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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민트] 이효석 박사 추천 ‘좋은 책’ 이야기, 첫 번째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다섯 번째 이야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노씨가 묻고, 이효석 박사가 답하다

숲에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는데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소리가 난 것인가? 철학자들과 초등학교 교사들이 수도 없이 던진 이 케케묵은 물음은 인간의 경험에 관해, 그리고 특히 우리가 어떻게 감정을 경험하고 지각하는지에 관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이 수수께기에 대한 상식적인 답변은 “예”다. 당연히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난다. 만약 당신과 내가 당시에 그 숲을 걷고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나무가 쩍 갈라지는 소리,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무 몸통이 땅바닥에 쿵하고 부딪히는 굉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도 이 소리가 났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에 대한 과학적 답변은 “아니오”다. 나무가 쓰러진다고 해서 그 자체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쓰러지면 공기와 지면에 진동이 일어날 뿐이다. 이 진동이 소리가 되려면, 이것을 받아들여 변환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즉 뇌에 연결된 귀가 있어야 한다. 포유동물의 귀라면 이 일을 훌륭히 해낼 것이다. 공기 압력의 변화가 외이로 수집되어 고막에 집중되면 중이에서 진동이 산출된다. 이 진동으로 내이 안의 유체가 움직이면, 그곳의 섬모를 통해 압력 변화가 뇌에서 받아들이는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이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소리도 없으며 오직 공기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7장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 2017, 중에서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을 때, 그때 소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민노: 이 책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러지는 나무와 소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죠. 인간의 시각적 가시 범위에 관해서도 이어서 말하고요. 감정도 물리적 실재가 아니라 마치 화폐와 같은 사회적 실재라고 말합니다. 소리도 물리적 실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포유동물의 청음기관과 뇌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고 책에서는 설명하는데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말 소리는 객관적으로 없습니까? 리사 교수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는 겁니까?

이효석: 그건 정말 많이 나오는 얘기거든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소리가 과연 존재하는가. 그런데 저는 이게 번역의 문제, 혹은 해당 언어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영어 ‘사운드’를 한글 ‘소리’로 번역해서 생기는 문제 같고요. 저는 한글의 ‘소리’라는 개념에서는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나무가 떨어졌을 때 생기는 공기 움직임도 소리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 같아요. 하지만 영어에서 ‘사운드’는 그걸 듣는 누군가가 있어야, 그 공기의 움직임을 사운드라고 표현하는 모양이고요.

민노: 그러면 그 부분 서술은 과장된 서술인가요? 어떻게 평가하세요?

이효석: 그 부분에서 말하고자 하는건, 책 뒤에서 동물의 감정 얘기할 때도 나오지만, 마치 대화가 두 사람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처럼, 감정이라는 것도 사회 안에서 정의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거기에는 저도 동의하고요.

민노: 그렇죠. 집단지향성(Collective intentionality; “어떤 것이 실재한다는 점에 대한 특정 집단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 얘기도 나오고,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 “어떤 것이 실재한다는 점에 대한 특정 집단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 이것은 언어를 통해 공유된다.”) 얘기도 나오고, 언어와의 결합도 중요하다고 말하죠.

이효석: 감정이라는 개념 자체나 아니면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인식하고 하는 것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거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은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정하죠.

민노: 제가 질문드린 건 그런 것보다는요. 이 책이 잘못 번역될 수도 있고, 제가 이 책을 잘 못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독자는 그냥 이렇게 읽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소리라는 게 물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없는 거야? 감정도 결국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구성해 내는 거야? 결국, 감정도 없는 거야? 이럴 수 있잖아요. 소리라는 건 가청기관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어떤 포유 동물의 어떤 전유물이야? 감정이라는 것도 인간만의 어떤 전유물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이효석: 네, 그게 바로 이 책의 핵심인데요. 결국은 소리라는 것 자체가. 음. 일단 그전에 모든 단어, 모든 개념이 어떻게 보면 언어를 통해서 정의되잖아요? 물론 정의 자체가 바뀌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정의에 사용되는 단어, 개념들 역시 다시 언어이고, 그 사회에서 사람들의 사용 방식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고요.

물어보신 내용으로 돌아가서, 그럼 소리라는 게 물리적,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이나 동물이 없는 숲에서는 없는 것이냐가 질문인데, 그런 상황에서 물리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기의 진동을 소리가 아닌 걸로 어떤 사회는 정의할 수도 있겠죠, 그 사회의 약속으로.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 한국어 단어인 ‘소리’ 개념에서는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 숲에서 나는 물리적, 객관적 공기의 진동도 다 소리에 속하지 않나하고 저는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민노: 그 숲에 가청기관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가 없더라도?

이효석: 없더라도.

민노: 공기 진동, 움직임만으로 저건 ‘소리’라고 해석을 해야 된다라는 거죠.

이효석: 저는 한국어에서 소리라는 개념이 아우르는 범위가 그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물리적 객관적 공기의 진동을 들을 때 그것이 사운드(Sound)가 되는것 같다, 왜냐하면 그게 이렇게 논쟁이 되는 걸로 봐서는… 정도의 의견입니다.

사운드 ≠ 소리

민노: 그럼 리사 교수의 그 부분 설명은 상대주의를 좀 옹호하거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좀 과장되게 인용됐다고 보시는 거예요

이효석: 아니 그렇지는 않고요. 그냥 이건 영어 문화권에서는 그 예가 적절할 수 있는데, 이 쪽으로 번역이 되면서는 그 예가 적절한 예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단어에 의미 차이가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런 예를 그동안 사람들이 깊게 생각 안했는데 자꾸 이런 예를 생각하게 되면서 한글 ‘소리’도 듣는 주체가 있어야 성립하는 개념으로 바뀔지도 모르고요.

민노: 그럼 영어 ‘사운드’와 한글 ‘소리’ 는 달라요?

이효석: 음… 이거는 굉장히 핵심적인 문제들을 자꾸 물어 보시는데요. 사실은 또 그에 답할 수 있는 유명한 명제가 있기도 하지요. 훔볼트가 지적한 것처럼 두 언어 사이에 완전하게 서로 동일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Sir Thomas Lawrence (1769-1830)작, Charles William, Baron von Humboldt (1767-1835)

“인간은 평생을 통해 모어(母語)에 의해 제어되며, 모어는 실제로 인간을 대신한다.”

훔볼트
  • 어떤 A라는 인간과 B라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사고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언어는 사유로부터 독립해 있지만, 동시에 사유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훔볼트는 외교관으로서 직접 다수 외국어를 체험하면서 그 비교 연구를 통해 민족마다 고유한 사고방식이 각각의 언어에 새겨져 있고, 그것이 역으로 그 언어에 속한 개인의 사고를 제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개정증보판 중 발췌)
  • 인간이 언어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언어가 인간이 생각하는 범위와 한계를 지배한다. 가령, 열대 지방에 야자를 가리키는 단어가 50~60가지인데 그것을 총괄하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언어가 있고, 빛깔에 관해선 200가지가 넘는 명칭을 가지고 있어서 식물 명칭은 단 네 개뿐인 언어도 있다. 어떤 객관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언어가 없는 인간은 그 대상에 관해서는 사유할 수 없다는 게 훔볼트의 생각이다. (참조: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철학사39’ 빌헬름 훔볼트 중 발췌)

민노: 아, 완벽하게 서로 매칭되는 단어는 없다.

이효석: 네. 어쨌든 그래도 이 이야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감정이라는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이 역시 상대방이 있어야 그 사람을 대상으로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두 사람이 공유하는 어떤 문화 안에서 존재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고요. 그러니까 아무도 듣지 않는 숲의 소리라는 비유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민노: 이효석 박사 말씀을 듣고 있으니 진짜 만만치 않은 책이긴 하네요. 이 박사께서 어려운 책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설명을 듣고 보니까 좀 어느 정도, 정확히는 아니어도, 아 이런 맥락들에서 어려운 책이라고 말씀하셨구나 싶네요.

이효석: 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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