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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 졸음

“과장님은 왜 그렇게 회사 생활을 힘들어하세요?” 

지금으로부터 6, 7년 전, 직장 생활에서 큰 고비를 마주한다는 10년 차 때의 일이다. 막 과장으로 진급했을 때였다. 오랜 대리 딱지를 떼고, 바라던 승진도 했는데 마냥 기쁘지만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나는 회사 생활이 너무 힘겨웠다. 입사 후 처음으로 맛본 승진의 기쁨이었는데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내 속마음이 티가 났는지 친한 후배는 진지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고. 그는 내게 보통의 다른 직장인보다 편하게 생활 한다고 해서 ‘신계 직장인’이라는 별칭까지 준 친구였다. 자기 주장도 서슴없이 펼치고, 상사에게 어느 정도 인정도 받는 나를 직장 생활을 ‘아주 잘’ 하는 사람으로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더욱 내가 힘들어하는 게 납득이 되질 않는 듯했다.

후배의 질문에 나는 한참 동안 내가 왜 힘든지 생각했다. 그동안은 힘들다고 투정만 부렸지 원인을 진지하게 파고든 적은 없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과 상사와의 관계가 싫어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불만 정도로만 생각했지 한 번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 원래 회사 생활은 힘든 거야.’

한참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다수 직장인들이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나만 유별나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왜 힘든지가 정확히 손에 잡히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졌다. 어차피 퇴사할 용기도 없으니 그냥 버티는 게 상책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용기는 없으니 그냥 버티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회사를 그만둘 용기는 없으니 그냥 버티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마음먹고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 직장 생활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발단은 미국 출장길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고서부터였다. 그분을 통해 연이어 다른 몇몇 창업자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잘 다니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었다. 금전적으로는 쪼들렸지만 열정만큼은 다들 충만한 분들이었다. 그들은 직장 생활은 원래 힘든 거라고 생각하고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있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출장길에서 만난 스타트업 대표의 용기가 부러웠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당장 퇴사를 해서 무슨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금처럼 계속해서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을것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몇 권의 자기 계발서도 읽었다. 그중에는 평범한 직장인이 펴낸 책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 가며 책까지 쓴 분들이었다.

직장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큰 데 무엇을 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딱히 짚이질 않았다.

가만 보니 나는 변변한 취미 하나 없이 살아온것 같았다.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해온 나 자신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잘하는 건 시키는 대로 하는 건데, 그동안 나에게 뭔가를 시키는 사람은 부모님 그리고 상사와 아내밖에 없었다. 진짜 원하는 것을 하려면 스스로 내 것을 찾아야 했다.

 하고 싶은 일 100가지 쓰기 

그렇게 고민만 하던 어느 날, 나를 잘 알고 있던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가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그것은 바로 올해 안으로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쓰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버킷 100개 쓰기’였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리스트.

버킷리스트 하고 싶은 일

그런데 버킷을 열 개도 스무 개도 아닌 100개를 써 보라니, 처음엔 의아했다. 그는 자신이 대학생 때 했던 경험이라며 버킷 100개 쓰기는 기존의 버킷리스트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가장 다른 점은 죽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닌, 1년 동안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2018년이 끝나면 내가 죽는다는 가정을 하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적어보는것이었다. 그렇게 쓰다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했다.

솔깃했다. 귀가 얇은 탓이었는지 100개를 쓰면 지금의 고민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에 신뢰가 갔다. 결국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100개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쉽사리 풀리는 듯 20개까지는 쉽게 적었는데, 30개까지가 한계였다. 그 이상은 하고 싶은 일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100개를 채워보고 싶었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기왕 시작한 건데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랄까? 다행히 몇 가지 팁을 듣고서 2박 3일을 더 고민한 끝에 100개를 채웠다.

어린시절 운동회 때, 열심히 콩주머니를 던져 박을 터뜨리면 색종이가 쏟아지며 하늘을 수놓듯 100개의 버킷이 채워지면 뭔가가 ‘짠!’하고 나타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100개를 채웠는데도 박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왜냐면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100개의 소망들을 바라보니… 

그게 무척 반갑고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이 당장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을 주거나 새로운 일을 계획할 정도의 어떤 것은 아니지만, 100개의 버킷들을 보다 보니 열정이라는 게 새순 돋듯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버킷리스트 안에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려졌다. 가족이 보였고 친구, 동료들도 눈에 들어왔다. 100개의 버킷이 적힌 리스트를 보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보자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희망 씨앗 소망 열정

하고 싶은 일 100가지 적기를 통해 깨달은 또 다른 한 가지는 버킷 속에는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당연한 결과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씁쓸했다. 회사는 월급을 위해 다니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뭔가 확인 사살 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지?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으면서도 회사 안에서 나는 무슨 존재고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반대로는 회사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꿈틀대는 나의 진짜 욕망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성장’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100개를 채우고 그것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나서도 보이지 않았는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1년이 지나고 연말이 되어서야 ‘성장’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의 내 버킷리스트는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 외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멘토를 만나 조언을 듣는 버킷들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동안 구체적으로 만져지지 않던 갈증이 이거였구나, 하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게 전해졌다. 나의 내면을 가꾸고 성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그것을 발견한 것은 나에게 큰 소득이었다.

100개의 버킷들을 1년 동안 바라보니 나의 키워드가 연말이 되어서야 드러났다. 그건 '성장'이었다.
100개의 버킷들을 1년 동안 바라보니 연말이 되어서야 ‘나의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건 ‘성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직장 생활을 왜 힘들어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것 또한 ‘성장’에 답이 있었다. 나는 직장 생활에서 성장의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물론 경력이 쌓일수록 업무 역량이 올라가는 것은 맞지만,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과 업무 역량이 올라가고 승진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처럼 여겨졌다. 오히려 자존감은 직장 생활을 하면 할수록 아래로 떨어졌다. 거대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속품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런 고민은 우울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버킷 100개를 쓰고 나서부터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숨겨진 내 욕망을 찾을 수 있었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좋아하는 것, 꿈꾸던 내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앞서 후배가 던진 질문에 그제서야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회사에서 인정받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나의 성장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면 영원히 힘들 수밖에 없다.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좋아하는 것, 진짜 잘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2018년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잠시 인생의 쉼표를 찍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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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쓴 책 [결국엔, 자기 발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하고 싶은 일 100가지 버킷리스트 쓰기] (2021. 12. 좋은습관연구소) 중 일부를 저자 및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한 글입니다. 총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022년 새해를 계획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편집자)

#. 결국엔, 자기발견 

  1. 하고 싶은 일 100가지 쓰기, 버킷리스트를 만나다
  2. 회사 생활이 힘든 이유를 알았다
  3. 버킷리스트는 인생의 내비게이션
  4. 버킷리스트 쓰기 연습: 하루 5분 종이 위에 써보기
  5. 3년 뒤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
  6.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에 집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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