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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리포트] ‘얼마나’보다 ‘어떻게’를 이야기해야 할 때, 총선 포퓰리즘으로 밀어붙일 일 아니다.

2월20일부터 전공의들 이탈이 시작됐다. 3주가 다 돼 가는데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진짜 의료대란은 지금부터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해결할 의지가 없고 의사들도 물러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 솔로몬의 재판에 나온 아이와 같은 상황이다. 아이(국민들의 생명)를 자를 것인가. 아이를 생각하는 진짜 엄마라면 양보하겠지만 정부와 의사들, 둘 다 물러설 분위기가 아니다.
  •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붙일 때와 비슷하다. 적당히 일부 국민들이 찬성하는 것 같으니 디테일 없이 밀어붙인다.

언론 보도를 보면 파업이라고 쓰지 않던데, 이게 무슨 차이인가.


  • 노동조합이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파업이 아니다. 파업을 하면 업무 개시 명령을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으면 면허 취소까지 갈 수 있다.
  • 의사들은 집단 행동이라는 표현을 쓴다.
  • 파업을 하려면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을 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노조가 아니라 파업이 성립 안 되고, 애초에 의대 증원 반대가 노동 조건 개선 등의 파업 요건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 의사도 노동자들인데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상 파업인데 합법 파업 불법 파업 나누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의사들 반발이 거센데 강대강으로 치닫는 것 같다. 달리 대안이 없었을까.


  • 의대 정원이 2006년부터 18년째 3058명에 묶여 있는 건 맞다.
  • 당초 300명 늘리는 방안을 보고했는데 윤석열(대통령)이 확 늘리라고 주문해서 1000명으로 늘었다가 다시 200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한 뒤 국면 전환용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 일단 윤석열과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효과가 크다. 의사들을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윤석열 특유의 강하게 밀어붙이는 전략이 국민들에게 어필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판을 키웠고 실제로 지지율도 올랐다.
  •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의대 증원을 찬성한다는 답변이 76%였다. 보건의료노조 조사에서는 89%가 찬성한다고 답변했는데 한달 전 조사보다 7%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여론이 의사들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 갤럽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의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라고 꼽는 답변이 21%로 가장 높았다.
갤럽 여론조사 주간 대통령 지지율 추이.
  • 박순우(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장)가 이런 말을 했다. “2000명이라는 숫자가 왜 이렇게 정부의 금과옥조나 불가침의 성역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대화의 문을 차단할 정도로 절대적인 것인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 (용어 설명 : 인턴과 레지던트를 합쳐 전공의라고 한다. 수련의라고도 한다. 엄밀하게는 노동자라기 보다는 교육생에 가깝다.)

의사 수가 부족한 건 맞지 않나.


  • OECD 평균은 인구 1000명당 3.6명이고 한국은 2.5명이다. 부족한 건 맞다.
  • 그런데 한국은 개원 의사가 많다. (동네 병원이 많다는 의미.) 100만 명당 병원이 79개, OECD 평균은 30개다. 한국이 두 배 이상이다.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의사는 적지만 자잘한 의료 행위는 많다는 의미다. 감기 걸려서 가도 몇 천 원 안 나오니 병원 문턱이 낮다. 실제로 병원 가보면 1분 ‘총알 진료’ 많지 않나. 한국 사람들 병원도 자주 가고 의사들 진료도 많다. 의료 수가가 낮다고 하지만 의사들도 진료를 많이 해서 돈을 버는 구조다. 의사들이 “이틀 뒤에 다시 오세요”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러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는 것 같다.


  • 맞다.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고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 가지 문제를 짚을 수 있다.
  • 첫째, 상급 병원 쏠림 현상. 우리나라 사람들 아프면 큰 병원에 가서 드러눕는다. 그래서 응급실 뺑뺑이에 병상이 없어 구급차에서 죽는 환자들도 여전히 많다.
  • 둘째, 전공의들 과로. 전공의 평균 근로시간이 주 78시간에 이른다. 4주 평균 주 80시간 이상 일했다고 답변한 비율은 52%였다. (한때 주 120시간도 일했다고 한다.)
  • 셋째, 필수 의료의 붕괴. 지금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응급실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가 부족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다.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 부족한 게 아니다. 당장 의료 대란으로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이런 말도 했다.


  • 여론에 불을 질렀다.
  • 노환규(전 의사협회 회장)의 말이다. “재앙이 시작됐다”고도 했다.
  • 의사들은 단순히 밥그릇 투쟁으로 비춰지지 않으려고 고심하는 분위기다. 명분도 있다. 늘리는 건 맞지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다.
  • 그런데 여론은 냉담하다. 명분은 와닿지 않고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게 현실이다. 의대 입학생 80%가 소득 상위 20%라는 분석도 있었다. (미국은 이 비율이 50%다.) 의대가 부의 대물림 통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민들 여론이 좋을 리 없다.

하나씩 살펴보자. 의대 정원이 늘어나고 인력이 충원되면 전공의들 노동 조건이 좋아지는 것 아닌가.


  • 2035년에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 이게 보건복지부 분석이다. 그래서 내년부터(올해 입시부터) 5년 동안 2000명씩 늘려야 한다고 한다.
  • 의사가 부족하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늘려야 하는 것도 맞지만 문제는 속도다.
  • 정부는 트리클 다운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다(물을 부으면 아래까지 흘러 내려간다고 보는 거다). 피안성이 돈이 되니까 몰리는 건데 의사가 늘어나면 피안성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럼 자연스럽게 인기 없는 진료 과목까지 늘어나지 않겠냐, 이런 생각일 텐데. 그래서 찔끔 늘리는 걸로는 안 되고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의사들의 불안과 공포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의료 시장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한국일보가 지난해 6월 이런 제안을 했다. “원래 협상 테이블에서는 일단 크게 지르고 보는 법이다. 상대가 강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300명 논의하고 있을 때 2000명까지 늘려보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디어 차원이었는데 정말 받았다.)
  • 일단 의대 정원만 놓고 보면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 너무 속도가 빠르다. 둘째, 대학이 감당할 수 있느냐. 셋째, 의료비가 더 늘어날 거다.
  • 일단 “급격한 정원 확대로 의학 교육의 질이 저하할 수 있다”는 우려는 무시할 수 없고, 일단 늘렸다가 그때 가서 다시 줄일 거냐,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의료 드라마 단골 소재인데, 의사들이 그렇게 잠 안 자고 일하는 게 맞나.


  • 대부분 전공의들이다. 전공의들이 그렇게 고생하면서 일하는 건 일단 전공의를 끝내고 개업하면 억대 연봉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대병원은 전공의가 740명으로 전체 의사의 46%에 이른다. 세브란스병원도 40%다. 전국적으로 인턴 3137명과 레지던트 9637명, 모두 1만2774명이다. 전국적으로는 11.4%를 차지한다. 대형 병원이 전공의를 더 많이 받고 전공의들도 대형 병원에서 더 잘 배울 수 있으니까 선호한다.
  • 한국 병원들은 근로자 전공의의 헌신적 노동에 의존해 왔다”는 반성도 나온다. 연봉이 3분의 1이나 4분의 1 수준이다.
  • 해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전공의 수련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전액 지원하는 국가 책임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부가 전공의를 지역에 파견하면 인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핵심은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의 붕괴 아닌가.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단순히 의사들의 기득권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 “응급실 심폐소생술 수가는 15만 원 정도인데 해외 주요국에선 200만~50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 (의료보험 수가는 건강보험공단이 진료·수술 등 의료 행위에 건당 지급하는 돈이다. 한국은 전국민 의료보험이다.)
  • 뇌혈관 수술이 142만 원으로 일본의 21% 수준이다. 두개내 종양 적출술은 일본의 15%다. 힘든 수술을 해도 그만큼 보상을 못 받는다는 이야기다.
  • 의사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응급실 환자 수가 4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필수 의료 시장이 왜곡돼 있다는 이야기다.
  • 실제로 2021년 응급실 방문 환자 222만 명 가운데 89만 명이 경증 환자였다.
  • 응급실 이용료는 5만~7만 원밖에 안 된다. 이른바 걸어들어오는 경증 환자들은 본인 부담금을 더 높이고 실손 보험 혜택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거론된다.
  • (사실 지금 집단 행동에 돌입한 의사 가운데 필수 의료 종사자는 일부인데 필수 의료 붕괴를 핑계로 얹는 느낌도 있다. 명분이야 다양하지만 결국 피안성 의사들은 경쟁이 치열해지고 시장이 붕괴될까 걱정하는 건 맞다.)

수가를 현실화하는 건 좋은데 결국 재원 문제다.


소아과 오픈 런 이야기도 있지 않았나. 결국 수가 문제 아닌가.


  • 주요 진료 과목의 연봉을 비교해 보면 소아과가 안과보다 4분의 1밖에 안 된다. 실제로 개업 의사들은 훨씬 더 많이 받는다.
  • 보건복지부는 피안성 정원을 늘려서 수입 격차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피안성이 다른 과를 빨아들이는 힘을 제압해야 한다는 논리다.

필수 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 의대생 10~20%의 학생들이 미용 의료를 선택한다고 한다. 의사가 늘어난다고 이미 싼 병원비가 더 싸지는 건 아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로 몰리는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돌아올 거라는 보장도 없다.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이 전제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 중환자를 치료하면 수가를 더 많이 주고 경증을 많이 보면 깎는다는 방안도 논의됐다. 코로나 때 경험을 살려 중환자실 비워둬도 보상해주는 방안도 가능하다.
  • “사명감은 있지만 주 평균 110~120시간을 일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런 말도 한다. 필수 의료는 위험 부담도 크다. 신생아 4명이 세균 감염으로 죽은 사건으로 교수 2명과 간호사가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 흉부 외과 의사가 소송을 고생하다가 모발 이식으로 넘어갔다는 사례도 있었다.

비급여 진료를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무슨 이야기인가.


  • 2021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가 17조 원에 이른다. 2010년 8조 원에서 두 배 이상 뛰었다. 정부가 비급여를 방치해 병원이 과도하게 초과 이윤을 취하고, 대학병원 의사가 개업하고, 의료시스템이 붕괴하는 악순환이다.
  • 의사들에게는 비급여가 돈이 된다. 세게 최고의 건강 보험을 갖고 있는데 실비 보험이 늘어난다. 실비 보험이 있다고 하면 비급여 진료를 처방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어차피 환자 입장에서는 돈 드는 게 아니니 좋고 병원은 수입을 늘려 좋다. 도수 치료만 1조 원 시장이다.
  • 비급여가 늘어나는 구조를 봐야 한다. “크고 작은 수술, 각종 검사, 치료 재료, 심지어 약까지 비급여가 없는 게 없고 돈이 부족해서, 안전하고 효과는 있으나 너무 비싸서 비급여를 허용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 시장의 왜곡을 방치하고 의사 수만 늘리면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거란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는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중요한 포인트다.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들 수입이 줄었다고 하지 않나.


PA 간호사로 대체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PA(진료 보조,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봉합과 절개 등 의사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 PA 간호사 없이는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지만 의료법에 따르면 불법이다.
  • 의사들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겠지만 역시 핵심은 아니다.
  • 대한간호협회는 “무면허 의료 행위 지시에 대한 보호 약속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 위기 상황이 되니 PA 간호사에게 구애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간호사의 처우 개선과 비대면 진료 확대 등을 평소에 추진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지역 의료를 강화할 방안이 있나.


  • 결국 수도권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비수도권 의과대학 27개 가운데 70%에 가까운 18개가 사립대인데 그 비중과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지역 의대 설립과 정원 할당 등이 논의되고 있는데, 중요한 게 빠졌다.
  • 지역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는 목적이지만 지금도 지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수도권에 올라오는 학생 비율이 36~38% 수준이다. 의사들이 지역에 남게 만들 유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울산의대 부속병원은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육과 실습을 한다고 한다. 50명 규모 미니 의대는 교수를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생 7%만 울산에서 근무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 지역에 의사를 늘리려면 환자가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어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에서 2년 일하면 교수 채용의 인센티브를 주거나 공무원 자격을 주되 급여 체계를 달리하는 등 새로운 인력 수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 윤석열 정부는 손해 볼 게 없다. 이미 지지율도 올랐고 숫자가 문제일 뿐 정원 확대를 관철한 거나 마찬가지다.
  • 의사들도 싸워볼만 하다고 보는 것 같다.
  • 서로 우리가 더 명분이 있다고 맞붙는 상황이다. 국민들 불편이 누구에게 비난으로 쏠리느냐를 볼 텐데, 의사들은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본다.

출구 전략이 있을까.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 큰 방향은 명확하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센티브를 잘 설계해야 한다. 의사들의 이기주의 있다. 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고 찍어 눌러서 갈 문제는 아니다.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고 필수의료가 위기인 거고, 지역의 의료 붕괴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 녹색정의당 토론회에서는 “얼마나 늘릴 것인지보다 어떻게 늘릴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애초에 2000명어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 이번 기회에 필수 의료 수가를 파격적으로 높이되 건강보험 재정의 구멍을 메꿔야 한다. 정부가 필수 의료 패키지를 내놨지만 의사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 의료 과실에 책임을 줄여주는 방안도 담겼지만 핵심이 아니다.
  • 일단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결국 정부가 적정 수준에서 숫자를 양보해야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의대 정원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얼마든지 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비급여 구멍도 이번 기회에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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