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콜드케이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사고방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세상은 객관적 실체지만, 그걸 바라보고 해석하지 않으면 적어도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김춘수의 시 ‘꽃’은 그런 세계의 객관성과 주관성, 그 변증법적 교차를 아름답게 표현한 걸작이다. 내가 그 이름 부르지 않아도 그 꽃은 꽃이었겠지만, 나에겐 그저 하나의 몸짓(해석되지 않은 객관적 실체)에 불과했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자 그 꽃은 비로소 나에게 와서 꽃(해석된 주관적 세계)이 된다.
성인이 된 뒤에는 우리가 흔히 ‘곤조'(일본어. konjo; 根性; 고집이 세고 고약한 성질)라고 부르는, 자기만의 ‘쪼’가 생긴다. ‘곤조’든 ‘쪼’든 모두 비표준어고, 나는 일부러 그렇게 썼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표준적이고 올바른 것만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공식화한 세계의 관점보다 우리는 훨씬 더 강력한 비공식적인 관점과 시선의 영향을 받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마치 비표준어처럼, 공식적인 표준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제멋대로, 수많은 욕망과 수많은 좌절과 수많은 뒤틀림을 겪은 뒤에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뒤틀리고, 왜곡된 관점과 시선을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게 그의 개성을 구성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음 한편에서 정도(正道), 기준(基準), 모범(模範)을 원하기도 한다.
캡콜드, 김낙호 교수는 내가 나만의 ‘쪼’로 인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스스로 근심할 때, 언제든 조언을 구하고 싶은 벗이다. 물론 정도, 기준, 모범이라는 것도 환상이다. 진실은 이미 게임이 된 지 오래고, 잔인하게도 그 게임은 권력에 의해 항상 진동한다.
캡콜드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미디어를 읽어낼 때 주의해야 할 점들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특히 1020에게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는 물론 우리 처음 생각대로만 흐르진 않아서, 캡콜드의 ‘고딩’ 신문반 시절로 시작해 머스크와 트럼프 그리고 윤석열을 경유해 다시 한국 사회, 우리 자신으로 돌아왔다.
자주 떠올리는 바흐친의 말:
“말에는 그 최초의 말도 그 최후의 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는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 모든 의미는 언젠가 찬란한 귀향의 축제를 맞을 것이다.”
미하일 바흐친
2023년 10월 27일 화상으로 진행한 대화를 세 편으로 나눠 정리한다. 이 글은 첫 번째 글이다.
캡:콜드케이스
03. 모든 것의 팬덤화
[1] 머스크, 슈퍼히어로와 빌런 사이
이 글 목차
0. 신문반 오디세이아
민노: 캡콜드 님은 미디어와 아주 친한 직업(커뮤니케이션과 교수)을 가졌고, 항상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연구합니다. 캡콜드 님이 미디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듣고 싶습니다. 특히 1020에게 ‘미디어를 이런 관점으로 보면 도움이 될지도 모를 거야’라는 게 그 말씀에 포함되면 좋겠네요. (웃음)
캡콜드(김낙호): 너무 어려운 주문이네요. (웃음)
민노: 그런가요? (웃음) 그럼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좁혀서, 어린 캡콜드가 세상 바라보는 시야가 트였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계기가 있었을까요? 이슬비에 젖듯이 조금씩 시선이 성숙해졌을 것 같단 생각도 들지만,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메시지는 그냥 툭 던져지지 않는다… 항상 ‘조율’된다
캡콜드: 그렇죠. 우선 누구에게 뭔가 표현하고 싶은데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민노: 많죠. 특히 최근엔 코로나19 영향으로 특히 초등학생들의 언어발달 지연이 심각하고, 발달지연 환자가 4년새 92% 폭증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관련 기사: “코로나로 언어발달 지연 심각”… 6~10세 대상 독서학원 인기, 동아일보, 21023. 11. 7.).
캡콜드: 저는 어릴 적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줄 수 있을까. 소통에 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왕이면 특정 개인이 아니라 더 많은 청중을 상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미디어에 자연스레 관심을 품었어요. 취미 생활도 그쪽으로 흘러갔죠. 어릴 때부터 대중문화에도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아리 활동도 미디어와 관련한 활동을 했고요.
민노: 계기라고 할만한 사건이 있었을까요.
캡콜드: 고등학교 때 신문반 활동을 했어요. 핵심은 이게 ‘팀 워크’라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조금씩 역할을 맡는 거죠. 그리고 그 과정을 이리저리 조율해야 하고요. 그리고 때론 학교에서 이런저런 기사는 쓰지마라고 압박이 들어오고, 팀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계속 그런 조율의 과정을 겪는단 말이죠.
민노: 아무래도 그렇겠죠.
캡콜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낸 메시지라는 게 그냥 단순하게 누구 하나의 의지로 그냥 툭 던져지는 게 아니라는 것. 미디어의 메시지라는 건 전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든 충돌하고, 조율돼서 나오는 거구나 하는 걸 반복해서 경험했어요.
저는 그런 게 재밌었죠. 그 과정, 그 메커니즘을 조금 더 이해하면서 어떻게 보면 그 조율 과정이 사회 전체가 작동하는 핵심 기제가 아닐까하고 생각했어요. 규모가 큰 사회가 작동할 때는 항상 어떤 매개, 조율의 단계를 거치는데 그게 바로 미디어란 말이죠. 결국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사회의 기본 작동 방식이라고 생각한 거죠.
민노: 고등학생 때부터 그런 정연한 논리를 가지셨군요? (웃음)
캡콜드: 그건 대학에 들어가고, 좀 더 공부하면서 유식한 말들을 갖다 붙인 거고요. 그런 방향의 막연한 생각을 키웠다는 거죠.
학교 검열 내면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배우다
민노: 미디어를 자각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셨는데요. 구체적인 에피소드, 기억나는 게 없을까요?
캡콜드: 고등학교 때 학교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그런 모순이 가득한 상황에 관해 뭔가 써보고 싶었는데… 그걸 도저히 써낼 수 있을 리 없다고 지레 포기한 적이 꽤 많았어요.
민노: 그러셨군요…
캡콜드: 여기서 중요한 건 누군가가 나를 빨간펜으로 그어서 나를 금지시킨 게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나도 그 검열과 금지 과정의 일부구나. 그 금지와 검열이라는 건 뭔가 훨씬 더 복잡하구나. 그런 문제의식들이 자꾸 축적됐죠. 당시엔 그 분노와 혼란과 좌절감을 어떻게 정리할 방법이 없었고, 나중에야 이게 그런 거였구나 하고 쌓여가는 거였죠. 그런 지점들은 존경하는 선배나 롤 모델로부터 배우기보다는 저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배운 거죠.
민노: 실망이요?
캡콜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그 검열과 금지, 그 한계의 일부가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거예요.
“분노하면 지쳐요” “왜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해한 거죠”
민노: 내부 검열을 체화하셨다고 했고, 지레 포기했다고 하셨는데요. 그 패배주의를 극복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강철이 두들겨 맞으면서 단단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진 건가요?
캡콜드: 단단해졌다기보다 왜 이런 식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해한 거죠.
민노: 분노한 게 아니고?
캡콜드: 분노보다는 호기심이죠. 계속 분노하면 너무 지쳐요. 1020에게 뭔가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얘기부터 하고 싶어요. 분노하면 지친다.
민노: 분노하면 지친다? … 그럼 계속 궁금해하면서 조금씩 성숙해진 건가요?
캡콜드: 성숙해진 건지는 모르겠고요. (웃음)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호기심을 품으면서 저 자신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거죠. 그런 설명이 있으면 최소한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능하겠다는 해답이 생기니까요. 그렇게 한 걸음씩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고요. 실제로 메시지를 만들고, 그걸 말하고, 표현하는 접근법도 조금씩 더 가다듬어지는 거죠, 그 과정을 통해서.
1. 머스크, 슈퍼히어로와 빌런 사이
민노: 언젠가 T.K. 님과 인터뷰할 때 한국의 주입식 암기 교육은 아주 효과가 있고, 우리나라 시민의식(민도)은 아주 높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한국)는 작고, 네트워크 인프라까지 아주 발달해서 좋은 조건이라고 하셨죠. 미국과는 정말 대비된다고요. 그 설명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득 떠올라서… (웃음)
민노: 한국식 주입 교육도 경쟁력이 있다?
T.K.: 그렇다. 말하는 것만 봐도 정말 차이가 난다. 내겐 24명의 다양한 나이와 직업, 교육 수준을 가진 사촌이 있다. 일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24명과 이야기하면 미국 사회의 평균보다는 훨씬 더 수준 높은 이야기가 가능하다. 한국 사회 누구를 잡고 이야기를 해도 상당히 수준 높은 이야기가 가능하다. 미국 사회에서 식자층은 돼야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다. 기본 교육이 망가지면 그런 것 같다. 한국은 이에 비하면 훨씬 수준이 높다. 이게 다른 데서 나온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조져가면서’ 교육하고, 논술 책 읽히고…. 그런 게 훈련이 돼서 그런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시민의식(민도)이 미국 사회의 그것보다는 높다고 말했다.
항상 강조하는 이야기다. 확실히 그렇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한민국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너무 가까이에서 보니까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민도가 높은 나라에선 변화에 대해서도 적응이 빠르다.
슬로우뉴스, 왜 남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가 – T.K. 인터뷰, 2014년 7월 17일.
소셜미디어 시대: 네트워크의 밀도와 시민의식
캡콜드: 사회적 맥락으로 보면요. T.K. 님 말씀은 90년대나 2010년대 초까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정확한 말인데요.
민노: 2010년대 중반부터는?
캡콜드: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땅 크기와 상관없이 네트워크의 밀도가 높아졌어요. 그런데 밀도가 높아진다고 뭐가 해결되는 건 아니죠. 아니, 오히려 악화했어요. 우리나라만 해도 네트워크 밀도가 높아지면서 더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갈라지게 됐죠. 확증편향은 더 강화했고요. 교육 수준, 네트워크 밀도, 이런 게 아주 중요한 재료인 건 사실인데 여전히 그것만으로 시민의식(민도)이 확보되는 건 아닌 거죠.
민노: 그렇죠…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저 개인에겐 미디어 디스토피아의 전조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캡콜드: 중재와 조율, 중요한 건 그거예요. 소셜 미디어는 마치 심판 없는 운동 경기와 비슷해요. 심판이 없으면 모두 반칙하고, 권투 경기에 망치를 들고 오죠. 모두 참여할 수 있지만, 누구도 중재하거나 조율하지 않아요. 이런 온라인 난장판이 기본 패턴이죠.
소셜미디어, 심판 없는 운동경기… 심판이 뛰어든 ‘트위터’
민노: 심판 없는 운동경기에 비유하셨는데,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캡콜드: 전 세계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국이나 미국, 더 급속하게 서로 적대적으로 진영화한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는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죠.
민노: 말씀을 듣고 보니,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 행태가 떠오르는데요. 중립적인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캡콜드: 머스크가 그렇죠. 특히 트위터에 있던 중재와 조율, 모더레이터 팀을 거의 다 잘랐어요. 한마디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한 거죠.
민노: 네, 그랬죠. 미국 사회가 머스크를 바라보는 시선, 팬덤의 열광도 있을 거고, 어떤 우려랄까요. 저 인간 왜 저러나 하는 비판적이나 냉소적 시선도 있을 것 같은데요. 좀 설명해 주시죠. 우선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은가요?
캡콜드: 우선 영웅시하는 팬층이 커요. 한국도 마찬가지죠. 머스크 전기가 나왔을 때 그 내용이 아주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데 비즈니스 쪽에서 그래도 식견이 있다는 분들마저도 머스크에게 배워야 할 점 어쩌고 하는 식으로 글을 많이 써서 올리시더라고요.
민노: 우리나라에서요? 아니면 미국에서요?
캡콜드: 한국에서요. 미국도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굉장히 강력한 팬덤이 있고, 한번 팬이 되기로 한 사람은 자기 진영을 쉽게 바꾸지 않아요.
‘팬덤’….지난 수년간 가장 흥미롭고 위험한 현상
민노: 그건 정말 팬심이네요.
캡콜드: 지금 수년 동안 벌어진 가장 흥미롭고 위험한 현상이 ‘팬덤’이에요. 팬덤의 가장 큰 위험성은 팬덤을 공격하는 누구든, 그 적을 무찌를 수 있다면, 뭐든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당연하게 품는다는 거예요. 머스크가 어떤 멍청한 소리를 해도 상관없어요. 그게 멍청한 소리든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같은 소리든 그 머스크의 발언으로 내가 그동안 꼴 보기 싫었던 누군가, 가령 점잖은 교양주의자, 도덕주의자들이 열받으면 그걸로 된 거예요.
민노: 여기서 궁금한 건, 머스크의 대립항은 누구예요?
캡콜드: 안전 지향의 관료주의죠. 머스크가 상징하는 건 그 관료주의를 저돌적으로 깨부수는 혁신이고요. 그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게 스페이스X 로켓을 쏠 때였어요. 당시엔 인허가와 같은 절차적 문제,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쟁으로 신기술 분야가 꽉 막혀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머스크가 등장한 거죠. 그것도 우주개발이라는 가장 미국적인 분야에서요. 게다가 로켓을 ‘재사용’하겠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혁신적인 민간이 비효율적인 관치를 깨부수는 영화 같은 시나리오를 스스로 체현한 셈이죠. 그 영웅이 머스크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깨부수는 파괴적 혁신의 영웅
민노: 그 당시 정말 센세이셔날하기는 했었죠.
캡콜드: 머스크의 팰컨 9 로켓으로 모든 규제는 이제 적이 된 거예요. 관료제 시스템의 규제이든 도덕적 규제이든 사회적인 규제이든 뭐든지 간에 머스크의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가 된 거죠, 머스크의 팬덤에겐.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사회가 제대로, 그것도 안전하게 굴러가기 위해선 규제는 필수적인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특수한 사상이나 관습으로 누군가를 배타적으로 차별하지 않도록 사회적인 금기와 문화적인 금기, 도덕이라는 것도 만들어야 하는 거고요.
민노: 당연하죠. 금기가 없으면 사회도 없죠.
캡콜드: 그런데 지금 머스크가 하는 짓을 보세요. 온갖 반유대 음모론을 대놓고 조장하고, 네오나치주의와 같은 극단적인 인류 차원에서 극복해야 하는 것들까지 그 주장들이 솔깃하다는 식으로 확산시켜 주고 있거든요.
민노: 네오나치주의까지요?
캡콜드: 그런데 그게 머스크가 무슨 히틀러 병에 걸려서라거나 무슨 이상한 집단에 빠져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그러는 게 자기 딴에는 ‘쿨’해 보이는 거예요.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니까 멋있잖아! 쿨해 보이잖아! 오케이? 그냥 그러면서 넘어가는 거죠.
민노: 머스크 입장에서 그런다는 거예요? 아니면 머스크 팬덤이 그런다는 거예요?
캡콜드: 머스크 입장에서요. 그리고 팬들도 그런 걸 좋아하고.
네오나치주의는 금기라고? 나한텐 그런 거 없어! 난 쿨하니까~
민노: 약간 중2병 같은데요…
캡콜드: 팬덤이 보기엔 꽉 막힌 사회에 뭔가 한 방 먹인다는 이미지가 너무너무 좋은 거죠. 그런 욕망을 머스크에게 투사하는 거예요. 머스크도 스스로 나는 재밌고, 열려 있고, 쿨한 사람이다. 심지어 네오나치주의자에게도 나는 열려 있다. 나는 쿨하니까! 나는 혁신가니까!! 그런 이미지를 자꾸 스스로 자신에게 주입하는 거죠.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비판하고 떠들어도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도덕과 금기를 비웃으면서 더 크고, 더 대단한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민노: 확실히 중2병이 맞군요…
캡콜드: 그런 자신의 쿨한 이미지, 혁신가 이미지를 비판하고, 그 환상을 이성적으로 깨뜨리려고 하면, 거의 무슨 중학생 수준으로 ‘열폭’해서 화내는 거예요. 트위터를 인수하기 훨씬 전부터 그런 징후가 있었죠.
민노: 왜 사람들이 그런 머스크의 ‘중2병’을 몰랐을까요.
캡콜드: 몰랐던 건 아니고요.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연다른 성공과 혁신 신화에 빠져서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갔던 거죠. 가장 단적인 사례가 태국 유소년 축구단 동굴 조난 사건(2018년 6월 23일)이예요.
머스크의 민낯 잘 보여주는 ‘태국 유소년 축구단 동굴 조난 사건’ (2018)
민노: 머스크가 태국 유소년 축구단 구조에 나섰나요?
캡콜드: 소년들을 구조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구조 방법을 논의하고, 그 소식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던 때였어요. 팬들이 머스크에게 당신이라면 저 소년들을 구해낼 수 있을 거라고 바람을 넣었어요. 머스크가 쿨하게 ‘그래? 그러지 뭐’ 하면서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기술력을 동원해서 무인 구조 잠수함을 하나 넣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그쪽에 하나 보내겠다고 했어요.
민노: 그래서 그 잠수정이 도움이 됐나요?
캡콜드: 아니요. 구조를 망칠 뻔했죠. 당시 현장에 있던 영국 잠수 구조 전문가가 머스크의 제안을 반박하면서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했어요. 일단 그런 큰 도구로는 절대 동굴 속 좁은 통로를 통과할 수 없고, 오히려 그 통로를 파괴해서 위험하고, 아이들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고 아주 단호하게 그 가능성을 일축했어요. 그걸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죠.
민노: 그래서요? 머스크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캡콜드: 노발대발 역정을 내면서, 소아성애자 놈이라고 아주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해댄 거예요(문화 맥락상 태국 인종차별 뉘앙스도 들어갑니다). 자기와 같이 혁신적 기술로 무장한 사람들은 안전 타령하고, 도덕 타령하는 사람들이 절대 해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 또 그런 식상한 레파토리인 거죠.
‘거품'(버블)에 불과한 환상이 깨지지 않는 이유
민노: 그런 말뿐인 레토릭이나 자기 신화화는 결국 깨지지 않나요? 계속 성공만 할 수도 없는 거고…
캡콜드: 그런데 팬덤은 그 환상, 그 버블이 깨지는 걸 아주 싫어해요. 그게 유지되는 한 거기에 추종자들이 생기는 거고요.
민노: 그렇군요… 깨뜨리기 싫어하는 거군요…;;;
캡콜드: 여기서 재밌는 건 그런 아집, 자신을 비판하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머스크 개인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머스크 팬덤이 패턴화해서 보여준다는 거예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에서 정치가로서 가진 이미지도 딱 그거였고요. 한국에서 윤석열(후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힘이 뭐겠어요. 증오잖아요. ‘문재인 조져라!’ 뭐 그런. 즉 실망한 무언가를 깨부숴 줄 누군가를 기대하면서 거기에 팬덤이 몰린단 말이죠
팬덤의 탄생, 기성 체제에 대한 반동 혹은 어부지리적 반대급부
민노: 기성에 대한 반동이나 기성의 실패에 반대급부와 같은 반사이익을 누리는 거네요?
캡콜드: 그렇죠. 중재도 없고, 조율도 없고,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적인 투쟁만 있는 상황에서 이제 모든 게 전투 진영이 되는 거예요. 내 편 아니면, 적인 거죠. 진영화 혹은 팬클럽화한단 말이죠.
민노: 하나 궁금한 게 머스크의 그런 돌발행동이나 중2병 같은 행동에는 기업인으로서 이익을 위한 어떤 전략적 고려도 있다고 보세요?
캡콜드: 전략적 고려보다는 자기는 그렇게 해도, 아니 그렇게 해야 성공한 기업인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자기 암시를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런 강력한 카리스마가 잘 먹히기도 했고요. 그게 일종의 브랜드가 됐잖아요. 머스크는 혁신의 상징이다! 머스크는 안전제일주의가 해내지 못하는 무언가를 기어코 실현해 내는 사람이다! 전기차를 봐라! 스페이스X 재사용 로켓을 봐라!
민노: 그렇죠. 꽤 성공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있긴 하죠.
캡콜드: 그렇죠. 그러니 머스크를 믿어라! 테슬라에 투자해라! 사실은 실패한 사업들도 많아요. 지하 터널을 파서 개인 운송 수단으로 삼겠다는 구상도 실패했고, 그 밖에도 많은 실패들은 그냥 쉬쉬하고 넘어간단 말이죠. 그런 똑같은 성공 공식을 트위터에서도 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그 민낯이 까발려진 측면이 있는 거고요.
트위터에서 머스크의 민낯이 (좀 더 잘) 드러난 이유
민노: 머스크의 민낯이랄까 그 실체가 트위터에서 좀 더 잘 드러난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캡콜드: 전기자동차 만드는 거, 재이용할 수 있는 로켓을 우주에 쏘아 올리는 거. 물론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수억 명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수억, 수십억 개의 대화를 조율하는 거, 그게 ‘훨씬 더’ 어렵단 말이죠(2023년 3월 기준 약 3.5억 명의 사용자가 하루 약 5억 개의 게시물을 작성).
민노: 참, 태국 유소년 축구단은 어떻게 됐나요?
캡콜드: 다행스럽게도 결국 잘 구조했죠.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드라마로도 나오고요. 물론 머스크는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 구조전문가 말이 맞았으니까요.
민노: 그래도 참 다행이네요.
캡콜드: 그러니까 제가 강조하는 건 머스크라는 개인의 특이성이 아니예요. 평범한 대중이 언중으로서의 집단을 구성해서 집단적 심리를 만들고, 구원이나 해방의 욕구를 내러티브로 만들고, 그렇게 자기 암시처럼 최면을 걸어서 뭔가 터지면 다들 우르르 몰려든다는 거죠.
민노: 가령, 머스크를 통해 표상되고, 상징되는 혁신이나 기성 관료적 안전제일주의, 위선적 도덕의 파괴… 같은 것이겠네요.
캡콜드: 그렇죠. 어쨌든 사람들은 표면적이든 표상적이든 뭔가를 돌파해 내고, 뚫어내는 혁신의 이미지에 다들 열광하고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실제 사회에서 뭔가를 조금씩 바꿔 나가고, 전진하든 후퇴하든 그런 점진적인 건 속이 시원하지 않거든요. 얼마나 전진했는지, 얼마나 후퇴했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고요.
머스크에게 의지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애초에…
민노: 머스크는 구조의 산물이지만, 그 구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슈퍼울트라’ 잖아요? 머스크의 독선이나 일탈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나 효과적인 움직임, 이런 게 있다고 보세요?
캡콜드: 우선 실제 이미지만큼 그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머스크 개인이 실제로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그 이미지’ 때문에 실제로 가진 권력보다 훨씬 더 그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는 이상한 순환재생산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머스크가 트위터를 열심히 망치고 있다고 해서 트위터를 통해 머스크가 세계 여론을 막 쥐락펴락하고, 주도하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거든요. 일어날 수도 없고요.
민노: 하긴 그렇긴 하죠. 하지만…
캡콜드: 트위터를 잘 쓰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규모 때문에 생긴 공공 인프라적 성격, 그 속에서 속보성 정보를 유통할 수 있었던 꽤 유용한 공론장 하나를 머스크가 망쳐놨구나, 거기까지인 거죠.
오히려 머스크 전기에 살짝 나오지만, 머스크가 실제로 현실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한 사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해군 함대를 향한 우크라이나 기습공격을 막기 위해 스페이스X 엔지니어들에게 크름반도 해안 근처의 스타링크 위성 통신망을 차단하라고 지시한 일이 있었잖아요. 애초에 러시아에 의해 통신망에 파괴된 우크라이나에 인터넷 망을 빌려준 게 머스크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통신망을 한 개의 민간기업에 의지한 게 한 나라의 군사 작전을 머스크가 쥐락펴락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문제였던 거죠. 그러니까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 머스크를 무언가로 견제해야 한다는 접근보다는, 그냥 머스크에게 그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의지하지 말아야죠.
민노: 문득, 머스크와 트럼프는 차이가 있잖아요?
캡콜드: 갈수록 그 차이가 작어지고 있긴 하지만, 차이가 있긴 하죠.
- 이 글은 사이다~! 포퓰리즘 시대의 마스터 내러티브 으로 이어진다.
이 글을 보면서 머스크도 미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문뜩 떠올랐음.\