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민트] 이효석 박사 추천 ‘좋은 책’ 이야기, 첫 번째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여섯 번째 이야기:
- 구성주의의 반격: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 편도체-공포 가설과 옴니제닉 모델
- 인간은 불완전하다
- 빅테크의 표정-감정 연구는 낭비인가
- 소리는 실재하는가, 감정은 실재하는가
- 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계
- 느낌을 측정할 수 있다면 (ft. 다윈과 스키너 비판)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노씨가 묻고 이효석 박사가 답하다
“바로 지금, 당신이 ‘사과’라는 단어를 읽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의 뇌는 마치 사과가 실제로 앞에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과거에 보았고 맛보았던 사과에 관한 지식들을 조합하여 당신의 감각과 운동 부위에 있는 뉴런들의 점화 방식을 바꿈으로써 당신의 머릿속에서 ‘사과’라는 개념의 한 사례를 구성한다. 당신의 뇌가 감각과 운동 뉴런을 사용해 눈앞에 있지도 않은 사과를 꾸며내는 것이다. 이런 시뮬레이션은 심장 박동만큼이나 빠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2장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설계한다’,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이효석: 뇌가 ‘예측 기계’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뇌에 관한 최신 해석이고요. 또 동시에 제가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이것도 리사 교수도 말하고 있지만, 뇌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는 기계거든요.
민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계요?
이효석: 예전에 뉴스페퍼민트를 같이 하는 유혜영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꿈을 꾸는데 늑대한테 쫓기는 꿈이었데요. 그때 약간 몸도 안 좋고 해서 막 땀을 흘리면서 쫓기고 있었는데 늑대에게 따라잡히는 바로 그 순간, 남편인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님이 자기를 깨웠대요. 그때 “혜영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깨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게, 어떻게 자기가 늑대에게 따라 잡히는 그 순간에 정확하게 맞춰서 남편이 자기를 깨웠는지 신기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그 당시에 이런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아니고 아마 다른 이유로, 지금 이 책의 표현으로는 내수용(“신체 기관, 조직, 호르몬, 면역 체계 등에서 유래하는 감각이 뇌에서 표상되는 것”)에 의해서 몸이 좋지 않아서 땀을 흘리면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때 송 편집장님이 부인의 몸이 안 좋아 보이니까 유교수님을 깨운건데, 그때 몸이 흔들리면서 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땀을 흘리면서 몸이 흔들리니까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런 답을 드린 적이 있죠. 늑대한테 쫓겨서 도망가고 있었고, 늑대한테 딱 잡히면서 몸이 흔들린 거다라는 꿈을 만들어냈을 거라는 거죠.
민노: 그러니까 순서가 순서가 바뀐 거다.
이효석: 그렇죠. 그런데 뇌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게 이런 거거든요.
민노: 꿈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러면 꿈은 시간적으로는 아주 찰나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효석: 뭐 그런 꿈도 있고, 아닌 꿈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많은 꿈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영화 ‘인셉션’을 보면 꿈에서는 뇌의 활동이 빨라져서 시간이 20배 더 느리게 가는 것으로 나오죠. 한가지 더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최근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강의를 하는데요. 과학자가 보는 세상이나 자기계발에 관해 이야기하는거죠.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요.
그런데 제 강의를 들은 분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병원에서 의식을 잃었던 사람의 유체이탈 경험담이 많지 않느냐고. 자기가 병실 위에서 육체와 분리되어 밑을 바라보고 있고, 의사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대화를 하고, 그런 걸 지켜보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느냐고 물어보신 거죠.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을 듣고 바로 얘기했죠. 그건 아마 그 사람이 깨어날때, 그런 기억을 만들어내는게 아닐까 하고요.
민노: 깨어나는 비몽사몽인 순간, 그 경계에 있을 때?
이효석: 그렇죠. 아마 그 사람도 예전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겠죠. 영혼이 올라가서 이렇게 자기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뇌가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죠.
민노: 그런데 강의를 하고 계신 건가요? 어떤 내용으로 강의하시나요?
이효석: 그냥 흔한 자기계발인데, 쉽게 말해서 하지 말라는 것들, TV나 유튜브, 게임, 술이나 담배 이런게 있고, 동물이나 음악 같은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등이고요. 그런데 하지 말라고만 하면 설득력이 없으니까 왜 그런지를 좀 과학적으로. 인간이라는게 어떤 존재인부터 시작해서 과학적 세계관 등등을 바탕으로.
민노: 오늘은 잠을 푹 자고 싶었는데, 잠을 못잤네요.
이효석: 수면도 제가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고요. 우선 체중과 수면은 커다란 공통점이 있어요. 두 가지 다 일상, 삶의 순간순간에 큰 영향을 주는데, 또, 평소에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다시 이 두 가지에 영향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수면의 경우, 기본적으로 카페인, 술, 스트레스 세 가지를 줄이는 것이 좋고요. 가능하면 없애면 가장 좋죠.
그리고 수면위생이라고 해서 침실 환경을 수면에 맞게 바꾸는 것이 중요하고요. 낮은 온도가 중요하고 새벽에 깨지 않고 싶으면, 암막 커튼도 좋고요. 화장실때문에 깬다면 자기 전에 물을 덜 마시는것과 방광근육을 단련시키는 것도 필요하고요. 휴대폰을 침실에 가져가지 않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민노: 저는 휴대폰에 그렇게 의존적인 편은 아닙니다.
이효석: 그건 아주 좋네요. 요즘 사람들이 제일 제일 어려워하는 거죠.
민노: 그럼에도 저 역시도 휴대폰은 이미 신체화가 됐죠. 없으면 이게 무슨 진짜 팔이 하나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죠. 강한 건 아니지만, 내 신체 일부분이 어디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에요.
이효석: 정확합니다. 그런 연구들이 많이 있죠.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두기만 해도 사람의 신경이 분산되는 걸 보인 그런 연구요. 저 같은 경우 책을 읽을때 제가 어떤 속도로 읽고 있는지를 자주 확인하는데요.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어렵지 않은 책이라면 1분에 한 페이지 이상 읽어야 되거든요? 물론 책에 따라서 많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요. 제가 최근에 발견한 것이, 핸드폰을 책상 위에 둔 경우랑 가방에서 꺼내지 않은 경우랑 차이가 크더라고요.
여담: 용어 번역상의 아쉬움
민노: 제가 이 책을 좋아해서 세 번째 읽었는데요. 정확히는 전자책 TTS로 세 번째 들었죠. 운동하거나 산책하면서. 아무래도 이효석 박사처럼 배경 지식이 있는 게 아니니까 들을 때마다 새롭긴 한데, 들을 때마다 용어들이 헷갈리더라고요. 특히 ‘내수용’이라는 용어는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헷갈리더라고요. 정동(Affet; ”가장 단순한 느낌. 유쾌와 불쾌 및 평온과 동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한다”)이나 ‘감정 입자도’도 그렇고요.
이효석: 맞습니다. 저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번역자 잘못이라기보다는요. 기존에 이미 그런 용어를 쓰고 있더라고요. 일단 정동은 심리학에서 원래 쓰는 있는 용어고요. 아마 내수용도 제가 알기로 이 책에서 처음 쓴 것 같지는 않고요.
민노: 저는 그래도 좀 번역의 묘를 살릴 수 있지 않나 그런 아쉬움이 있어요. 이미 다른 분야에서 쓰고 있는 용어라고 하더라도 너무 비직관적이고 추상적인 느낌이 강해서요. 계속 걸리더라고요. 또 계속 반복적으로 쓰이잖아요.
이효석: 그렇죠. ‘내수용 감각’이라고 다 써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니면 ‘내적 체감’ 이런 식으로 약간 풀어서 설명하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수용이라고만 해서 자주 쓰니까요. 수출용 / 내수용 이런 단어도 떠오르고요. 그런데 저도 책을 한 번 번역해 보니까 이 책 번역자도 참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용어 번역에 좀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 번역하기도 힘드니까요. 왜냐하면 번역이 정말 좋지 않은 책들도 많거든요.
민노: 네, 그렇긴 하죠. 책 맨 뒤에 있는 용어 설명에서 내수용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냐면요. “신체 기관, 조직, 호르몬, 면역 체계 등에서 유래하는 감각이 뇌에서 표상되는 것”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이 용어 설명조차도 너무 함축적이라서요. 너무 불친절하죠. ‘내수용 신경망’에 관한 설명도 “내수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내부의 집합”이라는 건데 이런 설명은 뭐 정말 하나마나한 설명 같아요.
이효석: 네, 그렇죠. 저는 이 책 뒤에 있는 용어 해설을 그냥 원래 책에 있는 건지 아니면 추가해서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넣은 건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물론 책을 읽을 때 이런 별도의 용어 설명이 도움이 된다 자체가 좀 문제지만요.
민노: 배경 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를 위해 교양서로 쓰여진 책이니까 좀 어려운 말, 낯선 용어는 책 맨 뒤에 죽 따로 설명할 게 아니라 해당 표현이 나오는 부분에 박스 해설로 넣거나 그랬으면 좋겠어요. 괄호 설명으로 계속 익숙해질 때까지 환기도 해주고요. 일종의 교통안내 표지처럼, 여기 지금 울퉁불퉁한 길이니까 조심해야 돼, 이렇게요. 그런 친절한 장치들이 조금 한두 개라도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왜냐하면 다른 내용은 그런 용어들을 빼놓고는 다른 서술들은 이해가 굉장히 쉽거든요. 서술 자체도 뭐랄까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친절하고, 평안한 문체죠. 그런데 용어의 문턱이 약간 있는 것 같아요.
이효석: 어쨌든 어려운 책인 건 사실입니다.
민노: 저는 교양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고 느꼈어요. 내용 자체도 과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가설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분야, 가령 책 후반부에서는 법률에 미치는 영향를 분석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신체 예산’을 확보하는 방법들에 관해 친절하게 제안하고 있기도 하고요.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감정도 스트레스도 그것이 객관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구성하는 것이다. 이 가설 같습니다.
이효석: 그렇죠
민노: 감정이 법률 혹은 법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법조계, 특히 판사나 배심원의 일반적인 선입견을 다루는 부분, 남성 피고인과 여성 피고인을 다르게 취급하는 관습적 차별도, 아주 새로운 이야긴 아니지만, 감정이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는 점에서 과학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감정에 관한 잘못된 편견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책의 내용이 저에겐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효석: 실제로 이제 책에서 계속 얘기하지만 그러니까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여러 면에서 다르죠.
민노: 네, 다르긴 하죠. 생물학적으로 후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이효석: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사회가 받아들이면서 그게 또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요.
민노: 그렇죠. 그것조차도 또 사회적인 실재일 수 있고요.
이효석: 예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