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략적 선택 아닌 국가 생존 전략이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국가균형발전 위한 선택. (이장연 /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5분)
이재명 정부가 지난달 29일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인공지능 등에 약 1500조 원을 투자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공개했다. 특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파격적 규모의 투자를 놓고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의원 등 보수 진영에서는 수도권 및 기존 산업 거점의 집적 효과와 경제적 효율성을 내세워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치적 득실에 따른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점도 비판의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현재 한국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지극히 근시안적 주장으로, 명확한 근거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에 그치는 공허한 주장에 불과해 보인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단순한 지역 민원 해소용이 아니라, 고도 성장기 무분별하게 추진된 국토개발 과정에서 불균형하게 파편화된 국토를 봉합하고, 국가의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경제 정책이자 생존 전략으로 봐야 한다.
경제 발전에서 역사적으로 소외된 호남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토의 심각한 산업 기능 불균형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부터 현재까지,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국가의 핵심 생산 시설은 경부선 라인을 중심으로 유치・집적되어 왔다. 영남권은 거대한 제조업 벨트를 형성하며 국가 수출을 견인하는 중추 역할을 해왔다.
반면, 호남 지역은 경제 발전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과거 농업에서 중화학 공업으로의 산업 구조 전환기에 소외되면서, 호남의 생산 기능은 갈수록 약화되었다. 양질의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핵심 앵커 기업이나 대규모 생산 거점의 부재로 인해 필연적으로 지역 청년들의 수도권 이탈이 가속화됐다. 이는 다시 지역 경제의 쇠락으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한편, 충청권의 경우 대덕연구단지를 필두로 한 국가 연구개발 핵심 인프라가 일찌감치 자리 잡았고, 이후 세종시 출범과 함께 행정수도의 기능까지 성공적으로 이전되면서 지식과 행정의 중심지로서 충분한 역량을 확보했다.
이같은 지역 격차는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각종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 전국 경제력(GRDP) 지표를 보자.
- 수도권은 53%
- 영남권은 22%
- 호남권은 9%
- 고속도로와 KTX 등 핵심 교통망도 경부선에 비해 10년 이상 지체되는 차별을 겪었다.
-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진 호남에서는 지난 50년간 350만 명 이상의 인구가 타지로 순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 그 여파로 제조업 출하액에서 호남권이 차지하는 비중(11%)은 영남권(34%)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 인구 비중 역시 10%로 영남권(2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역사적 출발선이 달랐던 것은 아니다. 1949년만 해도 전국 인구 비중은 호남(25%)과 영남(31%) 간에 큰 격차가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울산, 포항, 창원, 구미 등 영남권에 국가산업단지가 집중적으로 배치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이같은 역사적・구조적 소외를 방치한 채, 기존 거점 중심의 효율만을 고집하는 논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영구히 방치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 잠재성장률 갉아먹는 지역 불균형 발전
경제적 관점에서 지역 균형발전의 당위성은 이미 객관적 지표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한국은행은 그간 여러 심층 보고서를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와 극심한 지역 불균형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구조적으로 갉아먹고 있다고 거듭 경고해 왔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으로의 과도한 인구 및 자본 집중은 부동산 가격 폭등과 극심한 경쟁 압력을 유발한다.
서울의 출산율이 가장 낮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세계 최저 수준의 초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재난도 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지역 불균형은 단순히 지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의 존립을 흔드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호남과 같은 소외 지역에 대규모 첨단 산업을 육성해서 국토의 다극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구조적 저성장과 인구 소멸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 거시적이고 효과적인 처방전인 셈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글로벌 산업 환경에 부합하는 이유
특히 글로벌 산업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타당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미래 반도체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단순한 부지확보나 용수 공급을 넘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공급망 전체에 걸쳐 강력한 탄소중립을 요구하고 있다.
호남 지역은 국내에서 태양광과 해상 풍력 등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나 데이터센터가 RE100을 충족하면서 지속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가 바로 호남인 것이다. 이는 기존의 효율성 프레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 입지 경쟁력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도 대만 내 여러 과학단지는 물론 최근에는 해외로까지 생산 거점을 분산해 운영하고 있다. 이는 지진, 태풍 등과 같은 자연재해 혹은 지정학적 갈등으로 특정 지역의 생산이 중단되더라도 다른 지역의 팹(생산 라인)을 통해 생산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핵심 시설이 수도권 지역에 집중된 것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기후와 국제정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분산 배치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향후 국가 공간 구조의 개편 방향을 고려할 때도 이번 결정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향후 세종시로의 대통령 집무실・국회 완전 이전 등 행정수도 이전 작업이 일단락될 경우, 정치・행정의 무게 중심은 충청권으로 확고히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거대한 국가 인프라 재편의 흐름 속에서, 행정(세종), R&D(충청) 및 전통 제조업(영남)에 이어, 첨단 미래 산업(반도체, AI, 재생에너지)의 새로운 생산 거점을 호남에 구축하게 되면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복잡한 퍼즐도 완성된다. 행정수도 이전이 ‘권력과 행정의 분산’을 의미한다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경제력과 생산자본의 분산’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국토 균형발전을 이루는 마침표라 할 수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새로운 성장축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 ‘손상익하(損上益下)’, 즉 “위를 덜어 아래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행정과 경제의 도리임을 역설한 바 있다. 넘치는 곳의 기운과 부를 나누어 메마른 곳을 적시고, 국가 전체에 치우침 없는 ‘균(均)’을 이루는 것이 공동체 존속의 근본이라는 가르침이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과도한 경쟁과 비용 낭비를 낳고 있는 수도권이 그동안의 집중을 덜어내야 할 ‘상(上)’이라면, 오랜 기간 핵심 생산 기반 유치에서 소외되며 쇠락해 온 호남은 국가가 나서서 반드시 채워 넣어야 할 ‘하(下)’에 해당한다.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이미 넘치는 곳에만 계속해서 자원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논리는, 다산의 시각에 비추어 보았을 때도 국가 전체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위태로운 발상일 뿐이다.
지금은 AI 혁명의 시대이자 글로벌 무한 경쟁의 시대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십 년간 누적된 맹목적인 수도권 일극주의와 효율성 제일주의가 낳은 국가적 질병을 치료하고, 쇠락하는 지역의 생산 기반을 복원해 새로운 성장의 축을 세우는 과업이다. 이를 근시안적 정치 행위로 보는 것이야 말로, 정략적 발생이다.
정당은 여러 개라 하더라도 국가는 하나다. 우리는 이제 단기적인 장부상의 이익을 넘어, 국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더 큰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으로 시작된 국가 균형발전의 여정은, 호남의 넓은 평야 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첨단 반도체 생태계가 안착할 때 비로소 든든한 경제적 뼈대를 갖추게 될 것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치적 흥정이나 저울질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한 선제적인 국가적 결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