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민트] 이효석 박사 추천 ‘좋은 책’ 이야기, 첫 번째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두 번째 이야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노씨가 묻고, 이효석 박사가 답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과학자들은 편도체가 손상된 사람들이 공포를 경험하고 지각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SM’이라고 불린 여성의 사례였다. 이 여성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서서히 편도체가 소멸되는 우르바흐-비테(Urbach-Wiethe)병이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SM의 정신 상태는 건강해 보였으며 지능도 정상이었지만, 실험실에서 그가 공포에 대해 보인 반응은 무척 이상해 보였다. 과학자들은 그에게 [샤이닝]이나 [양들의 침묵] 같은 공포영화를 보여주기도 했고, 살아 있는 뱀이나 거미를 곁에 놓기도 했으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흉가로 그를 데려가기도 했지만, 그는 별다른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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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볼 때 SM은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의 손상된 편도체가 그 이유인 것처럼 보였다. 과학자들은 이 증거와 그 밖에도 이와 비슷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편도체가 뇌의 공포 중추(fear centre)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던 중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과학자들은 SM이 몸의 자세로 표현된 공포를 볼 수 있으며 목소리로 전달된 공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이산화탄소가 다량 함유된 공기를 들이마시면 SM이 커다란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정상 수준의 산소가 결핍되자 SM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이렇게 SM은 몇몇 조건에서는 편도체 없이도 분명하게 공포를 느끼거나 지각할 수 있었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장 ‘감정의 지문을 찾아서’ 중 ‘뇌를 분석해 감정 읽기’, 2017. 중에서

편도체-공포중추 가설과 옴니제닉 모델

민노: 보통의 독자를 대신해서 궁금한 걸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요. 편도체-공포 중추 가설은 깨진 건가요?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특정 신체 부위가 있나요, 없나요? 리사 교수는 없다는 거잖아요. 편도체 가설은 깨졌다고 리사 팰드먼은 말하고 있는데요.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는 호평을 받고 있는 그의 책 [감정적인 뇌; Emotional Brain]에서 공포 학습이라는 견해를 일반화시켰고, 이제 쥐를 언급할 때는 ‘공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보면 르두는 보기 드물게 지적 용기를 가진 과학자다. 르두는 이른바 공포 학습을 다룬 논물을 수백 편 발표하고, 뇌의 공포 기초인 편도체를 다룬 인기 있는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 증거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그의 수정된 견해에 따르면, 꼼짝 않는 것은 위험에 처한 동물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은 생존 행동이다. 그의 고전적 실험은 공포와 같은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가 꼼짝 않는 행동을 통제하는 생존 회로라고 부르는 것을 보여준다. 르두의 이론 변화는 마음과 뇌의 새로운 과학적 혁명의 또 다른 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감정 이론으로 나아가게 한다.”

리사 팰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2장 동물도 화를 내는가?, ‘꼼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리 추론 오류’, 2017. 중에서

이효석: 잘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최근에 조지프 르두(Joseph E. LeDoux)의 책을 읽었는데 사실은 이렇습니다.

뇌는 전체적으로 작동하는 게 맞아요. 그렇지만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 역할을 한다고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뇌의 특정 부위를 다쳤을 때 말을 잘 못하게 되기도 하고, 또 특정 부위 뇌 세포가 죽으면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거나. 이런 것도 분명히 사실이에요.

사실 이것도 어떻게 볼 수 있느냐 하면 아까 유전자에 관해 언급한 것처럼 특정 유전자가 특정 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특정 유전자 하나, 가령 혈우병 같은 게 대표적인 거고요. 그래서 옛날에는 키를 크게 하는 유전자 하나,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유전자 하나,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말도 안 되는거죠. 왜냐하면 인간의 특성이라는 게 정말 너무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실제로 봤더니 키에는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1천 개 이상 있고요. 하지만 어떤 유전자는 단 하나가 없을 때에도 어떤 병을 일으키기도 해요. 그렇지만 부분의 유전자는 서로 연결돼서 어떤 특성을 하나를 만들어내거든요. 그걸 옴니제닉 모델(omnigenic model)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그래야 말이 되죠. 왜냐하면 인간의 유전자 수가 약 2만~3만 개 정도인데 인간에게 발현되는 특성은 우리가 구분하기에 따라 훨씬 더 많으니까요. 뇌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뇌의 기능이라는 것도 정말 나누기만 하면 무궁무진하잖아요.

이 책은 기본적으로 뇌를 예측 모델이라는 형태로 설명합니다. 블랙박스 안에 들어 있고, 계속 들어오는 외부 감각 신호를 바탕으로 과거의 경험과 비교해 이 신호들이 어떤 상황을 나타내는지를 판단해서 예측하는거죠. 고통도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고요. 즉, 뇌의 특정한 한 부위가 고통을 담당한다기보다 외부 신호를 해석하고 예측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고통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이니 뇌의 모든 부위가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할머니 뉴런 처럼 뉴런 하나가 특정한 기억에 연결된다는 이론도 있고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 신체의 운동을 담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모든 기능에 뇌의 전체가 필요한 것은 아닐 거고요. 적어도 리사 교수가 이야기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감정은 뇌의 여러 기능을 다 필요로 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뇌가 예측 모델이라는 것은 다른 뇌 과학 책에도 나오고, 실제 현실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민노: 첫 질문이었던 편도체 가설로 다시 돌아가면요.

이효석: 네, 그러니까 저는 그 편도체 가설도 리사 펠드먼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뇌의 신경이 회로를 구성한다고 말하니, 여러 신경들이 다양한 형태로 연결 되어 있을 수 있고, 어떤 특정 부위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는 있겠죠. 왜냐하면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뇌의 특정 부위를 다쳤을 때 특정 기능을 못하게 되는 그런 현상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민노: 다만, 그걸 단적으로 그 특정 부위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거는 또 오류다는 거죠?


이효석: 그렇죠.

편도체(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 출처: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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