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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민트] 이효석 박사 추천 ‘좋은 책’ 이야기, 첫 번째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첫 번째 이야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노씨가 묻고, 이효석 박사가 답하다

뉴스페퍼민트 이효석 대표는 슬로우뉴스와는 귀한 인연을 가진 분입니다. KAIST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양자 컴퓨터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에서는 오늘날 AI의 배경 기술 중 하나인 정보이론을 연구했습니다. 하버드 연구원 시절 시작한 외신 번역 미디어 ‘뉴스페퍼민트’를 10년 이상 운영하며, 과학 전반의 다양한 영역과 번역 및 저작권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귀국 후 헬스케어 업계에서 일하며 AI와 진화, 노화에도 깊은 관심과 고민을 하며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독서 편력을 가진 이효석 대표가 추천한 ‘좋은 책’을 함께 읽고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저는 ‘보통의 독자’를 대신해 책에 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묻고, 이효석 박사는 이에 관해 답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첫 번째 책은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입니다. 이 책은 저도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이고요. 이효석 박사도 아주 높게 평가하는 책으로, 저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려고까지 했다고 하네요.

대화는 6월 초에 있었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6~7차례에 걸쳐 나눠서 올립니다.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 1963년 캐나다 토론토 출생)

민노: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감정에 관한 본질주의에 입각한 전통을 구성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한 책입니다. 저자의 표현처럼 “뇌에 관한 새로운 발견들을 바탕으로 혁명적으로 뒤바뀐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해 탐구하는 학구적인 책인데요. 그런 학술적 면 외에 이 책이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우리 각자가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자신의 체험을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단단하게 만들면 우리 미래가 충분히 바뀐다.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마치 친근한 이웃 아주머니의 덕담처럼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리사 펠드먼은 반복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라고 말합니다.

이효석: 맞습니다. 이 책은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는 책입니다.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부수면서, 새로운 주장이 말이 되는 동시에 기존의 생각 때문에 느끼던 모순을 해결해 주는 그런 책을 좋아하고요.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참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슬로우뉴스에 서평을 쓰기도 했던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2015)가 그랬고요. 이 책도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일단 말씀하신 희망을 주는 부분을 보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스티븐 핑커의 책 [빈 서판]을 언급하죠.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년 9월 18일 ~, 몬트리올 출생, 위키미디어 공용)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감정이 신체 기관과 비슷하게 전문화된 기능을 담당하는 일종의 정신 기관이며, 몇몇 유전자가 감정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중 ‘우리는 다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생각연구소:2017. 중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 아이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아이는 뇌 발달의 초기 시기에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특히 아이의 환경이 전전두 피질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곳의 뉴런들은 학습(즉 예측 오류 처리하기)과 통제에 특히 중요하다.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이 부위의 크기와 성능은 학교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기술과 연관이 있다. 영양 불량은 얇은 전전주 피질로 이어지고, 이것은 열등한 학교 성적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미졸업 같은 낮은 교육 수준은 다시 빈곤으로 이어진다. 이런 순환 과정을 통해 인종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은 사회적 실재에서 뇌 배선의 물리적 실재로 변화할 수 있으며, 그래서 마치 빈곤이 줄곧 유전자 탓이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이런 고정관념이 뜻밖에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예컨대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 The Blank Slate]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백인보다 복지수당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사람은 ……. 비합리적인거나 편협한 자가 아니다. (조사 수치를 비교해보면) 이런 신념이 맞기 때문이다.” 핑커나 몇몇 다른 사람들은 많은 과학자가 고정관념을 부정확한 것으로 배척하는 이유가 평소에 정치적 공정성을 지키도록 들볶이기 때문에, 또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괜히 겸손한 척하기 때문에, 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 자신의 뒤죽박죽이 된 가정에 의해 편향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방금 살펴본 것처럼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즉, 공식 복지 통계 수치가 맞는 까닭은 우리가 사회를 통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과 관행을 통해 몇몇 집단의 의견을 제한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위축시키면서 다른 집단의 기회는 확장한다. 그러고는 고정관념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이 정확한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사회적 실재와 관련할 때만 해당된다. 이 실재는 우리가 집단적 개념들을 가지고 먼저 창조한 것이다. 사람들은 당구대 위를 굴러다니며 서로 부딪히는 당구공들의 집합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신체 예산을 조절하고 개념과 사회적 실재를 함께 형성하는 뇌들의 집합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구성되고 서로의 결과가 결정되는 데 기여한다.

일부 독자는 이런 종류의 구성주의 세계관이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입장에서 전형적으로 과도한 동정심을 드러내는 진보주의 상아탑 학자의 견해라며 배척할지 모른다. 실제로 이 견해는 전통적인 정치 노선들을 가로지르고 있다. 당신이 문화에 의해 조형된다는 견해는 전형적으로 진보적인 것이다. 반면에 6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당신이 가진 개념이 궁극적으로 당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에 대해 당신이 넓은 의미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견해는 보수주의의 뿌리 깊은 생각이다. 또한,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여기에는 덜 유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도 포함된다. 당신은 그들의 뇌 배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견해와 관련이 있다. 전통적인 아메리카 드림에 따르면,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구성적 견해에서도 당신이 당신 운명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환경의 제약을 받고 있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당신이 속한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당신의 뇌 배선이 당신의 나중 의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중 ‘확실성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책의 의미: 구성주의의 반격

이효석: 저는 이 책을 하드 사이언스 분야에서 구성주의를 다시 되살리는 책으로 보았습니다. 20세기를 바라보는 한 가지 관점 중에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과학이 객관적 실재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과학적 개념이 사회적으로, 그러니까 과학자 집단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입니다. 전자는 실재론, 객관주의 등으로 불리고 후자는 구성주의라 불리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도 관련이 있고요. 실제 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대부분 전자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반면, 후자는 과학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가지는 입장이지요. 

물론 과학 절대주의나 과학 맹신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이나 우생학이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민노: 우생학은 너무 악명 높죠.

이효석: 그렇죠. 문제가 있었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구성주의에는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있습니다. 과학자가 받는 가장 중요한 트레이닝이 바로 실험 결과에 관해서는 겸허할 것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어떤 결과를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바른 과학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과학의 역사는 그런 자세와 관련된 행운이나 실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고 과학은 이를 밝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구성주의는 객관적 진실을 부정하는 면이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온 스티븐 핑커가 쓴 [빈 서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이고 환경이 그 인간을 결정한다는 빈 서판 이론을 반박하는 책인데요. 그러니까 빈 서판 이론은 인간은 모두 평등한 빈 서판으로 태어난다는 내용이지요. 아름답고 듣기 좋은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가진 특성의 아주 많은 부분이 유전자에 의해 미리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객관주의나 본질주의)이 보기엔 이들(포스트모던, 상대주의, 구성주의)이 하는 이야기가 현실과 다른 그냥 듣기 좋은 이야기처럼 들린 것이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념이 진실을 가린 것처럼도 보이고요. 그래서 최근까지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이들은 구성주의를 이야기하는 주장에 그리 귀를 기울이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물론 구성주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또 학문의 영역에 따Fk 그 양상이나 진리의 무게추가 기우는 정도가 매우 다를 것도 같고요. 

사실 ‘빈 서판’은 본성 대 양육(nature vs. nurture) 논쟁과 그대로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본성이냐 양육이냐 하는 것이죠. 대체로 과학자들이 본성의 진영에 있었고요. 핑커는 20세기 내내 양육을 주장하는 이들이 우세했지만, 과학적 증거는 그 반대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키 같은 경우에는 80% 이상 유전자를 통해 결정됩니다. 서로 다른 환경을 경험한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도 그렇게 말하고요.  

물론 그렇다고 양육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요. 실제로 구성주의 쪽에서도 과학에 근거한 새로운 반격들이 있었죠. 유전자의 경우에도 ‘후성 유전학'(에피제네틱스; Epigenetics)이라는 게 있습니다.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정보인데,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켜지고, 어떤 유전자는 안 켜지게 만드는 것을 말하고요. 그 환경에 당연히 사회가 포함되고, 따라서 개인의 특성에 사회가 영향을 준다는 것, 곧 양육이 개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물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도 자주 언급되는 예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의 질병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가 성인이 된 뒤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사회나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들이 이제 다시 또 많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 역시 구성주의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상황에서 한때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감정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이 책이 나온 것이죠.

폴 에크먼(Paul Ekman, 1934년 2월 15일 ~ ) 미국의 심리학자, 감정과 표정 관계 연구의 선구자.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 70년대 표정을 연구한 폴 에크먼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 표정 연구를 통해 모든 문화에는 동일한 감정이 존재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이 책은 그걸 정면에서 반박하고요. 저도 이 책 앞부분인 1, 2장을 읽을 때는 정말 그런 것일지 갸우뚱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설득이 되었습니다. 

폴 에크먼의 주장과 리사 펠드먼 배럿의 주장, 곧 감정은 지문처럼 객관적 실체가 있다는 주장감정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뇌에서 구성되는 것이라는 주장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쁨과 슬픔과 같이 크게 구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감정은 호르몬과 같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체가 있을뿐더러 심지어 사회를 가지지 않는 동물들에게도 다 존재한다고 보거든요.

이 책에선 사실 감정의 진화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데, 그래서 그 내용을 저자한테 질문하려고 했던 것이고요. 저자도 그 부분을 부정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뇌가 진화한 건 분명하니까 인간의 정신이나 감정도 진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지만, 유전자와 문화가 같이 진화하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Gene-culture Co-evolutionary Theory)과 같은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 같고요. 

그러면 기본적인 감정, 곧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거나 이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황을 좋아하는 감정, 그리고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수 없거나 나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싫어하는 감정은 분명히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에 공통으로 존재할 것이거든요.

민노: 그렇겠죠

이효석: 이게 정동(Affect; ”가장 단순한 느낌. 유쾌와 불쾌 및 평온과 동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에도 있죠. 정동에서 보면 유인성(베일런스; Valence; “유쾌부터 불쾌까지 우리가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기초적인 느낌. 정동의 한 속성”), 이게 좀 이상한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좋고 싫음에 관한 개략적 기준이예요. 그 다음에 흥분의 정도2차원으로 정동이 나뉘어져 있고요.

그 두 가지 기준(좋고 싫음, 흥분과 평온) 안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적당히 좋으면서 적당히 흥분되는데 이때 만약 주변 상황이 이러저러할 경우 문화권에 따라서 그 감정을 어떤 이름의 감정으로 분리해서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요. 저도 거기에는 동의합니다.

Novelty as a Dimension in the Affective Brain (Mariann Weierich, Christopher I Wright, Alyson Negreira, Lisa Feldman Barrett, 2010)

그 다음에 감정 입자도(Emotional granularity; “감정 경험과 지각을 섬세하게 또는 거칠게 구성하는 능력”)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해상도라는 게 좀 더 직관적인 번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핵심은, 우리가 어릴 때는 어색하다든지 민망하다든지 겸연쩍다, 이런 감정을 모르잖아요. 동아시아에서는 체면이 중요하니까 그런 개념들이 있는 거고요. 그런 세부적인 감정들은 특정 문화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좋고 나쁨, 흥분과 고요함 이런 것들은 보편적으로 문화와 상관 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의 핵심 키워드로 구성주의의 반격이라는 말을 쓰고 싶고요. 그리고 그 반격이 구성주의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과학자들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굉장히 성공적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고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더불어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동아시아: 2019)라는 책인데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만큼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이 책은 진화 자체에서 구성주의적 요소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진화론에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진화론의 주요 기작으로 자연선택만이 중시되었는데, 이는 생존에 유리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혹은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개체군 내에서 증가한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공작의 화려한 꼬리처럼 생존에 명백하게 불리한 데도 그저 암컷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발달한 형질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기존의 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그냥 무시하거나 아니면 핸디캡 이론이라는 것으로 설명하려 했고요. 핸디캡 이론은 꼬리가 큰데도 잘 살아가는 것을 보면 다른 생존 능력이 매우 강할 거라는 신호를 암컷에게 준다는 이론이고요. 그런데 그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이론이죠. 그렇게 강한 생존 능력을 가진 개체 중에 꼬리가 작으면 더 잘 살아남겠죠.

자연 선택이 아니라, 암컷의 선호에 따라서 형질이 선택되는 것을 성 선택이라고 하는데 지난 100년 동안 무시되어 온 성 선택을 [아름다움의 진화]는 살려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전의 진화는 센 놈 잘 적응하는 놈이 살아남는다는 거였고, 사실 기본적으로 이 말은 맞는 말이죠. 하지만 동시에 암컷의 변덕, 혹은 그저 우연에 의해서도 선호가 만들어지고 그런 요소들이 생물의 다양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요.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와 대립을 넘어서

민노: 이효석 박사께서는 구성주의와 본질주의의 대립에서 본인은 어느 쪽이 더 타당하다거나 어느 쪽이 더 약점이 있다거나 하는 가치판단이나 경향성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효석: 그 부분과 관련해, 책 마지막에 저자는 그동안 양측이 상대방의 허점을 과장해서 허수아비 때리기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민노: 그렇죠. 상대방 이론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그것을 과장해서 때리는 걸 했죠.

이효석: 네. 저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확신을 버리고, 의심을 함양하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음의 이런 세 가지 필연적 측면을 통해 구성적 견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회의적인 태도다. 당신의 경험은 실재를 열어 보이는 창문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뇌는 당신의 신체 예산에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세계를 모형화하도록 배선되어 있으며, 당신은 이 모형을 실재로서 경험한다.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경험이 마치 실에 꿴 구슬처럼 별개의 정신 상태가 연달아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살펴보았듯이 당신의 뇌 활동은 핵심 내인성 신경망들(Intrinsic network; “우리가 별다른 일도 하지 않는데 작동하면서 예측을 내놓는 모든 신경망) 전체에 걸쳐 연속성을 지닌다. 당신의 경험은 두개골 밖의 세계가 촉발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예측과 수정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가운데 형성된다. 역석적이게도 우리의 뇌가 창조한 마음이 뇌를 오해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중 ‘확실성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제가 [스켑틱: 회의주의자의 사고법] (마이클 셔머, 이효석 옮김, 바다: 2020)이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회의주의가 바로 과학의 기본입니다. 곧, 어느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근거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생각을 지지하되, 언제든지 그 생각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염두에 두는 것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적어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과학자 상당수는 객관적 실재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구성주의를 약간은 비토하고, 거부하는 입장이 많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민노: 과학자 다수는 구성주의에 반감 갖고 있을 것이다?

이효석: 위에서 빈 서판을 이야기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자는 자신의 바램과 무관하게 실험 결과가 나오면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구성주의에서는 평등과 같은 가치가 객관적 실재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 곧 자연이라는 심판관을 부정하는 태도를 적어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과학자들은 과학 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보았을 듯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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