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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민트] 이효석 박사 추천 ‘좋은 책’ 이야기, 첫 번째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 번째 이야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노씨가 묻고, 이효석 박사가 답하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뇌가 단순히 통각을 지각하고 표상하면, 보란 듯이 당신이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통의 내부 작용은 예측성 뇌에서 더 복잡하다. 고통은 신체적 손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험일 뿐만 아니라 뇌가 손상이 임박했음을 예측할 때 일어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뇌의 다른 모든 감각 체계가 그러하듯이 만약 통각이 예측에 의해 작용한다면 당신은 ‘고통’ 개념을 사용하는 더 기본적인 부분에서 고통 사례를 구성한다. 내 견해로는 고통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

병원에서 파상풍 주사를 맞는다고 상상해보라. 이전에 주사 맞은 적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뇌는 살갗을 뚫고 들어올 바늘에 대해 예측함으로써 ‘고통’ 사례를 구성한다. 당신은 바늘이 팔에 닿기 전에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 당신의 예측이 신체로부터 온 실제 통각 입력(바늘 주사)에 의해 수정되어 예측 오류가 처리되면, 당신은 통각 감각을 범주화하고 이것을 의미있게 만든다. 주사 맞을 때 경험하는 고통은 실제로 당신의 뇌에 있다.

두 가지 관찰이 나의 예측 기반 고통 설명을 뒷받침한다. 주사 맞기 직전처럼 고통을 예기할 때는 통각을 처리하는 뇌의 부위가 이것들의 활동을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 당신은 고통을 시뮬레이션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이 현상을 노시보(nocebo) 효과라 한다. 아마도 당신은 대응 관계에 있는 플라시보(placebo) 효과가 더 익숙할 것이다. (…중략…) 플라시보와 노시보는 통각을 처리하는 뇌 부위의 화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0장 ‘뇌의 잘못된 예측이 내 몸을 망친다’ 중 ‘잘려 나간 팔에서 고통을 느끼는 이유’, 2017, 중에서


민노: 어쨌든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구성주의의 반격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야, 이런 건 독자에게 참 좋았겠구나, 나 같은 과학자가 아니라도.’ 그런 면을 말씀해주신다면요.

이효석: 이 책에서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해결해 주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정신적 고통의 중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리사 교수님이 이야기하듯, 본질주의적 사고에서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구분됩니다. 아무래도 신체적 고통은 어떤 물리적 상태 변화와 관계있고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니까요. 실제로 사회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신체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오랜 시간 동안 정신적 피해는 법적으로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왔고요. 하지만 과학적으로 볼 때 정신적 고통이 실제 병의 원인으로 이어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때문에 모욕이라든지 괴롭힘 같은 것이 최근에야 법적인 영역으로 포섭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리사 펠드먼은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다른 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자연현상이 많은데 플라시보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효과가 없는 약인데 그 약에 대한 신뢰 만으로 병이 낫는 현상이고요. 이 책의 접근 방식, 곧 뇌가 예측모델이라는 설명이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까, 리사 교수님의 설명처럼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실제 물리적 피해나 고통 신경의 신호만이 아니라 그 상황에 따른 뇌의 예측에 좌우되는 것처럼, 어떤 약이 그 약의 성분과 무관하게 뇌로 하여금 인간이 가진 어느 정도의 자기치유 능력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고요.

한편으로, 지난 수십년 동안 인간의 감각이 완벽하지 않다는 연구가 매우 많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요. 어떤 면에서 완벽하지 않는가 하면, 인간의 감각이나 기억이 굉장히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이고요.

Image by Dariusz Sankowski from Pixabay

미각이라든지 후각 가령, 와인 같은 거요. 이건 실험 결과가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사건인데, 와인 전문가들이 1970년대에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은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미국 와인을 무시했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소믈리에들이 모여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게된 일이 있었는데 구별을 못한 거죠. 인간의 감각은 이 책에서 말하는 정동 실재론(Affective realism; “내가 보거나 듣거나 기타 방식으로 지각하는 것이 내수용에 따라 좌우되는 현상”, 내수용: “신체의 기관, 조직, 호르몬, 면역체계 등에서 유래하는 감각이 뇌에서 표상되는 것”)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 기분에 따라 외부 세상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는 거죠.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책에서도 비슷한 예가 나오는데 태극기 부대들이 데모할 때와 젊은 사람들이 데모할 때, 사실 같은 행위인데도 자기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 그들의 폭력성을 다르게 판단하는 거죠. 이런 인간의 불완전성, 객관적일 수 있는 감각 정보까지도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는 이헌 현상이 리사 펠드먼의 프레임으로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실험인데 높은 곳에서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했더니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것도 있죠.

민노: 비슷한 에피소드를 책에서 리사 펠드먼이 언급하죠. 학교 친구한테 애정을 느꼈는데 알고보니까 감기였다.

이효석: 그렇죠. 한마디로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 사실 그게 현실이고 실제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고요. 그런 것들을 이 책이 잘 설명하고 있지요.

민노: 저는 이 책이 좋았던 이유가 감정적으로 굉장히 좀 힘들 때가 많았어요. 물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겠죠.

이효석: 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민노: 저는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나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효석: 그거 너무 좋은 거죠.

민노: 그러니까 위로가 됐다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세상을 사는 어떤 작은 지혜 같은 것들이 뇌 과학의 이야기고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운동 끝나면 마사지도 좀 하라고 조언하잖아요. 자기 딸 얘기도 하고, 남편 얘기도 하고, 자기 데이트했던 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이야기를 굉장히 잘 끌고 가는 느낌이라서 이야기로서도 되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효석: 맞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민노: 그런데 좋아하는 책은 어떤 책이에요? 가령, 무인도에 책 5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효석: 예전에 좋았던 책을 다시 읽으면 아주 좋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저는 새로운 책들 가져갈 것 같아요. 사실 최근에 읽고 저도 굉장히 위로가 된 책이 하나 있는데요.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2022)이라는 책입니다. 도파민에 대해 설명하는 흔한 뇌 과학 책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도 훌륭하고요. 읽은지는 한 7~8년 됐는데 이 책도 아주 좋고요. 시대를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책입니다. [도파민네이션]도 그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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