들도 상당하다.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도박으로 한국의 대외신인도는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대가는 앞으로 한국민 5100만이 할부로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자유가 위협받을 때 한국 보수가 보였던 행동

한편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계속된 ‘12.3 비상계엄 사태’를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가 드러낸 취약성이 무엇이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시민들의 즉각적인 항의와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결집된 의지와 끈질긴 행동,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작동으로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건강함과 회복력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과 진영 대결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나라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했던 ‘조직된 우파 진영’이 없었다는 점은 깊이 성찰해볼 대목이다.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서 국회를 침탈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고, 파업과 집회를 금지하며,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를 처단한다는 얼토당토않는 계엄포고령이 발동되었는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보수우파의 규탄과 항의는 없었다.

자유총연맹이나 예비역 장성단 등 이른바 자칭 애국보수 단체들은 오히려 탄핵반대 집회에 동원령을 내리고 몰려다니는 행태를 보였다. 보수를 자처하는 진영에서는 오로지 정규재 전 주필, 조갑제 전 편집장, 김진 전 논설위원과 같은 몇몇 언론인들만이 비상계엄을 비판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다. 이들의 단호하고 일관된 주장이 반갑고 고마웠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런 보수우파의 목소리가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난 몇 달간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조직된 경제단체들이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철저히 침묵한 것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전경련의 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는 윤석열 정부 하에서 대통령의 측근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영입하면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고, 12.3 계엄 이전 정부와 국회를 향해 연일 긴급성명이나 입장문을 내고 규제개혁, 첨단산업 지원,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촉구해오던 중이었다. 대한상의와 경총도 정치권을 찾아다니며 경제상황이 심각하다며 민원을 쏟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던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는 이들 모두 사후적 우려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은 헌재의 파면 선고가 있었던 지난 4일에 와서야 입장문을 내고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해 탄핵 정국으로 야기된 극심한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종식하고 사회 통합과 안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쏟아냈다.

네덜란드 노동재단 설립에 담긴 공통의 이상

네덜란드의 노동재단(Labour Foundation)은 네덜란드를 세계적인 제조·IT·지식산업 강국으로 만든 ‘폴더모델’의 견인차였다. 1982년의 유연안정성 합의로 유명한 ‘바세나르 협약’을 탄생시켰던 네덜란드 경제사회위원회(SER)도 노동재단이 산파가 돼서 만든 조직이다. 그런데 이 노동재단이 설립된 시기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였던 1945년 5월 17일로 거슬로 올라가며, 실질적인 조직의 태동은 1940년 5월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노동조합과 경영계 지도자들이 지하 비밀조직을 함께 만든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독일군이 진주한 뒤 네덜란드 노동조합의 활동은 금지되고 나치당(NSB)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활동도 금지되었다. 이때 전쟁 전 노동조합의 상대편이었던 경제단체들은 나치에 부역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직을 해산해버린다. 상당수 노조 지도자들과 기업가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야 했지만, 강제수용소로 붙잡혀가지 않았던 이들이 노사 공동의 비밀회합을 지하조직 형태로 조직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4월 4일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대통령(윤석열)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 헌법재판소


이들이 한 일은 한편으로는 독일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방해하는 파업과 저항활동을 벌이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나치에서 해방되는 날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도록 네덜란드의 경제와 사회의 재건 방안을 노사가 협력해서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치가 패망하고나서 가장 먼저 지상에 만들어진 조직이 노동재단이었으며, 런던에서 돌아오는 네덜란드 망명정부를 제일 먼저 맞았던 것도 이들이었다.

네덜란드 경제사회위원회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펠스(P. S. Pels)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발간한 ‘노동재단의 역사’에서 “노동재단은 국가위기에 노사가 합심해 지하에서 만든 조직이며 국난 극복과 사회 재건의 이상 속에 탄생한 조직”이라고 쓰고 있다.

진정한 위협에 함께 맞설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

어쩌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 노와 사가 좌우를 막론하고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세력에 함께 맞서 위기를 극복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헌법재판소가 이번에도 전원 일치로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주요 세력들만이라도 진영을 넘은 대응으로 최종 판결을 맞았다면 그 의미는 박근혜 탄핵 때보다 훨씬 더 컸을 사건이었다.

경제단체들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라는 뜻이 아니다. 평소 경제단체들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진심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과 같은 위험한 시도가 있었을 때 이런 행위가 기업과 경제 전체에 매우 해롭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 기업의 이익을 거론할 수도 있구나 하고 느꼈을 것이다. 노동계를 만나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보자고 손을 내밀기라도 했으면 거리에 나선 노조원들과 단식농성을 벌이던 노총위원장들이 ‘노사협력’이라는 단어를 진지한 의미로 생각해봤을 것이다.

파면되기 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주류, 이른바 애국보수단체들은 종북세력이 야당과 국회를 장악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종북세력이 일부라도 있을지언정 그들이 야당과 진보진영에 미치는 영향은 보잘 것 없고 이 나라에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줌의 종북세력을 잡겠다고 나라 전체를 거덜내려 했던 대통령과 그의 추종집단이 자유와 시장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세력이라는 점이 드러났을 뿐이다.

광화문과 여의도, 용산의 광장과 거리에 다행스럽게도 평화가 다시 찾아 온 지금, 보수우파와 경제단체들은 자신들이 누리게 될 이 익숙한 평화가 실은 거대한 사회적 채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