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캡:콜드케이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사고방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십대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아주 확신에 찬 이분법의 렌즈로 세상을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선명했던 십대의 렌즈는 여기저기 깨지고, 오염됐다. 렌즈 탓도 내 탓도 아니다. 원래 세상이 그랬던 것뿐. 그 후로 선명한 것을 오히려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천국을 약속하는 가짜 사제들이 너무 많았다. 진실은 확신이 아니라 회의의 경계에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그 진실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캡콜드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미디어를 읽어낼 때 주의해야 할 점들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특히 나의 십대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1020에게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는 물론 우리 처음 생각대로만 흐르진 않아서, 캡콜드의 ‘고딩’ 신문반 시절로 시작해 머스크와 트럼프 그리고 윤석열을 경유해 다시 한국 사회, 우리 자신으로 돌아왔다.

2023년 10월 27일 화상으로 진행한 대화를 세 편으로 나눠 정리한다. 이 글은 두 번째 글이다.

  1. 머스크, 슈퍼히어로와 빌런 사이
  2. 사이다~! 포퓰리즘 시대의 마스터 내러티브
  3. 오웰과 헉슬리, 두 개의 우울한 예언

캡:콜드케이스
03. 모든 것의 팬덤화

[2] 사이다~! 포퓰리즘 시대의 마스터 내러티브


민노: 머스크와 트럼프, 공통점이 많을까요, 차이가 클까요?

캡콜드: 물론 둘은 세대도 다르고, 분야도 다르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식은 놀랄 만큼 닮았단 말이죠.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기존 시스템을 혁신으로 파괴해줄 쿨한 사람으로 소비되고 싶어 하죠. 실제로 당사자는 하나도 쿨하지 않은데도 말이죠. (웃음)

민노: 실제로 둘의 권력은 어떤가요. 트럼프는 차기 대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예상되기도 하고요.

캡콜드: 재선되지 않더라도 트럼프의 상징적 가치는 높죠. 머스크와 비교해도 트럼프의 정치적 상징성은 대통령이라는 공식적 직위와 상관없이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한번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그쪽 정치 문화에선 승리의 상징이 되어버린 거죠.

다른 듯, 닮은 트럼프와 머스크.

트럼프 현상의 본질, 그 마스터 내러티브


민노: 트럼프 현상의 본질이랄까, 그 마스터 내러티브는 뭘까요?

캡콜드: 트럼프 당선과 통치를 통해 형성된 그 세계관이 아주 강력하게 뿌리내리고 있는데, 그 뼈대는 단순해요. 부패한 기성 정치권과 무능한 관료제로 인해 우리가 고통받고, 그걸 화끈하게 깨부수고 두들겨 패서 없애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 차별과 인종주의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어쨌든 다 때려부수자!

민노: 극단적인 절망이 느껴지는데요.

캡콜드: 어떻게 보면, 극단적 허무주의에 가깝고, 그 모든 파괴적 감정은 현실 속 절망에서 잉태되긴 한건데… 어쨌든 절망이든 허무든 그것이 표출되는 감정은 때려 부수자인 거죠.

민노: 그렇다면 그런 차별적 증오와 파괴의 맥락에서 트럼프는 선지자인가요, 그저 깃발인가요. 그러니까 그가 대중을 이끄는 걸까요, 아니면 대중이 트럼프를 그저 상징으로 이용하는 걸까요.

캡콜드: 트럼프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트럼프를 깃발로 세운 그 기본적인 세계관이 달라지지 않는 한 변하는 건 없어요. 트럼프가 은퇴하거나 사라져도, 그런 상징을 찾아 나설 거란 말이죠. 한국의 지난 대선에서도 그 씨앗이 잉태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트럼프 현상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거죠. 개인의 문제로 한정하면 안 되고, 그 패턴을 포착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메리카”라고 하면 보통 미국인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아마도 기회의 땅, 순례자 이야기, 남북전쟁 또는 국기(“올드 글로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수억 명의 미국인이 하나의 단어,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스토리를 미국의 역사와 문화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동일한 기본적 패턴 인식은 미국식 ‘마스터 내러티브’의 초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깊이 각인된 성격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미국인으로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지, 무엇이 우리를 독특하게 만드는지, 미국인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는 전적으로 그들이 자라면서 듣고 자란 내러티브, 스토리(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참고로 논문에서는 ‘Alastair MacIntyre’로 썼는데, 이는 ‘Alasdair MacIntyre’의 오타인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선행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특정 내러티브가 수행하는 문화적 역할입니다. 특정 종류의 내러티브, 즉 극단주의 내러티브(예: 이슬람 극단주의, 편집자)가 수행하는 문화적 역할입니다.

극단주의 내러티브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물론 그것도 일부분이지만) 커뮤니케이션 및 문화학자로서 우리는 그 내러티브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그다드의 거리에서든 바그다드의 거리, 싱가포르의 전파 또는 휴대폰을 통한 카이로나 카사블랑카의 문자와 트윗을 통해서든, 이러한 내러티브는 서로 연결된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입니다.

제프리 R. 핼버슨, H.L. 구달 주니어. & 스티븐 R. 코먼., 마스터 내러티브와 이슬람 극단주의. 2011, ‘마스터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중에서 (Jeffry R. Halverson, H. L. Goodall Jr. & Steven R. Corman, Master Narratives of Islamist Extremism. 2011, ‘What is a Master Narrative?’)
성조기의 애칭인 ‘올드 글로리’. 1824년 윌리엄 드라이버(William Driver) 선장이 생일 선물로 받은 성조기를 들어올리면서 큰 소리로 “올드 글로리”라고 외친 것에서 유래했다. 그는 성조기를 배에 꽂고 세계를 일주했다.

‘못돼먹은 백종원’ 트럼프


민노: 트럼프와 미디어의 관계는 어떤가요. 가령 폭스와 같은 극우 미디어가 트럼프 현상을 촉진하고, 가속했을 것 같은데요.

캡콜드: 그런 면이 확실히 있지만, 트럼프는 원래 정치 입문 전에도 유명했어요. 부동산 재벌로서가 아니라 TV 스타로 유명했단 말이죠. [어프렌티스] (The Apprentice. 2004-2017)라고, 굉장히 오랫동안 방영된 TV 쇼가 있는데, 기업 경영 리얼리티 쇼예요. 사람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트럼프가 심사위원이에요. 그리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평가하면서 잘 못했다 싶으면 “넌 해고야!”(“You’re fired!”, 이 TV 쇼의 유행어. 편집자)라고 딱 잘라버리는 역할이죠.

어플렌티스(The Apprentice, 2004-2017, NBC). 수습생, 도제라는 뜻. 16명에서 18명의 참가자들이 트럼프의 회사 중 하나를 연봉 25만 달러로 1년 동안 운영하는 계약을 따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방송 회차마다 참가자 중 한 명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끝까지 남는 마지막 1인이 우승한다.

민노: 약간 백종원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캡콜드: 네, 비유하자면 그렇죠. 굉장히 살벌하고, 못돼먹은 백종원 같은 이미지로 TV 스타가 됐단 말이죠. 심지어 프로레슬링 쪽에서도 기웃거리고요. 레슬링 쪽에서도 굉장히 시원시원하고 불같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풍겨냈고요.

민노: 그렇군요.

캡콜드: 그런 이미지가 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 것은 폭스뉴스 같은 우익 미디어가 만들어 준 것도 아니에요. 대중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문화가 그런 식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트럼프는 그 이미지를 정치로 가지고 갔을 뿐이죠.

민노: 아, 기존에 만든 TV쇼 이미지를 갖고 정치판으로 갔다?!

캡콜드: 그렇죠. 그리고 심지어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트럼프는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이었어요.

민노: 그랬죠. 오락가락했죠.

트럼프 당적 변천사

공화당(1987년~2001년)
민주당(2001년~2009년)
무소속(2009년~2012년)
공화당(2012년~현재)

캡콜드: 사실 트럼프에게 이념이나 정치철학은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 부분은 진공에 가깝고, 어떻게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낼까, 그걸 어떻게 유력한 사람들과 네트워킹해서 키울까, 그게 관심사였던 거죠.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아요?

민노: 그러게요…

캡콜드: 지난 한국 대선 이후의 모습인 겁니다. 원래 이념적으로 철학적으로 진공인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권력의 중심에서 부랴부랴 그 텅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단 말이죠. 그러면 당장 주변에 있는 권력 인맥에서 가장 쉽고 선명한 걸로 어떻게든 채워넣기 마련이란 거죠. 그러다보니까 극우나 뉴라이트 쪽으로 채워넣게 된 거고요.

왜 바이든은 인기가 없을까


민노: 대중의 파괴적인 절망이 낳은 ‘사이다’ 추구 욕망으로 인해 어떤 정치철학도 없는 ‘속이 텅 빈’ 극우적 성향의 권력이 출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가령 플라톤의 ‘철인’이나, 신약의 메시아나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의 출현처럼 선하고, 충만한 리더의 출현 가능성, 어떻게 보세요?

캡콜드: 그냥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지금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이 됐잖아요.

민노: 바이든이 됐죠.

바이든 vs. 트럼프. 서로에 대한 반대말.

캡콜드: 바이든이 상징하는 게 딱 트럼프의 반대거든요. 무언가를 호쾌하게 때려잡기에는 인간적으로 너무 늙었고, 모든 접근이 다 신중하단 말이죠. 발언도 신중하고, 사람을 기용하는 것도 신중해요. 미국이라는 국가를 기준으로 보면 사실은 수치로 봤을 때 성과가 좋아요. 무엇보다 지금 경기 회복 와중에 다시 불황으로 갈 거다, 공황급 불황이 올 거라는 위기를 세 번은 넘겼고, 세 번씩 위기를 넘기면서 오히려 호황 국면을 이어 나가고 있고요. 다들 이런 성공을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다 그만큼 온갖 정책적 조율과 시도들이 사실 성공했다고 봐야 하거든요.

민노: 바이든이 그렇게 성공적인가요?

캡콜드: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할 때 워낙 정보가 ‘복마전’이라서 한 번 크게 실패했는데, 그 이후로는 외교 쪽으로도 큰 실책이 없어요. 우크라아니 개입도 그 당시 할 수 있는 조치를 굉장히 순발력 있게 대응했고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도 대외적인 이미지보다는 꽤 실용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어요. 저도 미국이 이스라엘에 군 물품 지원하는 건 굉장히 비판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이스라엘을 계속 설득해서 가자지구로 구호물품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득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계속 균형을 잡으려고 하거든요. 정치가 ‘조율자’로서 역할해야 한다면,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래서… 인기가 없죠.

민노: 차분하게 잘해서 그래서 인기가 없다? 역설적이네요. 트럼프와 바이든, 격차가 심한가요?

캡콜드: 아까 처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다음 대선에 트럼프가 재선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가 나오고 있잖아요. 그 정도로 바이든은 인기가 없죠. 아무리 실무적으로 잘해도 우선 상징적인 이미지가 그만큼 중요한 거죠.

민노: 왜 일 잘하는데 인기가 없을까요?

캡콜드: 당장 미국 국민은 미국 경제가 기적적으로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에 전혀 공감하고 있지 못해요. 생활에서는 당장 외식비 올라가고, 기름값 올라간 것만 보이니까요. 사실 몇 번 크게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인 경제인데, 낮은 실업률로 잘 굴리고 있다는 게 사실은 굉장히 잘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건 전혀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재밌고, 강력하며 스타성을 과시할 수 있는 어떤 브랜드 이미지가 필요한 거거든요. 최소한 현대적인 미디어 환경, 그리고 그런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는 그런 식의 강력한 ‘사이다’가 필요한 거죠.

바이든이 자신의 유약하고 늙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밀고 있는 부캐 이미지, ‘다크 브랜든’

민노: 저로선 흥미로운 지점이요. 그렇다면 미국민들은 바이든 정부가 미국을 잘 끌어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예요? (무지) 아니면 알면서도 잘 느껴지지가 않는 거예요? (인지부조화)

캡콜드: 둘 다죠. 아무래도.

민노: 나는 잘 모르겠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캡콜드: 한국도 예를 들면,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때 보기보다 경제가 꽤 잘 굴러갔는데, 국민들이 그걸 별로 공감해 주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그 경우에는 거시 지표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혹은 좋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는지 잘 몰랐던 것도 있지만, 두 정권 모두 경기가 호황이다 보니까 무슨 일이 발생했어요? 사람들이 다들 부동산 투기에 목숨 걸고,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뛰어버렸단 말이죠. 그러니까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 같지 않고, 나라 망한 것 같잖아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생활의 불편과 불안이 실제로 엄청나게 커지기도 했고요.

윤석열의 사이다


민노: 기성의 권력과 체제에 반기를 둔 ‘돌아이’ 캐릭터의 ‘사이다’스러움을 말씀하셨는데요. 이런 패턴이 권위적 정부의 득세와 부활 같은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보시나요?

캡콜드: 그런 ‘사이다’야말로 권위를 필요로 하니까요. ‘사이다’를 표방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어요. 나에게 힘이 있어야 ‘사이다’스러운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걸 혁파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런 힘이 있다. 나를 지지하면, 이미 그런 힘이 있지만, 더 큰 힘을 쏟을 수 있고, 더 큰 힘이 실제로도 필요하다.

민노: 지난 대선을 생각하면요. 한 보수 언론은 윤석열(대통령)의 지난 1년 반을 평가하면서, 윤의 정치력은 대선기간에 보여준 ‘어퍼컷’ 빼고는 전무한 게 아니냐는 혹평까지 했는데 말이죠.

캡콜드: 이미지를 생각해야죠. 윤석열(후보)이 당시에 가지고 있던 정치적 자산은 ‘누구나 성역 없이 들이받았다’라는 거였어요.

민노: 눈치 안 본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충성한다?

캡콜드: 눈치 안 보고, 이 사람을 잡아야겠다고 할 때는 확실하게 들이받았다는 거죠. 예를 들면 박근혜(전 대통령) 적폐 청산이랄지 심지어 당선 전에 가장 큰 자신이 된 건 조국(가족)을 들이받은 거거든요.

민노: 그게 사이다스럽다?

캡콜드: 그렇죠. 윤석열 지지하고 표 던진 사람 입장에선 결국 그 브랜드 이미지가 있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는 거예요. 그 브랜드 이미지로 뭘 하기를 원하고 있느냐? 뭐긴 뭐겠어요, ‘문재인 때려 잡아아죠.’ 민주당 정권, 민주당 권력자를 때려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죠. 이 위선자 놈들아, 어디 한번 크게 당해봐라!!

‘문재인 날려버려!’ 윤석열 최고의 히트 상품 ‘어퍼컷’. 2022년 2월 20일 대선 창원 유세. 국민의힘 제공.

민노: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현재 윤석열(대통령)이 왜 극우적이고 막가파식 방법론에 기대고 있는지,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상징 가치를 좀 더 절차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캡콜드: 자신의 이념적인 설명력이 사실상 텅 비어 있는 상태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이런 말도 해야 하고, 저런 결정도 내려야 하고 그런단 말이죠. 그러면 벼락치기로 그걸 채워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벼락치기 할 때 가장 손쉽게 흡수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자기 가까이에서 손쉽게 그 벼락치기를 제공할 수 있는 뉴라이트고, 극우고 그런 쪽이란 말이죠. 어찌 됐든 우파 세력의 수장이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기 것이 없는 것, 비어 있는 것이 위험하죠. 나중에 어떤 식으로 채워 넣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민노: 이게 빨리 먹을 수 있는 불량식품 같은 거라는 건가요? 빨리 먹을 수 있고, 금방 배부른?

캡콜드: 그리고 무엇보다 선명하니까요. 극단적일수록 선명하니까. 그리고 생각해 봐야 하는 건, 극우적인 무언가를 흡수했지만, 그걸 발현하는 방식은 ‘사이다’ 이미지에 가까워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육사에서 홍범도 동상을 뽑아내는 걸 생각해보세요. 그걸 새로운 뉴라이트적인 인식에 눈 떠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무슨 전략이 있고, 복선이 있고 그런 게 아니예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언제인가요?

민노: 2018년이니까 문재인 때죠.

캡콜드: 문재인 때거든요. 그걸 뽑아내는 거예요. 사이다스럽게 화끈하게 문재인 때려잡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문재인 성과를 뒤집는 거죠. 나머지 설명은 그야말로 부가적으로 갖다 붙이는 것뿐이고요.

민노: 박근혜를 수사했던 사람인데 최근에는 박근혜를 만나서 SOS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런 제스처는 어떻게 보세요.

이 이미지는 대체 속성이 비어있습니다. 그 파일 이름은 EK4tZUfF2ZA76539ecc967a017.77519263-1000x666.jpg입니다
박정희 前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서 만난 윤석열(대통령)과 박근혜(전 대통령). 2023년 10월 26일. 대통령실 제공.

캡콜드: 그것도 박정희에 대한 찬사, 가령 “위대한 지도자”, “세계사적 위업”, “눈부셨던 시대” 같은 수사가 역사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떠서 그런 게 전혀 아니라는 거죠. 그냥 우파 정치 세력을 규합할 필요 때문에 그런 거지. 좀 더 깊에 들어가면, 박근혜 정권의 주역들을 때려잡을 때도 무슨 엄청난 이념적인 정의감, 그런 걸로 때려잡은 게 아니 거든요. 그냥 이런 부분에서 비리가 있다, 그래서 때려잡았다, 땡. 뭔가 엄청난 역사의식이나 정치적인 철학이나 노선, 그걸 전제로 하면 안 돼요.

민노: 왜죠?

캡콜드: 왜냐하면 이념적으로는 텅 비어 있는 게 이미 증명됐거든요. 자기가 뭔가를 때려잡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은 다 OK였단 말이죠. 그게 이명박이든,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민노: 윤 정부의 논리 구조 중심에는 ‘문재인 때려잡자’가 있다? 어떤 정무적인 고려나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혹은 사회적이거나 문화적인 고려는 없을 것이다?

캡콜드: 그렇죠. 지금은 자기에게 기대되는 게 그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밖의 고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일관성이 없죠.

민노: 막가파식이긴 하죠. 너무. 어떤 정치 노선이나 철학을 발견하기 힘든 상태인 것 같아요.

캡콜드: 아무런 일관성도, 설명력도 없고, 그냥 아무렇게나 던지고 있으니까요. 그냥 그때그때 아무 말이나 던지고 있으니까요.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어떤 사상적인 틀이 딱히 없단 말이죠. 그건 역사적으로 몇몇 사상적인 틀이 워낙 잘 갖춰진 선례들이 있어서 약간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걸 수도 있는데요. 가령, 김대중(전 대통령) 같은 분을 기준으로 사람들이 대통령은 이 정도의 사상적 정립은 해뒀어야지 하면 사실은 너무 기준이 높아지는 거긴 하죠.

좋은 사이다는 가능한가? 착한 카리스마는 가능한가?


민노: 아까 질문과도 이어지는 질문이지만, 능력 있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좋은 ‘사이다’ 지도자… 혹은 착한 카리스마,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팬덤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캡콜드: ‘사이다’에서 이미 틀려먹은 거라고 봐요.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사이다는 환상이에요. 사이다가 있을 수 없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사이다 이미지를 계속 풍겨야만 계속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게 참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막 밀어붙이는 사이다형 지도자는 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점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싶고요.

일을 잘하면서 카리스마를 ‘장착’할 수 있는가. 그게 훨씬 재밌는 질문이긴 한데… 많이 어려울 것 같은 게 우선 일개인이 실제로 제도를 바꾼다든지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고요. 팀이 있어야 하고, 팀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팀의 형태로 일하면 카리스마가 있기는 더욱더 힘듭니다.

민노: 어려울 것이다? 많이 어려울 것이다?

캡콜드: 저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아니면 최고 수장 자리에는 오르면 안 된다고 보는 쪽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굉장히 이례적일 정도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분들이 몇 번 존재해서 너무 눈높이가 올라간 거긴 한데요. 김대중(전 대통령)이 워낙 예외적인 르네상스 맨이었고, 노무현(전 대통령)도 상당한 르네상스 맨이었고요. 어찌 보면 사실 김영삼(전 대통령)마저도 그쪽에 가까웠고요. 그래서 자꾸 사람들 눈높이가 올라가 있는데, 그런 걸 자꾸 기대하면 안 돼요.

김대중과 노무현, 르네상스 맨.

민노: 르네상스 맨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나요?

캡콜드: 그러니까 어느 정도씩 다양한 분야에 상당한 깊이를 가지고 있고 그걸 다룰 수 있다는 의미죠.

민노: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다빈치 같은 다분야의 천재를 말하는 거군요.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캡콜드: 그런데 그런 사람은 더는 나오기 어렵고, 그래서 팀을 잘 꾸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한 개인의 카리스마적 게임보다는 팀을 잘 짜서 좋은 작전을 만들어 팀플레이를 하는 거죠. 팀을 잘 짠다는 걸 박상훈 선생 같은 분들은 정당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텐데요.

민노: 현재의 정당 구조와 선거법 아래에서 ‘팀플레이’로서의 정당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캡콜드: 굉장히 기대하기가 어렵죠. 오히려 정당이 무슨 TV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돼버린 지 오래라서요. 그래서 이제 새로운 지식 기관들이 생겨나야 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예시는 아니지만, 미국 우익 법조계에 연방주의자협회(Federalist Society)라는 게 있어요. 미국 우익 법관을 체계적으로 키워내고, 사상적인 기반도 꾸준히 개발하는 단체죠.

미국이 잘못하는 거의 모든 문제의 원흉 같은 역할을 하지만, 어쨌든 굉장히 강력하게 자신들의 인재 양성과 사상 연구를 통해 그 세력을 규합하는 일을 하고,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거죠. 한국도 진보든 보수든 그런 ‘팀플레이’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단순하게 연구단체가 아니라 인재를 키워내고, 실무를 훈련하고, 그 전 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보죠.

연방대법원을 장악한 연방주의자협회 출신 판사들. 위쪽 왼편부터 사무엘 알리토, 클래런스 토마스, 브렛 캐버노, 존 로버츠 대법원장(회원 추정),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이미지 재인용 출처는 하버드가제트, ‘The conservative club that came to dominate the Supreme Court’, 2021. 3. 4.

‘마가’파 포퓰리즘, 보수주의를 집어삼키다


민노: 말씀을 듣다보니 미국 신보수주의(네오콘)의 교주로 추앙받은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1899~1973)같은 정치철학자도 떠오르고요. 네오콘은 여전히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나요?

캡콜드: 네오콘으로 대변됐던 정치 세력은 아들 부시 정도까지고요. 지금은 그때보다는 세대가 좀 지났죠. 네오콘의 마지막 후예라고 해야하나, 그런 인물로는 폴 라이언(1970년생. 54대 연방 하원의장. 임기: 2015.10.-2019.1.)이 있고요. 네오콘 라인이 포퓰리즘 운동으로 물갈이된 첫 순간이 ‘티파티'(Tea Party; 2009년에 시작된,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보수운동세력)라고 해서 2010년대 초반부터는 지역 포퓰리즘 운동으로 변질됐고요.

2010년 초에 그렇게 물갈이 되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티파티’ 정도는 예산 규제라든지 하는 네오콘의 사상적 유산을 상당히 받아들였단 말이죠. 하지만 이제 티파티 사상마저도 많이 물갈이된 게 2015년 트럼프가 득세하면서부터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마가’ 같은 포퓰리즘 운동에 완전히 밀려나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극우 포퓰리즘이 네오콘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온갖 백가쟁명식 다른 후보들을 모조리 밀어내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고, 대통령까지 당선된 거죠.

레이건이 80년 대선에서 처음 사용한 대선 캠페인 슬로건. 2016 대선에서 트럼프에 의해 대중화했다. 많은 정치학자와 비평가는 이 슬로건을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한다.

민노: 트럼프는 네오콘이든 티파티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가요?

캡콜드: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이에요. 그야말로 갑툭튀죠.

민노: 그러면 미국 공화당에서 네오콘의 사상적 흐름은 단절됐다고 보시나요?

캡콜드: 일부는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어쨌든 공화당 쪽에서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나까요. 하지만 이제 그쪽에서 대변했던 많은 가치들이 사실상 다 소멸됐죠. 가령, 예를 들면 네오콘은 이민에 관해 굉장히 개방적인 정책을 펼쳤어요. 왜냐하면 인재를 다 끌어와야 하니까요. 미국이 계속 세계의 보스 노릇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든지 경제적인 신자유주의의 일환으로 전 지구화된 생산 기지 전략을 계속 밀어붙였단 말이죠.

민노: 그런데 트럼프는?

캡콜드: 트럼프의 마가주의는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미국이 우선이야! 미국만 우선이면 다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해! 이게 묘하게 일종의 폐쇄주의 쪽으로 가버렸단 말이죠. 이민을 굉장히 반대하고, 또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우익이 그걸 적극적으로 두둔하고요.

마가(MAGA),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들


민노: 마가주의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이게 어떤 이론적 근거나 철학적 기반이 있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즉흥적인 표어에 불과한 거예요?

캡콜드: 그런 거 없고요. 굳이 이론적 배경을 가져오자면 나치즘이죠. 그나마 그 정도로 진지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이다’ 추구인 거죠. 무의식적인 사이다 추구랄까요. 제가 항상 수업에서 되묻는 게 있어요. 마가(MAGA)라는 건 네 단어로 구성된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그 네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에요.

  • 메이크(M)는 미국을 무엇인가로 만든다는 건데 그 만든다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거냐?
  • 아메리카(A)라고 했는데 미국의 범주, 미국민으로 받아들이는 범주는 어디까지인 건가?
  • 그레이트(G)라는 건 그 위대하다는 기준이 뭐냐?
  • 어게인(A)이라고 하면 과거의 어떤 상태, 어떤 때를 모델로 삼고 돌아가고 싶다는 건데 그게 과연 언제인가?
‘마가’라고 외치지만 누구도 마가가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2020년 11월 1일. 트럼프 제공.

여기에 아무도 대답이 없어요. 네 단어로 만들어진 슬로건인데, 어떤 것도 정확하게 정의된 바가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모호한 슬로건을 다들 좋다고 열심히 외치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울림이 있고, 뭔가 호응할 구석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내용은 없어요. 그렇다면 남는 건 뭐냐?

민노: 남는 건 뭘까요?

캡콜드: 그냥 호쾌함이거든요. 국가주의 ‘사이다’. 아, 좋다! 시원하다!! 그걸로 끝이에요.

민노: 즉흥적이고 즉물적인 거네요. 그래도 심리적 배경이 있을 것 같은데요.

캡콜드: 네, 그 느낌을 서로 공유하고, 그걸 공명할 수 있는 건 그 안에 있는 여러 사회적인 모순들, 절망 그런 게 쌓여 있으니까 그렇게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거죠. 정서적 공명이라는 게 없으면 불가능하니까요. 그건 그렇다고 쳐도 무엇을 만들겠다는 어떤 철학적인 사상적인 기반은 놀랄 만큼 텅 비어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 텅 빈 공간에 뭘 채웠느냐면 인종 차별, 이민 제한, 배타적 미국 우선주의… 그런 이상한 것들로 채우게 된 거죠.

사이다의 반대말….?


민노: ‘사이다’라는 표현은 직관적이고 재밌는데요. 그 반대편에 있는 이상적인 방향은 뭘까요?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시스템형?

캡콜드: 시스템, 숙고, 조율, 팀(플레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사이다가 아닌 걸 설명하는 것도 심지어 사이다일 수 없어요.

민노: 우리나라 정치에서 그러면 그런 시스템, 숙고, 조율, 팀플레이를 잘 구현한 정치인이 있을까요?

캡콜드: 한 10년도 넘게 전 기준으로는 손학규가 상당히 그런 시스템적인 면모가 있었다고 봐요. 그러니까 자기 팀을 계속 꾸려서 외부 자문 같은 네트워크도 잘 이용했고요. 엉뚱하게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지 무언가가 자꾸 미화되면서 인터넷상으로 웃긴 짤방이 밈화하기도 하고요.

‘저녁이 있는 삶'(2012년 손학규 대선후보 경선캠프의 슬로건. 메시지 담당관 김계환 비서관이 만듦. 편집자)이라는 슬로건은 많은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정치 의제화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정치 세력간의 경쟁 속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망가졌죠. 망가지는 과정을 다 봤기 때문에 별로 지금에 와서 아쉽다는 것은 아닌데, 하지만 그런 무언가 잘 돌아가는 순간들이 누군가에게 또 한 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간에서 희망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민노: 사이다형 정치지도자를 원하는 환경에서 시스템형 정치인이 출현할 수 있을까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 급속하게 레임덕이 생길 텐데 말이죠. 그 이후의 정치 상황을 가정하면 사람들은 시스템형 지도자, 숙고형 지도자를 원할까요? 아니면 새로운 사이다를 원할까요?

캡콜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새로운 사이다를 찾아나서는 거고요. 다만 이제 패배한 편 사이다가 아닌 그 반대편에서 사이다를 찾아 나서겠죠. 결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재명에게 매달리는가에 관한 대답을 찾아보면 저는 딱 그거 하나라고 봐요. 이재명이 윤석열의 반대편에 있는, 사이다거든요.

“다시 뛰는 민주당” 2022년 8월 28일. 이재명 제공.

(계속)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