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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 편인 ‘3년 뒤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에서 이어집니다.)

책

2019년 휴직을 시작하며 썼던 버킷 중 하나가 책 쓰기였다. 어쩌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글 쓰는 게 좋았고, 평소 닮고 싶은 분들이 책을 하나씩 내고 있어서 덩달아 나도 내 책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책을 쓰면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생길 것 같았다.

‘제2의 직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막연하게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쓸 거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한 권의 책을 내기에 내가 펼쳐 놓을 게 별로 없었다. 누구에게나 책 한 권 낼 콘텐츠는 있기 마련이라는 데, 나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마구 내뱉기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차에, 어느 ‘책 쓰기’ 강사로부터 내 콘텐츠를 찾아내는 방법 하나를 추천받았다. 그분은 책 『아티스트 웨이』에 소개된 방법이라며 매일 30분씩 일기 쓰기를 추천했다. 그가 추천한 일기 쓰기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첫 번째는 1) 일어나자마자 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2)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쓰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30분 동안 백스페이스(Backspace)키를 쓰지 않고, 맞춤법이 틀려도 상관없으니 손가락을 멈추지 말고 쓰라고 했다. 그렇게 30일 동안 쓰다 보면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온다고 했다.

강사분 말씀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30분 동안 ‘아무 말 대잔치’를 하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멍한 상태에서 내 생각을 쏟아 내는 경험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해서 글쓰기 소재도 발굴하고 책까지 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결론적으로 생각한 대로 딱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꼭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30일을 채우진 못했지만(한 며칠 쓰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 며칠 동안 내 생각을 뱉어내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아빠로서 나의 책임감, 직장 생활의 아쉬움을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첫 번째 책을 쓰는 동기로 작용했다.

노트북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속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무언가 뱉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마디로 머릿속을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써 내려가는 것이 내 안의 깊은 생각들을 끌어 올리는 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바로 버킷 쓰기를 잘하는 세 번째 방법이다. 버킷 100개를 쓰는 일은 ‘그냥’ 하고 싶은 일을 뱉어내고 발산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며 찾는 것도 필요하다. (앞서 매일 5분씩 고민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100개를 채우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민을 하되,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곧장 쓰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막 쓰는’ 과정은 스스로가 쌓은 장벽을 허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장벽은 바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다. 버킷 100개를 쓸 때는 의식적으로 의심을 지우는 게 중요하다. 즉, 하고 싶다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굳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버킷을 적는 과정에서 항상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재보기 때문이다.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생각나는 대로 쓰는 작업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정리하는 것과는 다르다.

만다라트 맵

‘만다라트(Mandala-art) 맵’이라는 게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타자로 동시에 활약하고 있는 일본인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자신의 계획을 세울 때 썼다고 해서 유명해진 방법론이다. 만다라트 기법은 가로세로 세 개씩 9개(3×3)의 정사각형을 만들고 한가운데 이루고 싶은 핵심 목표를 쓴 후 그 주변으로 8개의 세부 목표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생각나는 대로 한계를 두지 않고 써가는 버킷리스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만다라트 기법은 목표를 잘게 나누고, 나눈 것들을 다시 계획으로 만들어 가는 형태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구체적인 실행 과제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한 사람이라면 만다라트 기법이 유용하다.

만트라트 맵 오타니 쇼헤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바로 앞만 보며 무한 질주를 해온 직장인들은 오히려 자신의 욕구나 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는 버킷 쓰기 같은 방법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즉,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버킷을 써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핵심 목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 DJ 되기 

작년부터 내 버킷리스트에는 ‘라디오 DJ 되기’가 항상 들어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나는 몇 번의 낙방 경험을 하고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한때는 아나운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질투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매체가 바로 라디오였다. 편안하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매체로 라디오처럼 좋은 게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무작정 DJ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킷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물론, 당장 실현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평생 불가능한 백일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매년 라디오 DJ를 나의 버킷리스트에 담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허황된 것이지만 리스트에 적혀 있으니 언젠가라도 이것을 달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크숍에 참석했던 한 분께서 1년을 돌아보는 회고의 자리에서 꺼낸 말이다. 버킷에 써 놓은 것이 지금 기준으로는 허황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달성할지도 모르는 버킷이라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나 역시도 쓸 때만 해도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헛웃음이 나왔지만 1년여를 보내며 언젠가는 라디오 DJ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역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적어도 그 비슷한 것이라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항상 '라디오 DJ'가 들어있었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항상 ‘라디오 DJ’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비슷한’ 것을 할 수 있게 기회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줌 미팅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의 오프라인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화상 회의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뻘쭘하고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줌 미팅의 사회 보는 일을 즐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도 진짜 라디오 DJ는 아니지만 화상 회의를 통해 ON AIR라는 착각을 느끼며 행복하게 방송하고 있다. 어쩌면 라디오 DJ를 하겠다는 버킷리스트가 이런 쪽으로 나의 기운을 연결시켜 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덕분에 ‘줌 세계의 유재석’이 되고 싶다는 또다른 허황된(?) 꿈을 갖게 되었다.

한계보다 가능성에 집중하기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다. 꿈을 제작해서 사람들에게 파는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많은 부분이 좋았지만, 특히 연말 시상식 자리에서 올해의 그랑프리 작품으로 선정된 ‘절벽 위에서 독수리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제작한 킥 슬럼버의 수상 소감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한계란 내 신체적 조건이나 주변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그은 선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한계는 나의 자유를 억누른다. 버킷리스트 작성으로 나를 규정하는 선을 지우고, 억눌렸던 것에서 해방되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 정도에 실현 가능성을 이유로 나를 감출 이유는 없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해방 자유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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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쓴 책 [결국엔, 자기 발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하고 싶은 일 100가지 버킷리스트 쓰기] (2021. 12. 좋은습관연구소) 중 일부를 저자 및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한 글입니다. 총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022년 새해를 계획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편집자)

#. 결국엔, 자기발견 

  1. 하고 싶은 일 100가지 쓰기, 버킷리스트를 만나다
  2. 회사 생활이 힘든 이유를 알았다
  3. 버킷리스트는 인생의 내비게이션
  4. 버킷리스트 쓰기 연습: 하루 5분 종이 위에 써보기
  5. 3년 뒤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
  6.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에 집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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