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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조르바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아니, 아침부터 웬 수선입니까? 그리고 이건 또 무슨 소리고요?”

내가 물었다. 그는 잡낭에다 음식을 꾸리면서 대답했다.

“두목,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일을 처리해야 할 땝니다. 벌써 노새 두 마리 몰아다 놓았어요. 일어나서 수도원으로 갑시다. 케이블 고가 선로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사자도 겁내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이(蝨)라는 놈이지요. 두목, 이러다 이란 놈이 우릴 몽땅 빨아먹고 말겠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8 신판.

사진 김훤주.

1.

며칠 전에 잡낭(雜囊)을 샀다. 나는 잡낭이라는 말을 이번에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처음 보았다. 17장 조르바와 주인공이 산림 벌채 계약을 위해 산 위에 있는 수도원을 찾아가는 장면 첫머리에 나온다. 조르바는 아침에 일어나 수도원까지 올라가면서 먹을 음식을 그 잡낭에다 꾸려 넣었다.

찾아봤더니 잡낭은 ‘잡다한 물건을 넣는 주머니’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잡낭이 조르바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조르바는 몸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말한다. 행동하는 자유인이다. 그는 이런저런 잡다한 것에 매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조르바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단칼에 처리해 버린다.

조르바는 물건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말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모조리 잡다한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한데 모아 깨끗하게 정리해 버린다. 거기에 안성맞춤인 것이 바로 잡낭이 아닌가 싶었다. 잡낭을 매고 올라간 수도원에서도 조르바는 걸맞게 모든 일들을 단순 명쾌하게 해치운다. 보기만 해도 통쾌할 지경이었다.

2.

그러고 보니 내게는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것들이 있었다. 자동차 짐칸이 그랬다. 얇고 두꺼운 매트, 접이식 의자, 휴대용 탁자, 전지가위, 정글나이프, 낫, 버너, 바람막이, 코펠, 먼지떨이에 여러 살충제까지. 하도 잡다하게 널브러져 있어서 들여다볼 때마다 심란했다. 조르바처럼 내게도 잡낭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나도 정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크고 작거나 길고 짧은 순서에 맞추어 간추릴 생각을 했었고 그에 따라 여러 차례 간추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아무리 간추려 놓아도 다시 흐트러지고 말았고 결국은 계속 그대로 어질러져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잡낭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하나로 뭉뚱그린다는 것이었다. 세세한 구분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뜻밖에도 잡낭이 바로 나왔다. 값도 비싸지 않았다. 하나에 8000원이었다. 1만6000원을 결제하고 두 개를 주문했다. 잡낭에 집어넣고 나니까 만족스러웠다. 개미 발톱만큼이지만 조르바를 닮게 된 것 같기도 했다.

3.

그런데 나는 물건만 너저분한 게 아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나의 물건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잡스럽다. 문제는 그런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한꺼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잡낭은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가 만들거나 못 만들거나 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라도 그런 잡낭을 하나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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