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버킷리스트 하고 싶은 일

[box type=”note”]

지난 글(‘1편’) 요약:

나는 회사 생활이 힘들었다. 친구가 ‘신계 직장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객관적으로는 좋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퇴사할 용기가 없어 그냥 버텼다.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날, 미국 출장길에 청년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다. 부러웠다.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만 하던 어느 날, 올해 안으로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쓰는 일을 제안받았다. 버킷 속에는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버킷을 쓰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 진짜 욕망을 만났다. 그 욕망의 이름은 ‘성장’이었다.

[/box]

 

(1편에서 이어집니다)

 

휴직을 하고 2019년을 시작하면서 두 명의 지인과 2박 3일의 짧은 제주 여행을 떠났다. 비장한 마음을 품고 떠난 여행이었다. 어떻게 하면 휴직 기간을 알차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지, 제주에서 그 답을 얻고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2박 3일 일정 안에 한라산 등반을 포함시켰다. 힘들게 산을 오르고 나면 생각도 정리되고 좋은 계획도 떠오를 것 같았다. 그리고 백록담이 주는 정기(?)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라산 등반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다. 산을 오르는 초반에는 같이 간 지인들과 대화도 하는 등 어렵지 않게 올랐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휴직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웠다. 춥고 미끄러운 산길을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까 그것에만 집중했다.

다행이었던 건 힘들게 올라서 본 백록담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졌다는 것이다. 눈 덮인 한라산 정상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몇 시간의 고생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멋진 경치를 보고 나서야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났다. 휴직 기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는 여전히 막막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경험을 하든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어느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새해에는 어떤 일들을 하고 싶은지 각자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나는 좀 더 색다르게 새해를 맞이해 보자며 1년 전 경험했던 버킷 100개 쓰기를 지금 해보면 어떻겠냐고 일행들에게 제안했다. 모두들 동의해 주었다. 우리 중에는 나에게 버킷 쓰기를 알려준 분도 있었다. 그분도 버킷 쓰기가 주는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갑작스런 제안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같이 간 다른 일행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늦었지만 그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무튼, 우리는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며 2019년에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각자 정리했다. 함께 쓰는 거라 그런지, 아니면 버킷리스트 쓰기가 두 번째라 그런지, 아니면 휴직을 앞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는지 나는 쉽게 버킷 100개를 완성할 수 있었다. 2박 3일 동안 끙끙거리며 썼던 첫 번째 버킷리스트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 휴직을 하고 뭘 해야 할지가 막막했는데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좀 더 수월했다. 리스트를 작성하자 안개가 걷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2박3일이 걸린 첫 번째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리스트를 작성하자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이후 제주도에서의 경험은 이후 서울로 돌아와 버킷리스트 워크숍으로까지 이어졌다.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버킷리스트 워크숍은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함께 모여서 쓰는 것을 말한다. 나는 내가 경험한 그대로를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처음 시작하는 워크숍이라 미숙한 점도 많았지만, 내가 버킷 쓰기로 알게 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보람됐다. 워크숍 참석자들도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고 신기해했다. 물론 버킷 쓰기를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100개를 쓸 수 없을 거라며 손사래 치는 분들도 있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른 개 정도의 버킷 쓰기는 그다지 다들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다음 60개까지도 그럭저럭 채우는 편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꽤 힘들어한다. 나는 그때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진짜 욕구나 감정 나아가 꿈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는 잠수부처럼 잠재의식 깊이 잠겨 있던 나의 욕망들을 하나씩 지상으로 소환하는 것과 같다.

마치 미지의 바다를 탐구하는 잠수부처럼
마치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는 잠수부처럼

100개의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툭툭 튀어나오는 버킷들은 나의 진짜 속 마음을 대변해 준다. 내 경우 첫해 ‘성장’에 대한 욕구가 튀어나온 것도, 휴직을 하고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도, 모두 잠재의식 속에서 튀어나온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금지할 때가 있는데, 그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용히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버킷 100개를 쓰는 과정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집중하는 과정이 있어야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는 다이버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꼭 100개를 써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50개 이상부터 깊은 고민으로 이어지고, 어떤 사람은 200개 정도는 되어야 자신의 본래 욕구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100개 정도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리고 100이라는 숫자는 아시다시피 완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우선은 100개를 채워보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해, 100개의 버킷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모티브가 되며, ‘목표’라는 것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정신분석가 정도언 님이 쓰신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이 있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것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무의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 빙산 중 물 위로 솟아 있는 뾰족한 부분을 의식의 영역, 물속 깊이 잠겨 있는 거대한 부분을 무의식의 영역에 비유했다. 작가는 물속에 잠겨 있는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 올려야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고 싶은 일 100개를 써보는 과정은 무의식 속 욕망을 수면 위로 꺼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쓰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해내게 된다면 내가 바라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다.

빙산

나는 휴직 기간 동안 버킷리스트를 실천해가면서,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워크숍을 하고 그들이 눈빛이 흔들리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버킷 쓰기의 중요성을 한번 더 체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서서히 깨달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아가 내 무의식 속 욕망은 무엇인지 하나씩 발견하는 느낌이 들었다. 버킷리스트는 마치 내 인생의 나침반 같았다. 그런데 버킷리스트를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나침반

 

(계속) 

[divide style=”2″]

[box type=”note”]

이 글은 필자가 쓴 책 [결국엔, 자기 발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하고 싶은 일 100가지 버킷리스트 쓰기] (2021. 12. 좋은습관연구소) 중 일부를 저자 및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한 글입니다. 총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022년 새해를 계획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편집자)

#. 결국엔, 자기발견 

  1. 하고 싶은 일 100가지 쓰기, 버킷리스트를 만나다
  2. 회사 생활이 힘든 이유를 알았다
  3. 버킷리스트는 인생의 내비게이션
  4. 버킷리스트 쓰기 연습: 하루 5분 종이 위에 써보기
  5. 3년 뒤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
  6.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에 집중하기

[/box]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